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느헤미야의 리더십이 한국 지도자들에게 주는 교훈
[논단] 느헤미야의 리더십이 한국 지도자들에게 주는 교훈
  • 최 광 미래한국 편집고문·전 보건복지부 장관
  • 승인 2023.02.1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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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대학에서 나의 강의를 열심히 듣던 학생이 20여년이 지나 홀연히 나타나 나를 주님께로 인도해 구원의 축복을 받게 했다. 그 제자가 최근에는 나를 지구촌교회로 초대해 새 가족이 되게 하면서, 70대 후반 노인인 나의 영성을 다시 점화해 주고 있다. 나의 영적 스승인 최남철 장로가 지난해 12월 초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가 막 출간한 ‘살기 위해 울라’라는 책을 건네줬다. 이틀 만에 단숨에 읽었다. 최 목사가 교회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고뇌에 절절히 공감했다. 더하여 예배의 회복, 삶의 회복, 전도의 회복을 바라는 소망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최 목사의 역작 ‘살기 위해 울라’를 읽는 과정에 책의 주인공 느헤미야에 나도 모르게 푹 빠져 버렸다. 바로 내가 찾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왜? 위대한 지도자인가?’란 주제로 오랫동안 강의 강연을 해왔고, 책을 집필하고 있는 중인데 오늘날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 상을 느헤미야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최성은 목사의 ‘살기 위해 울라’를 맥을 잡아 읽으면서(강력히 추천함) 동시에 성서 느헤미야서를 면밀히 읽으면, 오늘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과 리더십을 정확히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소명 받은 느헤미야의 사명

BC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남유다가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곽은 파괴된다. 그 후 유대인들은 3차에 걸쳐 귀환한다. 1차는 BC 537년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5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귀환한 유대인들은 무려 22년이나 걸려 BC 515년에 비로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다. BC 458년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지도하에 6~7천 명의 유대인이 2차로 귀환한다. BC 444년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1500km나 떨어진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히브리인 2세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고위 관리직을 내놓고, 성벽을 재건하려 예루살렘에 도착하였고, 불과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게 된다. 느헤미야는 유대 총독으로 12년간 재직하면서 성곽을 재건함은 물론 공동체 회복과 영적 부흥으로 유대의 율법 공동체를 다시 세웠기에 유대교 건설에 가장 크게 공헌한 지도자 중의 한 분이다.

느헤미야서는 모두 13장인데, 총독 느헤미야가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행한 일 두 가지를 기술하고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곽 재건이고(1~7장), 다른 하나는 신앙 부흥 운동(8~13장)이다. 성곽 재건을 다룬 일곱 장 중 1~2장은 성벽 재건 준비를, 그리고 3~7장은 성벽 재건 사역을 서술하고 있다. 한편 신앙 부흥 운동을 다루는 여섯 장 중 8~10장은 언약 갱신을, 그리고 11~13장은 언약에 따른 개혁 조치들을 서술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된 동생으로부터 예루살렘이 큰 환난을 만나 성도(聖都)의 성벽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성전에 놓여 있던 성물들은 거의 소화(消火)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생이 전하는 고향 소식에 당시 페르시아 궁전에 살고 있던 느헤미야는 너무나 슬퍼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다.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BC 465-424 재위)의 신임을 두텁게 받아 궁중의 술 관리인(酒官)이라는 고위직에 있었는데, 그는 바사 왕에게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에 있는 성읍에 보내, 그 성을 중건하게 해 달라”고 읍소했다. 평소에 그의 충성심과 정직함을 신뢰하던 왕은 그의 요청을 허락함과 동시에 삼림감독에게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할 수 있는 재목을 보급하라고 명령했고, 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한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딸려 보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사명을 완수하면, 반드시 바사로 되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BC 445년 유다 총독의 직책으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땅에 도착했다.

약 3일 동안 휴식을 취한 후, 느헤미야는 야밤에 친위세력 몇 사람만 데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살피면서 심한 파괴 현장을 철저히 조사했다. 그리고 제사장, 귀인, 방백 그리고 권위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성벽 재건에 대한 자신의 잘 준비된 구상을 제안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느헤미야의 사려 깊은 성벽 재건 제안에 동조했고, 개별적으로 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협력했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
예루살렘 통곡의 벽.

