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고 쓰고 ‘정치’라고 읽는다
‘문화’라고 쓰고 ‘정치’라고 읽는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1.12.1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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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일 치러진 미 오하이오주 교육위원회(School Board) 선거는 미국 사회가 문화전쟁(culture war)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오하이오주 교육위원회 협의회에 따르면 4년 전과 비교해 올해는 선거에 참여한 후보들의 숫자가 50% 넘게 증가했다. 예년과 달리 1351명의 신규 후보가 1277명의 기존 교육위원들과 자리 경쟁을 벌였다.

이렇듯 미국의 교육위원 선거가 과열 양상을 보인 이유는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비판적인종차별론’이라는 CRT(Critical Race Theory)론을 민주주의 교육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대해 찬반 여론이 격렬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CRT란 1970-80년대에 데릭 벨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와 다른 법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이론이다. 이는 인종주의가 미국 법과 제도들에 내재되어 백인들의 지배력을 유지한다는 입장으로, 인종차별이 특정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유색인종에게 불평등한 제도화된 체계라는 주장이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쓴 킴벌레 크렌쇼 전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는 지난 3일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은 인종이 만들어지고, 인종 불평등이 촉진되는 방식, 이런 불평등이 만들어진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설명하고, 추적하고, 분석하려 하는 이론”이라면서

“우리가 인종적 불평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런 노력 없이도 불평등이 재생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현재 이 CRT론에 의해 두 동강이 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마디로 미국은 현재 ‘문화전쟁’이라는 새로운 내전에 돌입했다는 평가마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 충돌과 갈등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문화전쟁을 겪고 있는 나라로 조사됐다. 문화전쟁이란 한 국가 내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계층, 소득이나 자산, 연령, 성, 종교, 인종, 지역 등이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충돌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제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책연구소가 지난 해 전 세계 28개국 성인 2만30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전체 12개 갈등 항목 중 진보·보수 갈등을 포함해 전체의 절반이 넘는 7개 항목에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문화전쟁 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문화전쟁의 핵심으로 꼽히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과 관련해, 한국인들은 열명 중 거의 아홉명(87%)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존재한다고 답변해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겪으며 심한 정치적 갈등을 보였던 미국의 85%보다 높은 것이다. 한국에 이어 칠레(86%)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인들의 이런 이념 갈등은 서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간의 갈등(91%)에 그대로 반영됐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은 진보·보수의 갈등이 존재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각각 39%, 37%로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낮았다.

문화라는 이름의 정치

프랑스 사회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문화권력의 본질을 탐구했다. 아비투스(habitus)란 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체계를 의미한다. 집단 내에 존재하는 동질적 특정과 집단 간에 존재하는 배타적 이질성으로 계급 구성원들의 문화적 행동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지식인과 예술인의 성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장(場)에서 계급적으로 형성된다. 그에게 사회란 구조물이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망이고 그러한 관계망 속에서 지식인과 예술인은 알튀세르가 지적한 바처럼 ‘호명(呼名)’된다.

이렇듯 한 문화예술인의 저작은 그 사회의 장(場) 안에서 결정된다. 지식사회학적 접근 방식에 의하면 순수한 개인의 창작물이란 없으며 창작자의 의식은 그가 속한 여러 중층적 장들에 의한 반영물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은 결국 사회적 이념과 가치 간에 충돌 점으로부터 운동성을 가진 헤게모니를 위해 경쟁하는 양상을 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좌파 지식인인 부르디외의 논지와 알튀세르의 호명론을 우파가 수용할 수 있다면 문화는 곧 정치성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정치성이란 다양성을 하나의 기획으로 만들려는 노력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이질성들 간에 대립관계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왜 문화적 다양성을 굳이 하나의 기획으로 만들려는 정치성이 필요한 것일까. 그렇게 되는 데는 그 사회가 놓여 있는 ‘구체적 현실’ 때문이다. 한 사회의 현실은 개인들이 갖는 목적과 처지의 개선 욕구로 인해 동력을 갖고 변화하려 든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문화인들 중에는 독립과 해방을 꿈꿨던 이들이 있었으며 그러한 의지의 차원에서 그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민족주의 예술문화를 지향했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 thing)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질서’로 파악했다. 이때 적(Enemy)이란 타자로서의 이질성을 띠는 약한 갈등으로부터 무력으로 대결해야 하는 극단적인 적대성까지를 포함한다.

