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세계경제 30%, RCEP이 온다
[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세계경제 30%, RCEP이 온다
  •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21.04.0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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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장의 외교안보적 함의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고, 북반구 국가에서는 코로나의 2차, 3차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11월 화상회의를 통해 모인 동아시아 15개국 정상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에 최종 서명했다. 이로써 GDP 총합만 해도 26.3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 통합시장이 탄생했다. 가까이는 2011년 아세안 국가들이 RCEP의 추진을 선언한 지 9년만에, 멀게는 아세안+3(ASEAN +3)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가 유사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지 근 20년만에 동아시아 지역 메가 FTA가 결실을 거둔 것이다. 이제 향후 1~2년 사이 개별 국가들의 비준을 거쳐 RCEP은 본격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2019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AFP연합
2019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AFP연합

RCEP, 거대 지역 FTA의 탄생

RCEP이라는 거대한 실체가 가지는 다양한 경제적 의미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외교안보적 함의도 따른다.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지난 몇 년간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 경쟁도 무역전쟁이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강대국들이나 중소국들 모두 경제적 합의인 자유무역협정에 외교안보적 의미를 투영해 이중으로 활용 혹은 해석한다. 강대국들은 경제적 통합을 정치적, 안보적 영향력 투사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고, 중소국가들은 이런 강대국의 의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RCEP은 협상 초기 16개국으로 시작을 했다. RCEP의 원 협상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의 16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했다. 이 16개국에는 동북아의 한국, 중국, 일본, 아세안 10개국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인도가 포함된다. 2011년부터 EAS의 참가국인 미국과 러시아는 이 협상에 초기부터 참여하지 않았고 지금도 제외되어 있다. 7년간의 협상 끝에 2019년 인도를 제외한 15개국이 협정문 합의에 이르게 되었고 이 협정문에 2020년 EAS 정상회의 계기에 화상회의로 만난 정상들이 서명을 했다. 이로써 동북아, 동남아 그리고 오세아니아에 이르는 15개국의 지역 FTA가 탄생했다.

역내 무역 규모. 아시아가 북미와 유럽을 넘어섰다.
역내 무역 규모. 아시아가 북미와 유럽을 넘어섰다.

RCEP은 중국의 도구가 될 것인가

RCEP 규모는 지금까지 형성된 지역 FTA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한다. IMF의 통계를 바탕으로 한 산업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RCEP 회원국의 명목 GDP 총합은 2019년 기준 26.3조 달러에 달하며, 전 세계 GDP 비중의 30%를 차지한다. 물론 26.3조 달러에서 중국(약 14.8조 달러)와 일본 (4.9조 달러), 한국 (1.5조 달러), 호주 (1.3조 달러), 인도네시아 (1조 달러) 등 경제 규모 상위 5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3.5조 달러로 약 90%를 차지한다. 무역 역시 RCEP에 참여한 15개국의 무역을 모두 합하면 5.4조 달러로 전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7%에 달한다. 인구 역시 15개국 인구의 합이 22.6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몇 개의 경제지표(GDP, 무역, 인구)에서 볼 때 RCEP은 세계 경제의 약 30%를 설명한다.


이런 RCEP의 규모는 주변의 몇몇 유사한 지역 자유무역협정과 비교할 때 더 커 보인다. 비교 가능한 주변의 지역 자유무역협정으로는 애초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로 추진되다가 미국이 빠지고 2018년 새로 형성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협정’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NAFTA)을 개정해 2018년 새로 등장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exico-Canada Agreement, USMCA)이 있다. RCEP은 규모면에서 다른 협정들을 크게 앞선다. GDP에서는 USMCA가 24.4조 달러로 RCEP과 비슷하지만 무역 규모에서는 RCEP이 다른 두 다자 FTA를 거의 두배 정도 앞선다. 중국을 포함한 RCEP은 인구 규모에서도 다른 두 개 협정을 네 배 정도 앞선다.


