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덴마크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지고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황무지 개간에 앞장섰던 이가 있었다. 바로 덴마크의 부흥 운동가 엔리코 달가스(1828.6.16.~1894. 4.16.)였다. 그의 열성에 감동한 국민들이 그와 함께 모래땅에 나무심기를 거듭한 끝에 거친 국토는 푸른빛으로 바뀌었고, 이로써 덴마크 부흥의 기틀이 다져졌다. 하지만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은’ 사람들도 있다. 750만 해외 한인들 중에 한상(韓商)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엘살바도르는 국토 면적이 한국의 1/5 정도로 작고 인구도 600만 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다. 중미의 작은 나라에서 글로벌 기업을 운영하며 연매출 3500억 원이라는 성과를 거둬 엘살바도르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카이사 그룹 회장이자 한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경서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25개 계열사가 있는 성공적인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하경서 회장의 카이사 그룹은 직원 수 6000명 규모의 기업으로 엘살바도르의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섬유를 중심으로 건축, 포장, 커피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연매출 3500억 원의 성과를 거두고 있고 니카라과, 온두라스, 미국, 베트남 등 해외에도 진출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한상, 그들은 누구인가
2006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국왕으로부터 ‘백작(Dato)’ 칭호를 받았던 권병하 헤니권코퍼레이션 회장도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은 주인공이다, 1983년 서른다섯 살 청년, 권병하는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해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아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난 것이다. 빚을 갚고 나니 빈털터리 신세였다. 가족에게 100만 원을 쥐어줘 시골로 내려보내고 남은 돈을 미화로 바꾸자 달랑 1600달러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연매출 1억5000만 달러짜리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권병하 회장이 이끄는 헤니권코퍼레이션그룹은 발전소와 대형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중전기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세계 26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권 회장은 “나는 멀리 타국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냈지만 지금 말레이시아는 우리 기업들에 기회의 땅이 됐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와 러시아에서 자동차 내장재 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연간 매출 1억5000만 달러를 올리고 있어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으로도 불리는 PG홀딩스 그룹의 박기출 회장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한 한상으로 꼽히는 임도재 회장(가나)은 가나 최대의 건설회사인 글로텍엔지니어링을 이끌며 원유 저장시설 건설, 물류, 자재 분야에 진출해 연간 약 5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20년이 넘게 가나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장학사업을 진행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는 대표 한상이다. 김점배 알카우스 트레이딩 회장(오만)은 원양어선 선장 시절인 1976년부터 오만 생활을 해온 ‘오만 전문가’로, 오만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과 관계자들의 현지 생활 정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아프리카중동한상연합회 회장을 맡아 물 부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 샘물을 설치해주는 ‘평화의 샘물’ 사업도 추진 중이다.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싱가포르)은 1984년 마그네틱테이프 등을 생산·수출하는 (주)JINMAX를 설립해 현지 수출 1위 기업에 올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2009년 CJ그룹에 선임돼 현재 동남아시아 시장 전략 수립을 돕는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중국동포 3세인 신동일 ㈜랑시 회장(중국)은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재중동포 한상으로 꼽히며, 전 세계 패션 분야 중국인 25인방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최적의 해외 진출 파트너
이숙진 제마이홀딩스 대표(호주)는 호주에서 청소 용역 시장 10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상업용 건물 관리 전문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 2000여 명 가운데 70%는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이민자로 구성하며 호주 한인 사회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 현지 최초 한인자본으로 출발한 월셔은행의 고석화 이사장, 러시아의 대표적인 리스 회사 로그네스의 CEO인 김스타스 사장, 베트남 공단 조성 사업 허가를 따낸 홍선 한국플라스틱 대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비즈니스센터 아웃소싱 사업을 운영하는 김은미 CEO 스위트 대표 등이 대표적인 한상들이다.