‘문화전쟁’이란 바로 이렇게 발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문화전쟁은 곧 정치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가치 투쟁의 양상이기도 하다. 문화계 종사자라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문화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이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라는 존재론적인 문제다. 따라서 문화가 갖는 정치성으로부터 우리는 승자와 패자라는 결과적 현실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좋은 것(Good)인가’라는 판단이다.

이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를 위해 “ ‘올림푸스의 신들이 방탕하다’거나, ‘전쟁에 나선 장군들이 인간적인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시인들의 시구절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점에서도 제기된다.

현명한 소크라테스가 시인들의 불경한 시를 검열하고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그가 파시스트여서가 아니라 아테네가 처한 구체적 현실 때문이었다.

당시 아테네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본 것은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좋은가’였다.

오늘날 ‘군대내 동성애 합법화’가 문화전쟁의 한 전선(戰線)이라면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것은 논쟁의 논거들의 옳고 그름보다는 군대내 동성애 합법화라는 결과가 ‘좋은 것’인가 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옳은 것(Right)이 반드시 그 결과로서도 ‘좋은 것(Good)’임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 결코 아니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결국 현실을 목적에 맞게 규정하려는 제 정파들 간에 정치적 헤게모니 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일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화의 정치성을 탈이념적, 탈정치적으로 추구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결국 헤게모니를 향한 문화권력 의지를 가진 집단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 방법론은 집단, 계급, 젠더, 민족, 생태와 같은 허구적, 전체주의적 문화운동에 맞서서 개인과 자유의 미학, 그리고 인문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문화전쟁을 보는 4개의 시선

 

종북의 586운동권이 시작한 문화전쟁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의 원조(元祖)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0년대에 문화전쟁(culture war)’론을 설파한 이래 청소년교육, 대학강단, 대중문화, 대중매체를 장악하려는 좌파 변혁운동가들의 전술은 짭짤한 재미를 보아왔다.

한국의 NL(민족해방파)PD(계급해방파)80년대 이래 현대사교육 분야, 학술계, 대중 연예계, 문화이론 분야, 미디어, 종교계 등 각 분야에서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 왔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다만, 안토니오 그람시는 철학에서 볼셰비키 레닌과 달랐지만, 한국의 NL PD는 철학에서는 아류 레닌 아류 모택동, 수단방법만 그람시일 뿐이다.

후진국에서는 폭력혁명으로 권력을 먼저 탈취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을 세뇌하고 교양하고 사상 개조를 한다. 레닌과 모택동이 그랬다. 그러나 그람시의 선진국 혁명론은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을 먼저 물들인 다음에 세상을 거머쥐자는 전술을 제시한다.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을 어떤 콘텐츠에서 어떤 콘텐츠로 바꾸는가? 오늘날에는 세계화 반대 등 사회주의적인 정치경제론 말고도, 동성애 옹호, 가부장제(家父長制) 부수기, 좌파적 페미니즘, 병역거부, 좌파적 반전(反戰) 의식, 환경 근본주의, 위계질서 허물기...같은 사회문화적인 코드들이 흔히 등장한다. 문화적인 의미의 전통주의(traditionalism) () 세속적 진보주의(secular progressivism)의 싸움인 셈이다.

청소년들과 20~30대가 딱히 무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좌()로 휩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우상파괴적인 대들기와 허물기의 필(feel)이 그들의 머리와 마음에 쏙쏙 꽂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파 문화혁명 일꾼들은 전통사회의 해묵은 인식체계와 관행들을 영화와 연극과 소설과 역사교과서와 대중매체와 서점(書店), 그리고 종교집회의 강론대(講論臺)를 통해 씹고 비꼬고 풍자하고 폄하하고 모욕하는 방식을 즐겨 쓴다.

특히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문화축제라는 이름의 광란 굿판을 통해서 말이다. 한때 민노당 학생위원회 출신 해사(海士) 교관이 대한민국 국군 예비장교들의 머리와 마음을 바꾸기 위해 그런 짓을 하다가 기소되었다.

