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 공천 회복하고 단체장과 러닝메이트로 가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들을 특혜 채용한 혐의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직선제가 도입된 2008년 이후 취임했던 역대 서울시교육감들은 모두 4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거나 사법적 판단으로 중도 퇴장했다. 이제는 교육감 선거를 시도지사와 공동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로 개편하는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깜깜이 선거이자 고비용 선거인 교육감 선거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급선무이다. 초중고 교육 전문가인 교사 출신이 가장 필요한 교육감 선거에서 돈이 없고 정치적 기본권도 없는 교사 출신은 사실상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교육감 후보자가 당적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정당 공천 과정이 없다 보니 지역에 따라 후보자가 난립하고, 유권자들은 일일이 후보자들의 정책을 검증하기 어려워 '깜깜이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감 선거에서만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정당에서 후보를 공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후보들에게 기호조차 부여하지 않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잘 모르는 후보들 가운데 교육감을 직접 선출해야 되는 일반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생소한 후보들 간의 차이를 명확히 식별하고 투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무조건 첫 번째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거구별로 후보 기재 순서도 바꾸는 것이 교육감 선거의 실상이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시민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는 현직 교육감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도 출마한 현직 교육감 13명 중 9명이 다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결국 한 번 선출되면 3선이 거의 보장되기 때문에 4년 임기가 아니라 3선까지 12년 임기의 교육감을 깜깜이 선거로 뽑아 왔다고 할 수 있다.
교육감의 정치적 중립, 그 진정한 의미
언론 보도에 의하면,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교육감 선거 무효표가 총 903,227표로 시도지사 선거 무효표의 2배가 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선거 후 실시한 유권자 의식조사에서도 투표 당일에서야 교육감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는 응답자가 18.1%로 광역단체장(5.0%), 기초단체장(6.4%)은 물론 지방의원(10.5%)보다도 훨씬 높았다.
우리 헌법 제31조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이 본래의 목적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정치적 · 사회적 · 종교적 세력 등에 의한 영향을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국가는 입법에 있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으며, 교사와 학생도 학교 내에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선거에서 정당이 공천한 후보자가 교육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교육활동의 정치적 중립을 뜻하는 것이지 교육정책의 정치적 중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은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 등과 마찬가지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과 양립하기 어렵다.
교육감은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교원이 아니라, 대통령처럼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정치인이다. 따라서 교육감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하는 것만큼이나 비상식적인 일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매우 중요한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선거 등에서 각 정당의 후보들이 교육정책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선에서 정당 소속의 대통령 후보들이 교육정책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처럼 교육감 선거에서도 정당 소속의 교육감 후보들이 교육정책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도 교사나 학생을 정치에 동원하는 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국가의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대통령을 정당에서 추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지역의 교육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감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정당 공천을 제외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처럼 정당 후보로서 교육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 지역 주민들의 선택을 받을 필요가 있다.
현행 교육감 선거는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우는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제도이다. 교육감 후보들은 정작 소속 정당만 없을 뿐 선거 벽보 등을 보면 후보자 정치 성향에 따라 붉은색 또는 푸른색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일부 후보자는 득표를 위해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자신이 특정 정당과 관계 있는 것처럼 홍보하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정당에서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잠시 탈당해서 중립적인 것처럼 출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후보들에게 기호조차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지명도가 높은 특정 정당 출신의 정치인이 쉽게 교육감에 당선될 수 있는 모순된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진보 교육감이니 보수 교육감이니 하면서 거대 양당의 후보인 것처럼 일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물론 교육감이 교사나 학생을 정치에 동원하는 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교육감 후보의 정당 공천마저 배제하는 것은 과도할 뿐만 아니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위선이다.
더구나 실체도 책임도 없는 단일화 추진위원회에서 보수 교육감 후보와 진보 교육감 후보를 단일화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특정 진영의 대표자들이 보수교육 대 진보교육의 정쟁만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에는 책임 있는 다양한 정당들에서 교육감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소수 정당들도 교육감 후보를 공천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 공천 회복하고 단체장과 러닝메이트로 가야
앞으로 교육감 선거는 대통령 선거처럼 정당 후보로서 교육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 지역 주민들의 선택을 받도록 하되, 현행 국회의장처럼 선출되면 당적을 가질 수 없게 하여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현행 「국회법」에서는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당선된 다음날부터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감도 정당에서 공천하되, 선출되는 즉시 당적을 가질 수 없게 하여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과하면 될 것이다.
