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펜스는 왜 트럼프와 결별했나
[서평] 펜스는 왜 트럼프와 결별했나
  • 조평세  미래한국 편집위원·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이사
  • 승인 2023.02.13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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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회고록 So Help Me God

“나는 크리스천이고 보수주의자이며 공화당원입니다. 그 순서대로입니다”

지난 미국 중간선거가 있은 지 바로 다음 주 화요일인 11월 15일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재출마 선언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날 또 다른 의미심장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트럼프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의 회고록 <So Help Me God>이 출간된 것이다. 

2017년 4월 17일 판문점을 방문한 마이크 펜스 당시 미 부통령 /. AP 연합
2017년 4월 17일 판문점을 방문한 마이크 펜스 당시 미 부통령 /. AP 연합

한국에서는 ‘펜스룰(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단 둘이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아내의 동행 없이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는 방어적 규칙)’로도 잘 알려진 마이크 펜스는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 보수 진영의 많은 기대를 안고 있던 인물이다. 

정치 입문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어디서나 “나는 크리스천이고 보수주의자이며 공화당원입니다. 그 순서대로입니다(Christian, Conservative, Republican. In that order)”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트럼프 선거캠프와 행정부 초기 당시 트럼프 내각에서는 두 개의 진영이 대립했다고 볼 수 있는데, 한쪽 축은 백인민족주의 우익 포퓰리즘 진영, 소위 ‘대안 우파(Alt-Right)’를 대표하는 스티브 배넌 최고전략가였고, 또 다른 축이 복음주의 기독교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펜스 부통령이었다. 오랜 잡음 끝에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의 백악관을 나가고 펜스 측의 인사들이 대거 기용되면서 프로라이프 입장 등 기독교 보수주의적 기조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반에 뚜렷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트럼프와의 임기 4년 동안 확고한 기독교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대통령의 충실한 보좌역을 감당한 펜스는 2020년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부정선거 시비와 결정적으로 2021년 1월 6일 의회폭동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와 갈라섰다. 때문에 트럼프의 열혈 지지층 사이에서 펜스는 여전히 ‘배신자’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기도 하다. 미국 보수진영에는 물론이고 한국의 기독교 보수진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유튜버들과 인플루언서들의 교묘한 반지성적 음모론의 시각과 자극적인 선동으로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이다. 

문재인의 ‘평창 쇼’ 속셈을 꿰뚫어본 펜스

이번 회고록에서 펜스는 자신의 성장배경 및 정치철학과 함께 트럼프-펜스 행정부의 치적을 정리하면서 결정적으로 1월 6일 사건을 둘러싼 자신의 입장을 처음 공식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52개 각 챕터를 매우 적절한 성경구절로 시작할 뿐만 아니라 매 사건과 대화 곳곳에서 성경 말씀을 통해 지혜를 구하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구현하려는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오래 함께한 주변 참모들도 그런 그의 면모를 닮았는지, 급박하고 중요한 순간에 서로 암구호를 외치듯 ‘어디 몇 장 몇 절’이라는 말만 던지고 나중에 해당 구절을 찾아보며 서로의 의중을 확인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 

책 출간 이후 미국인들이 주목한 초미의 관심사는 역시 2020년 선거와 1월 6일 의회 폭동에 대한 회고 부분이지만 한국인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 만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책 중간에 있었다. 바로 펜스가 아내 캐런과 함께 참석한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당시 기록이다. 

당시는 트럼프-펜스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최대압박’에서 ‘관여’로 전환하기 직전이다. 펜스는 ‘한반도 통일’에 집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신과 김영남·김여정 북한 방문단이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려 했던 것을 회고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국빈 환영 리셉션에 늦게 도착하거나 고의로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또한 개막식 때도 자신의 바로 뒷줄에 이들이 앉아 있었지만 철저히 무시하면서 눈길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 범죄자들에 대해 마땅한 원칙으로 대하고 문재인의 거짓 평화쇼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펜스 카드’

2020년 대선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의혹과 음모론은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보수 진영을 극도의 혼란 속에 집어넣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우편투표의 급증 등으로 실제 많은 선거관리 부실 실태와 부정 의혹이 대두되었고, 펜스는 법체계와 사법부의 판단을 통한 합리적인 의혹 검증을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제는 혼란의 틈을 타 왜곡되고 증폭된 상식 밖의 음모론이 걷잡을 수 없이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갔고, 결정적으로 이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목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트럼프 주변에는 트럼프가 듣기 원하는 희망 섞인 이야기들로 그의 귀를 홀릴 무책임한 아첨꾼들이 널려 있었고 펜스를 비롯한 냉철한 현실적인 조언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부정선거의 결정적인 증거를 폭로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트럼프 측의 변호사 시드니 파월의 ‘크라켄’ 역시 아무런 신빙성 없는 음모론으로 종결됐다. (파월 변호사는 나중에 법정에서 ‘당시 어떤 합리적인 사람도 자신의 부정선거 주장을 실제로 믿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거짓을 실토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무렵 마지막으로 음모론 커뮤니티에서 흘러나온 것이 바로 ‘펜스 카드’였다. 