어떤 EBS 강사는 고교 수험생들의 역사인식을 좌향좌 시키기 위해 TV에서 마구 떠들어댔다. 이름을 예거하기가 힘들 정도의 수많은 영화계, 연예계 종사자들이 민노당 지지를 선언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족히 그람시식의 문화전쟁이라 할 만하다.

 

동성애 논란 역시 문화전쟁이라는 속성을 내포한다. 사진은 2018년 서울 시청 앞 퀴어 축제 모습.
동성애 논란 역시 문화전쟁이라는 속성을 내포한다. 사진은 2018년 서울 시청 앞 퀴어 축제 모습.

역사 해석에서 벌어지는 문화전쟁

 

남정욱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세계를 바꾸려는 운동들은 대개 역사 다시 쓰기에서 시작한다. 첫 단계는 역사 다시 말하기다.’

얼마 전 한 이스라엘 역사학자가 한 말인데 사실 별로 신선할 것도 없다.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그람시는 문화, 역사 헤게모니 전쟁을 이야기했으며 모든 변혁 운동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과거를 들쑤셔 그들의 노선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분칠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라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시리즈가 대표적인 역사 다시 쓰기다. 그 결과 자유인의 자랑스러운 나라 대한민국은 실종되었고 그 자리에 친일과 독재와 친미 정권이 들어 앉았다.

이 역사 다시 쓰기는 역사의 영역에서만 진행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역사 다시 쓰기는 문화에서 펼쳐진다. 문화에서 구현된 다시 쓴 역사는 나중에 오히려 역사를 압도하며 대중들에게 사실처럼 각인된다.

태백산맥은 그 탁월한 성과다. 이 전대미문의 가짜, 위조, 조작 소설은 해방공간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꿔놓았다.

역사 다시 쓰기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발굴하기다. 여러 성공 사례가 있지만 좀 덜 알려진 이야기를 하자면 광해군의 재해석이다. 광해는 조선 왕 중에서 유일하게 복권이 안 된 인물이다.

노산군이 단종이 되고 사육신과 김종서가 신원, 복권이 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폭군의 지위를 지켰다. 이 광해를 무덤에서 끌어내 띄운 인물이 있다. 한국인 아니다. 일본의 어용학자인 이나바 이와키치다.

다시 쓴 역사는 그러나 아직은 날 것이다. 해서 여기에 당의정을 입혀야 하는데 그게 바로 문화예술이다. 아무도 천안함에 대한 1000쪽 짜리 보고서를 읽고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한 시간 반 동안 영상으로 그 사건을 보고싶어 한다.

진보가 문화예술에 목을 매는 이유다. 일찍이 레닌은 영화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간파했으며 제3 제국은 아리안 족의 탁월함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를 선택했다. 그럼 보수우파도 되지 않느냐고? 이건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

보수우파는 성취를 덕목으로 가지며 항전이나 항쟁은 좌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예술의 본질을 알면 금방 이해가 가능하다.

문화예술은 너무 방대하니 대표적인 매체인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를 내 식으로 정의하자면 불가능한, 힘든 일에 도전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영화 록키는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채권추심업자와 막강 세계 챔피언의 대결이다. 누구를 응원하겠는가.

당연히 채권추심업자 청년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약한 것이 강한 것과 싸울 때 우리는 약한 것의 편을 들며 결과에 상관없이 그 과정에 감동한다. 인간의 거의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강자가 아닌 까닭이다.

 

헤게모니 이론을 정립한 안토니오 그람시
헤게모니 이론을 정립한 안토니오 그람시

선거용 기획영화를 만들어 온 진보

 

이용남 차세대영화인협회 대표

 

대중문화는 국민의 사고와 행동에 더 강한 영향을 준다. 대중문화는 문화전쟁의 최대 격전지다. 특히 스타가 주도하면 그 파장력과 파괴력의 최대치는 핵폭탄의 위력에 맞먹는다. 문화전쟁이 무서운 이유다.

세월호는 기억하지만 서해수호의 날은 잊고 있는 미래 세대들이 있다. 심지어 연평해전을 픽션 영화로 알고 있는 대학생들도 있다. 김일성 찬양가인 충성의 노래를 만든 윤민석의 노래 이게 나라냐 ㅅㅂ을 부르는 어린이도 있다.