특히 권병하 회장은 ‘버스덕트 시스템’이라는 전기 부품을 전 세계 26개국으로 수출해 연매출 3000만 달러를 올리는 등의 활약을 하며 전 세계에서도 유명한 인물이다.
오지에서도 한상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라오스에는 연간 매출 1억2000만 달러를 올리는 코라오그룹이 있다. 이 기업을 일군 사람은 한국인 오세영 회장이다. 아프리카 대륙 동부 해안에 위치한 탄자니아에서도 한상이 뛰고 있다. 이곳에서 이태조 사장은 인트코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무역업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한상을 지원하기 위해 케냐상공인연합회도 설립됐다.
2018년 Forbes 선정 아시아 지역 5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아오유엔그룹의 백승민 부사장(중국)은 중국 80여개 도시에서 200여개의 주택단지 및 상업지구 개발을 하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 한국 화장품 및 여성용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업체인 ‘엠 에스 디스트리뷰터스’ 서영두 대표(인도)와 남아프리카의 무역 및 제조업체 ‘리드 메탈 리사이클러’ 김지수 대표(남아공)가 혜성 같은 존재라면 아예 은하계가 되어 버린 한상들도 있다.
바로 한창우 마루한그룹 회장,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 고석화 뱅크오브호프 회장,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 송창근 KMK글로벌스포츠그룹 회장, 고상구 K&K트레이딩 회장, 김우재 무궁화유통 회장, 문대동 삼문그룹 회장,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 심상만 코텍오토모티브 회장,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 최윤 오케이금융그룹 회장, 하용화 솔로몬보험그룹 회장, 김점배 알카오스트레이딩 회장, 곽정환 코웰그룹 회장, 하기환 한남체인 회장 등이 그런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한상네트워크에서 리딩CEO라 불리는 자본금 300만 달러 이상, 연매출 3000만 달러 이상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상들이다.
한상이란 2002년 중국의 ‘화상(華商)’에서 착안하여 재외동포재단이 도입한 명칭이다. 초기에는 무역업, 상공업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제조업, 4차 산업, 스마트, IT, 금융, 환경, 스포츠, 문화산업에 이르기까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한상네트워크는 지난해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로 수정되었다. 동시에 ‘한상’ 명칭에 익숙한 우리 기업인들을 위해 한상 명칭도 병기하기로 하였다.
세계한상대회의 기원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한상대회 아이디어는 권병현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게서 나왔고, 그는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과 힘을 합쳐 대회를 키웠다. 주중 대사를 거쳐 2000년 11월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권병현 전 이사장은 중화권 화상들이 중국 개혁·개방 초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을 보고 화상대회에 관심을 가졌다. 세계화상대회는 1991년부터 격년제로 개최되고 있다.
권 전 이사장은 “세계화상대회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덩샤오핑에게 건의해서 만든 네트워크로, 중국 경제 발전에 화상들이 크게 기여했다”며 “우리도 화상대회처럼 한상네트워크를 키워보자는 대의명분을 갖고 한상대회 준비에 착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 1월 재외동포재단 내 경제부를 만들며 한상의 조직화에 착수했다.
아울러 일본의 한창우 마루한 회장과 조선족 출신으로 최고위직에 오른 조남기 정협 부주석 등 한상 리더들을 만나 한상대회 발족에 도움을 요청했다. 실리콘밸리 신화로 불리는 이종문 암벡스벤처그룹 회장 등이 장대환 회장과 만나 한상대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그는 “당시 장 회장과 만나 한상대회를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며 “전 세계에 흩어진 한상네트워크를 구축해놓으면 어마어마한 파워가 날 것이라는 데 서로 의기투합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간 세계한상대회는 한상 네트워킹 확대와 더불어 경제적 효과를 냈다. 재외동포재단에 따르면 1회 대회부터 지난해까지 기업 전시회 등 비즈니스 상담 실적은 35억 달러가 넘는다. 2006년 5회 대회부터 집계를 시작한 지역경제 파급 효과의 경우 생산 유발이 4531억 원, 고용효과는 6242명으로 집계됐다.
