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문화전쟁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 이야기를 해볼까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 80년대 퍼스널 컴퓨터가 나오면서 모든 아이들이 컴퓨터를 했죠. 이때 PC 게임이 시작되었어요. (지금의 40대, 50대들은 지금도 게임을 즐깁니다) 홍콩 영화가 유행하면서 패션, 헤어스타일, 걸음걸이, 표정까지도 흉내냈죠.
90년대 인터넷이 시작되었고 걸그룹 보이그룹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걸그룹, 보이그룹의 춤을 따라 했어요. 2000년대 싸이월드가 나오니 사람들은 네트워크상에서 만남을 시작했고 자기의 이야기를 컴퓨터로 했습니다.
그 이후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더 이상 은행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가지 않아도 수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010년 이후 드디어 극장에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시에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지 않습니다. OTT 플랫폼이나 유튜브 같은 영상 아웃소스 매체가 나오면서 디지털 영상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사실 80년대에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문화적 교류가 지금처럼 서로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 당시 한국에 들어오는 수입영화도 배급사가 정한 영화들이 들어와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배급사가 수입해 온 영화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싫든 좋든 말이죠. 이탈리아 스파게티를 먹고 싶어도 레시피를 쉽게 구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스파게티가 무엇인지도 대중들은 잘 모를 때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는 인터넷 발달로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졌고 스마트폰을 통해 내가 원하는 정보를 로그인만 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셰프가 알려주는 스파게티 레시피도,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는 가수의 음악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정보 공유의 차원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 정치, 경제, 문화, 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혼합이 이뤄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로제 떡볶이. 이탈리아의 로제와 우리나라 전통음식인 떡볶이가 결합되었네요. 한편 코로나 시대로 우리나라의 배달문화가 전 세계에 수출되었죠. 거기에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적인 사조는 더 문화융합에 촉진제가 되었어요.
문화는 정보 공유 차원을 넘어 사회 전 분야에 영향
이 현상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여기에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영향을 많이 주는 문화, 영향을 받는 문화. 과거에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왔죠. 그들의 국가 브랜드 파워가 작동했을 것입니다. 한때 미국에 출장 가신 아버지가 미제 초콜릿을 사오시면 가보로 모시던 때가 있었어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여기에도 힘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어떻습니까?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면서 세계인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경제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적으로 한국 문화는 전 세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백인들의 성지인 아카데미상도 받았으니까요.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태어나 부모, 친구, 선생님들의 영향을 받듯이, 이 영향은 우리의 세계관을 지배합니다. 한국의 문화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과연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모처럼, 친구처럼,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을 줄까요? 또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영향을 주려 할까요?
개인과 개인 간에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또 집단과 개인 간에 분배와 소유를 위해 힘이 작용합니다. 국가와 개인 간에도, 국가와 국가 간에도 이런 힘은 여전히 작용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문화 교류는 풍성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은 힘의 과시와 세계관 전파에 그 목표가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과거와 같은 정복을 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 합리화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전히 정복하고 싶어 합니다. 과연 무엇으로 정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문화입니다. 우리는 문화전쟁 중입니다.
문화전쟁을 하기 위해 문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문화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문화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문화에 대한 정의입니다. 문화에 대해 모든 것을 다루기에 그것은 너무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그만큼 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이 속한 담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문화는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경작, 재배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 생존을 위해 최초로 한 생산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신처럼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이죠.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이 가해져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을 의미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는 자연에 대립되는 말이라 할 수도 있고, 인류가 발전하면서 만들어 낸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 안에 있어 문화는 결국 정치, 경제, 법과 제도, 문화와 예술, 도덕과 종교, 풍속 등의 조화에 의해 인간이 속한 집단 속에서 공유되며 이것은 결국 인류학적 관점에서 문화는 인간집단의 생활양식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문화는 그렇게 넓은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산물들은 축적되고 재산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소유와 분배에 대한 투쟁과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문화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생산물들을 두고 벌이는 권력 다툼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문화 자체가 생산이니까요. 권력 다툼은 결국 인간 산물의 소유와 배분을 둘러싼 다툼이고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둘러싼 다툼입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곡창지대입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우크라이나에서 밀을 수입하죠. 특별히 이탈리아는 스파게티가 주식입니다. 이탈리아의 현재 스파게티 가격은 두 배가 올랐다고 합니다. 과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일까요?
러시아는 세계 가스의 대부분을 생산합니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하죠. 가스값은 당연히 올랐을 것이고, 그것은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이 싸움에는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 싸움이 존재합니다. 누가 우위에 있느냐의 노골적으로 문화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을 문화전쟁으로 정의하는 것은 결국 문화는 생산 그리고 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연 우리나라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요? 누구 편을 들 것인가? 헤게모니 전쟁에 문화는 그 중심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신과 함께 있을 때는 신이 공급하는 생산품들을 사용하였다면, 신으로부터 분리되면서부터는 인간 스스로 생산품을 만들어야만 했는데, 거기에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이 기술은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기술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원래 아트의 뜻은 기술이었습니다. 완벽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아티스트라고 불렀던 거죠. 이티스트들은 봉건시대에 영주들에게 고용되어 집을 짓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혁명과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봉건사회가 붕괴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영주 아래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문화는 생산과 기술에 의해 만들어져
완벽한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생산품들. 이때부터 그들을 아티스트, 예술가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생산과 기술, 이것이 곧 문화이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아티스트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나중에 언급할 발터 베냐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도 기술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됩니다.