느헤미야의 뜨거운 이스라엘 사랑

재건 공사는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분담 추진되었다. 일부 유대인과 타 종족들이 성벽 재건을 노골적으로 방해했음에도, 사역을 철저히 중간 지도자들에게 위임하여 일꾼들이 그들의 리더십에 따라서 소신껏 일하게 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하였기에, 놀랍게도 공사를 개시한 지 52일 만에 성벽 재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에는 당대의 유력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성벽 재건이 끝나자 느헤미야는 부흥회를 개최하여 떠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면서,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통곡 회개하며,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켰다. 느헤미야는 많은 문란한 사회윤리 개혁을 단행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난 혼혈족인 암몬과 모압 사람들을 분리시켰으며, 암몬 사람과 도비야를 성전에서 추방하였고, 성전에서 주는 월급을 조정했으며, 안식일과 십일조를 엄수시킴과 동시에, 잡혼을 금지시켰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1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민폐는 고사하고 총독의 녹까지 전혀 받지 않았으며, 자신의 비용으로 가난한 유대인 150명을 먹여 살렸다. 만난을 극복하며 성벽을 재건한 후 유대교를 부흥시키며 12년 동안 이스라엘에 봉사한 후, 느헤미야는 바사 왕과의 약속을 지켜 BC 433년경 바벨론으로 되돌아갔다. 

기원전 5세기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 신앙을 부흥하는 과정에서 보인 그의 리더십은 신약 구약 기독교 성경 전체에서 특이하고도 강력하다. 

오늘날 목회자, 정치지도자, 기업인, 시민활동가, 지식인 등 각 분야의 최고 책임자들이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실로 엄청나다고 확신한다. 어쩌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상황은 하느님이 느헤미야를 인도하여 재건 부활시킨 BC 5세기 이스라엘 처지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를 보내주시기를 그리고 세운 지도자를 역사에 남는 성군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느헤미야의 눈물과 기도를 통한 역동적인 사역에서 오늘날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리더십을 각기 발견할 것이다. 목회자들은 교회를 다시 세우는 방법을 배울 것이며, 정치지도자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국내외의 엄청난 여건 변화와 치열한 경쟁 속에 생존을 위협받는 기업인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열쇠를 가지게 될 것이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워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비바람에도 광화문에 태극기를 들고 나서도록 독려하는 애국 시민단체장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완수할 혜안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국민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지식을 전수하는 지식인들에게는 새로운 소명 의식과 자신들이 천착해야 하는 일에 대한 목적과 수단에 대해 큰 안목과 통찰력을 갖게 할 것이다. 느헤미야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느헤미야의 비전과 리더십 

첫째,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명의 사람’이었다. 예루살렘 성벽이 황폐화 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나님께서는 소명을 확신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는 느헤미야에게 하나님 자신의 소원을 인식시키고, 성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모든 일을 주관하셨다.

둘째,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느헤미야서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이 난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일을 한다. 느헤미야가 바로 그러했다. 그는 자신이 모셨던 아닥사스다 왕이라는 막강한 배후가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스스로 도와준 것 외에는 왕에게 어떠한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오직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갔다. 

셋째, 느헤미야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다. 느헤미야의 비전은 단순히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고, 무너진 성을 다시 세움으로써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왕국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넷째, 느헤미야는 ‘용기가 있는 지도자’였다. 위험한 성읍에서 살면서 음흉한 대적과 담대히 대항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연줄이 있어 성전에 들어와 살던 대적 도비야를 성전에서 내쫓았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에서 난 자녀들이 유대 말은 못하고, 이방 나라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아, 다시는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시키는 용기의 지도자였다. 

다섯째, 느헤미야는 ‘일머리가 있는 지도자’였다. 그는 성곽 재건과 관련하여 성급하게 일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비밀리에 상황을 조사해 보고, 정황을 먼저 파악했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토대로 유대 지도자들과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계획을 말한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비전과 계획을 일꾼들에게 설명해 협력을 구하고, 모든 일꾼들에게 해야 할 일과 일할 장소를 가르쳐 줬다. 그는 일꾼들에게 늘 고마워했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들을 격려했고, 상황이 위태로울 때는 리더의 지혜와 용기를 보여 그들에게 안정감을 줬다. 

