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사회간접자본 (SOC) 개념이 필요한 이유
반도체에 사회간접자본 (SOC) 개념이 필요한 이유
  • 이성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 ㈜에이와이이노베이티브
  • 승인 2024.09.0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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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미래차 시대의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
- 반도체 산업은 기술 개발, 수출 증대도 중요하지만 국가 첨단 산업을 동반 성장시키기 위한 사회간접자본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이성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에이와이이노베이티브 /sslee@ssu.ac.kr
이성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에이와이이노베이티브 /sslee@ssu.ac.kr

반도체 산업의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징

반도체 산업은 3대 미래 성장동력인 'AI 산업'과 '미래차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후방 지원 산업이자 가장 강력한 기술적 돌파구다. ChatGPT를 비롯한 미국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반도체 회사의 전용 반도체 기술 발달이 기폭점이 되었고, 테슬라의 전기 자율주행차가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시장에 조기 안착하며 반도체 수급 대란을 피한 것은 전용 반도체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애플도 전용 반도체 개발로 하드웨어 측면에서 비교적 저사양 부품을 사용해도 화질 개선과 AI 기능에 힘입어 젊은 세대가 크게 선호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AI 반도체 시장은 2022411억 달러에서 20281,330억 달러로 연평균 21.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엔비디아의 독주가 가속화되어 가격보다 수급을 더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이다.

차량의 지속적인 전자제어화, 자율주행화, 전기차화에 따라 차량 가격에서 전자 계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미래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1000~200개로 예상되며 미국, EU6개사가 80% 이상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은 많은 산업의 단일 장애점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산업 전체가 큰 곤란을 겪게 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차량 반도체 수급 대란 때 대부분의 국내외 차량 제조사는 출하 물량의 10~20% 감소를 겪었고, 출고 지연 2~3년 등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미국이 중국 AI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H100과 초연결 기술 NVLink의 수출을 금지하였으며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했으며 미국은 외국 연구팀의 반도체 칩 제작 시 우주, 항공, 군사 분야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받아 해당 분야의 독점적 위치를 공고히 했다.

반도체 산업은 자체의 매출뿐만 아니라 타 산업 성장을 돕는 경제적 효과도 매우 커서 일종의 사회간접자본으로 보고 장기적 지원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AI, 미래차 등 대부분의 첨단 산업은 경박단소, 고성능화, 다기능화가 가속되고 있으며 이는 반도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대만 PC 산업 발전에는 자국 반도체 기업 생태계 형성이 사회간접자본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대만의 국가 경쟁력이 확고해진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 역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산업의 발전에 반도체 산업이 큰 기여를 하였으나 사회간접자본 수준의 생태계 형성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한편 미국의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은 지난 50년간 산업 정책 중 가장 큰 규모이며 반도체를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하고 자국 산업에 필요한 모든 반도체 공급망을 국내에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3월 열린 AI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30배 향상된 차세대 AI 칩 블랙웰을 공개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연합AFP
지난 3월 열린 AI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30배 향상된 차세대 AI 칩 블랙웰을 공개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연합AFP

미국의 반도체 과학법 제정이 미치는 영향

미국, 중국 모두 반도체 산업을 미-중 경쟁 핵심산업으로 인식하며 국가적 규모로 육성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 많은 위협이 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첨단 기술 발전을 위해 국가집적회로 산업투자기금을 설립하고 중국제조 2025 사업목표를 제시했는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칩 제작비용 지원, 정부 및 국영기업의 중국산 반도체 사용 장려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기업 간 경쟁보다 패권 경쟁의 장으로 인식하고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와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미국은 반도체 과학법 등에서 보조금 지원, 수출 통제, 글로벌 연대 등을 통해 자국 내 공급망 강화와 자국 반도체 기업 육성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반도체 장비, AI 반도체 등의 수출을 통제하고 SMIC, 푸젠진화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을 거래제한 목록에 등재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저가 반도체에서는 미국의 대 중국 견제가 크게 먹히지 않고 첨단 반도체에서는 미국 기업이 약진하여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험이 크다.

미국의 반도체 과학법은 미국에 협력하는 제3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포함하고 있으나 여건이 까다롭고 제한이 많아 큰 실익이 없을 수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에는 한국, 대만, 일본 등 제3국의 호응 및 협력이 포함되어 있으나 한국은 중국 수출 비중이 커서 위험 부담이 크게 증가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보조금 지원은 시설 접근권, 초과 이익 환수, 상세 회계자료 제출, 중국 증설 제한 등의 조건이 있어서 수용 여부를 잘 판단해야 한다. 한국의 주력 반도체인 메모리는 시황에 따른 이익 변동폭이 커서 초과 이익 환수, 상세 회계자료 제출 등이 오히려 손해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에 놓여 있다.

