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 경기도체전 유치한 저력의 기업가
용인에 경기도체전 유치한 저력의 기업가
  •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 승인 2021.04.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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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민선 용인시 체육회장 조효상 대지정공 회장

인터뷰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
정리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사진 권도한 미래한국 기자

지난 해 2월 용인시 첫 민선체육회장에 당선된 조효상 대지정공주식회사 회장(79)은 곧 팔순을 앞둔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조 회장은 용인시 축구협회 8~14대 회장을 비롯해 시민축구단 구단주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용인 미르스타디움 3층에 위치한 용인시체육회 사무실을 찾았다. 작고 마른 체격의 온화한 미소로 다른 직원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내유외강형의 카리스마가 감지됐다. 그의 리더십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조 회장이 당선된 후 첫 번째 경사는 뭐니뭐니해도 지난 3월 5일 ‘2022년 제68회 경기도종합체육대회’ 개최지로 확정된 일이었다. 경기도체육회 이사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 

노보텔 앰버서더 수원에서 열린 ‘2022년 경기도종합체육대회 개최지 선정 유치설명회’에서 성남시와 끝까지 치열하게 경합했다는 그는, 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유치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요. 성남은 힘이 있고 우리는 힘이 별로 없어서...(웃음) 그래도 2022년 경기도종합체육대회를 110만 용인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용인시의 체육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스포츠 전문도시로서의 용인의 위상도 한층 높아지리라 기대해요. 체육대회를 개최하면 용인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예전 축구협회장을 할 때 고등학교 축구대회를 치른 적이 있어요. 그 당시 시에서 1억3000만 원 정도 예산을 받아 치렀지요. 그 대회 결산해보니 용인에 미친 경제효과가 300억 원이 넘었다고 해요. 이렇게 축구대회 하나만 개최해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죠. 그때 경험으로 보면 체육대회를 유치해서 보는 경제 효과는 어마어마할 겁니다.”  

특장 자동차 산업을 선도한 기업의 성공한 CEO

- 처음 유치라 기대가 많습니다만 벌써 68회인데 그동안 한 번도 용인에서 개최되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죠. 우리 시설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정치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경제성 측면에서 보면 손해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체육시설은 언제라도 쓰는 것이고요. 체육대회에 쓰이는 돈, 벌어들이는 돈 따져보면 손해는 아니에요.” 

- 아무래도 체육회 운영을 하는 데 있어 코로나 여파가 클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많이 있지요.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운영한다면 자금 때문에 크게 애를 먹을 일이 없을 텐데, 아무래도 예산 문제로 시와 갈등도 생기고, 행사를 해도 비용이 들어가니 웬만하면 하지 말자가 돼 버려요.” 

용인 축구계 대부로 유명한 조 회장이지만 사실 그는 성공신화를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CEO)이기도 하다. 그가 일군 대지정공(주)은 1975년부터 근 50년을 오로지 탱크로리, 시위진압차 등 특장차라는 한 우물만 고집해온 전문 중견 수출기업이다. 

그동안 줄곧 OEM으로 탱크로리를 생산해오다가 2009년부터 인도네시아에 수출길이 열리면서 물대포차를 독자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비약적인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장갑차, 방어벽차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2017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됐다. 2015년 890만 달러를 수출한 데 이어 2년 만인 2017년 40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거뒀다. 

무엇보다 시장 점유율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업체로서 대지정공은 뛰어난 경험과 수준 높은 품질 경쟁을 자랑하며 국내외 특장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대한민국 특장차 산업의 태동과 함께 성장해 화공약품, 탱크로리, 밀크로리, 이동 주유차, 항공기 급유차 등과 같은 전문 수송 특장차와 노면 청소차, 하수구 청소차, 살수차, 버큠로리(VACUUM LORRY), 암롤(ARM-ROLL), 프레스팩(PRESS PACK) 등의 환경 관련 특장차와 시위 진압용 물대포차, 소방차, 개인병력 수송차량, 장갑차, 이동식 병원 차량 등을 생산, 수출한다.

2000년 대지정공(주)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특장차의 제조 및 판매업을 추가한 후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2014년부터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사업 참여 인증과 유망중소기업 인증을 받았고, 한국무역협회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2015년부터 2017년 12월까지 신기술 인증을 받았다.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한 용인 미르스타디움. 용인시를 대표하는 종합경기장이다.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한 용인 미르스타디움. 용인시를 대표하는 종합경기장이다.

또 2007년에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기업부설연구소를, 2009년에는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인증을,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승인 받았고, 글로벌 조달 선도기업으로 선정됐다. 

회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조효상 회장의 분뇨차 개발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분뇨차를 국산 분뇨차로 개발하는 데 전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기존 회사의 사장과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차라리 회사를 운영하는 게 좋겠다며 선뜻 공구를 빌려줬다고 한다. 18만 원의 자금으로 회사를 시작해 이듬해 공구 값을 다 갚을 정도로 사업은 번창했다. 

큰 자본 없이 오로지 월급을 모아 저축한 돈으로 시작해 성공을 이루기까지 큰 역할을 한 것은 오로지 원칙대로 밀고 가는 뚝심과 성실함, 신용이었다고 한다. 