여섯째, 느헤미야는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지도자’였다. 지도자로서 그의 처신은 흠잡을 것도 책망받을 것도 없었다. 그는 남들이 자는 밤에 무너진 성벽을 은밀히 돌아봤다. 대적의 위협이 거세질 때, 그는 열심히 기도했다. 그리고 큰 공사를 선두에서 지휘했다. 그리고 음식을 차려 많은 사람들을 자기 상에서 먹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사이의 불평거리를 잘 판결지어 주는 행정관으로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이 성취한 것은 한마디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기적의 뒤쪽 골방에서 일군의 음흉한 세력이 배태되어, 세 번에 걸친 좌파 정권의 탄생과 더불어 종북 주사파 세력의 최후 준동에 의해 불행하게도 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백척간두(百尺竿頭) 미증유(未曾有)의 위기에 처했었다. 헌법, 외교, 안보, 국방, 사법, 경제, 교육, 문화, 언론, 방송, 재정, 기업, 행정, 인사 등 모든 분야가 파괴되었는 바,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그 정체성을 찾는 것조차 어려운 만신창이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의 대한민국 파괴는 이스라엘 성전과 성곽 파괴와 진배없었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우파 세력의 승리는 하나님이 은총으로 성취된 또 하나의 기적으로 그 승리로 인해 우리는 파괴된 대한민국을 구하고, 바로 세우는 계기를 가까스로 마련했다.

지난 대선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한 마디로 ‘한국병’의 치유이다. ‘한국병’ 치유는 그 내용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처의 ‘영국병’ 치료와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중차대한 역사적 과제로 종북 주사파 세력이 파괴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체제교체를 이뤄내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나라의 흥망성쇠는 언제나 지도자와 함께 했다. 영명한 지도자의 등장과 그 주위에 뛰어난 인재의 집결이 나라의 융성을 보장하는 필요조건임을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대단한 비전과 리더십을 가진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그 지도자가 천하의 인재를 찾아 활용할 때, 부국안민이 성취된다. 성공하는 대통령,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역설적이게도 의외로 쉽다. 역사에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는 자신의 신념(belief)과 소신(conviction)으로 국민을 선도(lead)하는 지도자(leader)였지, 국민의 눈치를 보는(follow) 추종자(follower)가 아니었다. 느헤미야가 그러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지도자나 부국안민 (富國安民)을 성취한 지도자가 숭앙받았다. 예를 들어 에르하르트 독일 총리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폐허가 된 독일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창출했고, 대처 영국 총리는 영국병을 치유하였으며,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붕괴시켰고, 링컨 대통령은 미합중국이 분할되는 것을 막아냈다. 한국의 경우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기치로 대한민국을 건국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창출하여 대한민국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느헤미야 같은 불세출의 지도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으나,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느헤미야는 소명의 사람, 기도의 사람, 비전을 가진 사람, 용기가 있는 지도자, 일머리가 있는 지도자,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지도자였다. 현재 우리는 새 지도자를 찾는 단계에 있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도자로 이미 선출되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윤 대통령 자신이 느헤미야가 될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하도록 촉구하고, 동시에 탁월한 책사들이 윤 대통령을 보필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BC 5세기 느헤미야의 소명의 사람과 기도의 사람은 오늘날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끌고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기도로 세상을 바꾸는 성직자나 신도는 있을지 모르나 정치지도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기도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지도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종교와 이념은 그 본질과 기능에서 매우 유사하다. 종교에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에게는 이념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이념은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국가 번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국가 운영과 정책 추진에서 반드시 반듯한 이념 정립이 필요하다. 정당은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 결사체이다. 논쟁을 회피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이념 논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어떤 이념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한가? 이념에는 주체로든 객체로든 개인을 중심에 놓고 자유를 강조하는 우파가 있고, 주체로든 객체로든 집단을 중심에 놓고 평등을 강조하는 좌파가 있다. 그러하기에 이념에 중도가 있을 수 없다. 이는 기독교와 불교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역사 자체의 물꼬를 틀고, 역사에 남은 개혁을 한 지도자는 거의 우파 지도자였다. 좌파는 수차례 혁명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자폭(自爆) 자멸(自滅)이었다. 현재의 파괴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지도자는 우파의 신념이 꽉 찬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날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우파로 다시 기울게 해야 나라가 번영하고, 국민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공인이기에 자신의 이념을 분명히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병을 치유하고 대한민국을 정상화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병을 치유하고 대한민국을 정상화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연합

