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민간’이라는 한일관계의 안전판
[심층분석] ‘민간’이라는 한일관계의 안전판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23.04.17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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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올림픽 양궁경기 현장. 일본 선수들이 사상 첫 동메달 획득했다. 

메달 수여식에서 일본 선수들은 감격해 오열했다. 그때 금메달을 딴 오진혁 선수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은메달의 대만 선수들과 동메달 일본 선수들을 1등 단상으로 초대해 함께 셀카를 찍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 모습은 일본과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이 장면을 지켜본 일본 국민들과 매스컴은 ‘도쿄올림픽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는 긍지와 오진혁 선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일관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던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감동했던 이벤트였다. 이에 일본 테즈카야마학원대학교 리버럴아츠학부 준교수로서 한국어 교육에 힘쓰고 있는 이나가와 교수는 “눈앞에 사람을 보라”는 말로 한일 민간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일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징용공 배상 문제를 제3자 방식으로 해결하는 해법을 결정하고 일본 정부가 이에 화답하면서 얼어붙은 한일관계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지만 곧이어 터져나온 일본 역사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와 야당인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정부의 한일관계는 언제든 다시 파국을 맞이할 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에 정부간 외교도 중요하지만 한일간에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한 돌파구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미네기시 히로시 닛케이신문 편집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한일관계에는 안보, 경제, 민간이라는 3개의 ‘안전핀’이 있죠. 안보와 경제 분야조차 어렵다면 민간교류를 더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히로시 편집위원의 ‘민간교류 안전핀’론은 한일관계의 지난 흐름을 되돌아보게 한다.

2003년 한국의 드라마 겨울연가(일본에서는 ‘후유 소나타’)가 NHK에서 방영되어 ‘욘사마’ 열풍을 불러왔다. 이를 계기로 2005년 ‘대장금’과 일본에 판매하기도 전인 ‘시크릿 가든’이 일본 전 열도를 달구면서 일본에는 한류 열풍이 불었다. 
대중가요도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이 일본 청소년들을 열광시켰다. 당연히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크게 개선되었고 한일 간에 활성화된 민간교류와 관광객도 크게 늘었다. 한국에서도 일본의 문화개방으로 청년층에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 과정에서 한일 사이에 가장 우호적인 관계가 이뤄졌다. 당시 일본 여론기관에서 조사된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우호감은 평균 30-40%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호감은 2012년을 계기로 점차 하락해 갔다. 

2019년 한일문화교류 행사의 일환으로 강남 코엑스에서 한일축제한마당을 열었다.
2019년 한일문화교류 행사의 일환으로 강남 코엑스에서 한일축제한마당을 열었다.

일본 대중문화 규제 잔재 없애야

“한국과 일본이 각각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걸쳐 국가 정체성을 재구축해 나가는데, 한국의 재구축 방향과 일본의 재구축 방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한영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한 교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일본의 독도영유권 발언,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본의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등으로 역사 문제가 한일 갈등의 원인으로 조명되었으나, 큰 흐름으로 볼 때는 양국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갈등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는 민주화를 공고히 하는 진보 성향의 국가정체성이 강화된 반면, 반대로 일본은 정상국가를 목표로 보수화되면서 한일 간의 민간교류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현 주소는 어디쯤일까.

2021년 한국경제연구원이 한일 양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는 한일 양국 모두 낮은 편이었다. 한일 국민은 상대국에 대해 ‘중립적  (한국 국민 응답 : 35.2%, 일본 국민 응답 : 37.0%)’이라고 가장 많이 답했지만, ‘비호감 응답’이 ‘호감 응답’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한국 국민은 일본에 대해 ‘호감 또는 매우 호감’이라고 답한 비율이 16.7%에 불과했으나, ‘비호감 또는 매우 비호감’이라고 답한 비율은 48.1%에 달했다. 일본 국민 역시 한국에 대해 ‘호감 또는 매우 호감’ 응답이 20.2%인 것에 비해 ‘비호감 또는 매우 비호감’ 응답은 42.8%로 두 배 이상 높았다. 

