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경기동부연합, 성남 주민교회, 그리고 이재명
[포커스] 경기동부연합, 성남 주민교회, 그리고 이재명
  • 고성혁  미래한국 군사전문기자 
  • 승인 2022.11.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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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규 전 경기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검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대장동 사건의 진실에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 검찰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구속했고 수사는 이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대장동 사건 주역들이 성남에서 활개를 칠 수 있던 배경이 비단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남시라는 토대 자체가 배경이기 때문이다. 정치분석가들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배경을 제1야당인 민주당 외에도 2가지를 꼽는다. 첫째, 경기동부연합이고 둘째, '성남 토박이'들이다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배경, 경기동부연합 + 성남   

경기동부연합과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이들은 많다. 경기동부연합은 과거 통진당 계열 민족해방(NL, National Liberation)을 주장하며 성남 일대에 뿌리를 두고 있던 좌파 조직의 한 분파였다.

장기표 씨는 2021년 10월 7일자 페이스북 글에서 이재명 후보와 경기동부연합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1980년대 중반 형성된 NL(민족해방파) 계열 중에서도 북한 주체사상을 가장 신봉하는 친북 성향이다. 이 조직의 핵심 세력은 북한에 직접 지령을 받고 움직이다가 해체된 민혁당 내 경기남부위원회 출신이다. 그 위원장이 지난 2013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 8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내년 출소 예정인 전 통합진보당(통진당) 국회의원 이석기다”라고 언급했다.

소설가 이문열 씨도 경기동부연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해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아리송한 운동권 계보뿐, 한 번도 정색하고 이념적인 지향을 드러낸 적이 없다”라고 했다.

정치분석가들은 이재명 대표가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때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중 한 명인 김미희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것을 거론한다. 당시 이재명 시장은 당선 직후 시장 인수위원회인 ‘시민 행복위원회’ 위원장에 김미희 전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김미희 전 최고위원은 그 후 2012년 19대 총선 때 성남 중원 지역구에서 통진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가 2014년 통진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정당 결정으로 당이 해산되면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를 두고 장기표 씨는 “경기동부연합과의 결합으로 성남의 시장직을 차지하면서 정치적 입신양명의 첫걸음을 시작한 이래 성남을 ‘해방구’화하는 동시에 경기동부연합과 ‘정치 공동체’식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둘째, ‘성남 토박이’들에 대해서는 본지 <미래한국>에서 성남시의 태동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이른바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이다.

성남의 소위 ‘오리지널 토박이’들은 서울 청계천 일대 판자촌에서 쫓겨난 도시 빈민 출신들이다. 따라서 성향상 부자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감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성남 출신 정치권 인사들 상당수가 좌파계열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경기동부연합은 바로 성남이라는 특수성에 특정 외부 지역 출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석기 전 통진당 국회의원은 1962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부친이 성남으로 이주하면서 성남 토박이가 됐다.

강철서신 김영환 이후 남한주사파의 최고 이론가로 평가받는 그는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으로 성남 성일고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과에 입학한다. 그러던 중 민혁당 사건이 발표되자 지하로 잠적해 3년 동안 수배 생활을 하다가 2002년 법정에서 2년 6개월 형이 확정된다. 

성남시립의료원 전경.

성남 좌파의 뿌리 민주교회 이해학 목사

성남시 수정구를 지역구로 하는 김태년 민주당 국회의원은 전남 순천 출신으로 통진당 경기동부연합과 긴밀한 관계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김미희 전 통진당 국회의원과 함께 경기동부연합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성남 터사랑 청년회’ 출신이다.

김미희 전 국회의원은 목포 출신으로 정계 입문은 1995년 성남 시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 1995년 김태년 국회의원이 국보법 위반으로 안기부에 구속되었을 때 변호인이 바로 이재명 대표였다. 

성남시 홈페이지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 등재된 ‘터사랑 청년회’에 대한 설명을 보면 1989년 10월 3일 터사랑 청년학우회(회장 이창희)가 창립되었으며 1996년 전국 최초 북한동포 쌀모으기 운동, 1997년 안기부 고문피해자 김형찬 학생 돕기 운동, 매향리 미군 국제 폭격장 폐쇄 운동, 2001년 파주미군기지 피해자 전동록 씨 돕기 운동, 2002년 미군 장갑차 희생자 미선, 효순 추모 촛불시위 및 소파개정 운동,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 운동의 핵심을 보면 반미 운동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성남을 근거지로 한 정치세력이 형성되는 데는 성남 토박이를 한데 묶는 종교계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성남 ‘주민교회’는 독보적이다. 이재명 대표와 성남 주민교회 역시 매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21년 6월 19일 이재명 지지모임 ‘촛불백년 경기이사람’도 성남 주민교회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당시 2016년 성남시립의료원 추천직 이사로 <br>​​​​​​​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를 임명하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당시 2016년 성남시립의료원 추천직 이사로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를 임명하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2021년 6월 21일자 경기신문은 ‘주민교회는 이재명 지사가 성남시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의 뜻을 품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사는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성남시의료원 설립 운동과 관련한 수배령을 피해 주민교회 지하 골방에 숨어 지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광주대단지 사건’ 직후인 1971년 9월 1일 ‘수도권 도시빈민선교위원회’를 조직하면서 현지 주민들을 결속하기 시작했다. 이미 광주대단지에는 권호경 전도사가 파견되어 있었다. 그는 1972년 5월 월요교회를 창립했다.