AI와 미래차 반도체 산업 전략 결코 쉽지 않다

미국, 중국 모두 AI와 미래차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전폭 육성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세심하게 대비하고 육성해야 한다. 중국 반도체 기술은 미국, 한국, 대만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AI, 미래차 산업을 위해서라도 절대 반도체 산업을 포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은 자국 차량 제조사에 자국 반도체 사용을 최대 25%까지 확대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중국은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초고속 메모리 HBM2026년까지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AI 반도체와 미래차 반도체에서 자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 퀄컴, 인텔, AMD를 중심으로 AI 반도체와 미래차 반도체를 주도하려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반도체 산업, AI 산업, 미래차 산업을 동시에 장악하고 이를 통해 전반적인 국가 경제 부흥을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한국은 설계, 제조 양쪽에서 세계 최고 수준 국가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나 자칫하면 미국, 중국의 국가적 지원에 밀릴 수 있어서 인력 양성, 기업 지원, 기술 개발에 더욱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력 양성 측면에서는 AI, 자율주행, 전기차, 배터리, 보안 등 응용 산업에 연계된 석박사급 고급 인력의 지속적인 대규모 양성이 필요한데 반도체 기술을 배우기 전에 공부해야 할 선수과목이 많아서 학부 과정만으로는 부족하며 본격적인 기술 인력은 대학원에서 양성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의사에게 수술 경험이 필수적이듯 반도체 인력은 칩 제작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여 대학에서 고급 인력 양성에 큰 어려움이 있다. KAIST, IDEC 등에서 제공하는 칩 설계 및 제작 기회를 더욱 크게 확대해야 중소 팹리스 기업까지 고급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메모리나 프로세서 같은 범용 반도체뿐만 아니라 AI, 자율주행, 전기차, 배터리, 보안 등의 특화 반도체 시장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이러한 특화 반도체는 타

겟에 최적화되어 설계 및 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응용 분야와 반도체 설계를 동시에 익힌 고급 인력이 극히 모자라게 된다. 특화 반도체는 부가가치가 매우 높고 관련 산업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으며 특화 반도체 인력 부족은 해당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특화 반도체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해당 분야를 장기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여 안정적인 인력 배출이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를 위해 연관 산업의 규모가 큰 특화 반도체는 현행보다 장기적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분야를 세분화, 전문화시킬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현안 점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반도체 기업의 가려운 데를 긁어 주어야

기업 지원 측면에서는 막대한 칩 제작비 리스크를 완화하는 선지원 후징수 제도, M&A 및 상장 간소화를 통한 출구전략 확대가 필요하다. 반도체 미세화는 성능과 전력 면에서 큰 진보를 가져왔지만 반도체 칩의 회차당 제작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반도체 기업이 안정적인 상용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 2~3회 수정 제작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 수십~수백억원의 자금이 필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두번의 실패를 겪으면 기술력이 뛰어난 유망 반도체 기업도 곧바로 폐업하게 될 정도로 칩 제작 리스크가 매우 높다.

정부의 반도체 기업 지원은 매우 다양하고 큰 도움이 되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칩 제작비 지원은 예산 부족과 특혜 논란으로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 가장 효과적인 제도가 칩 제작비 지원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한국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혜 논란을 피하면서도 효과적인 칩 제작비 지원을 위해 정부가 일정량의 칩 제작 기회를 구매하여 선지원하고 상용화 시점에서 기술료를 받는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스타트업은 M&A 아니면 상장이 목표인데 국내에는 M&A를 할 만한 대기업이 많지 않고 제약도 상당하여 외국에 M&A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의 차량 반도체 기업 모빌아이는 신생 스타트업으로 초고속 성장하여 인텔에 141억 달러에 인수되었으나 국내였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 대기업 또는 투자운용사의 M&A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혜택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스타트업의 또다른 선택인 상장은 기술특례제도를 통해 많이 활성화되었으나 상장 시까지 시간이 길어서 그동안 버티기 위해 투자 유치와 지분 희석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인해 기술 개발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 기술 가치를 엄격하고 정밀하게 측정하여 이를 통과하면 초고속 상장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최근 코스닥에서 일어난 몇몇 실패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기존 트랙보다 매우 다각적이고 철저한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 개발 측면에서는 규격화된 정부 R&D 지원을 다양화 해서 초대형 상용화 지원, 모험 기술 개발 지원, 저변 확대 풀뿌리 지원 등으로 세분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는 반도체 분야에 많은 R&D 지원을 쏟고 있으나 규모와 기간이 규격화된 편이기 때문에 다양한 R&D 여건을 모두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유망한 반도체의 경우 지속적인 개발 판매를 위해 초대형 상용화 지원이 필요하며 고위험 고수익 기술은 공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반도체 생태계는 유기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수 기업에 소액으로 풀뿌리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풀뿌리 지원은 설사 기업이 실패하더라도 그동안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생태계 전반에 확산된다는 의미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AI, 미래차 등 반도체가 꼭 필수적이면서도 타겟 산업의 협력이 절대적인 경우에 정부가 상생 협력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 AI와 미래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AI, 미래차 반도체의 국내 개발 및 상용화가 필수적인데 개발은 원활한 편이나 상용화는 지연되는 편이다. AI 반도체는 IT 기업의 서버 탑재 경험이, 미래차 반도체는 차량 제조사의 실차 탑재 경험이 필수적이지만 보수적인 반도체 선택으로 최초 진입이 너무 어려워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어려움이 상당히 크다.

IT 기업이나 차량 제조사에게만 리스크를 지울 수는 없으므로 정부가 리스크 일부를 보전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수출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은 자국 장비나 반도체를 채택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둔다. 다만 이러한 방법은 무역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직접적인 보조금 대신 매우 정교하고 세심하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설계하고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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