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외로운 투쟁
오세훈의 외로운 투쟁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11.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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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추진한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관련된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발표하자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박원순 지우기’라며 반발하며 나섰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서울시가 과거 민주당 의원들이 박 전 시장의 사업을 비판한 지난 6년간 발언 자료를 모아 4일 공개했다. ‘내로남불 비판’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의원들의 오 시장 비판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는 이중 잣대 논리”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서울시가 공개한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의 박원순표 시정을 비판한 내용은 A4 용지 28쪽 분량에 달했다. 그 내용들을 보면 민간 위탁·보조금 과다 지원, 특정 단체에 대한 반복적 보조금 지급, 인건비 지원에 치우친 예산 집행 등 박 전 시장 재직 시절 민주당 의원들이 서울시 업무를 비판한 발언 등이 약 100여 건에 달한다.

민주당의 모 의원은 2018년 11월 “서울시 예산을 지원받으려면 시민단체를 만들라는 얘기가 있다.

서울시에서 무분별하게 시민단체와 연계해서 예산 지원이나 용역을 많이 준다”고 했다. 박 전 시장 때 추진된 마을공동체 사업과 관련, “마을 사업이 일정한 집단의 카르텔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 아니냐, 이 안에서 회전문 인사처럼 돌고 도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의원도 있었다.

2019년에는 “일부 특정 시민단체가 권력화되기 시작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2016년 8월 한 의원은 “지금 박원순 시장에 대해 일부 시각에서는 마치 시민단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비판들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 민주당 의원들이 대선을 앞두고 서울 시민들의 안전이나 복지보다 진영의 논리 계산에 급급해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오세훈 시장이 ‘사소한 문제로 박원순 시장의 업적을 지우려 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지난 9년간 박원순 전 시장의 업적은 무엇이었던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단체, 민간위탁 사업 예산 등을 대폭 줄이는 대신 청년, 소상공인 지원 등에 2022년 예산을 집중 편성했다./연합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단체, 민간위탁 사업 예산 등을 대폭 줄이는 대신 청년, 소상공인 지원 등에 2022년 예산을 집중 편성했다./연합

박원순은 살아 있다?

지난 3월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제목은 ‘박원순은 살아 있다’였다. 언뜻 미스터리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제목의 이 책은 그러나 박원순의 서울시정을 각 분야에서 낱낱이 검토하며 고발한 내용이다.

여명 서울시의원과 원자력 전문가 주한규 서울대 교수를 비롯 전 국회의원 보좌관, 청와대 행정관 등 9명의 저자들은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박원순 전 시장 재임 9년 동안 서울시정에 대한 평가서. 부동산, 도시재생, 고용·노동, 에너지, 인사행정, 시정홍보, 의료행정 등 각 분야에 걸쳐 비판적인 평가를 집대성했다.

저자들은 이 시간을 서울의 잃어버린 9년이라고 평가한다. 이념적인 규제로 부동산은 폭등했으며, 행정은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시민이 아닌 ‘시민단체’가 서울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책은 저자들의 과감한 비판 속에서 어느덧 좌파적 몽상의 실험장이 되어버린 서울에 새로운 대안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저자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박원순 사단’이라 불리는 정치 세력들을 박원순이 서울시장의 권한을 이용해 예산과 사업을 지원해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조직으로 키워갔다는 점이다.

박원순은 이들을 ‘목가적 좌파의 낭만주의’로 결속시켰음을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박원순은 성추행 의혹으로 삶을 마감한 정치인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는 한국 좌파 특유의 정서적 반동성을 권력을 통해 현실화시킨 정치인이다.

신영복, 리영희, 박현채부터 지금까지 한국 좌파는 도시를 욕망적·경쟁적·외래적·비인간적 공간으로, 농촌을 공동체적·순수적·민족적·인간적 공간으로 대비시키려는 목가적 낭만주의가 흐른다.”

실제로 박원순은 이러한 정서를 공정, 나눔, 공동체, 생태와 같은 언어적 외피를 씌워 정치적 장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어지는 구절을 보자.

“그럴싸한 말을 팔아 기업과 시민으로부터 후원을 받았고 시민사회의 수장으로 올라섰다. 2011년 서울시로 입성한 박원순은 좌파의 정서를 시정에 반영하여 현실로 만들었다. 각종 마을공동체사업, 도시농업, 도시재생사업 등이 그렇다.

