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위기와 국제질서의 변화 가능성
우크라이나 위기와 국제질서의 변화 가능성
  • 이상준 국민대 교수
  • 승인 2022.04.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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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 아산정책연구원] 국제질서 재건을 둘러싼 경쟁과 한국의 선택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취약해진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더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러시아가 자원을 외교안보 수단으로 활용해 수출 물량을 축소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수급 변동성이 높아졌고 그 결과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 역시 커지게 되었다.

또한 전쟁위기에 휘말리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적인 곡물 수출국인데 전쟁이 발발한다면 곡물 수급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곡물의 상당량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수출되고 있는데 가뜩이나 각국이 경쟁적으로 풀어 놓은 코로나 대응 자금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곡물 수급 상황이 악화되면 곡물 가격이 급상승하게 되고 코로나로 경제적 타격이 심각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면서 제2의 재스민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되는 소재의 공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필요한 네온의 90% 이상을 우크라이나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미국 팔라듐의 35%는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다.

칩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레이저에 중요한 네온은 러시아 철강 제조의 부산물이고 우크라이나에서 정제된다. 팔라듐은 센서와 메모리에 사용된다.

군사력 경쟁에서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기술혁신 경쟁 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가 강화되고 신소재의 공급이 중단되면 반도체 생산이 중단될 수 있을 것이고 공급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에도 공급이 축소되어 반도체 생산가격도 상승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의 반도체 칩 수요가 향후 4년 동안 37%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많은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공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상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기업을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4차 산업혁명과 ICT 분야의 기술 발전으로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가운데 배타적 비자유주의 질서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비효율성을 유발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피해가 쌍방 모두에게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ICT 기술 덕분에 플랫폼을 먼저 쟁취한 행위자가 정보를 독점하는 플랫폼 효과를 누리고, 첫 진입자가 후발 경쟁자의 진입을 방해하는 네트워크 효과와 이로 인해 불합리한 제도 및 비효율적인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한번 형성되면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잠김 효과’ 등이 발생하면서 선발 행위자가 누리는 이점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과 러시아 및 중국은 특히 상대방이 선점하고 있는 분야를 표적으로 하여 상대방을 몰아내고자 한다.

이러한 몰아내기를 위한 명분을 만드는 미디어 전쟁도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사이버 공격을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2015년 우크라이나 전력회사 블랙에너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이바노-프랑킵스크 지역의 조명과 난방을 차단하여 어둡고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만들었고

2016년 12월 악성코드인 Industroyer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위험하고 광범위한 정전을 일으켰다. 2017년 6월 평범한 랜섬웨어 바이러스로 위장한 NotPetya 공격은 정부, 민간 부문 및 중요 인프라에 속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컴퓨터를 파괴함으로써 우크라이나 경제에 부분적인 타격을 입혔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사이버 공격에 대한 방지를 요청하였다.

러시아와 중국은 전통적인 육해공에서 열위를 만회하기 위해 인터넷, 우주항공 등 새로운 공간에서 자국의 이익 만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냉전시대 상호의존성이 최소화된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하였다면, 신냉전 시대는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그리고 인터넷과 우주항공 공간을 포함하여 사이버 공격과 군사적 충돌, 미디어를 통한 선전 선동이 결합되면서 미래전쟁의 양상은 더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새롭게 출범한 한국의 새 정부 대외정책도 시작부터 많은 과제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한국 외교는 미중 패권경쟁 하에서 우리의 전략과 정책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위기와 카자흐스탄 시위 등을 통해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강대국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이 여전히 크게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미중에 매몰된 외교정책을 지양하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국제질서 변동 요인들을 주목하고 보다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기술혁신 경쟁을 불러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기술혁신 경쟁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 외교에 시사하는 점

미국과 중국 간 경쟁뿐 아니라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립 역시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유엔 체제 하에서 강대국 간 합의 도출이 어려워질 수 있는 외교 환경에 놓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작년 11월 초 러시아와 중국은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하였고 올 1월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대북제재를 확대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도록 한국의 외교는 더 균형적인 입장에서 전개될 필요가 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아태지역에서도 양자 차원의 동맹을 벗어나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대미외교 전략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가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강도 높은 對러시아 제재를 가할 것임을 선언했고, 이러한 제재가 국제금융, 무역, 에너지 공급망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 역시 對러시아 제재에 대한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각 국가들의 주권 존중이라는 국제법 질서를 훼손한 것이고, 우리가 한미동맹을 통해 미국과 협력관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로서도 일정 부분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불가피하게 제재에 동참하게 된다면 이로 인해 야기되는 한러관계에의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현 시점부터 고민해야 한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할 경우 우리 기업들 역시 이의 적용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정부와 기업들간 사전 조율작업도 필요하다.

또한 향후 5년간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에너지 시장과 곡물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될 것이고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기술표준 경쟁이 심화되고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적대적인 퇴출 등이 늘어나면서 경제 안보가 외교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커질 것이다.

강대국 간 대립과 가치 경쟁으로 완충국에서의 지정학적 균열이 발생하는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날 수 있다. 역대 정부가 러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했다는 점에서 새 정부도 대러 협력을 중시하는 정책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러 관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최악으로 바뀌게 된다면 새롭게 수립될 대러 협력 정책은 추진되지도 못하고 무산될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정책의 목표를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라토리엄, 에너지 안보 등으로 최대한 단순하게 하면서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다. 또한 상황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도 같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발신하는 정치적 신호도 중요하다. 한미동맹 하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면서 우리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외교정책의 국내외 파장 등에 대한 면밀한 전략, 정책 검토 위에 적실성 있는 새로운 대안과 전략 대응 마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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