한편 RCEP은 이미 지역 내에 매우 복잡하게 존재하는 기존 양자 무역협정을 하나로 묶었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미 RCEP에 참여하고 있는 15개 국가 사이에는 1980년대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는 2018년까지 양자간 매우 복잡하게 FTA들이 형성되어 왔다. 인접한 특수 관계인 호주와 뉴질랜드는 매우 높은 수준의 FTA를 1980년대부터 발전시켜왔다. 

중국의 RCEP 통한 영향력 확대는 제한적

한국 역시 일본을 제외한 다른 참여국가들과는 이미 FTA를 체결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한국, 중국과 FTA가 없고 아세안, 호주와는 경제협력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EPA)으로 그리고 뉴질랜드와는 양자협정 없이 CPTPP라는 다자자유무역협정 관계만을 가지고 있어 촘촘한 양자 협정 그물에서 빈자리로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RCEP은 한·일, 일·중, 그리고 한·중·일을 엮는 첫 FTA라는 의미도 가진다.


RCEP이 아세안의 지역전략, 강대국 전략에 부합하는 것과는 별개로 RCEP이 궁극적으로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런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먼저 RCEP은 지지부진했던 지역적 자유무역 논의에 큰 진전을 가져옴으로써 미래 아시아 지역의 무역질서, 경제질서를 형성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 플랫폼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압도적 영향력이다. RCEP은 중국 주도 하에 미래 아세아 경제 질서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두 번째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TPP 탈퇴, 미국 우선주의 등 일방주의적 정책을 보여줬다. 


그에 반해 RCEP에 힘을 보태는 등 중국은 다자주의에 충실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미국과 전략 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은 이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더 약화시키고 중국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수단으로 RCEP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우려는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몇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RCEP을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제한적일 수도 있다. 먼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지역 FTA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RCEP은 의미를 가지지만, 사실 RCEP은 기존 다양한 양자 FTA의 합이기도 하다. 


RCEP에 포함된 회원국들은 일본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과 양자 FTA를 가지고 있다. RCEP을 통한 개별 국가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관한 추가적 우려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뿐만 아니라 RCEP이 추구하는 지역 경제통합의 수준 역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며 따라서 지역 무역질서, 경제질서 형성에 가지는 의미 역시 그만큼 제한적이다.


단적인 예로 RCEP에 포함된 국가 중 거의 절반인 7개국이 동시에 참여하고 있는 CPTPP와 비교해 볼 때 RCEP이 지역 경제통합에 관련해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RCEP에서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등을 포함한 것은 한·아세안 FTA는 물론이고 지역 양자 FTA 일반에 비해 진화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CEP이 경쟁 상대인 CPTPP를 넘어 지역 경제질서, 무역질서 전반에 영향을 주기는 미흡해 보인다. 이 두 자유무역협정은 포함하는 항목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CPTPP 협정문은 RCEP보다 10개 많은 3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CPTPP는 RCEP에서 포함하지 않은 섬유 및 의류, 국영기업, 노동, 환경, 경쟁력과 산업 촉진, 투명성과 반부패, 규제조화 등의 항목을 추가로 포함하고 있다. 또 RCEP에서 다루는 서비스, 투자, 전자상거래도 CPTPP에 비해 덜 포괄적이다. CPTPP는 국영기업, 노동, 환경, 투명성, 반부패 등 규범과 사회적 가치에 관한 내용까지 담고 있어 단순 무역과 서비스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RCEP에 비해 지역 무역, 경제 질서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이 더 크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가진 다자주의 제도와 협력에 대한 진정성에 상관없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이 아시아 방면에 대해서 펼친 정책은 미국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중국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지 않아도 미국의 추락으로 인해 중국의 상대적 위치는 높아졌다. 그러나 RCEP을 통해 중국이 다자주의에 관한 한 미국보다 나은 강대국이라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면 이런 담론의 유통 기한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미국 주도의 지역경제와 중국 주도의 지역경제가 경쟁과 공존 속에 있다.
미국 주도의 지역경제와 중국 주도의 지역경제가 경쟁과 공존 속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