한편, 현행 교육감 선거는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커서 진입 장벽이 가장 높은 선거이기도 하다. 교육감 선거가 깜깜이 선거로 실시되다 보니, 결국 정책 대결보다는 상호 비방과 인지도 높이기에 치중하면서 고비용 선거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지난 2022년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감 후보 한 사람당 평균 10억 8,315만원을 선거자금으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시도지사 선거에서 후보 1인당 평균 8억 9,000만원보다도 거의 2억 정도나 많은 규모이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경기도의 성기선 후보는 가장 많은 46억 5,967만원을 지출했다. 다음으로 임태희 후보는 40억 6,000만원을 지출해 2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서울의 조희연 후보 35억 2,560만원, 조전혁 후보 34억 2,501만원, 박선영 후보 20억 6,312만원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의 지원도 전혀 없이 10억 원이 넘는 선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득권층들만 출마할 수 있는 고비용 선거이다. 선거에 쓴 수억 원을 메우기 위해 뒷돈을 받았다가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교육감은 2007년 이후 11명(징역형 6명)이나 된다.
선거공영제의 원칙에 따라 공직선거법은 득표율 15%를 넘기면 선거비용 전액을, 10%를 넘기면 절반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주도록 정하고 있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들이 보전받은 선거비용은 무려 560억 3,859만원이나 된다. 그래서 선거 비용 전액을 보전받기 위해 당선 가능성이 없더라도 완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수 등에 비례하는 선거비용 제한액을 5억 원 이하로 낮추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후보자가 난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도 교육감 후보자가 적지 않은데 제한액을 대폭 낮추면 후보자가 과도하게 난립할 것이 뻔하다.
교육감 후보자가 시도지사 후보자와 짝을 이뤄 함께 선거를 치르는 러닝메이트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본다. 러닝메이트제를 실시하면 무엇보다 교육감 후보 난립이나 고비용 선거의 문제들을 확실히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 후보가 시도지사와 함께 공약을 짜고 유세도 같이 한다면 유권자 입장에서는 정책 검증이 용이해질 수 있고, 지자체와 교육청이 정책을 놓고 충돌하는 상황도 막을 수 있다.
물론 러닝메이트제에서는 교육이 행정에 예속되어 교육의 자주성, 중립성, 전문성이 후퇴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교육감이 시도지사에게 종속되지 않도록 지위와 역할, 공천 절차 등을 독립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정당 내에서 시도지사 후보와 교육감 후보를 별도로 공천하는 등 러닝 메이트를 정-부 관계가 아니라, 각각 정-정 관계로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 정치가 기본인 현대 민주 사회에서는 정당에서 정치적으로 준비되고 공천을 받은 후보가 지역의 교육 대통령이 되는 것이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상식적이다. 물론 교육감이 교사나 학생을 정치에 동원하는 등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교육감 후보의 정당 공천마저 배제하는 것은 과도할 뿐만 아니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위선이다.
시민들의 일상 생활과 자녀 교육에 직결되는 중대한 교육감 선거에서 시민들의 투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후보자를 정당에서 공천하는 방식으로 시급히 개편되어야 한다.
정당들이 교육감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공천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교육감 선거는 깜깜이 선거라는 비민주적인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역의 초중고 교육 대통령인 교육감 선거에서 초중고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이 선거에 쉽게 진입하고, 부담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러닝메이트제로 개편되기를 기대한다.
이건주
대전 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어교육과에서 공부했다. 서울 삼성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여 용산공고, 신림고, 서울과학고, 석관고, 경기고, 문정고를 거쳐서 지금은 오금고등학교에서 3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나침반] 네이버 카페와 유튜브 [학교나침반TV]를 운영하면서 고교학점제와 대학입시 등 다양한 학교교육 정보와 자료를 학생,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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