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블루오션은 호떡”
“내 인생 최고의 블루오션은 호떡”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4.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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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삼청동 호떡’ 조영준 대표

서울 종로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정독도서관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아기자기하게 단장한 가게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각종 음식점과 옷가게 소품가게는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가게마저 고풍스러운 멋과 함께 현대적 감각이 뒤섞여 디자인돼 있어 거리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눈앞 풍광 속 흥미로운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골목으로 접어들면 기와집 처마 밑에 노란 페인트의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삼청동 호떡’이다. 돌출된 하얀 간판에는 ‘삼청에서 제일 맛있는 삼청동 호떡’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입간판 앞에서 기자를 기다리던 삼청동 호떡집 조영준 대표(55)를 따라 작은 커피가게로 이동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 때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바이오산업에 투신해 나름 성공한 30대 벤처기업 사장으로 잘 나가던 그가 친구의 배신으로 상위 1%에서 한순간에 하위 1%로 추락하기까지는 채 2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남들이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가져보기도 했고 으리으리한 건물과 사무실에서 젊은 시기 성공을 맛봤는데 그 시간이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재기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다 보니 한때 죽을까도 생각했지만 그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보자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조 씨는 안해본 일이 없었다. 차량정비업, 화장실 청소용역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나갔다. 그런데 다양한 분야 많은 업종을 경험해도 ‘이게 내 업이다’ 하는 일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40대가 돼서야 만난 아이템이 바로 호떡이다. 

위기의 인생, 삶의 절벽 끝에서 만난 ‘뜨거운’ 운명

“일등 한번 해보자는 게 제 성격이에요. 기왕 뛰어들면 ‘이거 한번 최고의 블루오션 사업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제 주의죠. 삼청동으로 올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인사동에서 노점이라도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터를 잡았죠. 1.5평 어묵가게를 전전세로 얻고 아이템을 고민하다 ‘여보, 우리 호떡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습니다.”

호(胡)떡은 원래 중국 떡 종류의 하나로 ‘오랑캐떡’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식 호떡은 우리나라 호떡과는 많이 다르다. 지역에 따라 부추나 돼지고기 등이 들어 있는 것도 있고 속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호떡, 또 공갈빵처럼 속이 빈 딱딱한 호떡도 있다. 

우리나라의 호떡은 화교가 처음 조선에 들어와 만들어 먹은 이후 도입됐다. 청나라 군인들이 먹는 떡을 보고 사람들이 오랑캐가 먹는 떡이라고 해서 오랑캐 ‘胡(호)’자를 따서 호떡이라고 했다. 

‘삼청동 호떡’의 특징은 튀김 호떡이다. 맑은 기름 위에 3분의 2쯤 잠긴 반죽이 시간이 흐르면서 짙은 갈색의 자태로 변신하면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부산의 유명한 씨앗호떡도 이런 스타일의 튀김 호떡이지만 조 씨는 “완전히 다르다”고 자랑한다.

“저는 원래 호떡을 좋아하지 않아요. 1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요? 호떡을 아이템으로 잡고서는 대한민국의 맛있고 유명하다는 호떡집을 다 돌아다녀봤습니다. 평생 반죽을 어떻게 하는지, 호떡을 굽는지 튀기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는데 그때부터 맹렬하게 연구했죠.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확신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것보다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발효가 뭔지, 어떤 재료를 넣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전문가들을 찾아가 반죽 만드는 법부터 배웠죠. 무게도 달고 양도 조절하고, 야채 호떡은 양파를 어떤 상태로 어떻게 썰어 넣고 부추는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다 연구했죠. 자신감이 붙자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재료를 활용해서 건강하고 맛있게 소화도 잘 되는 반죽을 만들 수 있는 비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가게 호떡에는 과학이 숨어 있어요. 그냥 만든 게 아닙니다. 남들은 두세 가지 재료지만 저희 호떡 반죽은 7~8가지 재료를 혼합해 만듭니다. 한 입 베어 물면 재료들이 입안에서 확 퍼지면서 절묘한 맛이 나도록 연구했어요.” 

그런 연구 끝에 ‘꿀호떡’ ‘야채호떡’ ‘단팥호떡’ ‘고기호떡’ ‘불고기호떡’ ‘치즈 호떡’ 6가지의 호떡이 탄생했다. 

