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위험한 것은 가짜뉴스가 아니다
[전문가 진단] 위험한 것은 가짜뉴스가 아니다
  • 이인철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 승인 2021.10.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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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 파동을 돌아보며

대선을 앞두고 언론의 자유에 영향을 끼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려는 여당의 시도에 대해 야당과 국내외 언론계 및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9월 27일 국회 본회의 상정이 예정된 최종 법안의 협의와 관련해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등 언론단체들은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며 협의체 참여를 거절하면서 입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파동을 언론(言論), 사법(司法), 입법(立法)이라는 세 가지 제도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 언론은 사법이나 입법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헌법질서의 하나의 제도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가짜뉴스 규제를 목적으로 한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과정에서 나온 가짜뉴스 논란은 정파적인 뉴스에 대한 논란이다.

20대 국회에서 제안된 다수의 가짜뉴스 대응 법안과 2018년 10월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 문건을 시작으로 한 유튜브에 대한 통신심의 등 뉴미디어에 대한 과잉 대응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낳았다.

20대 국회에서 3년에 걸친 가짜뉴스 입법 논의의 결과는 가짜뉴스를 규제 대상으로 정의하기 어렵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기존 제도로도 가짜뉴스에 대한 규율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가짜뉴스 대책은 일반 언론 보도와 관련해 보도의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민생 법안으로 포장이 되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나왔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 7개 단체들이 정부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발언하고 있는 김수정 한국여기자협회 회장./연합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 7개 단체들이 정부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발언하고 있는 김수정 한국여기자협회 회장./연합

제도로서의 언론

신문과 잡지 등 언론은 여론 형성의 계기가 되는 의제 설정의 기능을 수행해 공론장을 형성하고 민주정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하는 국가 제도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상으로 언론이라는 제도를 보장해 운영하는 것이다.

행정, 입법, 사법의 권력분립 제도를 보완해 제4부로서의 언론은 견제를 통해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가짜뉴스를 근절하기 위해 뉴스의 출처인 언론사를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짜뉴스 현상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제도로서의 언론의 기능과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미디어가 다양해지고 정보의 양이 증대하는 현상은 정보사회에서 필연적이다. 정보에 의해 움직이는 정보화 사회의 정보 의존성, 정보전달 수단인 미디어의 증가, 정보의 디지털화로 인한 정보량의 확대는 정보 과잉 상황을 낳고, 변동하는 정보 체제가 공신력을 얻기까지는 정보무질서(information disoder) 상황이 출현한다.

동일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다양한 미디어에 의해서 유통되고 언론사만이 아니라 개인이 정보의 생산과 전달 및 수용자의 지위를 겸하고 있으며 중첩적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책임의 주체와 근거 및 범위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뉴스 보도 분야에서 가짜뉴스 논란은 정보 무질서라는 상황과 책임 문제의 새로운 양상에서 나온 것이다.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언론사를 상대로 한 피해 구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다.

정보수용자의 미디어리터러시 고양이나 미디어에 대한 신뢰 구축 및 뉴미디어 등장에 따른 미디어 신뢰 방안 마련이라는 제도적 접근이 요구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피해와 구제라는 구도에서 언론사를 규제해 가짜뉴스 문제를 처리한다는 인식을 토대로 해서 징벌적 배상제도와 기사열람차단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신설하려는 기사열람차단제도는 보도의 제목이나 내용이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사생활의 영역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등에는 공적 관심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기사의 열람을 차단하는 제도다.

언론 보도의 열람을 차단하는 것은 신속성과 함께 여론 형성에 필요한 의제  설정을 위해 전파를 목적으로 한다는 보도의 본질적인 성격을 부정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 정보통신망법상에 있는 유사한 조치를 이유 삼고 있지만 정보통신망법의 취지와 제도로서의 언론은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실질적으로 방송통신에 대한 사후심의에 유사한 규제가 언론 영역에 창설되어 언론 제도의 기초인 언론의 자유를 훼손한다. 기사열람차단의 요건으로서 ‘진실’인지 여부와 공적인 관심사라는 개념이 불명확하므로 자의적으로 운영될 위험이 현저하다.

진실 여부를 법원이 아닌 언론중재위원회라는 행정기관이 가리게 되는데 정부가 진실을 담당하는 부서가 될 수는 없다. 

정보 무질서의 상황에 대한 대응이 언론에 대한 규제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현실의 미디어 상황을 언론사에게 책임 지우기 위해 가짜뉴스를 이유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를 이용해 진짜 뉴스를 탄압하고 권력의 견제 장치이면서 민주정을 유지하는 여론 형성의 제도인 언론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정정보도 등의 청구와 손해배상청구는 민법으로 인정되므로 언론중재법이 없어도 가능하다. 재판 절차 외에 언론중재위원회를 둬 중복된 절차를 밟는 것은 옥상옥이다. 언론중재법은 5공화국 출범시의 소위 언론개혁입법인 1980년 언론기본법의 정정보도청구권과 언론중재위원회 설치 규정에서 유래한다.

재판 절차 외에 중복된 절차는 언론에 대한 부담을 가중했고 법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언론중재위원회의 권한이 강화되어 언론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언론중재법의 폐지론이 계속 있어 왔다,

우리법상 민사재판 외에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 제도로서 형법은 허위사실만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고 있어 언론 피해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폭넓은 구제 수단이 있음에도 가중된 배상을 징벌로 부과하려는 것이 문제다, 

신설되는 법안에서 가짜뉴스는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하는 정보를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5배까지의 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보도 여부를 가림에 있어 ‘허위’라는 포괄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허위와 조작이라는 용어가 불명확하기에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뉴스 보도를 억제할 위험이 있다. 허위의 통신을 처벌한 과거의 전기통신사업법의 처벌 규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되었다(2008헌바157).