한국 지도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날 현실의 이념 논쟁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우리의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둘째, 자신이 가진 이념에 배치되는 정책을 다반사로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온갖 좌파적 정책을 내놓으면서 우파라고 자처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등과 분배적 시혜정책을 강조하는 좌파가 시장경제의 신봉자라고 외치는 것은 모순의 극치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 성향을 분명히 밝히고, 자신이 왜 그 이념의 가치를 믿는지를 국민에게 자신 있게 설명해야 한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 이래 처음으로 참으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윤 대통령은 그의 자유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시대적 소명을 스스로 인식 정립하고,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정립한 시대적 소명에 목숨을 거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며 자신과의 싸움에 이겨야 한다. 장관이나 수석도 자기 직에 목숨을 거는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틈틈이 아니, 일부 일정을 제치고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것도 역사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역사에 오늘 고민하는 모든 문제의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 선현 (先賢)들의 지식과 지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머리를 빌리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 왕의 경연(經筵)을 부활해봄 직하다. 똑똑한 사람보다 강직하고 일머리 있는 사람을 주위에 참모로 둬야 한다. 대통령이 되면, 세상의 직책에서는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다. 역사에 이름과 족적을 남기는 일밖에 할 일이 없다.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것은 업적을 통해서 이뤄진다. 일은 원리원칙에 따르고, 사심(私心) 없이 추진할 때만이 제대로 된다. 모든 일에는 기본이 있기에 기본(원리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개인적 사심, 혈연적 사심, 인연에 따른 사심, 동지적 사심 등 세상사의 모든 사심의 발로가 일을 망치는 첩경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위대한 지도자 곁에는 언제나 훌륭한 참모가 함께 했다. 대통령은 국사(國事)를 책임지는 사람이고, 국사에 능력이 출중한 핵심 책사(策士)들의 도움이 필요불가결하다. 오늘날 같은 난세에 영혼 없는 관료와 애국심 없는 정치인 중심의 현재와 같은 참모진 구성으로는 뜻하는 바를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사가 정말 만사이기에 인재(人才)의 발굴과 모시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도자와 참모의 훌륭한 조합이 역사에 많이 있지만, 대표적 사례는 당 태종 이세민과 방현령 위징 두여회, 제나라 환공과 관중, 전두환 대통령과 김재익 수석, 대처 총리와 조셉(Keith Joseph) 등으로 그 주군에 그 책사였다. 당 태종과 환공의 책사 관중은 지방 목민관들에게 훌륭한 인재를 천거하도록 강하게 요청했는데, 주위에 능력이 있는 특히, 역사적 혜안이 있는 분들의 포진이 중요하므로 취임 초는 물론 임기 내내 인재를 발굴하는 작업을 제도화시켜 추진해야 한다.
국민은 소통하는 지도력 있는 지도자(leader)를 원한다.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

국민들은 지도자의 심성에 주목하며, 국민들은 지도자의 심성이 어떤가를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판단한다. 그들은 반듯한 심성의 지도자의 언행에 신뢰를 보낸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말보다 실천하며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들은 영악하며,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 지도자의 심성이 불순하면, 국민들은 즉각 지지를 철회하며, 마음을 거둬 민심은 자연스레 이반(離反)한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언행에 일관성 있게 처신해야 하고, 진심으로 헌신 봉사하며,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낮은 자리라도 공직에 나가면 희생과 봉사가 모두이다. 최고의 공직자인 대통령은 땀과 눈물과 피를 쏟아내며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도록 국민들에게 담대히 요구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리더십의 힘은 지도자의 ‘자신감’에서 나온다. 혼란기나 위기 때 리더십은 더 빛난다. 지도자는 스스로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추종자들을 확신시킬 수 있고, 국민들의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임무는 참으로 막중하다. 한국병을 치유함은 물론 파괴된 대한민국을 재건해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로 자리 잡고 칭송받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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