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8월 이탈리아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유럽중앙은행(ECB)의 공격적인 이자율 인상 덕에 가만히 앉아 막대한 추가 이익을 거둔 은행들에 ‘초과 이윤’의 40%에 달하는 1회성 세금을 물리는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탈리아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횡재세가 도입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주요국의 은행들 주가도 급락하는 등 유럽 증시가 한꺼번에 휘청거렸다.
횡재세는 정부 정책이나 대외 환경 변화로 기업이 얻은 막대한 초과이익에 대해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법인세나 기여금, 분담금을 의미한다. 즉, 독점적 지위에 있는 기업이 고금리 또는 고유가 등 외부 유인 덕에 얻은 초과이윤에 대해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취지다.
횡재세가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세금은 아니며, 이미 등장한 지 100년도 더 된 세금이다. 미국의 제조업 대기업들이 1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수익을 거두자, 미국 정부는 전쟁으로 인해 이들 기업이 막대한 초과이익을 거뒀다고 보고 초과이윤에 따른 세금을 걷은 바 있다.
오일쇼크 이후인 1980~1988년에는 원유횡재세(Crude Oil Windfall Tax)가 부과됐고, 영국도 1차 세계대전 기간 전비 조달을 위해 횡재세를 도입한 바 있다.
우려되는 횡재세의 무분별한 확대
최근 횡재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난해 유럽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도입되어 왔다. 회계법인 KPMG와 미국 싱크탱크 조세재단 자료를 인용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이후 유럽 전역에서 횡재세가 도입되거나 제안된 사례가 30건이 넘으며, 대부분은 에너지 기업에 대한 횡재세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24개국이 자국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했거나 부과할 계획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유가 폭등 덕분에 에너지 기업의 이익이 폭증한 것을 경영 외적인 ‘횡재’로 본 것이다.
횡재세는 에너지와 금융 이외 분야에도 적용 분야가 전방위로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고금리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은행권도 횡재세의 표적이 되고 있으며 체코·리투아니아·스페인은 이미 은행에 횡재세를 징수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보험회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은 물론이고 제약업계에도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지난해와 올해 초과 이익을 거둔 식품 유통업체로부터 33%의 횡재세를 걷겠다고 발표했으며, 크로아티아는 지난해 기준 3억 쿠나(약 58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보고한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부과했다.
한국에서는 2022년 민주당을 중심으로 횡재세를 추진했지만 이중과세 논란과 정부·여당의 반대에 막혀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에 힘입어 막대한 이자 수익을 거둔 은행권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의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 도입 논의가 물살을 타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이 금융소비자보호법과 부담금관리기본법 등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금융회사가 직전 5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넘기는 ‘초과이익’을 낼 경우 해당 초과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 금융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걷힌 기여금은 장애인·청년·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 금융소비자의 금융 부담을 줄이는 데 사용되며 민주당 법안은 횡재세를 법인세 부과가 아닌 ‘부담금’ 형식을 취했지만 이는 사실상 ‘은행 횡재세’ 법안이다.
또한 야당 대표는 “민주당은 고금리로 엄청난, 특별한, 예상하지 못한 이익을 거둔 금융기관들 그리고 고(高)에너지 가격에 많은 이익을 거둔 정유사 등에 대해서 횡재세를 부과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횡재세 찬성인 비정부기구(NGO) 옥스팜의 조세 정의 정책 책임자인 크리스천 할룸은 “횡재세는 직관적으로 공정해 보이기 때문에 호소력이 있다”면서 “수백만 명이 경제적 고통을 겪는 데 반해 많은 기업이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는 공정하지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횡재세 부과에 대한 찬성론자들은 기업들이 사업 성과가 아닌 일반 대중의 희생을 통해 초과 이윤을 거뒀다면 고통 분담 차원에서 이를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무줄 잣대와 같은 ‘횡재’ 기준
횡재세 부과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먼저 초과이익에 대한 정의와 범위의 명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한 수익은 ‘정상적인 수익’으로 해석되고 초과수익은 이러한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전쟁과 같은 영업환경의 영향으로 기업은 횡재에 해당되는 큰 수익을 얻었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며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또한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한 수익의 비중과 초과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둘째, 한국의 경우 세금의 명칭이 아닌 부담금 형태로 포장하고 있으나 이는 횡재세이기 때문에 여전히 기업에 부과되는 이중과세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중과세의 논란은 기업이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지불해야 하고 순이익에서 주주에게 지급되는 배당에 대해서도 배당소득세를 부과받는 것을 의미한다. 횡재세는 법인소득세 및 배당소득세와 함께 기업에 부과되는 삼중과세의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다른 기업과의 조세 형평성과 관련하여 초과이익이 발생된 특정한 기업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된다면 형평성의 문제 또한 제기될 수 있다.
셋째, 횡재세는 주주 이익 침해에 따른 위헌소송에 대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횡재세의 부과는 순이익에서 배당으로 받게 되는 주주의 이익을 감소시킨다. 주주는 기업의 늘어난 수익에 대한 지분만큼 배당 증가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나, 민간기업의 수익을 횡재세를 통해 사회에 환원시키는 것은 이러한 사적기업의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유럽과 같이 은행을 시작으로 기존에 횡재세 부과 대상이었던 정유사, 또는 괄목하게 수익성이 향상된 다른 산업군으로 횡재세의 부과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수익성 증가에 대한 인센티브는 사라질 것이다. 유럽 정부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일반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횡재세를 통한 포퓰리즘에 의존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결국 불리한 대외여건과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에 발생한 위기를 두고 기업들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은 신규 투자 확대를 꺼리고 이는 경제 성장에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은행들의 경우 횡재세로 충당금 재원이 줄어들고, 은행이 횡재세 부담을 대출자에게 전가하면서 대출금리가 상승하여 오히려 대출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횡재세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고 기업의 혁신과 경제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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