허위조작보도로 인한 배상제도는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부과한다. 받을 몫 이상의 것을 얻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피해액의 5배를 배상하라는 것은 징벌을 부과하는 것이다. 형벌과 배상이 분리된 근대법에서 민사소송절차에 의한 징벌은 적절하지 않다. 형법이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처벌을 두고 있는데 추가로 징벌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

언론사건에서 배상액의 과다 여부는 가짜뉴스 논란과는 관련이 없다. 1사건당 평균배상액을 거론하면서 언론사건의 배상액이 적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오늘날 보도는 다매체를 통해서 전달되어 피해의 원인이 복합적이고 책임의 소재와 배분이 어렵다. 피해가 큰 경우로서 거론되는 사례는 재산적 피해와 관련한 탐사보도의 사례인데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 명예훼손 사건의 대부분이 위자료 청구 사건으로서 사안에 따라 위법성과 책임 내용이 다른데 법원은 위자료 기준을 점진적으로 올리고 있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기준은 별도로 논의할 문제다. 다양한 사례에 대한 민사 배상의 문제를 일괄적으로 징벌 문제로 처리해 응징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법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개정안은 기사 내용에 있어 보복적,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의 경우, 정정보도나 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검증 절차 없이 종래의 기사를 복제, 인용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과 시각자료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규정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세 가지 경우에는 고의 또는 중과실을 추정하도록 한다.

5배까지 배상을 부담하는 고의와 중과실의 추정은 실질적으로 입증이 전환되는 결과가 되어 언론사에 과중한 입증의 부담을 주고 다양한 사실관계에 대한 심증 형성을 법으로 제한해 담당 법관의 재량 여지를 없앤다.

사건 당사자 간에 지위의 차별을 두고 결과적으로 일방 당사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 가짜뉴스 논란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 바라보고 지위의 우열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다.

언론에 대해 징벌이라는 특례를 도입하는 것은 민주정 유지를 위한 비판의 역할을 담당하는 언론의 견제 기능을 훼손한다. 언론사를 징벌하는 것은 헌법상 제도로의 언론의 기반이 되는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므로 중단되어야 한다. 

권리와 의무의 체제로 된 법률은 누군가에게 권리를 부여하면 반대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입법에서 상반되는 이해당사자 간의 권리와 의무의 배분을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입법이 지향하는 가치에 비춰 그러한 배분이 적절한가를 검토하고 권리 배분의 결과가 다른 가치와 제도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정치가 모든 사안을 편가르기를 통한 분쟁의 소지로 만들어 지지를 획득하는 포퓰리즘에 함몰된 정치 상황은 그러한 신중함을 버린다. 권리를 부여받을 자와 의무를 부담할 자 중에서 어느 편을 들어야 대중에게 호감을 얻어 인기를 얻고 어느 편을 들어야 자기 정파가 명분을 획득할 수 있는가 라는 정치적 판단이 입법의 계기가 되는 상황이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있는 KBS 노동조합원/KBS노동조합
국회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있는 KBS 노동조합원/KBS노동조합

재판 절차적 관점과 입법 현실

가짜뉴스 대응이 민생 문제로 포장되고 언론사를 가해자로 보는 입법이 가장 시급한 현안인 것처럼 되었다. 언론중재법 논의 과정은 제도가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의 조정과 권리 배분에 대한 숙고가 없이, 대립되는 정파간의 승부 겨루기의 대결 정치의 상황을 보여줬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법상 90일의 활동기한을 가질 수 있는 안건조정위원회 회의가 8월 19일 단 한 차례의 회의에서 표결로 종결되고 8월 25일 법사위 논의에서 새벽 4시에 처리되는 상황을 보면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따르고 있는지 매우 의문이다. 

징벌적 배상제도 등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소송의 남용으로 이어질 우려는 명백하다, 보도에 대한 봉쇄소송이 남발되면 언론에 위축 효과를 가져오고 자기 검열로 이어져 언론의  자유의 침해는 물론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언론의 권력에 대한 견제를 통해 균형을 잡는 역할을 불가능하게 한다.

의제의 설정과 논의의 장이 되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언론의 자유는 정치의 기능을 보완하면서 민주정을 유지하는 국가의 제도이다.

공론장은 의견 개진과 논의 및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포함하기에 당연히 혼란스러운 모습이고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가 대두되는 미디어 변천의 시기에 가짜뉴스 논란은 정보 과잉의 시대의 정보 무질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언론이 만드는 공론장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방법이다. 가짜뉴스를 이유 삼아 언론사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언론 책임으로 몰아가 언론 제도를 흔들면 민주정은 파국에 이른다.

지금 미디어 분야의 과제는 가짜뉴스 대처가 아니다. 진정한 언론 개혁 과제는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한 물질적 기반 토대 위의 KBS, MBC의 공영방송체제가 신뢰를 잃고 경쟁력을 상실함에 따른 개선을 모색하고 미디어 생태계 변화에 따라 미디어리터러시의 고양으로 미디어 수용자의 역량을 강화하며 미디어 신뢰 확보의 모색 그리고 미디어 상황에 대응해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통합해 현실에 대응하는 새로운 제도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다. 

가짜뉴스가 아니라 가짜뉴스 논란을 빌미 삼아 불필요한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으로 언론 자유를 제한해 언론 제도를 흔드는 정부 여당의 시도가 민주정을 위협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은 중단되고 개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와 여당이 장악한 입법부의 상황에서 언론의 견제를 통해 권력의 균형을 잡아야 할 특별한 필요가 있는 상황이기에 더 그러하다. 제도는 기둥과 같아 하나라도 흔들리면 위험하다. 무너질 집에서 살 것인지 선택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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