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Ⅰ] 코인의 미래, 가치가 아니라 제도에 달렸다
[심층분석Ⅰ] 코인의 미래, 가치가 아니라 제도에 달렸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05.28 1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호화폐(가상통화)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자사의 전기차를 비트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표 후 이를 전격적으로 취소하고 닷지코인을 띄우면서 한 차례 쇼크에 빠졌던 암호화폐 시장은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 원천 봉쇄라는 초강력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인터넷금융협회·은행업협회·지불청산협회는 지난 18일 “모든 금융 기업과 지불 서비스 제공 업체는 결단코 그 어떤 가상화폐 관련 활동도 해선 안 되며, 이를 어기면 공안(公安) 조사와 상응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회원 기업들에 보냈다.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세 협회에는 중국에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실상 모든 기업이 속해 있으며 협회 공문은 강제성을 띤다.

자본시장연구원(KCMI)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통화시장 규모는 2014년 1월초 기준 약 110억 달러에서 2018년 1월초 기준 약 6000억 달러로 5,500% 이상 증가했고 전 세계 가상통화의 일거래량도 2014년 1월초 기준 약 6000만 달러에서 2018년 1월초 기준 약 250억 달러로 42,000%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2021년 올해 바이든 미 행정부의 5조 달러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인 경기 회복 유동성이 공급되면 암호화폐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일론 머스크 쇼크’와 ‘차이나 쇼크’는 암호화폐 시장에 불안정을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제는 우리의 상황이다. 한국의 암호화폐 투자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코인 정보를 집계하는 코인마켓캡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한국은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의 약 10%를 차지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 정도라는 점에 비춰 볼 때 과도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거래가 비트코인보다 변동성이 크고 도박과 비슷한 폭탄 돌리기성 투기가 많이 이뤄지는 알트코인에 90% 이상 투자가 쏠려 있어 투자 손실 위험도 높다는 점이다.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시계에서 가장 위험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시계에서 가장 위험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암호화폐, 모험자본 될 수 있어

알트코인이란 흔히 ‘잡(雜)코인’이라 불리는데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암호화폐를 말한다. 대체(alternative)와 코인(coin)의 합성어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주요 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코인을 통칭하기도 한다. 한국의 암호화폐 투자예탁금은 약 4조6200억 원(2월 말 기준), 이 금액의 90% 이상이 암호화폐 중에서도 거래 투명성이나 안정성이 취약한 알트코인에 몰려 있다는 이야기다.

암호화폐의 운명은 그 자체의 가치적 속성이 아니라 이처럼 거래의 안정성과 투명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암호화폐는 궁극적으로 결제수단인 화폐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될 수 없다면 암호화폐는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의 투전판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는 것이 암호화폐의 운명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된다.

우선 암호화폐의 등장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넘쳐나는 유동성 때문에 이로부터 화폐가치 하락에 반발한 대안적 운동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과거 금을 화폐 발행의 기준으로 하는 금본위제가 붕괴한 후 각 나라의 화폐는 청산 요구가 없는 국가의 법정화폐로 바뀌었다.

즉, 그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그 나라의 법정화폐는 유효하다는 전제다. 

암호화폐는 이러한 제도에 반기를 들었다. 그런 배경을 들여다 본다면 암호화폐는 사실상 무정부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근대국가의 주권에 도전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이를 곱게 받아들일 리 없다. 다만 미국을 비롯해 금융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비록 암호화폐가 화폐의 기능을 하는 것에는 회의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암호화폐가 디지털 자산으로 인정되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암호화폐 채굴자들이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확보한 화폐자산들이 실물에서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미래 벤처 산업에 투자되는 모험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암호화폐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점이 언급된다. 암호화폐의 미래 가능성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제도경제학자 애쓰모글리 교수의 ‘낮은 나뭇가지 가설’로도 지지된다.