한일 국민들은 한일 갈등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양국 국민 간 불신 증대(한: 29.3%, 일: 28.0%)’를 꼽았다. 한국 국민들은 이어 한일 간 교역 위축(22.2%), 주요 소재·부품에 대한 공급 불확실성 확대(12.3%), 한일 간 민간 문화 교류 위축(12.3%) 순으로 응답했다. 일본 국민들 역시 한일 간 교역 위축(16.2%)을 두 번째로 꼽았고, 이어 중국 등 제3자 수혜 가능성(12.9%), 한미일 군사동맹 약화에 따른 안보 우려 증대(12.5%) 순으로 응답했다. 

이러한 한일 양국 간의 비호감을 줄이기 위한 민간교류의 프로그램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등장한다. 무엇보다 현재 현저하게 영향력이 떨어진 일본에서의 한류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에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가 없었지만 한국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을 시행하자, 비로소 일본에서 한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아직 풀지 않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 규제가 있음을 빌미로, 한류가 ‘불공정’ 문화교류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일본에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비난이 요즘같이 경색된 한일관계 국면에서는 더 힘을 얻고 있다. 아직 우리가 풀지 않은 규제는 지상파의 일본 드라마 방영 금지 조치 및 라디오에서의 일본어 노래 방송 금지 조치 등이다.

2022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오진혁 선수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대만 및 동메달의 일본 선수들을 1등 단상으로 초대해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연합
2022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오진혁 선수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대만 및 동메달의 일본 선수들을 1등 단상으로 초대해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연합

지자체가 한일 민간교류 추진의 중심

한일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자체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회복하려면 양국 정부 간 외교적 노력에 더해 지방정부 차원의 외교를 통한 민간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지방외교’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국가주의식 외교와 달리, 양국 시민 간 국경을 넘는 화해·협력을 가능하게 해 궁극적으로 양국 관계 발전 및 세계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게 학계 판단이다.

이에 대해 안성호 한국행정연구원 원장은 “21세기 동아시아 질서에서 우호적인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근래 범세계적으로 권위주의적 비민주주의가 득세하고 자유민주주의 쇠퇴 징후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민주국가인 대한민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중대하다고 본다”고 했다. 실제로 지자체 차원에서 한일 교류를 추진하는 성공적인 사례도 있다.

진주시는 ‘국제 자매도시 우호 협력 증진’ 및 ‘유네스코 창의도시(공예 및 민속예술분야) 교류’, ‘기업가정신 국립역사관 건립’ 비교견학을 위해 최근 일본 기타미시로 국제교류도시 방문단을 파견했다. 조규일 시장을 단장으로 한 국제교류도시 방문단은 기타미시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일본 기타미시는 인구 12만 명의 홋카이도 지역 산업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로, 진주시와는 1978년 기타미 한일친선협회장의 요청으로 민간 로타리클럽과 교류를 시작한 후 1985년 5월 진주시와 기타미시 간 자매도시 협약을 체결해 지금까지 교류도시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진주시와 기타미시는 자매도시의 교류와 협력 증진을 위한 상호협력협약서(MOU)를 체결하여 양 도시 간 교류 확대에 의견을 모았다. 진주시는 홋카이도의 정원 ‘북해도 가든가도’ 및 동물원 ‘아사히카와시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대한 벤치마킹을 통해 민간교류를 한일간 협력 비즈니스 차원으로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기타미시는 ‘월아산 숲속의 진주 국가정원’ 조성과 국내 대표 생태동물원이 될 ‘진양호 동물원’ 이전 사업 추진에 든든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더불어 역사 인식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상호 이해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관광 목적의 짧은 방문만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프로그램 중에서도 한국.일본 역사기행 등 상대국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2023년 봄 시즌 극장가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은 일본 애니메니션‘슬 램덩크’다.
2023년 봄 시즌 극장가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은 일본 애니메니션 ‘슬
램덩크’다.

또한, 미래 세대 교류에 있어서도 자매결연 학교간 교류 프로그램, 역사문제 토론대회, 상대국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역할 바꿔 토의하기, 한일협력방안 아이디어 대회 등 한일 학생들이 양국 간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등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인.일본인 맞춤형 유학생 장학 사업, 유학 생활 지원을 위한 한국인.일본인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 유학생 학업-취업 연계 프로그램, 국외 취업자들의 주거 마련의 제도적 지원, 홈스테이 프로그램 등 상대국의 문화에 녹아들어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등도 필요하다. 한국 내 일본 전문가, 일본 내 한국 전문가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신진연구자를 양성하고, 그들이 상대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오피니언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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