한상네트워크가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 효과적인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한상은 현지에서 수년 혹은 수십 년간 기업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트렌드와 유통망 등 현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해외 진출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둘째, 해외 진출을 연결해주는 현지 민간 에이전시와는 달리 한상들은 현지에서의 CEO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같은 CEO 시각에서 구미에 맞는 정보를 쏙쏙 뽑아준다는 것도 장점이다.
셋째, 해외 비즈니스는 양국 정서를 상호 제대로 파악할 때 실패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한상은 한국 중소기업의 문화적·비즈니스적 정서도 잘 알고 있으며, 현지 고유의 특성까지 파악하고 있으므로 현지 시장 연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췄다, 게다가 비용부담 없이 언어 장벽도 해소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마지막으로 한상 간의 네트워킹이 체계적으로 폭넓게 구축돼 있어 수출 성사 가능성이 높은 진성 바이어나 현지 데이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舊재외동포재단의 한상넷이 정부주도형 한상네트워크라면, 세계한인무역협회인 ‘월드옥타(World-OKTA)’는 민간 조직으로 운영되는 한상네트워크다. 1981년 재외 경제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단체로, 창립 당시에는 16개국 102명의 재외 기업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후 전 세계 73개국 148개 도시에서 활동하는 6900여 명의 재외 기업인들이 정회원으로 참여하며 국내 최대의 민간 재외동포 경제단체로 성장했다.
국가별로 재외동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총 263만3777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그 다음은 중국이 235만422명, 일본이 81만8865명 그리고 캐나다가 23만7364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전 세계 193개국 가운데 한인이 1명이라도 살고 있는 나라는 180개국이다.
재외동포 기업인들과의 경제교류 강화와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매년 국내와 해외에서 번갈아 가며 개최하는 세계한인비지니스대회(옛 세계한상대회) 내년 개최지로 전북 전주시가 최종 선정됐다.
한국 청년들,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가야
한상네트워크의 리딩 CEO인 하용화 대표는 포부를 묻자 제일 먼저 유대계 단체 연합 JCRC를 언급했다. 하 대표는 “6년 전 이스라엘에서 JCRC의 활동을 봤다.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를 초청해서 이스라엘을 알리더라”면서 “우리 한상대회가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 대표는 “한상들은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 인맥이 풍부하다. 각국 한상들이 해외 오피니언 리더들을 한 명씩만 한국에 데리고 와도 엄청난 외교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무역 스쿨(가칭)’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하 대표는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은 한국 중소기업과 한상을 연결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면서 “이들에게 한상이 실질적인 해외 비즈니스를 알려주고 현지화 작업을 도와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 대표는 1992년 미국에서 보험 에이전트를 하며 보험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성실함과 끈질긴 영업력으로 보험회사를 세워 연간 보험 실적 5700만 달러에 달하는 탄탄한 회사로 일궜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매년 한국에서 10명 안팎을 채용하는 이유다. 하 대표는 “한국 학생들은 열망도 있고 욕심도 있다. 하지만 끈기가 많이 아쉽다”면서 “절대 세상에는 대박이 없다. 변화를 기회라 보고 꾸준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호주에서 23개 회전초밥 체인을 운영하는 신이정 스시베이 대표는 “한상의 비즈니스 경험과 지식은 후세대에게 큰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 인턴 프로그램을 논의해 왔다. 신 대표는 “호주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에게 스시베이 일자리를 제공하고 호주 현지 생활도 돕는다”면서 “매년 100명 이상 한국 청년을 채용하고 있는데 규모를 더 늘리고 싶다”고 했다.
신 대표는 청년 채용은 외교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거주한 청년들의 SNS 활동이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서 “한상이 한국 청년을 채용하는 것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좌절하는 청년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는 신 대표는 한국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것을 권유한다. 안에서 잃은 것을 밖에서 찾는 지혜를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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