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기 때마다 정체성 찾아 나선 놀라운 한국인”
[인터뷰] “위기 때마다 정체성 찾아 나선 놀라운 한국인”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2.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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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만들기' 시리즈 출간한 함재봉 전 아산정책연구원 원장

함재봉 교수의 ‘한국사람 만들기’ 세 번째 역작이 발매됐다. 함 교수는 지난 2017년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한국사람 만들기>라는 대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한국사람 만들기1>(452쪽), 두 번째 <한국사람 만들기2>(544쪽)에 이은 <한국사람 만들기3: 친미기독교파1>(1006쪽)은 친미기독교파의 생성과 그들의 철학, 가치관, 사고방식, 그들이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을 치밀하게 추적·관찰·분석하는 걸작이다.

미 칼튼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존스홉킨스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함 교수의 놀라운 통찰력이 담겼다. 친미기독교파가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미친 파장을 다층적으로 분석 제시한다. 함 교수에 따르면 ‘친미기독교파1’에 이어 조만간 ‘친미기독교파2’도 발간된다. <미래한국>이 최근 함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한국사람 만들기 연작 시리즈 중 이번에 낸 책의 주제는 친미기독교파(1부)네요. 이 시리즈 대작을 기획하신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오래 살아 정체성 문제에 민감했고 고민도 많았어요. 어린 마음에 나는 누구일까, 한국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호기심도 많아 본질을 찾아 공부도 했죠. 우리나라 유교 문화와 근대성,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천착하면서 한편으론 샤머니즘 무속도 공부해보니 한국인의 본질은 이것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 사람은 왜 이렇게 이념적으로 나뉘어 있고 전부 다른가.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조그만 나라에 이렇게 많고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가톨릭, 불교, 기독교, 유교, 원불교, 이슬람교, 대순진리교, 천도교 등 엄청나죠. 미국과 같은 이민의 나라가 아니면 프랑스는 가톨릭, 스페인도 가톨릭 많은 이슬람 국가처럼 종교가 단일하단 말이에요.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 보통 리추얼(ritual. 의식)을 공유한다는데 우리의 관혼상제만 봐도 정체불명이란 말이죠.

결혼식도 정체불명이고 영안실 문화도 정체불명이에요. 5000만이 단일민족이라고 하는데 공통적인 엑기스는 없고 이렇게 다양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거꾸로 왜 이렇게 다양할까로 접근해봤더니 ‘아, 이래서 다르구나’ 하고 훨씬 분명한 답이 나오더군요. 한국 사람들은 자꾸 상대방도 나와 똑같다고 착각하는데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르다는 것이죠.

한국인을 규명하는 5가지 범주

-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범주로 설명하셨죠.

조선이 망한 뒤 지식인들은 조선을 대체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나섭니다.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고 외친 쪽은 주자성리학을 물려받은 위정척사파예요. 삼강오륜, 충효사상 같은 주자성리학의 핵심 가치는 아직도 한국인이 지켜야 할 지배적인 윤리관입니다. 우리나라 국민 70%는 아직도 제사를 지내잖아요.

이항로, 최익현을 통해 강렬하게 드러낸 그 뿌리를 캤죠. 일본의 선진 문물을 직접 보고 돌아온 김옥균, 박영효 등의 ‘친일개화파’는 메이지유신 이후 눈부시게 발전하는 일본을 모델로 삼은 이들이죠. 쇄국했던 이들이 어떻게 일본을 문명국가로 인정하고 배워야겠다고 난리를 쳐서 갑신정변까지 일으키게 됐는지 그 부분을 탐구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좋으나 싫으나 일본을 척도로, 모델로 삼는 분야가 굉장히 많죠. 이들 개화파가 실패하면서 윤치호 등은 미국 기독교에서 대안을 찾았습니다. 한국 근대교육과 의료의 토대를 미국 기독교 선교사들이 마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동아시아에서 이렇게 기독교 인구가 많고 학교나 병원 등에 이 정도로 기독교의 영향이 큰 나라가 없어요. 정말 특이한 현상이죠.