조영준 대표가 부인과 함께 열심히 호떡을 튀기고 있다.
조영준 대표가 부인과 함께 열심히 호떡을 튀기고 있다.

지금도 비법 연구를 거듭하며 업그레이드를 계속해 나간다는 삼청동 호떡은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첫날부터 반죽을 튀기다 터지거나 제대로 익지 않아 리콜해주는 등 별일이 다 있었지만 첫날 11만 원의 매출이 이틀째 19만 원이 되더니 한 달도 안 돼 당시로선 상상하기 큰 금액이 되었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삼청동 호떡은 외국인 관광 붐을 타면서 어마어마하게 팔리기 시작했다.

“한 달에 어마어마하게 팔았어요. 처음 시작하고 두 달 정도 지나면서 대략 한 달에 4500만  원 어치 팔았어요. 연간 4억~5억 원 정도 벌었죠. 엄청났어요. 가게 오픈이 10시인데 사람들이 9시 30분부터 와서 줄을 서요. 100여 명이 미리 줄을 섰죠. 한 사람이 한 번에 5만 원, 10만 원 어치씩 대량으로 사 가는 바람에 뒷사람이 못 사는 일도 벌어져 한 사람당 만 원까지만 살 수 있도록 끊어 팔기도 했죠. 사랑을 받게끔 노력했던 결과라고 생각해요.”

삼청동 호떡은 국내 뿐 아니라 광화문과 인사동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먹거리로 소문이 났다. 덕분에 조 씨의 가게를 들른 외국인 손님과 이런 저런 추억이 많다고 한다. 

“이런 경험도 있어요. 한 미국인이 가게에 와서 그 자리에서 8개의 호떡을 먹었어요. 자기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와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그러더군요. 이 양반이 다음날 또 오더니 아주 많은 양의 호떡을 사갔어요. 또 한 일본인 커플은 락앤락 통을 갖고 왔더라고요. 5시간 뒤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일본에 있는 식구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어서 갖고 왔다고 그래요. 8만 원 어치 사갔어요. 그 친구가 3년 뒤에 가게를 찾아왔어요. 그러면서 그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가져간 호떡을 가족들에 나눠줬는데 다들 만족해했다 그러더라고요. 감동이었죠. 그 일본인 커플이 작은 선물을 주더라고요. 저도 그냥 보낼 수 없어 가게 근처 파리바게뜨에 얼른 가서 케이크를 사서 들려 보냈어요. 하하.”

삼청동 일대 맛집으로 소문난 '삼청동 호떡'
삼청동 일대 맛집으로 소문난 '삼청동 호떡'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 불황은 손님이 끊이지 않던 ‘삼청동 호떡’도 피해갈 수 없었다. 2020년 2월 이후 매출액은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호떡의 글로벌화를 꿈꾸며 미국, 베트남 등 해외에 열었던 지점도 현지인 입맛에 맞는 호떡 연구에 박차를 가하던 중 코로나로 인해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그래도 조 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개발한 호떡에 대한 프라이드가 그의 버팀목이다. “코로나로 지금 많이 어려워졌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단지 매출이 아니라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 한분 한분이에요. 그분들이 정말 소중하기 때문에 몇 명이 오더라도 가게 문을 항상 엽니다.”

실패를 딛고 재기를 노리는 이웃들에게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달라는 말에 답한 조 씨의 조언이 인상적이다. 

“코로나 시기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냐고 조언을 구하러 찾아오는 분들이 있어요. 솔직히 조언해주기 힘듭니다. 예전에는 ‘자신 있게 하세요’ 라고 했지만, 이 어려운 시기 저 믿고 해보겠다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결말은 끝까지 모르는 거예요. 저는 항상 시작이 0이라고 말해요. 1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상태, 거기서부터 출발이라는 거예요. 그게 제가 가던 길이거든요.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서 51% 정도 충족됐다고 생각하면 시작하라고 조언해줘요.”

젊은 시절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호떡왕에게 남은 목표가 있을까. 

“호떡 글로벌화예요. 어떤 환경에서도 그 길은 꼭 가보고 싶습니다. 저희 부부는 지금 하는 곳은 후배들에게 주고 순례자 정신으로 다른 곳을 개척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평창이나 장수 이런 곳으로 내려가 노후를 설계해보려고 해요. 올해부터 준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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