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아내의 삶은 ‘시소 타기’ 늘 살얼음판 걷는 기분”
“정치인 아내의 삶은 ‘시소 타기’ 늘 살얼음판 걷는 기분”
  • 인터뷰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10.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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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 인격적 이중성 지적한 것일 뿐, 진단 아냐”

원희룡 국민의힘 경선 후보의 부인 강윤형 씨(정신과 전문의)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발언이 계기였다. 하지만 강윤형 씨는 의사로서 환자를 진단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대선 후보의 아내로서 그리고 직업적 전문성을 가진 의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강윤형 씨는 한국 정치에 대해 걱정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을 토로한다. <미래한국>이 강윤형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현재 원희룡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4강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동안 내조하면서 힘드셨죠?

8월 1일 후보가 제주도지사직을 사퇴했습니다. 그런데 제주의회에서 사퇴를 결정하는 데 열흘이 걸려 공식적으로는 8월 11일자로 제주도지사직을 사퇴했습니다. 지금까지 약 두달 반 동안이 마치 20년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두 11명의 후보가 나와 8강으로 좁혀지고 지금 4강에서 1강으로 원 후보가 올라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도 원래 신경정신과 전문의인데 지금 제 병원 일도 접고 원 후보를 돕고 있습니다.

- 제주도지사직을 연임하셨는데 제주에서는 어땠습니까?

먼저 제 남편인 원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잠깐 말씀드리면 2000년 이회창 총재 시절 한나라당에 젊은 목소리를 담는다고 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그때 오세훈 현 서울시장과 원희룡 후보가 공천을 받았어요.

오 시장은 강남에, 그리고 원 후보는 양천구 목동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지사직을 7년 했는데 참 힘들었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 때 우리 당의 지방선거 필승 전략으로 원희룡을 차출해 제주도로 가게 된 거예요.

제주도가 험지 중의 험지이니 당신이 한번 제주에 가서 어떻게 좀 바꿔봐라 해서 가게 된 거였어요. 그렇게 제주지사에 도전해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의회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강남과는 딴판입니다. 45명의 도의원 중에 무려 41명이 민주당 소속입니다.

그 당시 특히 중국 자본 때문에 난개발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제주도가 중국 사람들한테 팔리고 있었어요. 완전 난개발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원 후보가 제주지사 7년 동안 중국 자본 난개발도 다 막고, 경제성장은 딱 두 배, 코로나 생기기 전에 부채 다 갚고, 내건 공약 95%를 실천했습니다.

“고향인 제주가 더 어렵고 힘들어”

- 원 후보가 제주도지사직을 그만두면서 아쉬워한 부분이 있었습니까?

제주 제2공항 하나만 못하고 다 한 거예요. 제주도 가는 비행기가 되게 불안해요. 너무 혼잡해 이 하늘길에서 교통사고 날까봐서요.

제2공항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또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공약이었어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니 제주도에 계속 환경영향평가 해라, 환경평가를 하면 또 이거 저거 하라면서 시간을 계속 끄는 거예요.

사실 제주도는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못했습니다. 이번에 7년 마무리하면서 내린 결론은 국민의힘 출신 도지사이기 때문에 안 해주는 것이라고 밖에 없었습니다. 환경문제 중요합니다. 환경문제에서 제주는 앞서갑니다.

이미 제주도는 전기차 메카입니다. 친환경적 수소차, 전기차를 굴리려면 그럴 만한 인프라가 있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전기죠. 풍력이나 태양광발전으로는 절대로 전기차의 전기를 충당할 수 없습니다. 신재생에너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자력 발전이 되어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는 국민이 필요한 에너지의 15%밖에 충당 못합니다. 이런 내용을 원 후보는 제주지사를 하면서 다 파악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 제주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저희 내외 모두가 고향이 제주임에도 불구하고 7년 내내 조심스럽게 살았습니다. 제주관사는 사용하지 않고 어린이 도서관 평생교육관으로 바꿔 도민들에게 개방했습니다. 관사 부지가 3000평 정도 됩니다. 과거 제왕적 지사 시절에 만든 관사인데 관리하는 공무원도 15명이나 됩니다.

