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가 동부 돈바스 접경과 크림반도 서쪽의 흑해 연안, 벨라루스 접경이 있는 북쪽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이 터진 날까지도 서방진영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닷새 정도 버티면 잘 버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약하지 않았고 러시아는 강하지 않았다.
3월 첫째 주가 되자 서방진영과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력을 새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서방진영 국가 가운데는 독일이 먼저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고 “향후 연간 국방예산을 1000억 유로로 증액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것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안보전략에 영향을 끼친 첫 사례라고 풀이했다.
서방진영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가 침공 며칠 만에 항복할 것이라 내다본 이유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도 아닐 뿐더러 군사동맹이 없고, 러시아와의 병력과 전투장비 규모를 비교하면 훨씬 적었고, 연간 국방예산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10배였다.
실제 ‘글로벌파이어파워(GFP)’라는 각국 군사력 비교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군 병력은 85만 명, 우크라이나군은 20만 명이다. 그런데 러시아군의 70%는 모병제로 선발한 전문 군인이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대부분 징집한 20대 초반의 어린 병사들이다.
전투장비 측면에서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러시아군은 탱크 1만2420대, 장갑차 3만112대, 자주포 6574문, 견인포 7571문, 다연장로켓 3391문을 보유하고 있다. 전술기는 4195대, 전투함은 항공모함 1척, 순양함 3척, 잠수함 70척, 구축함 15척 등 291척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탱크 2520대, 장갑차 1만2303대, 자주포 1067문, 견인포 2040문, 다연장로켓 490문, 전술기는 281대, 전투함은 프리깃함(초계함) 1척에 연안 경비정 13척뿐이다. 구축함조차 없다.
세계는 이처럼 계량화가 가능한, 양국의 군사장비 및 병력 수, 연간 국방예산 등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가중치를 집어 넣어 분석한 뒤 러시아가 침공하면 우크라이나는 길어봐야 1주일도 못 버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르키우, 키이우 등에서 드러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현실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은 분리주의 반군이 점유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과 벨라루스 접경이 있는 북부 지역, 크림반도와 인접한 남부 흑해 연안이었다.
1주일이 지난 뒤 미국과 영국 국방부, 민간위성업체, 군사전문매체 등이 전황을 분석해 본 결과 남부지역에서는 당초 예상과 비슷하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군에 우세를 점하며 점령 지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부와 북동부, 북부 방면의 전황은 예상과 매우 달랐다.
지난 3월 1일 미국과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 기갑차량 행렬이 키이우 북동쪽 30km 지점에서 길게 늘어서 있으며 이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민간위성업체 ‘막사 테크놀러지’가 위성사진을 공개하며 같은 주장을 했다. 세계의 이목을 끈 이유는 그 기갑차량 행렬의 길이가 무려 64km에 달했다는 점이다.
사흘 뒤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군 기갑차량 행렬이 사흘 동안 거의 진격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키이우로 진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을 열심히 공격했지만 불과 4km를 더 나아갔을 뿐이다.
돈바스 지역과 인접한 북동쪽 대도시 하르키우에서도 우크라이나군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맹렬히 저항하면서 러시아군은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정부 발표에 따르면 사살한 러시아군은 수천 명에 달한다. 적지 않은 러시아군 장병들이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에게 투항했다는 주장도 SNS를 통해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그 가족, 정부 요인 암살을 위해 투입한 체첸 특수부대 가운데 절반이 전멸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심지어 지난 3일에는 영국 언론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휘하던 러시아 소장(한국군 준장에 해당)이 저격수의 저격을 당해 전사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5일에는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남부도시 헤르손을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우크라이나군의 실전 경험과 반러 정서에 주목
이처럼 예상치 못한 전황을 본 서방진영과 안보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지도부와 국민들의 결사항전 의지, 서방진영의 무기지원 및 러시아 제재, 러시아군의 보급 실패 및 전략 부재, 그리고 우크라이나군과 국민 가운데 실전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이 이 같은 결과를 빚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실전 경험은 전문가들이 놓친 요소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는 2014년 2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이후 지금까지 돈바스 지역에서 분리주의 반군과 교전을 벌여왔다.