“내 신조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다’ 이것을 신조로 삼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해요. 로비 같은 것도 일절 하지 않고 오로지 기술과 성실, 신용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이에요.”

이 덕분에 조효상 회장은 최선을 다하면 주변 사람들이 복을 가져 다 준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대지정공(주)은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지 않고는 한 번도 영업이나 수출에 뛰어든 적이 없었다고 자부한다. 차를 만들어 가져가면 ‘조 사장이 만든 차는 참 좋다’고 엄지 척하며 광고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별다른 홍보가 필요 없었을 정도였다고. 

“언제는 방위청장까지 왔다 갔어요. 우리가 만드는 게 생각보다 분야가 광범위하고 물건이 좋다고 그래요. 한번은 인도네시아 중개상이 한국에 와서 인터넷으로 물대포차 제조회사를 찾으니 12개 업체가 나오더랍니다. 일일이 다 전화해서 확인했대요. 그 사람이 12번째로 우리한테 찾아왔어요. 11번째 회사까지 가 봐도 전화 통화 내용과 공장을 실제 본 것과 다 안 맞더래요. 우리 회사만 전화 통화 내용과 실제가 똑같았다고 해요. 72대 주문받았어요. 그때 우리가 재미를 봤지요. 그 당시는 IMF 전이어서 달러 당 환율 880원에 계약했는데, 다 만들어 납품하고 수금할 때 환율이 1500원이 된 거예요. 실제로는 1200원대에 환전했는데, 환차가 어마어마했지요. 그 이후로 인도네시아 주변국으로 대지정공을 찾으면 속지 않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지금은 콩고 쪽 수출이 많은데, 그 나라는 전부 우리를 통해 구매합니다. 콩고만 해도 버스 포함 전체 매출이 1조가 넘어요.”

정직과 신용으로 뚫은 대외 수출 길

- 1990년 서울에서 용인으로 터전을 옮겨 뿌리내린 것으로 압니다. 사업도 번창하셨고요. 중간에 어려운 일은 없으셨나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적이 있지요. 하하. 1994년인가 경기도 한 언론에 악덕기업인으로 기사가 났어요. 검찰 조사까지 받았는데 문제없었어요. 서울에서 할 때 제가 아이들 장학금도 주고 무의탁 소년 학비도 대고 이런 저런 일을 해온 것을 수사관이 수사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1990년 초반에 서울시가 서울정도 600년을 맞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을 뽑는 행사가 있었어요. 그 후보 명단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을 수사관이 알았대요. 나한테 그 양반이 전화해서 알려주더라고. 수사를 해보니 주변에서 ‘조효상은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해서 수사가 마무리됐어요. 하지만 그 일 때문에 한동안 일이 끊겨 공장문을 110일 동안 닫고 일을 못했지. 검찰조사 받고 세무조사 받고 사람들도 우리를 안 찾고. 말도 못했어요.”

조효상 회장(우)과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좌)이 대담하고 있다.
조효상 회장(우)과 김범수 미래한국 발행인(좌)이 대담하고 있다.

조 회장이 서울에서 용인 고림동에 내 땅을 마련해 내려온 때는 1990년이었다. 내 부지를 직접 마련한 계약일 5월 9일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용인에서 사세를 늘려오다가 수출길이 열리면서부터 본사인 고림동 공장에 이어 원삼공장, 남사공장, 경기도 광주하청공장 등으로 사세가 급성장했다. 현재는 백암에 이들 모든 공장을 수용할 2만 평의 산업단지를 조성 중에 있다.

보통 기업인들은 사업체를 운영하다 중간에 많은 우여곡절도 겪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 회장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그 일’을 제외하면 근 50년 세월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큰 고비는 없었던 듯 보였다. ‘남 속이지 않고 열심히 살면 도와준다’는 평소 소신이 때문인 듯하다.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추천 명단에 들 만큼 이웃을 챙기는 조 회장의 마음 씀씀이는 용인에 터를 잡고서도 계속됐다. 대지정공(주)은 2021년 1월 나눔명문기업에 가입하고 1억 원을 용인시에 기탁했다. 

나눔명문기업은 ‘경기사랑의열매’에 1억 원 이상 기부하거나 3년 이내 납부를 약정한 고액 법인기부 프로그램이다. 대지정공(주)은 경기도내 기업 중 12번째, 용인기업으로는 3번째로 가입했다. 앞서 2017년에는 용인 인재육성재단에 2000만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는 등 조 회장은  크고 작은 나눔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보통 70세가 넘으면 몸의 여기저기가 말을 안 듣고 고장이 나기 시작하면서 하던 운동도 멈추기 마련이지만 축구광 조 회장의 요즘 고민은 남다르다.

“30대 후반부터 소화가 잘 안 돼 시작했는데 시작한 후로 소화가 잘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 차러 운동장에 나가요. 요즘은 몸이 좀 무거워 돌려차기가 잘 안 돼. 하하.”

조 회장에게 요즘 나라 돌아가는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염려돼요. 뭐든 순리대로 가야 되는데... 지금 나라가 원칙이 아니라 뭘 억지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 걱정되죠. 원칙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원칙이란 게 별개 있겠어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도와주고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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