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한국형 ‘왕통령제’ 이대로 좋은가
[심층분석] 한국형 ‘왕통령제’ 이대로 좋은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04.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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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문재인 후보는 1년 만에 자기 성찰과 반성, 그리고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은 대선 평가서 <1219 끝이 시작이다>를 출간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 대통령제를 말할 때 항상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대한민국 대통령제를 말할 때 항상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1219 끝이 시작이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으로 문재인 후보는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선거 운동기간에 ‘보수를 불살라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싸가지 있는 진보’론은 집권 후 없던 이야기가 됐다. 87%라는 경이적인 대통령 지지율 속에 민주당은 이듬해 2018년 지방자치선거를 휩쓸었다. 이어 2020년 총선에서는 제1보수 야당에 헌정사 가장 많은 표로 패배를 안겨주고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을 얻어냈다. ‘친문’ 일색의 민주당은 문재인의 튼튼한 거수기로 등장했고 소위 ‘문빠’, ‘달창’이라는 정치적 팬덤은 그의 믿을 만한 친위 선동대가 되어 여론을 흔들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민주당의 ‘20년집권론’은 ‘50년집권론’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지난 4월 7일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문재인 신화는 한순간에 막을 내리고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자신도 레임덕 속에 퇴임 이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정권이 교체된다면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들처럼 사법처리되는 것은 아닐까. 그가 보좌했던, 그리고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결국 승자독식 시스템인 한국형 대통령제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되면 권력을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필요가 없고 나누려 해도 나누기 어렵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말이다. 하지만 강 교수가 이 말을 한 것은 2017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강 교수는 이러한 비극이 한국형 대통령제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권력을 누구와도 공유할 필요가 없는 한국의 대통령제는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도 불린다. 


지난 해 10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외교안보전문가로서 국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와 6명의 저명한 정치학자들이 공저로 화제의 책을 한 권 냈다.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에서 라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정치제도가 대통령의 개인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정치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민주 사회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의 대통령제 통치 구조는 일방적 하향식 형태인 중앙집권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 기능이 미약한 상태에서 임기 초반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해 일방적 전횡과 독선적 행태가 구조화되는 제도라 하겠습니다.” -156~157쪽

 

제왕적 대통령, 이제는 끝내야

정치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5년 단임제’, ‘승자독식제’의 부작용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통령제가 도입되기 전 국민이 경험해 본 정치 체제는 왕조지배체제뿐이었다. 그렇기에 국민이 대통령을 왕조 시대의 군왕과 동일한 존재로 이해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1인에 대한 지나친 권력 집중은 산업화 시기에는 민주주의를 희생시켰고 민주화 이후에는 소통과 타협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의 잔재로 남아 민주적 정치 문화의 정착을 어렵게 만들었다. 


장기독재를 막기 위해 도입한 5년 단임제는 장기독재를 막는 데는 기여했으나 국정 운영의 불안정성과 비효율성을 초래했고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설 자리가 없는 승자독식제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현실 정치에서 여야간 타협과 상생을 실천했던 진보의 원로, 김원기 전 국회의장(재임 2004~2006년)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이 계층적·지역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회는 대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사생결단의 전장(戰場)이 됐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폐해가 국민 화합과 통합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통합은 불가능하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 없이는 정치 개혁은 불가능하다.” (2020. 1. 17 매일경제) 


한국형 제왕적 대통령제가 결국 검찰총장 출신을 유력한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되돌아볼 때 윤석열 현상은 밀어냄과 당김이라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여당은 윤석열에게 ‘검찰 쿠데타’의 프레임을 씌워 징계하고 사퇴를 강요했고, ‘검수완박’으로 검찰 해체를 허용한 검찰총장이라는 불명예를 씌우는 순간에 그는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로 내몰린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 대적할 만한 대선 주자가 없는 보수·중도는 지지율 정체로부터 구원해줄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이유로 윤석열을 강하게 당기고 있다. 결국 ‘윤석열 현상’은 대통령제 선거제도의 부산물임이 본질이다.”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물론 한국의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평가에는 반대도 존재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대통령은 국회의 견제를 받으며 자기 소속 정당이 의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정책을 입법화시키는 데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흔히 여소야대라는 정국이 그렇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법률유보라는 대통령령을 활용해서 국회를 우회해 행정을 집행할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받았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방식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라는 독립기구를 무시하고 초법적으로 원자로 문제에 실질적인 명령권을 수행했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청와대를 통해 사법기관에 영향력을 미쳐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 문제 역시 대통령의 권한남용으로 퇴임후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과 갈등을 빚었고 급기야 검찰총장이 사직하고 정치적 위상을 얻어 차기 대권에 유력한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모든 현상들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을 의회가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맹점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그런 까닭에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권력구조 개편을 둘러싸고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5개 정당 간에 연동제비례대표 선거 방식 합의를 놓고 분권형 통치권력 개편을 원포인트로 하는 개헌안이 함께 테이블에 올랐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실질적으로 거부하는 바람에 분권형 개헌안은 더 이상 논의되지 못했다. 이제 이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고 있다. 더 이상 불행한 통치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성과 함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진지한 모색을 해야 할 때라는 시대정신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내각제, 분권형제의 장단점


의원내각제 정부 형태
영국에서 탄생되었으며 유럽 각국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고 있는 정부 형태이다. 근대초 민주주의 발전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의회제도의 발전이었으며 의회 중심의 대중민주주의 발전이 의원내각제의 역사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양당제 하에서 안정적인 의원내각제를 운영했던 영국과 달리 다당제가 지배했던 프랑스의 경우에는 강한 의회와 약한 정부의 구조 속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자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 내지 반대통령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또한 독일의 경우 다당제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건설적 불신임제도를 도입하는 등 변형된 형태로 의원내각제를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원내각제에 대하여는 입법부와 집행부의 협조에 의한 신속한 국정처리, 능률적·적극적인 국정수행, 책임정치의 실현 등이 장점으로 이야기되는 반면에 정당정치에 치우칠 우려 및 견제장치의 부재, 군소정당난립의 경우 정국의 불안정, 정쟁이 격화될 우려 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대통령제 정부 형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창안된 것으로서 미국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들에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신생독립국들의 경우 민주주의 실현의 기초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제의 외적 형태만을 답습한 결과 대통령의 독재화 경향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대통령제는 집행부의 안정, 의회 다수파에 의한 횡포의 방지 및 졸속입법의 방지 등과 같은 장점을 갖는 반면에 대통령의 독재화 경향, 국정의 통일적 수행의 어려움, 의회와 집행부가 대립할 경우 조정의 어려움 등의 단점을 갖는다고 이야기된다.

분권형 정부 형태
의원내각제나 대통령제를 도입한 국가들에서 각국의 현실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변형이 발생하는 가운데 의원내각제적 요소와 대통령제적 요소를 거의 대등하게 결합시킴으로써 등장하게 되었다. 바이마르의 경우처럼 평상시에는 의원내각제로 비상시에는 대통령제로 작동하는 정부 형태를 구성한 예도 있었지만, 바이마르의 실패 이후로는 프랑스의 경우처럼 평상시에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에 의해 선출된 총리가 각기 정부의 권한을 분장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분권형 정부 형태의 장점으로는 의원내각제적 운영을 통해 입법부와 집행부의 유기적인 협조 및 공화 관계를 형성하고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이 문제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안정된 국정의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단점으로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한 내각과 의회의 통제가 약하고, 대통령의 독재화에 대한 견제장치가 별로 없다는 점,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화될 경우에는 정국의 불안정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 장영수 교수 논문 <정부형태의 선택 기준과 분권형 정부형태의 적실성>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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