시민단체 인사들이 주도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은 별 생산성도 없는 각종 사업을 빙자하여 서울시민의 혈세에 합법적으로 기생했다. 박원순은 서울시를 한국 좌파의 병참으로 헌납했던 것이다. 평소 그가 외쳤던 민관협치는 사실상 ‘민관협잡’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실제로 국회 국정감사에서 확인됐다. 2018년 10월 안상수 의원은 행안위 국정감사와 관련해 서울시 산하 위원회의 불법·방만한 운영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어 이에 대한 행정안전부와 감사원의 합동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 위원회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오세훈 전 시장의 퇴임 전후를 비교해보면 서울시의 2011년 당시 위원회는 103개, 위원 수는 2399명, 운영수당 12억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 박 시장 취임 후 첫해부터 위원 수가 3245명으로 약 1000명 가까이 급증했고 2017년까지 위원회는 194개, 위원수는 4667명, 운영수당은 22억 원으로 취임 전 대비 위원회·위원·운영수당 증가율이 모두 배로 늘었던 것.

또한 6·13 지방선거를 앞둔 2017년에는 박 시장의 재임 기간 동안 늘어난 총 인원의 33%에 달하는 756명의 위원이 추가로 임명되었는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인에게 우호적인 조직을 급조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으로 박 시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먹거리시민위원회의 경우 6·13지방선거 7개월 전에 구성된 위원회이고, 다른 위원회가 평균적으로 20여 명 정도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것에 반해, 본 위원회는 13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에는 박원순 시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아름다운재단 산하의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도 임명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아름다운재단 서울복지재단 대표와 아름다운가게 그린사업국 팀장도 서울시 위원회의 위원으로 있는 것으로 밝혀져 조직을 관리해 6·13 지방선거에 활용한 것이 아닌지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시 등록 시민단체 관련 예산안 대폭 삭감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모습/연합
서울시 등록 시민단체 관련 예산안 대폭 삭감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모습/연합

사법적 심판이 필요할 수 있는 초헌법적 부당행위

문제는 서울시 산하 총 194개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나 그 중 35개 위원회가 회의를 전혀 하지 않았거나 단 1회만 회의를 개최한 불량위원회였고 전체 위원 중 26.6%에 해당하는 1242명의 위원들은 단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는 유령위원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안상수 의원은 “위원 임명을 남발하여 위원회가 방만하게 운영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과도하게 많은 위원을 임명했다”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117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제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법률인 지방재정법에서는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의 경우 위원 15인 이내로 구성한다고 적시되어 있고 (지방재정법 제32조의3 제2항) 그 외의 사항에 대해서만 조례가 정할 수 있게 위임했다.

따라서 현재 각 지자체들은 이에 따라 조례를 제정하고 15인 이하의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고 2017년 7월 13일 서울특별시 지방보조금 관리 조례 제10조 2항 중 ‘15명 이내로 구성하고’ 부분을 ‘15명 이내의 위원을 제3항 각 호의 위원 중에서 회의 개최 시마다 구성하고’라고 개정해 언뜻 보면 비슷한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무제한으로 위원 임명이 가능하게 한 뒤 17년 11월과 12월에 걸쳐 총 369명을 임명했던 것. 이러한 조례 개정은 지방재정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헌법까지 위반해 조례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고 안상수 의원은 지적했다.

따라서 이러한 위헌적·불법적 조례 개정이 6·13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선거운동원 관리를 위한 비정상적 사전 선거운동이 아닌지 선관위에서 조사해야 할 부분이라는 점이 지적됐다.

안상수 의원은 “서울시의 방만하고 위헌적인 산하 위원회 운영에 대해 행정안전부와 감사원이 철저히 조사해야 하며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 서울시장의 직위를 이용해서 사전선거운동조직을 구성하게 한 것이 아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특별시장의 권한과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막강하다.

2020년 기준 서울시 1년 예산은 약 35조 원이다. 서울시청, 서울시립대, 보건환경연구원, 인재개발원, 서울대공원, 서울역사박물관 등 서울시 산하 36개 본부·사업소, 서울교통공사, 서울시설공단 등 5개의 공사 및 공단, 서울의료원, 서울연구원, 서울산업진흥원을 포함해 20개의 출자·출연기관이 있다.

서울특별시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숫자만도 2020년 1월 기준 4만5000여 명에 달한다. 서울시장은 35조 예산집행 권한과 서울특별시 공무원 및 산하기관 공무원의 생사여탈권을 가진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차관급의 지위를 가졌다면 서울시장은 장관급으로 대통령이 주재하는 행정부의 국무회의 참석이 가능하며 발언권도 있다.

서울시의회는 그러한 서울시장의 권한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박원순 전 시장과 위헌적 협잡을 통해 실질적인 2018년 지방선거 운동을 위해 대의권을 행사했다면 이는 철저한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리셋’은 단지 이전의 잘못된 시정을 바로 잡는 것을 넘어 정의와 공정이 사법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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