그런 기독교가 어떻게 들어오게 됐고, 그 기독교는 18세기 김대건 신부나 정하상 바오로 이런 박해받던 가톨릭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 100년이 늦었지만 가톨릭과 다르게 기독교는 왜 박해받지 않고 환대를 받았는가 그런 점을 3권 친미기독교파에서 봤습니다. 그리고 소련과 공산주의가 한국사에 미친 영향도 지대합니다. 마지막으로 1920년대 이후에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민족주의가 들어옵니다.

말이 좋아 민족주의지 엄밀히 말해 인종차별주의(레이시즘)에요.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도 남북한이 같은 피를 나눈 형제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거죠. 이념, 종교, 지역, 관습도 다 다르지만 남북을 하나의 종족으로서 규정해야 한다, 유일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피’라는 거죠. 북한과 우리가 한 민족이라고 해서 마치 우리가 뭔가를 그들에게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게 그겁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북한은 불구대천의 원수 아니에요? 우리를 죽이겠다고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같은 민족이라는 우리를 죽이겠다고 하는데, 대놓고 그 이야기를 못하는 이유는 뭐예요? 순전히 민족주의라는 것 때문이죠.

- 피를 따지는 게 18세기 민족주의 영향도 영향이겠지만 족보 따지는 한국인의 습성은 원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족보가 성종 때(1476년 성종7) 나온 안동 권씨 성화보예요. 그 전에는 족보라는 게 없었습니다. 우리가 중국 주나라 종법제도를 들여와 제사를 지낸 게 세종대왕 때 일이에요. 중국 고대 하은주에서 하나라나 은나라는 형제간에도 왕위를 계승하고 딸들도 계승하고 여러 방법이 있었는데 주나라만 무조건 장자상속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아주 질서정연하게 보이죠. 공자가 세 나라를 다 섭렵해보고는 자신은 주나라의 주례라는 걸 따르겠다고 한 게 유교가 됐어요. 유교라는 것은 주례고 주례는 종법제도예요. 아무튼 해방 이후 갈라진 이 다섯 가지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분류해 추적하면 세계 사상사나 주변의 4강구도 등 실제로 우리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11월 21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한국사람 만들기'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는 함재봉 교수/유튜브 방송 캡처
2020년 11월 21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한국사람 만들기'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는 함재봉 교수/유튜브 방송 캡처

이데올로기 맹신주의 만드는 잘못된 역사교육

-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하나로 생각했어요. 특히 친미기독교파는 내 모습의 일부가 담겨 있으니까요. 할아버님이 목사님이시고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니까요. 특히 이번에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아 우리 할아버지는 그런 이유로 개종하셨겠구나’ 이런 걸 알게 된 거죠. 학술적 차원에서라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연세대에 부임해서 정치사상을 가르치다보니 서양의 이론을 적용하려고 할 때 한국의 역사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찾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헷갈리기만 한 거예요. 특히 근세사 들어오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정리가 안 돼 있더라고요. 사건이나 인물 날짜는 다 암기하고 있는데, 정리가 안 돼 있다 보니 어떻게 연결돼 있고 꿰어져 있는 스토리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 작업을 하면서 혼자 대충 꿰맞추고 있던 것,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와, 어떻게 이렇게 모르고 있을까, 다들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고 있을까’를 깨닫고 문제의식을 느껴 강의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다룬 거죠.

그런데 자꾸 이야기를 하다보니 좀 더 공부와 연구의 필요성을 느껴 이참에 정리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본격적으로 써보자고 생각한 때가 2015년이었던 것 같아요. 1권 쓰고 나니 더 용기가 생겨 2권을 쓰는데 너무 길어지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500페이지 넘어가는 책은 안 읽는다고 주변에서 하도 말려 줄이고 줄였는데 잘 안 되더군요. 이번 3권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썼어요. 친미기독교파(1) 이것도 전체 분량의 반만 담은 거예요. 2권이 또 나와야 해요. 1000페이지가 넘지만 내보자 한 거죠.

- 그래도 꽤 팔린 것 같던데요.

