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종석, 대한민국 무장해제와 김정일에 투항 준비
李종석, 대한민국 무장해제와 김정일에 투항 준비
  • 미래한국
  • 승인 200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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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간첩이 해도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어"
이종석 올해 48세 장년의 나이지만 전후세대임은 물론이다. 이종석은 간첩 김남식으로부터 북의 선전물인 ´김일성 선집´과 ´혁명역사´를 텍스트로 하여 집중교양(간첩 포섭 세뇌하듯)을 받아 ´내재적 접근´이라는 간첩 송두율의 시각으로 김일성 전범집단을 연구(?)하여 받은 북한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여러 대학에 강사로 출강을 하다가 1994년 9월 제 1차 북핵위기 당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 연구원으로 들어간 자이다. 세종연구소에 입소한 이종석은 1998년 김대중 집권초기에 ´남북한 관계연구실장´으로 위치를 굳힌 후 MBC등 방송출연이 잦아지면서 1996년에는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2000년에는 ´국방부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한편, 대북뇌물사건 주범 김대중과의 관계도 돈독해져서 ´6.15 남북회담 대통령특별 수행원´노릇을 하면서 남북관계 주 무대에 등장했다. 이종석은 김대중과의 관계덕분인지 2001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원회 위원(외교안보)으로 발탁되는가 하면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장을 거쳐 수석연구원에 이르고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위원으로 발돋움 한다. 2003년 2월 노무현정권 출범과 동시에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이 되어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분야의 ´실세´로 등장했다. 2006년 2월 10일 개각에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부장 임동옥과 내각참사 권호웅의 자칭 同志´ 정동영의 뒤를 이어 제 32대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상임위원장으로 통일 외교 안보를 실질적으로 통할하는 높고 높은 자리(顯職)에 오른 자이다. 7월 5일 김정일이 미사일을 쏘아대자 "그 누구도 겨냥한 게 아니다. 미국이 더 많이 실패 했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0월 9일 김정일이 핵실험을 하게 되자 10일 국회에 출석하여 "김정일과 직접대화를 거부한 미국책임"으로 돌리면서 햇볕정책 수정이 불가피 하다고 밝힌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조차 180도 뒤집으면서 "햇볕정책이 왜 매 맞아야 하느냐?"고 김정일의 유일한 외화벌이 $ 수입 Pipe Line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지 않을 것임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이종석이 NSC 사무차장으로서, 통일부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남북관계에 끼친 폐해는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AWSJ지가 노무현 정권은 "간첩이 해도 더 잘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일을 잘 한다."는 평을 들을 만큼 국가보안법폐지, 국방부 ´주적개념´ 삭제, 전선 확성기방송철거, NLL협상, 《핵우산제거》, 한미연합사 폐지 등 물밑 세작(?) 질을 한 의혹이 짙다. 이종석은 김대중이 발탁한 친북주의자로서 노무현에 인계되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서둘러 온 행적에 비춰볼 때 대한민국 죽이기에 앞장 선 ´대북 투항주의자´임이 드러났다.[백승목 기자]hugep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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