반군이라고는 하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상당한 지역을 점유한 세력으로 사실상 정규군 수준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세력과 8년째 싸워 왔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 전력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비군 전력이다. 4400만 인구를 가진 우크라이나 예비군은 약 100만 명이다. 징병제인 우크라이나군 복무 기간은 3년이다.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즉 오랜 군복무 기간을 거쳤고 돈바스 지역에서 반군과 전투를 해본 경험을 가진 병력이 수십만 명이다. 이처럼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력들이 현역과 예비역에 있는 덕분에 푸틴의 비밀병기라던 체첸 특수부대 절반이 전멸했고, 다른 절반도 우크라이나군의 사격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교전지역 곳곳에서는 러시아 정예부대라는 스페츠나츠와 공수부대가 예비군들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거나 포로가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예비군들이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 지대공 미사일 차량 등을 노획해 끌고 다니는 일까지 있다.
국내에서와 달리 해외에서는 군인의 실전 경험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워 게임과 달리 사람이 직접 하는 전투에서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2020년 10월 뉴욕타임스는 미군 위관급 장교 120여 명이 육군 참모차장의 강의에서 거세게 항의한 사실을 보도했다.
계급이 대장인 육군 참모차장은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다. 반면 대위들은 이라크전부터 아프가니스탄전 등 수많은 전쟁을 치른 베테랑들이었다. 이들은 현역 대장을 향해 “실전에서의 상황을 얼마나 아느냐”는 취지로 항의를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돈바스 전투는 우크라이나에 실전 경험 말고도 또 하나의 중요한 전력을 선사했다. 바로 반러정서의 확대다. 2014년 2월 크림반도 침공 당시 현지 러시아계 시민들은 친러 반군과 러시아군 진입을 반길 정도로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다.
분리주의 반군세력에게 점유 당하기 전 돈바스 일대도 비슷한 정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하며 보급 안 챙긴 러시아
하지만 돈바스 전투가 8년을 끌면서 우크라이나 전 국민이 러시아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게 됐다. 이 지역 전투 때문에 그동안 숨진 청년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실전 경험을 가진 현역 군인이나 예비군에게는 그만큼 큰 증오를 심어줬다. 이는 친러 성향이 강한 도시로 알려졌던 하르키우에서 시민들이 화염병을 들고 저항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한편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통해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99년 말 집권 이래 지금까지 러시아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힘썼다.
푸틴의 러시아는 냉전 이후 고철이 돼 가던 핵무기와 잠수함, 탱크, 장갑차, 포, 전투기, 폭격기, 순양함, 구축함 등을 현대화하고,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핵추진 순항미사일과 같은 미래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구소련 시절 500만 명에 달했던 대규모 병력을 100만 명 안팎으로 대폭 줄였다. 대신 모병제와 징병제를 함께 실시해 소수정예화를 꾀했다.
푸틴의 이런 노력은 2020년 전후 세계적으로 상당한 평가를 얻었다. EU나 일본은 물론 미국조차 극초음속 무기와 핵추진 순항미사일 등의 위력을 분석한 뒤 긴장했다. 특히 미국은 “요격 불가능한 무기가 생겼다”며 비상이 걸렸다.
이런 국제적 평가와 세계 최다 핵탄두 보유 때문에 러시아는 세계 군사력 2위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푸틴 정권은 러시아군을 현대화하면서 구소련군의 고질적 문제는 제대로 고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났다. 바로 병참과 보급 문제다. 구소련군은 해체 전까지 연료와 탄약, 식량, 피복, 유지보수용 부품 보급 문제를 끊임없이 겪었다.