1쇄야 팔리겠지 설마. 1000권 팔린 건데요 뭘. 역사를 읽어보면 진짜 재미있어요. 이것을 다 알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왜 사람들한테 알려져 있지 않을까, 일단 역사책들이 너무 재미가 없어요. 학생들에게도 역사는 제일 재미없고 지루하고 외워야 하고 암기과목으로 돼 있잖아요. 역사의 히스토리라는 말은 불어에서 나온 말로 histoire (h는 무성이니까 이스토아), 이것은 불어로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살았다는 나의 스토리가 있듯이 나라와 민족도 똑같죠. 어떤 공동체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스토리가 있어야 자기가 누군지 알게 되는 거거든요. 이렇게 정리가 되면 한국 독자들도 재미있어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 들어가 있는 사건이나 인물 등을 단편적으로는 거의 다 들어봤을 거예요. 이것을 스토리로 쭉 엮어주면 그 자체가 스토리가 되고 정체성이 된다는 거죠. 스토리텔링이 돼야 재미가 있어요.

해리포터는 1000페이지가 넘어도 스토리텔링이 되니까 독자들이 줄 서서 책을 사 읽잖아요. 저도 용기를 내서 내 나름대로 재미있게 써서 내보자고 한 거예요. 앞으로도 생각 닿는 대로 찾아보고 책을 낼 생각입니다. 자료는 다 있어요. 우리가 관심 있게 찾고 들여다보지 않아 그렇지 여기저기에 묻혀 있는 자료, 나뒹구는 자료들이 굉장히 많아요.

- 말씀을 들으니 학교 역사교육이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이념에 잘 빠집니다. 한국 사람은 이데올로기에 잘 빠져요. 공부 안 해도 되는 게 이데올로기거든요. 이 사람은 나쁜 놈, 저 사람은 좋은 놈, 이쪽은 유산계급, 저쪽은 무산계급, 이쪽은 적폐세력, 저쪽은 또 어떤 세력 이렇게 정리해줘서 아무 생각도 안하게 하고 공부 안 해도 되게 해주는 게 바로 이데올로기죠.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선봉에 서서 사회 계몽을 하고 훈계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선동가가 되도록 해주는 게 이데올로기예요.

역사에 깊이 들어가면, 예를 들어 제대로 된 영화라면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에 대해 ‘대체 선한 사람이야 악한 사람이야?’ 뭔가 헷갈리고 간단치 않구나 느끼도록 해주는 게 진짜인 것처럼 역사와 인문학도 마찬가지죠. ‘저놈은 을사오적 친일파야, 그러니 처단해야 돼’라고 간단하게 정리가 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고 그래서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가 뭔지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해가 되고 비록 동의할 수는 없어도 오히려 연민까지 생기죠. 그러니까 이런 교육이 지금 잘 안 되는 거예요. 또 예를 들어 친미가 싫다? 그럼 친미기독교파가 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들여다보자는 거죠. 선교사들은 왜 이 땅에 왔고, 와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고, 조선 사람들이 그때 어째서 목숨 걸고 그렇게 많이 개종했는지를 들여다보면 누구를 단죄하기 전에 전혀 다른 이해가 생겨요. 이데올로기는 단죄하도록 만들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돌아보게 하면 그 속에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눌려 스러져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게 돼요.

‘다름’을 인정하면 한국인의 정체성 보여

- 작업이 아직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인의 정체성, 다 섞여 있어요. 아직 완결한 것은 아니라 섣불리 말하기는 그렇지만 현재까지 제가 내린 결론은 그래요.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다섯 가지의 원형이 다 있는 거죠. 한 집안에 기독교 불교 천주교 다 있잖아요. 아버지는 제사 지내고 말이죠. 50년대까지는 주자학적인 세계관이 크게 영향을 끼쳤지만 그 이후 공유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져요. 김일성과 박정희가 만나고, 김정일과 김대중이 만났을 때 혹시 뭔가 일이 성사되려나 하는 기대도 갖고, 축구로 말하면 무조건 일본은 이겨야 하는 거고, 그렇다고 산업사회가 다 싫으냐?

그건 아니지만 물질적으로 삼성 현대가 장사를 잘하면 그건 또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 대신 퍼센테이지는 다를 것 같아요. 누구는 어떤 면이 강하고 누구는 다른 어떤 부분이 강하고요. 대신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한쪽은 사회주의적 측면, 왕도주의적 측면이 강하고 한쪽은 시장경제 측면이 더 강한 식으로 갈라지지만, 아무튼 같이 어떻게든 함께 살아올 수 있을 정도의 공통점은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죠.