새로 등장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많은 면에서 이전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정책 방향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국내적 여건이 쉽지는 않겠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TPP를 포함해 경제 방면에서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관여를 강화하고 지역 질서를 형성하는 데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모습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진용도 TPP를 추진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인사들이 속속 포진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 아시아에 대한 경제적 관여, 그리고 지역 국가들과 지역 FTA를 통한 무역질서 구축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아시아 정책 전반을 담당할 인도.태평양 조정관(Coordinator for the Indo-Pacific Affairs)으로 지명된 커트 캠벨(Kurt Campbell)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피봇’ 정책을 지휘한 최고위 실무선으로 알려진 캠벨은 TPP를 아시아에서 경제적 미래 질서를 규정하고 “21세기 자유무역체제를 만드는 도구”라고 한다. 중국에 대한 대응이든, 미국 주도의 지역 경제질서를 위해서든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강하게 관여할 것으로 보이고 그에 따라 RCEP을 통해 다자주의에서 중국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RCEP 타결은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나가고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오는 시점과 겹친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처럼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선례를 따라 아시아 국가와 전략적, 경제적 거리를 좁히는 관여를 들고 나올 것이다. 동시에 중국에 대해서는 원칙과 가치를 기반으로 지역 국가들을 규합해 제도적으로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CPTPP에 미국이 참여하든 아니면 과거 TPP와 같은 미국의 독자적 제도를 새로 추진하든 바이든 행정부는 지역의 경제와 무역 질서 형성에 관여할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RCEP을 미흡한 자유무역 질서로 규정하고 보다 진화된 무역질서, 경제질서를 미국이 제시한다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지역 경제를 규정하는 제도와 원칙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함의는?
 
RCEP이 비준을 남겨 놓고 있기는 하지만 참여국가들이 모두 서명한 만큼 국가들 사이 정부 차원의 작업은 일단락되었다. RCEP에 대한 서명이 끝나고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기가 맞아 들어가면서 국내외의 관심은 CPTPP로 쏠리고 있다. 


국내에서 RCEP 서명 이후 CPTPP 가입에 관한 논의들이 자주 등장한다. 마침 정부도 2021년 초 CPTPP 가입을 적극 검토하고 CPTPP 회원국들과 가입을 위한 비공식 논의를 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입장을 내놓았다. 한국의 RCEP과 CPTPP가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그에 따른 한국의 이익은 이 분야에만 초점을 맞춘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한편 경제적 효과에 따른 논의 못지않게 RCEP과 CPTPP는 외교안보 및 전략적 함의도 크다.


RCEP과 CPTPP에 대해 고려할 때 미국과 중국의 대결, 그 속에서 미국을 선택할 것인가 중국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RCEP과 CPTPP를 중국과 미국 사이 선택이라는 단순한 사고 방식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중견국인 한국의 지역에 대한 공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RCEP을 통해서는 주도 세력인 아세안과 함께 미.중 갈등과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개별 국가의 경제 상황과 지역 내 무역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세안과 함께 RCEP을 통한 역내 무역의 확대, 가치사슬의 재활성화를 주도적으로 이끈 한국이라는 위상을 세우는 것이 전략적인 관점에서 한국에 이익이 된다. 


나아가 RCEP이 흔히 인식되는 것처럼 중국 주도로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전략적 영향력 확장을 위한 무대가 되지 않도록 회원국들과 공동의 노력으로 바람직한 방향 설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CPTPP를 통해서는 미국의 대 중국 견제 전략에 한국이 동참한다는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 뒤늦기는 했지만 한국이 CPTPP를 통해 해야 할 일이 많다. 단순 무역 문제에 보다 집중하는 RCEP에 비해 노동, 환경, 투명성, 반부패 등 규범과 가치 문제까지 포괄하는 CPTPP를 통해 한국이 지역의 바람직한 경제질서, 무역질서 나아가서는 지역질서를 세우는 데 공헌한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맞다. 


한국은 수년 전부터 글로벌 중견국임을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 비교적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으로 상대적으로 덜 경제적 타격을 입으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추월할 것이고 GDP 역시 세계 10위권 안에 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런 한국의 위상은 자랑할 만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CPTPP 등을 통해 지역의 경제, 무역 질서와 지역 질서 전반을 세우고 주도해 나가는 역할도 이런 책임에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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