펜스 카드란 1월 6일 의회에 제출되는 각 주의 선거인단 결과를 펜스 부통령이 거부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이었다. 트럼프 측 변호사 중 한명이었던 존 이스트맨 교수는 이 말도 안 되는 이론이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트럼프에게 귀띔했고 트럼프는 이 옵션을 덥석 물어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재확산시켰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공식 성명을 통해, 펜스가 선거인단 명단을 불용하거나 돌려보낼 수 있는 부통령의 권한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펜스가 수습 표명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 여기서 정말 심각한 사실은 이 ‘펜스 카드’ 옵션이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을 트럼프도 알았다는 것이다. 

존 이스트맨은 1월 4일 트럼프와 펜스가 참석한 백악관 내부 모임에서 부통령이 선거인단 명단을 거부하는 권한이 없다는 말을 했고, 바로 다음 날인 5일, 이스트맨은 펜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6일 의회에서 7개 주의 선거인단 명단을 거부할 것을 주문했다. 이 사실은 펜스의 회고록 뿐만 아니라 ‘1월 6일 사건 규명위원회’에서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증인들의 선서하의 증언을 통해 검증된 것이다. 한편 이스트맨은 법정에서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는 자신이 펜스에게 ‘거부(reject)’를 주문한 것이 아니라 선거인단 명부를 각 주로 ‘돌려보내(return)’ 시간을 끌도록 조언한 것이라는 말장난을 늘어놓고 있다.

2018 평창 올림픽에서 펜스 부통령은 북한 김여정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고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 연합
2018 평창 올림픽에서 펜스 부통령은 북한 김여정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고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 연합

2021년 1월 6일 그날

결국 펜스가 자기 맘대로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최후의 모든 짐을 펜스의 어깨에 떠넘기며 군중의 분노를 그에게 돌린 트럼프의 행동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사악한 것이었다. 1월 6일 당일 트럼프는 의회가 보이는 내셔널몰에 모인 군중에게, 펜스가 “옳은 일”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군중은 이미 펜스를 위한 단두대 모형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펜스가 절차대로 선거인단 명단을 접수하자 트럼프는 트윗을 통해 “펜스는 옳은 일을 할 용기가 없었다”고 말해 군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또 다른 증언에 의하면 군중이 “펜스를 목 매달아라”라고 외칠 때 트럼프는 ‘그럴 만하다(he deserves it)’고 말했다고 한다. 

펜스는 의회 진입에 성공한 군중을 피해 의원들이 줄지어 도망가는 모습을 전 세계 앞에서 생중계하지 않기 위해, 주차장으로 피신하면서도 의원들 모두에게 절대 뛰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경호원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차에 탑승하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자신들의 의무감 때문에 차를 의회 밖으로 피신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고록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그날 펜스의 딸 샬롯(당시 18세)도 캐런과 함께 펜스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샬롯은 이미 4년 전 대선 캠페인 때부터 아빠의 스피치를 봐주었고, 1월 6일 당일에도 현장에서 아빠의 모든 발언과 의중을 기록하고 필요에 따라 조언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펜스에게는 딸의 직접적인 도움보다, 딸이 지켜보고 있다는 그 존재감 자체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양심을 지키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날 해가 질 무렵 시위자들이 겨우 물러가고 의원들이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회의장 입구에서 펜스는 동료 크리스천 의원인 팀 스캇을 발견하고는 기도해달라고 말한다. 스캇이 “지금? 여기서?” 라고 묻자 옆의 보좌관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벌써 의원님들이 자리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 때 펜스는 “기도를 위한 시간은 언제나 있어요”라고 말하며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기도를 한다. 샬롯이 포착한 것으로 보이는 이 놀라운 장면이 회고록에 수록되어 있다. 
그날 이후 트럼프를 만났을 때 펜스는 말씀의 힘을 통해 트럼프를 용서한다. 그리고 백악관 짐을 싸면서 트럼프가 그날의 언행을 후회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을 때 오히려 그를 위로하며 예수님을 전한다. 마지막 인사에서 펜스는 그럴 필요없다고 말하는 트럼프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그래도 저는 당신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던지며 집무실을 나온다. 

회고록을 낸 이후 펜스는 계속해서 언론 인터뷰 및 각종 무대 기회에 응하며 트럼프와 1월 6일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중간선거 패배로 공화당과 보수 지지층은 트럼프가 아닌 2024년 대선 후보를 고려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그럼에도 다시 펜스에게 기회가 올 가능성은 적다. 펜스를 비롯한 폼페이오, 니키 헤일리 등 트럼프 행정부 출신 인물들은 모두 한자리수 퍼센트 지지율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산티스가 유일하게 트럼프 지지율을 두 배 가까이 따돌리며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고백처럼 펜스는 공화당 정치인이기 전에 보수주의자이고 또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아마도 적절한 순간에 본인의 야망을 내려놓고 드산티스에게 지지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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