 ‘미스터 트롯’ 전 국민이 열광하는데 거기 좌우가 어디 있어요? 그렇게 점점 공통분모가 많아져 이제는 한국 사람이 희미하게 보인다는 겁니다. 그럼 한국의 보수는 어떤 사람들인가, 도식적으로 굳이 나눈다면 친미기독교파와 친일개화파이겠죠.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것은 기독교가 정말 강했다는 사실이에요. 조선조가 멸망하고 그 과정에서 대원군과 민씨 외척이 몰락하고 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가 몰락하면서 이 사회에서 뭔가 조직하고 후대를 길러내고 했던 게 기독교밖에 없었던 거예요.

교회라는 놀라운 조직이 점조직처럼 생겨 전국적으로 1주일에 한 번씩 꼭 모이고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자기들끼리 장로를 뽑고 집사를 뽑는 선거를 해가면서 말이죠. 이 점조직이 만들어지니까 만민공동회와 같은 단체가 나오기 시작했고 나라가 망한 다음에는 3·1운동을 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거죠. 일제에 항거할 수 있는 조직이란 게 기독교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사람들은 그때 목사가 신사 참배했다고 욕하고 있는데,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은 그때 뭘 했어요? 이승만 박사, 윤보선 등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기독교가 중심이었어요.

- 말씀을 들으니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겼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기독교 국가처럼 생겼지만 박정희 대통령 들어와 전혀 달라졌죠. 박정희 대통령은 기독교인이 아니었어요. 이 사람은 친일개화파였죠. 완전히 일본식 근대화 공부를 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많았고 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전부 기독교인이었어요.

그러니까 80년대 386이 등장하고 본격적인 주체사상, 사회주의 사상을 들여와 반정부 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아는 야당세력도 기독교가 중심이 돼 독재를 반대한 것이에요. 함석헌이나 정일형 씨 등 이런 분들 전부 다 기독교인이면서 독재를 반대한 거죠. 이렇게 보면 역사의 그런 결도 보이는 겁니다.

‘한국사람 만들기’ 내 정체성 찾기 과정

- 한국인들의 원형을 찾아가면서 이런 점은 부정적이다 하는 면도 발견하셨나요?

많죠. 신문에 실으면 안 되는 것 많아요. 하하. 자, 그럼 이 책을 완성해가면서 저도 어떤 결론을 내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해온 것을 바탕으로 미리 해보면 이전에는 상당히 막연했는데 이번에 이 책 친미기독교파를 쓰면서 ‘아, 우리에게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가 맞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종교개혁은 왜 중요했고 왜 그렇게 칼비니즘(칼뱅주의)가 중요하다고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강조하고 자본주의가 칼비니즘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왜 했는지 알게 된 거죠. 알렉시스 드 토크빌(프랑스 철학자) 같은 사람이 미국 민주주의를 쓰면서 ‘미국은 종교와 자유주의가 같이 가는 이상한 나라’라고 한 것을 이해하게 됐던 거예요. 프랑스의 계몽주의란 종교의 미신주의에서 벗어나 근대성과 민주주의, 공화주의로 가는 것이잖아요?

토크빌이 미국에 와보니 미국인들은 전부 교회에 다니고 교회에 모여 결정을 하는 교회공동체와 사회공동체가 완전히 겹친 생활을 하면서도 자유로움을 느낀다니 얼마나 이상했겠어요. 미국인들은 자유를 달라고 외치면서 교회는 또 열심히 다녀요. 저도 이번에 공부하면서 제가 계몽주의를 유럽식, 프랑스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프랑스식으로 이해하면 자유와 종교는 상충되는 것인데 미국은 왜 그럴까? 바로 칼뱅이라는 사람의 종교관에서 출발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거죠. 칼뱅이 가톨릭 교회에 반대하면서 체계화한 게 구원예정설이에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게 개신교가 만든 근대 인간의 불안감의 근원이에요.

구원의 문제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게 무서운 심리적 작용이죠. <실낙원>을 쓴 존 밀턴이 칼비니스트예요. 이 세상은 원죄에 빠진 지옥과 같은 세상이다.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져 사탄이 하나님에게 저항하기 위해 인간을 꼬드겨 선악과를 따먹게 하고 끝까지 대결하게 만든 거죠. 구원받았다는 인간이 있을 수 없어요. 우리가 아무리 남에게 적선하고 선한 일을 해도 그런 선한 행위를 통해 내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 즉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이라는 겁니다.