푸틴이 집권하면서 병력을 대폭 줄이고 장비를 현대화하는 동시에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면서 이런 병참과 보급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라고 서방진영과 안보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2월 말부터 3월 첫째 주까지 러시아군 기갑차량 행렬이 키이우 25km 지점부터 북부 접경까지 64km를 늘어선 이유가 바로 보급 문제였다. 영국 매체에 소개된 러시아군 감청자료에 따르면 기갑차량 내의 러시아 장병이 며칠 동안 연료는 물론 식량조차 보급을 받지 못했다며 지휘관에게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기도 한다.
SNS에는 이 기갑차량 행렬 가운데 연료를 보급 받지 못한 채 며칠 동안 추위에 시달리다 차 안에서 얼어 죽은 러시아군 시신 영상도 나돈다.
러시아군의 실전 경험 또한 문제가 됐다. 러시아는 그동안 남오세티아 전쟁, 체첸 전쟁 등을 치렀다. 그러나 여기에 투입된 것은 대부분 특수부대나 신속 대응군 성격의 공수부대들이었다. 이들이 러시아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안 된다.
크림반도 침공이나 돈바스 내전을 경험한 장병 또한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 때는 모병제 군인이 아니라 복무기간 1년의 징집병도 적잖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전 경험이 전무한 징집병들은 우크라이나 민병대나 시민들을 만나면 항복하거나 도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에서 보여준 모습은 서방진영, 특히 유럽 국가들에 자극제가 됐다. 특히 그동안 미국의 군사비 증액 요구를 무시해 왔던 독일은 유럽 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국방비 대폭 증액을 선언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을 밝히면서 “올해 특별방위기금으로 1000억 유로(약 134조 원)를 증액하고, 향후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프랑스도 3월 2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며 “국방비를 증액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평화와 자유, 민주주주의 대가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더 독립적이고 더 강한 주권을 갖도록 다른 대륙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국방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토를 통한 미국에의 의존을 줄이겠다는 이야기였다.
일부 외신에서는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사실상 폐지했던 징병제를 다시 도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비록 나토나 EU 회원국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21세기 유럽에서 다른 나라의 주권을 무시하고 침공하는 일이 일어난 것에 나토 회원국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외신들은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중국, 믿지 마라”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아시아에도 경각심을 안겨줬다. 국내에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는 2013년 중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기로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12월 5일 중국을 방문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핵우산을 제공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를 전한 중국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우크라이나가 비핵국가로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중국-우크라이나의 1994년 핵공격 금지 성명에 근거해 중국은 우크라이나에 외부의 핵공격 또는 위협이 닥칠 경우 상응하는 안전 보장을 제공하겠다”고 돼 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핵우산을 제공하기로 한 데 대한 대가는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가 축적한 다양한 무기 기술 제공이었다.
중화권 매체 ‘베이징의 봄’ 천웨이젠 편집위원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는 ‘우크라이나 덕분에 군사력이 20년 빨리 발전했다’는 말이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중국 군사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천 편집위원은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은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던 바랴그함을 고쳐 만든 것인데 이때 우크라이나는 친절하게 설계도까지 넘겨줬다”면서 소련 해체 이후에도 많은 군사시설과 무기를 갖고 있던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군사기술을 넘겨줬다고 설명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도 2014년 1월 “우크라이나가 없으면 중국 국방의 성과도 없었다”며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3년 11월 EU 가입 및 경제협력 대신 러시아와 협력한다는 친러정책에 강력히 반대하는 유로마이단 운동이 시작됐고, 그 결과 친러정권이 물러났다.
러시아는 이를 비판하며 이듬해 2월 크림반도를 침공한 것이다. 이후 우크라이나에는 반러 정권이 들어섰지만 친중적 정책은 그대로 유지됐다.
일대일로 사업에도 참여했다. 이처럼 중국에 꾸준히 성의를 보였지만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전혀 막지 않았다. 오히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만 침공을 미뤄 달라”며 ‘핵우산 제공국’을 외면하는 행태를 보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공격 위협을 한 뒤에도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친중·친러 정책기조를 고집해 온 문재인 정부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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