시부모님이 아직도 제주에서 농사짓고 사시는데 제주관사에는 한번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원래 제주에 내려가기 전에는 목동에 살았습니다. 집이 한 채였죠. 그런데 남편이 정치하면서 처음부터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정치하는 동안 절대로 재태크는 안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주식도 안합니다. 집은 한 채만 갖는다는 원칙이 있었어요. 그래서 목동집을 팔고 제주에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때 시세 8억보다 한 2000만 원 낮게 팔았는데 지금은 20억이 넘는 것 같아요. 손해 봤죠. 사실 팔고 싶지 않았거든요.

남편이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킨 것이죠. 지금은 서울에서 월세로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가 워낙 친여성향이 강한 곳이라 매사에 조심스러웠습니다. 설령 누가 제 차를 일부러 긁고 가더라도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 원 후보가 대통령에 도전하는 이유를 내조하는 입장에서 설명하신다면?

원 후보와 저는 19살에 만났습니다. 고향이 제주입니다. 대학 때 만나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옆에서 봤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만 봐도 다 압니다. 얼마나 힘들게 정치하는지도 압니다. 내년 대선만큼은 무엇보다 정권교체만이 답이고 이를 통해 정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된다는 결심을 저희 부부가 똑같이 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됐습니다.

전국에 다녀보니 다 같은 마음이더라고요. 저희 후보도 같은 마음입니다. 내년 3월 9일 정권교체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후보가 누가 되든 원팀이 돼서 해야 된다, 그 부분에 원희룡 후보는 철저히 동의를 합니다. 정권교체해서 다음 세대가 더 잘 사는 대한민국 만들자는 겁니다.

저희도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 앞으로 우리 아들 딸 손자 손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걱정이잖아요. 대한민국의 자라나는 세대가 뭘 먹고 살아야 될지, 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정말 뭔가 힘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후손들이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고 도와줘야 된다는 마음을 모든 국민이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희룡 후보가 경선에 나온 제일 큰 목적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년 3월 9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권을 교체해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망가뜨려 놓은 것을 정상화하고 또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초석을 갖춘다는 것입니다.

국민이 기억해 주는 원희룡이 꿈

- 원 후보가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2007년 이명박, 박근혜 경선이 너무 치열했어요. 사실은 그때 서로 한쪽은 BBK 얘기하고, 한쪽은 최태민 목사 얘기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친박 친이로 완전히 갈려 있었죠. 그때 원희룡 후보는 43살의 나이로 대통령 경선에 출마를 했습니다.

왜 했겠습니까? 자기가 당선되려고 했겠습니까? 우리 당이 이렇게 쪼개져서는 안 된다, 중간에서 내가 젊지만 바른 소리하고 두 분 너무 싸우지 않게 하고, 또 우리 하나로 갑시다라는 마음으로 2007년 대통령 경선에 나갔던 거예요. 그때 이명박 후보가 1등하고, 박근혜 후보가 2등하고, 원 후보는 3등 했습니다.

- 남편 원희룡 후보가 걸어온 길이 좀 남다르죠?

원 후보 얼굴 보면 다 금수저 같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이 줬던 축복과도 같은 선물이었는지 두뇌가 발달해 학력고사 전국 수석도 하고 대학도 수석입학했죠. 서울법대에 수석으로 들어갔는데 졸업할 대는 꼴등으로 했어요.

민주화운동하면서 말이죠. 저는 원 후보가 대학을 두 군데 다녔다고 말합니다. 민주화운동권대학입니다. 8년 동안 민주화운동에 사실 목숨 걸었어요. 하루 2900원 일당 받는 공장에서도 일했구요.

왜 민주화운동권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느냐 하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 겁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민주화 돼 있는데, 민주의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사회주의, 종북좌파쪽으로 가는 겁니다.