내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것, 무서운 이론이죠. 그러다 보니 칼비니스트들이 불안한 겁니다. 구원의 징표를 위해 열심히 살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이들은 사치를 안 합니다. 청교도들은 그 많은 돈을 벌어도 까만 옷만 입고 근검절약하다 보니 부가 쌓이는 거예요.

불완전하고 악한 인간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서로 뺏고 뺏기지 않으며 나누고 살려면 계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회계약론이 나오고 시장이 형성되고 민주주의가 되고 아담 스미스가 나오고 로크가 나오는구나, 우리가 아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결국 칼비니즘에서 비롯된 거구나, 인간의 모습을 직시해야 거기서 근대성이 나온다, 그럼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맞는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 있어 기독교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문재인 정권 사람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명약관화하죠. 지식인들 특히 386세대는 한국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보잖아요. 군사독재와 재벌이 결탁해서 세운 체제, 서울 달동네 빈민촌과 공장에서의 착취 등 그런 면을 통해 세계를 배웠고 지금까지 봐왔어요. 그렇게 보는 것은 두 가지 이유예요. 하나는 사회주의고 그렇게 보는 데 있어 유교적 기반이 작용하는 거죠. 뭔가를 나눠야 하고 품앗이를 해야 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하고, 가족 공동체가 모여 살아야 하는데 산업화한다고 누이는 공장으로 떠나게 하고 착취당하고 또 아들은 어디로 떠나면서 아름다운 대가족 공동체가 분해됐다고 보는 거죠.

그렇다고 삶이 나아지느냐? 지주와 소작농 구도처럼 자본가와 노동자 구도로 보도록 배웠고 실제 그런 해석을 바탕으로 운동을 했었고, 조직을 했었고요. 친소공산주의파와 왕도정치의 위정척사파에 이상한 인종적 민족주의까지 합쳐야 이 사람들을 설명할 수 있겠죠.

- 포털 정보에 교수님은 개신교(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하셨다고 나오더군요.

어머니가 개종하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개종하셨는데, 어머니 입장에서 개신교는 돌아가신 분에 대해 굉장히 냉정해요. 예배 한번 드리고 끝이거든. 그런데 천주교는 달라요. 수녀님들이 와서 연도해주시지 49재 하지 끊임없이 망자에 대해 미사 드려주지, 제사와 비슷하죠. 그 점에서 어머니가 많이 아쉬우셨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있다 개종하셨어요. 그 전까지는 아버지 산소에 가서 우리끼리 찬송 부르는 것밖에 없었어요. 저는 교회도 나가고 성당도 가고 그래요. 아무 문제 없어요.

문재인 정권 정체성, 친소공산주의파·위정척사파·인종적 민족주의의 혼합

- 한국 사람에게 앞으로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미국과 유럽 선진국처럼 강한 개인, 깨어 있는 개인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한국 사람들은 학연·지연·혈연에 좌우되고 국가주의에 쉽게 빠져요. 자유의 소중함을 자각하는 매력 있고 개성 넘치는 일류 개인들이 훨씬 많아져야 해요. 한국 보수가 20~30대와 사회 전체를 잡으려면 창의성을 보장하는 ‘강한 개인주의(robust individualism)’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함재봉 교수는 1983년 미얀마 아웅산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함병춘 박사의 큰아들이다. 당시 함 박사는 전두환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사건 때 순직했다. 함 교수는 부친이 하버드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1958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부모 품에 안겨 한국 땅을 밟았다. 부친이 1966년 예일대 연구교수로 가면서 미국에서 초등학교 3, 4학년을 보냈다. 1973년 부친이 주미대사로 부임하면서 그는 고교와 대학, 대학원(석·박사) 과정을 미국에서 마쳤다. 

함 교수의 할아버지는 법률가이자 개신교 목사로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인 함태영 전 부통령(3대)이다. 아버지의 유학 시절 미국에서 태어난 함 교수는 유네스코본부 국장, 미국 남가주대(USC) 교수,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으로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외국에서 살았다. 연세대 교수와 아산정책연구원 원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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