이제부터 작은 의미에서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역사를 아우르는 문화의 개념이 아닌, 정신적이거나, 지적이고, 예술적인 산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문화를 다뤄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좌파가 문화전쟁에서 우파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사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와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문화가 인간의 권력투쟁의 중심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망각하게 하고 그 개념 안에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분리하지만 사실 좌파에게 문화예술은 인간 개개인이 신경감응의 주체가 되어 중앙으로부터 이데올로기와 연결시켜 발전시킨다는 강력한 전략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동-선전-세뇌 전략인 것입니다.
좌파의 문화예술을 이야기할 때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발터 베냐민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우선 이들은 프랑크푸르트학파입니다. 칸트와 마르크스에 기반을 뒀고, 독일인이고, 유대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피 생활을 했죠. 이 둘은 서로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아도르노를 합리적 좌파라고 한다면 발터 베냐민은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인물입니다. 이런 서로의 색깔 때문에 아도르노는 좌파의 지주에서 68 혁명세대의 원수가 되고, 반면 베냐민은 68 혁명세대의 영웅이 됩니다.
먼저 아도르노의 삶부터 살펴볼까요? 독일 좌파 운동의 시조 격인 아도르노는 마르크스를 계승하지만, 마르크스 이론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것을 시대에 맞춰 수정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혁명은 유럽에서 가장 못 사는 러시아에서 일어나게 되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후,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리 억압과 독재의 중앙집권체제가 판을 치게 됩니다. 반면 좌파 입장에서는 자본주의는 붕괴되어야 하는데 자본주의는 스스로 체제 내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면서 오히려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또 나치즘과 파시즘은 오히려 수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고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죠. 미국으로 망명한 아도르노는 미국의 자본주의의 풍족함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하부구조인 노동자들이 “저녁을 즐기는 삶을 살더라”를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에 아도르노는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이 비판이론이었습니다.
미국에 망명한 아도르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대중문화는 쓰레기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이라 정의합니다. “산업화가 되면서 자본주의의 독점 하에 문화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산업으로 전락했다.” 대중들의 욕망에 부합하여 대리만족의 도구가 되는 예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상품화된 예술은 이런 현상에 의해 자율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죠.
아도르노는 문화산업론에서 “대중문화의 주동자들은 독점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독점의 힘이 강화될수록 그 힘도 점점 노골화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화나 라디오는 더 이상 예술인 척할 필요 없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산업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쓰레기인데도 불구하고 쓰레기인 것을 숨기고 정당화하기에 급급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대중매체를 극혐 한 거죠. 그는 결국 힘 있는 자가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문화와 예술 분야를 통해 대중을 선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치의 히틀러는 궤벨스를 제국 대중 계몽 선전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예술, 음악, 연극, 영화, 교육자료, 서적, 라디오, 언론 등을 이용해 대중들을 선전, 선동하였습니다. 마르크스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모순이 일어난다고 봤다면 비판이론은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인간의 의식, 심리, 문화, 대중매체, 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하였습니다. 아도르노와 베냐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와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아도르노는 결국, 문화는 이데올로기이며 산업이라 규정하였고. 대중문화는 거대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상부구조의 예술이 토대의 경제와 뒤섞여버린 것이죠. 그래서 아도르노는 이런 이분법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런 아도르노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예를 들어볼까요? 한국의 아침드라마를 보면 소재와 주제가 다 똑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줌마들이 좋아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통쾌해할 소재를 반복하는 것이죠. 그 이유는 상업적으로 손해를 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인 것이죠. 이것이 표준화입니다.
또 다른 예로 사이비 개성화가 있는데요. 참신한 것, 신선한 것, 독특한 것을 추구하는 듯하죠. 예를 들어 공유가 출현한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 평범한 여자, 멋진 도깨비 왕자님. 마치 굉장히 색다른 이야기인 것 같죠. 그러나 결국에는 신화나 설화에서 차용한 것일 뿐 신데렐라 이야기와 다를 바 없죠. 역시 상업적으로 흥행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결론적으로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산업으로 규정하면서 “예술로서의 본질적 가치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아도르노의 생각은 68 혁명세대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습니다. 마르크스의 생각을 수정하려 했던 아도르노의 생각과는 달리 이 68 혁명세대는 ”다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였죠. 68 혁명, 세계 곳곳에서 군독재나 권력주의에 맞서서 주로 학생들이 사회운동을 일으키며 시작하게 됩니다.
이들은 아도르노로 대표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에 반발하여 마르크스, 레닌 등 전통적 공산주의이론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좌파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도르노의 생각과 대치되게 됩니다. 아도르노는 결국 68 혁명세대, 즉 행동주의좌파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게 됩니다.
68 혁명세대에게 공공의 적이 필요했고 그가 곧 아도르노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가 혐오했던 대중문화예술을 선동선전도구로 사용하려 했기 때문에 아도르노와의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여기서 좌파들의 내로남불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마르크스의 상부구조와 토대를 보면 이분법 그 자체이고, 평등과 공정을 외치지만 지식인과 비지식인으로 나누고, 경제와 사회를 구분 짓고, 본인들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죠. 68 혁명세대의 마르크스주의 회귀는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와 아도르노가 비판했던 예술에 상업화를 합리화하기에 이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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