[심층분석] 백신정치, 文정부 스스로 키웠다
[심층분석] 백신정치, 文정부 스스로 키웠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01.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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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 국민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TV에서 목격했다.

당시 노영민 대통령실장이 국회 운영위에서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들입니다!”라고 고함치는 장면이 등장했던 것. 그해 8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보수 시민 집회를 두고 한 말이었다. 노 실장은 “광화문 집회에서만 확진자가 600명 이상이 나왔다”. “광화문 집회로 7명 이상이 죽었는데 그걸 지금 옹호하느냐”면서 계속해서 따졌다.

그로부터 약 한달 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논리라면 문재인 정부도 살인자 정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예산을 한 푼도 국정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던 것을 김근식 교수(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가 지적한 것이었다.

정치적 갈등 품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코로나19 백신이 4월 재보선 정국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반면, 한국은 FDA 승인을 득한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 접종이 4월은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 영국에서 승인을 득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국내 식약청 승인을 통해 올 2월부터 접종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국민이 가진 불안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미국의 FDA 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국내 식약청만의 승인으로 그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영국 보건 당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긴급 승인을 냈다지만 이는 영국이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확보한 상태에서 비상국면을 염두에 뒀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여론 조사 결과는 백신의 긴급성과 안전성에 대한 지지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세계경제포럼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지난 해 11월 전 세계 15개국에서 성인 1만3500여 명을 대상으로 백신을 맞을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율과 백신 접종이 꺼려지는 원인 등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백신을 맞겠다는 응답률이 75%에 달해 가장 높은 중국(80%)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유럽의 백신 접종 의사가 40% 수준인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다. 이어 우리 국민은 백신에 대한 우려로 80%가 ‘안전성’을 꼽았다. 이 두 개의 응답을 조합하면 우리 국민은 백신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수요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그 안전성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여론조사가 엇갈린다는 점이다. 올해 1월 1일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유권자 1007명을 대상으로 ‘정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은 결과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48.7%,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48.8%로 조사됐다. ‘백신 접종’ 여부에 대해서는 ‘접종이 시작되어도 안전성을 확인하고 맞겠다’가 65%로, ‘접종이 시작되면 무조건 맞겠다’ 26.9%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주안점에 대해 조사한 결과 ‘상황이 심각하므로 국내도 하루라도 빨리 접종을 시작해야 한다’는 응답이 54.9%로 나타났다. ‘해외와 국내는 상황이 다르므로 안전성을 좀 더 검증 후 접종해야 한다’는 응답은 41.1%였다.

백신 접종을 두고 안전성과 긴급성에 대한 두 여론조사의 내용이 크게 상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MBC의 코리아리서치가 100% 무선전화 응답을 채택한 반면, 리얼미터는 무선 80%, 유선 20%를 배합한 까닭에 유선 전화에 응답하는 대상자의 고령 또는 주부 특성상 백신 접종에 ‘긴급성’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한 해석은 리얼미터 조사에서 고령층일수록 백신 접종의 긴급성을 선호한다 는 점, 그리고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일수록, 역시 긴급성에 더 경도되어 있는 점이 말해준다. 다만 국제기관 입소스의 여론조사와 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가 큰 방향에서 같다는 점으로 보면 우리 국민에게 백신 접종은 긴급성보다 안전성에 더 무게가 실려 있어 만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될 경우 코로나 백신 접종 문제는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낳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신 개발에 올인했던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난 해 4월 ‘백신주권’을 내세우며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국내 개발 의욕을 강하게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9일 경기 성남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방문해 ‘코로나 치료제 백신 개발 합동 회의’를 주재하면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확실히 돕겠다.

개발한 치료제와 백신은 (코로나가 끝나도) 비축하겠다. 끝을 보라”고 했다. 이어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 바이오 의약 수준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도 했다. 9월 8일 국무회의에서는 ‘국립감염병연구소의 백신 개발 지원’을 주문했다. 해외 백신을 수입하는 것보다 ‘백신·치료제 자체 개발’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판단을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 이는 질병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주임교수였다. 권 교수는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문 대통령의 백신 개발 주문을 ‘과학이 아닌 국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백신)개발? 우리나라 제약산업과 기초 의약학 수준을 알면 그런 소리가 나왔을까? 우리나라 제약회사 매출 다 합쳐도 화이자 하나 만큼도 안 나오는데, 대부분의 약이라는 게 카피약일 뿐인 이 나라의 제약산업이 무슨 수로 1년 안에 새로운 개념의 백신을 개발하는가?’라며 ‘이대로 하면 모래알로 쌀을 만들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4월부터 백신을 확보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지만 실제로 청와대 기록을 통해 확인된 것은 백신 확보가 문제가 된 지난 해 10월경에 들어 처음으로 대통령이 백신 확보에 대한 발언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듯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해 12월 20일 백신 확보에 한국 정부가 뒤늦게 대응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 총리는 KBS1 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정부가 백신 TF를 가동한 지난 7월에는 국내 확진자 수가 100명 수준이어서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라며 “미국 등은 계약사에 백신 개발비를 미리 댔다. 제약사들도 이런 나라들과 차등을 둘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신 계약이 조금 늦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의 이러한 발언으로 야당의 백신 공세가 시작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해 12월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국민이 모르모트인가’라며 날선 비판을 내놨고 이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을 비판하며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간 선조’, ‘서울 버린 이승만’에 비유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같은 달 24일 비대위 회의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벌어지며 ‘백신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야당의 비판에 청와대와 민주당은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하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을 정치적 이슈로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문 대통령과 청와대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백신정쟁은 여권의 책임

백신과 관련해 청와대의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문재인 정부가 2021년 올해 국정 예산에 백신 예산을 잡지 않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건 당국은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1차, 2차, 3차, 4차 추경 정부안에 백신 구입비는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도 당초 코로나 백신 구입비는 ‘0원’이었다. 코로나 백신 구입비는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뒤늦게 반영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코로나 백신 예산만큼은 편성되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항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백신 구매와 접종에는 얼마나 돈이 들 것인가.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백신 확보분인 1억600만 회분(5600만 명분)에 대한 접종 비용을 전액 국고로 부담할 경우 2조8873억2000만 원에 플러스알파(모더나·코백스 퍼실리티 계약액)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모더나 백신이 고가인 만큼 4조 원 가까이 예산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추산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비용은 크게 백신 공급가액과 접종을 해주는 의사 행위에 대한 시술료(접종비)로 나뉜다. 접종 비용 추계는 백신 계약 체결에 따른 총 공급가액과 시술료 지원 대상 선정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이태규 의원실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국고 부담을 추계한 결과 시술비용에는 2조373억2000만 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억600만 회분에 질병관리청 비용심의위원회가 확정한 1회분당 시술료 1만9220원을 곱한 값이다.

현재 정부의 백신 구매예산은 1조3000억 원으로는 책정돼 있다. 정치권에서는 전 국민 백신 수급을 위해 2조8000여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데 정부가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 생명 문제가 달린 백신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여든 야든 백신이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협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청와대는 이번 백신 사태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 정책 실패에는 혹시 문재인 정권 차원에서 백신을 자신의 정치적 전리품으로 활용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상식을 가진 정부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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