이것은 잘못됐다라고 생각하고 민주화운동권과 결별한 것입니다. 그다음부터 원 후보가 사법시험 공부를 다시 하고 법조인의 길을 갔던 겁니다. 3년 6개월 동안 공부하고 또 사법시험 수석 합격했습니다. 누가 그럽니다. 취미가 수석입학이냐구요.

사법시험 합격 후 특수부 검사를 하면서 사회악을 척결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1997년 IMF가 터진 겁니다. 법조인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2000년 이회창 총재의 부름을 받고 정치 시작한 지 21년이 됐습니다.

- 원희룡 후보의 정치적 꿈은 뭡니까?

원 후보는 아침마다 기도합니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말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 가난하고 어려울 때도 우리에게는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희망찬 내일을 꿈꾸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가슴이 뛰고 심장이 두근거렸던, 그 시절의 영화로, 그리고 그 시절 대한민국의 번영의 꿈을 한번 다시 꿔보고 싶다고 합니다. 내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희망에 찬 대한민국을 그려보는 겁니다.

저는 이제 감히 원희룡 후보의 아내로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제 전문영역이 신경정신과 의사잖아요. 그래서 우리 태어나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싶은 겁니다. 정신적으로 안 좋은 애들이 많으니 정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 정치인 가족으로서의 꿈은 언젠가 원희룡 후보도 정치에서 은퇴할 때가 올텐데 그 순간 대한민국 국민이 원희룡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물으면 정말 청렴하고 사심 없이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멋진 정치인이었다 라는 평가를 받는 게 정치인 가족으로서의 꿈이에요.

- 원희룡 후보는 대장동사건 1타 강사로, 그리고 사모님도 본의 아니게 소시오패스 발언으로 뉴스의 초점이 되었는데 원 후보가 뭐라 하시던가요?

이 질문을 받으니 걱정이 됩니다. 요즘 원 후보를 만나기가 참 힘듭니다. 서로 시간이 달라서요. 잘 때 서로 잠자는 모습이나 보는 정도입니다. 스케줄이 워낙 바쁘니까요. 대학 1학년 때 만나 40년 같이 해왔기 때문에 후보도 저를 잘 알고 저도 후보를 잘 압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남 얘기를 하는 것을 싫어해요. 그리고 의사라는 입장에서 함부로 이야기 안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남 얘기를 하면 엄청난 상처를 줄 수 있는 거예요. 너무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일반인이 얘기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사실 뉴스나 정치인들 보면 어떨 때는 목구멍까지 말이 나오지만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정치인에 대해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뉴스가 된 것은 진행자가 야누스나 지킬과 하이드라는 말을 곁들여 질문했기에 그저 일반적인 사항에서 답변했을 뿐입니다.

특정인을 지칭한 것이 아닙니다. 야누스나 지킬과 하이드라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인 것으로 설명하면 이중인격자라고 표현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기의 어떤 이익을 위해, 남을 계산적으로 이용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반복하고 전혀 타인의 아픔이나 권리를 침해하고 타인의 자원을 뺏는 것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을 말한 것뿐입니다. 의사로서 진단 차원에서 한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진단명도 아니고 그냥 묘사일 뿐이었는 점입니다. 기자님 잘 써 주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또 논란이 되니까 그 부분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유명 정치인 아내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정치인 아내의 삶은 시소 타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편의 일과 나의 일 사이에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제 나이 37세에 남편이 정치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정치인의 아내는 남편의 대타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정치하면서 연륜과 임기가 쌓일수록 역할과 책무가 달라지게 되고 그만큼 아내의 역할도 늘어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오랜 기간 정치인 아내의 삶을 많이 봐왔는데 대부분 그렇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아내들에게 무조건 잘해드리고 싶어요. 정말 고생이 많거든요.

정치인의 아내도 자신의 꿈을 꾸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나는 나의 길을, 너는 너의 길을 간다’는 것은 아니구요. 남편의 꿈과 자신의 꿈을 모두 소중히 생각하면서 균형점을 잘 찾아가다보면 아내의 역할과 자신의 삶을 모두 행복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남편의 정치를 응원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학교 현장에서 학생정신건강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 모두 소중한 저의 삶입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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