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하는 진영이 지는 선거 부동층의 저주
낙관하는 진영이 지는 선거 부동층의 저주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11.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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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 전망이 시간이 갈수록 박빙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들을 종합해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간에 격차는 한자릿수 이내로 좁혀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이번 대선도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거나 현재 지지하고 있는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대답하는 ‘스윙보터(swing voter)’, 흔히 부동층이라고 불리는 표심이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이 부동층을 잡으려는 여야 정치권의 노력이 한 국가의 운명을 포퓰리즘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2008년 할리우드 스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스윙보트(Swing Vote)’는 이러한 선거의 문제점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제작에 참여하고 직접 주연을 맡은 영화다.

일상의 책임감과 목적의식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인공 버드의 재투표 한 표가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는 스윙보트가 됐다. 후보들은 버드의 취향과 관심을 좇는 치열한 표심 잡기 경쟁을 벌이고, 언론은 이를 교묘하게 부추긴다.

정당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지키지 못할 공약이 남발된다. 자신의 한 표의 무게를 절감한 버드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투표소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선거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들은 ‘누가, 왜 투표하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다가 민주제의 자유로운 선거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부동표의 저주’(swing voters' curse)라는 것이다.

부동표의 저주란 선거에서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 다수 지지자들의 의지를 소수인 부동층이 결정하게 되는 결과를 말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면 민주제 선거는 소수가 승자를 정하는 모순을 초래한다. 그 결과 민주제에서 선거는 이 소수의 부동층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에 올인하게 된다는 점이 지적된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대선에서 부동층은 대개 2030세대 유권자들에게 몰려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세대 내에서 부동층이 적다고 보는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

부동층이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거나 후보를 정했지만 기권하는 유권자를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들을 종합해 보면 현재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 지지층 내에 포진한 이러한 스윙보터들의 비율은 지지층내에서 각각 30% 정도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이 후보에 대한 ‘비호감’으로 등장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인 11월 5~7일 전국 성인 1000명에게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의 ‘비호감도’(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59.5%, 윤석열 후보는 56.1%로, 두 후보 모두 60%에 육박했다.

반면 ‘호감도’(매우 호감이 간다+대체로 호감이 간다)는 이 후보 36.8%, 윤 후보 40.1%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내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부동층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부동층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층은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민주제에서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부동층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는 대개 부동층을 중도적 유권자나 혹은 무당파, 정치에 관심 없는 시민들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선거를 연구하는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부동층 가운데는 분명히 정치적 무관심으로 부동층이 된 유권자들도 있지만 반대로 높은 정치 지식과 참여적 의지를 가진 이들이 선거에서 부동층이 되기도 하며 이들이 의외로 여론을 형성하는 지위나 능력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동층은 선거 이슈에 의해 부동층이 되기보다는 유권자의 세대나 현실이 변화하면서 기존의 유권자들과는 다른 정치적 태도나 가치,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게 된다. 한마디로 경제적, 사회적 변화와 선거 부동층 간에 긴밀한 함수 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을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지적한다.

예를 들어 최효노 서울대 교수는 ‘한국 유권자의 이슈 태도’라는 실증분석 논문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이념적으로 미분화되어 있으며 다차원적 평가 기준을 갖고 있음을 보였다. 최 교수에 의하면 유권자는 특정한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만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는 여러 이슈들에 대한 의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슈 의견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슈에 대한 의견들이 네트워크 혹은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슈에 대해 특정 응답을 하게 되는 것은 유권자가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가치나 정치적 신념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현실과 상황에 따라, 즉 이슈 태도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슈들은 여러 차원이 혼재, 중층화되어 있는데 최 교수는 이를 네 개의 차원 즉, 사회 복지 차원, 민권 차원, 문화적 가치 차원, 외교 이슈 차원으로 분류한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복합적 현실에서 서로 다른 이슈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우리 2030세대는 안보 이슈에서는 강한 보수적 성향을 보이면서도 문화적 이슈에서는 진보적 태도를 보이는 현상이 있다.

또 경제 이슈에 있어서는 좌우 이념 간에 분열되어 있는 점도 발견된다. 상대적으로 진보 이념성이 강하다는 4050세대도 현실에서는 집값 폭등에 대해 지지하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이슈 태도는 부정적인 경우가 절반에 이른다.