애쓰모글리 교수는 2000년대 이후 글로벌 저성장의 원인을 자산 부족 현상으로 꼽아 또 한번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식기반의 기술 경제가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단순 노동력으로 소득을 벌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점점 소득 기회를 찾기가 어려워졌고 부의 열매는 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더 높은 가지들에 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애쓰모글리 교수는 ‘공격적인 자산 공급’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 암호화폐는 넘쳐나는 글로벌 유동성을 흡수해 공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투자될 수 있는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내재가치가 없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효용성을 주는 자산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다만 가치와 효용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평소에 다이아몬드가 물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탈수로 죽어가는 이에게는 다이아몬드보다 생수 한 병이 더 가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본다면 비트코인과 같은 추상적 디지털 생성물도 그 희소성에 따라 가치 있다고 합의되면 가치는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는 것은 이러한 가치물의 거래를 얼마나 안정적이고 투명하게 보장하느냐가 된다.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암호화폐 가격은 폭락했다. 암호화폐가 정상적인 화폐의 기능 대신 투기의 수단이 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일론 머스크의 말 한마디에 암호화폐 가격은 폭락했다. 암호화폐가 정상적인 화폐의 기능 대신 투기의 수단이 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규제보다 제도로 포용하는 전략 있어야

암호화폐가 정상적인 화폐 기능을 하지 못하고 투기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은 이에 대한 규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은 과거 1600년경 네덜란드에서 일었던 튤립 투기 열풍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 붐의 우려로 인해 이스라엘은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대신 국가가 보증하고 관리하는 암호화폐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금융당국은 암호화폐에 대해 양도소득세 등 과세를 검토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국내에서 통신업법으로 분류돼 금융상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이중과세 논란 등 우려로 부가세를 적용하는 방안에 신중한 대신 양도소득세나 거래세 등을 부과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암호화폐는 유사수신규제법 개정안을 통해 규제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에는 고객자산 별도 예치, 암호키 분산보관, 매도매수 호가 주문량 공개 등이 의무화된다.

미성년자 혹은 비거주자 거래금지로 투기 확산을 막고 가상통화 투자를 빙자한 사기 등 불법 행위도 집중 단속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러한 ‘중앙거래소’ 방식에 우려를 제기한다.

2017년 사단법인 한국핀테크연합회 소속 블록체인 검증위원회가 개최한 간담회에서는 이러한 암호화폐의 중앙집중 거래 방식이 해킹과 내부조작, 불공정 거래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성토들이 빗발쳤다. 

국내 암호화폐 규제 동향은 정부의 대응과 국회 차원의 입법에 의한 대응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정부의 대응은 금융위원회와 법무부 등을 중심으로 암호화폐의 발행과 거래 행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규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현재 3개의 관련 입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암호화폐는 현행 규범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유형의 것으로 민사법, 형사법, 조세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규범적 대응을 필요로 한다. 법적 측면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외국환거래규정에 소액해외송금업자를 통한 가상통화의 취급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그 외의 법규에서 명시적으로 암호화폐를 규범적 영역에 포섭해 규정하고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최근 급증한 암호화폐 거래 관련 사회적 문제로 인해 더 이상 관계기관의 행정적 재량행위에만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국회에 암호화폐와 관련한 세 법안이 상정되어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또한 상정된 세 법안 모두 뉴욕 주의 BitLicense나 일본의 자금결제법상 규제의 주요 쟁점들을 적절히 녹여냄으로써 규제 공백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세 법안 모두 그 핵심적 내용이 암호화폐의 투자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것에 집중되어 있어 이를 지급결제에 이용하려는 중개기관 등을 적절히 규율하기 위한 규제 체계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또한 암호화폐 중개기관의 진입 규제와 관련한 세 법안의 규제 수준에 차이가 커 이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특히 자본시장의 거래소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암호화폐 거래업자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고 세밀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암호화폐는 증권과 달리 그 자체로 국제성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만 규제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현실에 맞는 암호화폐 규제도 필요하지만 규제의 국제적 공조도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최근 G20를 중심으로 가상통화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G20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