화려한 휴가’, ‘광해, 왕이 된 남자’, ‘26’, ‘남영동1985’, ‘지슬’, ‘더킹’, ‘공조’, ‘눈길’, ‘보통사람’, ‘특별시민’, ‘1987’, ‘임을 위한 행진곡’, ‘택시운전사’, ‘대장 김창수처럼 대선 시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선거용 기획 영화들도 있다.

세월엑스처럼 괴물체 충돌설을 제기한 네티즌 자로의 다큐멘터리와 인텐션처럼 세월호 고의침몰설을 선동하는 영화도 있다. ‘판도라처럼 원자력발전소 폐지, ‘7-그들이 없는 언론처럼 방송법 개정, ‘자백메멘토모리처럼 국정원 해체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말하게 하는 영화도 있다.

서울대의 얄라성같은 영화 동아리와 소규모 영화 클럽들은 영화는 혁명을 위한 총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민중영화 운동을 전개했다.

운동권 학생의 고민을 그린 인재를 위하여’(1987, 장윤현 연출), 광주사태의 배후 조종자로 미국을 규탄하는 내용의 ! 꿈의 나라’(1989, 이은, 장동홍, 장윤현 연출), 노동자들의 파업을 그린 파업전야’(1990, 이은, 장동홍, 장윤현, 이재구 연출), ‘어머니, 당신의 아들’(1991, 이상인 연출) 등이 대표적인 민중영화 작품들이다.

이태(본명 이우태)의 자전적 소설 남부군’(1988)은 빨치산을 미화한 작품이다. 1990년 정지영 감독이 영화화했다.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1989)을 통해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주사파(主思派)의 교과서였던 이 소설은 1994년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했다. 문화안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개인이 문화안보의 주체라는 생각으로 무너진 나라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출판계는가치투쟁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미국에서는 보통 대선이 있는 해에 좋은 정치사회 분야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 특히 올해는 리버럴 민주당의 더 심각해지는 좌편향과 극좌성향 의원들의 주도권 행사, 그리고 인종갈등의 과격화가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문명적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따라 보수주의자들과 출판사들은 서둘러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

사실 지난 수년 동안 리버럴의 진보세력들이 비판이론이나 정체성정치등을 통해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서구기독교 전통과 문명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반세기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이 치른 문화전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일찍이 이 진보역사의 흐름에 맞서 힘겨운 투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문화영역에서 큰 축을 이루는 출판시장은 사회의 지적 흐름과 담론을 주도하고 여론의 기저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의 오른편 옳은편>(기파랑)의 저자 벤 샤피로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이 너무도 쉽게 붕괴할 수 있음을 진단한 책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젊은 보수주의자 샤피로는 <역사의 오른편 옳은편>에서 3500년의 서구 역사를 조사하면서 위대한 서구세계가 유대문명의 도덕과 헬라문명의 이성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져 있음을 풀어낸 바 있다.

<미국을 단 세 단계에 파괴하는 방법>에서 샤피로는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말 그대로 단 세 방에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바로 서구문명의 철학과 문화와 역사만 무너뜨리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샤피로는 극좌 세력의 집요한 공격에 의해 미국의 이 세 기둥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분석하며 서구문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학과 문화와 역사라는 근간을 보수하고 사수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심각한 국가 위기의 상황에 대해 저명한 보수주의 사상가 로드 드레허는 연성 전체주의(soft totalitaria nism)의 도래라고 설명한다. 드레허는 탈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인들의 남은 수도사적 선택을 처방한 <베네딕트 옵션>(IVP, 2019)의 저자다.

이 신간에서도 드레허는 무엇보다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고된 앞날을 예고하며 이제 심각한 고난과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크리스천 반체제주의 매뉴얼이다.

저자는 솔제니친 등 구소련 반체제인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현대 미국에서는 전체주의적 성격의 체제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의 진보주의는 사실상 종교나 다름없는 강한 신념체계이며 다른 무엇보다 기독교의 세계관을 가장 큰 적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임을 풀어낸다.

그리고 또다시 구소련 전체주의를 견뎌낸 반체제인사들의 경험을 근거로,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진리를 타협하지 않고 가정이라는 저항공동체를 통해 고통을 감내하며 전체주의를 극복하는 진정한 십자가의 길을 처방으로 제시한다.

너무나 많은 기독교의 가치관과 진리를 문화와 화합과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한국 교회도 엄중히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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