이러한 중첩적이고 교차적인 이슈 태도들이 결국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에 대한 지지를 상대화하고 비판적 거리를 만듦으로써 제3의 후보, 또는 제3의 정치세력론이 정치 현실에서 마그마처럼 움직이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2030세대가 스윙보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대선은 2030세대가 스윙보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관련 이내영, 허석재 교수(고려대)의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합리적인 유권자인가, 합리화하는 유권자인가?’라는 제하의 공동 연구로부터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의 연구 결과, 유권자는 후보의 진보성이나 보수성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고 반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진영성에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는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찾아진다. 당시 유권자들은 이명박 후보에 대해 진보라고 응답한 비율은 10월경 27%에 달했지만,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선거 후에는 11% 정도로 낮아졌다.

반대로 보수나 중도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점차 많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정동영 후보의 경우는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 결국 정동영 후보 지지자들에 비해 이명박 지지자들이 보다 적응적으로 자신의 이념이나 후보의 이념을 합리화하는 인지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이러한 유권자의 자기합리화 경향은 윤석열 후보에게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전 대통령 평가에 대한 윤 후보의 코멘트를 두고 벌어진 민주당 지지자들의 거부 반응과 함께 국민의힘 지지자들 내부에서 벌어진 찬반 논란이 그러한 것이었다.

결국 유권자들의 자기 합리화 과정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스윙보터들은 후보를 바꾸는 ‘배반투표’를 하거나 기권하게 되는 교차압력을 받게 된다. 후보들 간에 박빙 승부가 예상될 경우 네거티브가 전략적으로 강하게 일어나는 이유가 된다.

부동층 표심, 미디어가 결정

선거에서 유권자가 원래 지지했던 정당이나 후보를 바꾸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변심’하는 데 소요된 시간에 따라 차별적인 요인을 상정해 볼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가 증가한 것이나 20세기중반까지 보수적 성향이 강했던 유럽의 여성 유권자들이 같은 세기 후반부에는 진보적 성향이강해진 예에서처럼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발생한 변화의 경우 교육 혜택의 확대나 노동시장의변화 등 거시적 사회구조의 변화에서 핵심요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발생한 변화, 예를 들면 한 선거와 이어진 다음 선거에서 각각 다른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행위의 경우에는 앞서 장기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데 적용되었던 동일한 요인이나 분석틀에 의존할 수는 없다.

그러한 점에서 박근영 연세대 교수는 유권자들은 카톡과 같은 SNS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치 정보에 따라 유권자를 교체하는 경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결과는 카톡과 같은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개인이 사실상 그룹의 리더나 신임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들이 카톡의 운영을 통해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정치적 정보를 통제적으로 전달할 것이며 이를 신뢰 있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에 부합된다.

한마디로 오프라인의 과거 사랑방이 온라인의 SNS로 옮겨진 것이며 이러한 디지털 사회에서 과거 구전(口傳)효과가 바이럴로 대체되었을 뿐 그 효과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선거 기간이 아닌 일상 기간에 SNS 커뮤니티를 보다 많이 확보하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후보에 대한 정치 정보나 사회적 사건에 대한 정보가 보다 빠르고 넓게 확산되고 이러한 시민들이 많은 정치적 진영에서 후보 결정이 빠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여기에 뒤처진 진영의 후보는 TV토론이 결정적으로 부동층의 표심을 가르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동규 고려대 교수의 연구는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지지 후보 결정 시점별로 TV토론, SNS 활용, 정보습득 매체간의 차이를 뒀다. 먼저 TV토론을 살펴보면 ‘투표 1개월 전 이상’ 집단 사람들의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투표일 1주일 이내’ 후보를 결정한 계층에서는 이러한 TV토론에서 지지 후보 변경이나 호감도 하락과 같은 효과가 다소 나타났다.

다시 말해 부동층에 속할수록 TV토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SNS 활용은 ‘투표일 1개월 전 이상’과 같이 지지후보 결정 시점이 빠른 계층에서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선거관련 정보 습득은 ‘TV 방송3사’를 활용한다는 응답이 높았고 선거 정보 습득 채널은 ‘TV’, ‘인터넷’, ‘신문’ 순서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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