월요교회는 주민교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해학 전도사는 성남시 수진동 26-84에서 이점례 등 교인 12명을 모아 한국기독교장로회 주민교회를 설립하면서 성남의 좌파세력은 은밀하지만 단단하게 결속을 이루는 것이다. 

1970년대 서울에 명동성당이 있었다면 성남에는 주민교회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이상락, 이재명, 김태년 등은 모두 주민교회와 연결되어 있다. 

이인영 국회의원(전대협 1기 의장)의 장인이 바로 이해학 목사다. 그의 감방 동기 중에는 김일성을 만나고 온 문익환 목사도 있다. 문 목사가 방북 후 감옥에 가자 그를 대신해 이 목사는 전민련 통일위원장을 맡았다.

1990년 8.15 행사에서는 ‘제1차 범민족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베를린에 직접 가서 북한의 전금철 조평통 부위원장을 만나고 와서 국보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돼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때 아버지 이해학 목사 구명운동을 한다며 전민련 사무실에서 일하던 이 목사의 딸(도래)은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게 되고 훗날 결혼하게 된다. 이해학 목사의 딸과 이인영 의원이 결혼할 때 주례는 문익환 목사가 봤다. 이해학 목사는 성남 좌파의 정신적 지주라고 해도 무방하다. 

1945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그는 민주통합시민행동 공동대표.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등 좌익운동에 선봉에 서왔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으로 1990년 11월 30일 구속,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통일맞이 이사, NCCK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상임대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등 그의 좌파 경력은 화려하다. 

이 목사는 7,80년대 반정부 투쟁에 항상 앞장섰다. 그로 인해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주민교회 활동 중에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뿌리내린 점이다.

이 목사가 두 번째 출소한 뒤인 1979년 주민교회는 교인 47명이 1000원씩 모아 4만7000원으로 주민협동신용조합을 설립한다. 그 주민신협이 현재는 조합원 1만4000명에 총자산1500억 원에 이르는 신협이 되었다.

성남시립의료원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는 주민교회
성남시립의료원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는 주민교회

주민교회에서 시작된 협동신용조협, 자산 1500억원 축적   

협동조합은 좌파 활동의 근거이자 또 다른 생업 활동, 자본축적의 수단이기도 했다. 1990년 7월 주민교회는 ‘주민생활협동조합’을 창립했고 1994년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개소하면서 체계적인 이주 노동자 상담과 지원 활동까지 시작했다.

현재 좌파들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이슈로 삼아 정치 활동하는 것 역시 그 시작은 주민교회였다. 1984년 주민교회 이상락 집사와 이태영의 주도로 성남인력센터를 개소했는데 이는 훗날 정동 인력시장을 거쳐 전국 조직인 건설산업 조합의 모태가 되었다. 1985년 기독교 빈민선교협의회 창립(이상락 집사), 1986년  성남지역 노점상연합회 창립 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민교회가 개척 전부터 꿈꾸던 것은 의료사업이었다고 한다. 주민교회는 ‘의료협동회’를 결성해서 의료활동을 펼치고 서울대 사회의학연구팀(회장 양요한)이 정기적으로 진료를 펴고 상근 간호사를 둬 수시로 가정을 방문했다.

무료로 진료받거나 직업을 얻은 이들 중에 주민교회에 출석해 등록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이 된 후 성남시의료원에는 좌파 인사가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공공의료와 연결되는 성남시의료원은 2003년 전국 최초 주민발의 조례 운동을 시작으로 2020년 성남시의료원으로 정식 개원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운동 당시 공공의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4월 ‘성남시의료원 설립운동사 출판기념식’도 주민교회에서 열렸다. 성남시민행동은 출판기념식에서 ‘성남시의료원 설립은 시민승리의 역사’라고 자평했다. 

성남시 수정구에 가보면 언덕 위 넓은 부지에 성남시의료원이 최신 건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 맞은편에 바로 주민교회가 있다. 그리고 길 건너 김태년 민주당 국회의원 사무실과 호남향우회 간판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이렇듯 시공간을 초월해 성남 좌파의 뿌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가고 있다.

성남 좌파를 단순히 경기동부연합이나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깊고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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