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각각 MIT 경제학과 교수,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학자들이다. 특히 대런 애쓰모글루는 2005년 경제학적 사고와 지식에 가장 크게 기여한 40세 미만의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바 있다.
저자들은 ‘지구상의 수많은 국가들 중 왜 흥하는 나라와 망하는 나라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는 국가는 흥하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나라는 경제발전을 이루고 왜 다른 나라는 그렇지 못하는가?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어서? 훌륭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지 못해서?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아니다. 제대로 된 ‘제도(Institutions)’를 갖추고 있지 못해서라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자들이 주류 경제학자가 아닌 제도 경제학자(Institutions matter school)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제도 경제학자인 노스(North, Dou-glass C.)에 의하면 제도(Institution)란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형성하고 있는 인간이 고안해낸 제한 또는 사회에서의 게임의 룰(the rule of the game)로 정의될 수 있고 이러한 제도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인간들 사이의 교환관계에서 인센티브를 구성하게 된다.
제도학파란 이러한 ‘제도’와 ‘시장’ 간의 관계를 연구한다. 저자들은 국가가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줄 경제제도(economic institution)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재산권 보호, 계약이행, 법치주의, 신규사업의 용이성, 경쟁적 시장, 자유로운 직업 선택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없다면 열심히 일을 하고, 투자를 하고, 혁신을 할 인센티브가 생기지 않으므로 경제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특히 사적 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 번 소득을 착취당하거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면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나 혁신의 인센티브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경제제도와 경제발전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부분은 우리나라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포괄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의 차이
1945년 해방 이후 북한은 사적 소유권과 시장경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는 시장경제를 추구했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의 역할을 경제발전에 두고 성공 가능한 기업들을 지원하며 투자와 거래를 장려했다. 교육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고 여기에 기업가의 역할이 더해지면서 경제발전을 위한 혁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제도 하에서 삼성과 현대 같은 혁신 기업들이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어떤 나라는 시장의 잠재성을 활용하고 기술혁신과 투자를 유인하는 경제제도를 갖춰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반면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못하는가? ‘정치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경제제도는 한 국가의 정치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그 국가가 어떠한 정치제도(political institution)를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경제제도를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치제도를 갖춰야 하므로 궁극적으로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정치제도’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경제번영을 가져다줄 제대로 된 경제제도와 정치제도를 ‘포괄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 그렇지 않은 제도를 ‘착취적 제도(extra ctive institution)’라고 분류하고 있다. 경제번영을 가능케 하는 포괄적 경제제도는 정치권력이 분산되어 있고 이러한 정치권력을 제한하는 민주적 선거와 헌법을 갖춘 ‘포괄적 정치제도’ 하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보면 과연 저자들의 이러한 논리가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1987년 정치민주화를 이루기 전의 한국과 지금의 중국은 서구의 전형적인 민주정치 체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정치 민주화를 이루기 전인 1987년까지 연평균 8%를 넘는 경제성장을 해왔다. 중국 역시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9%를 넘는 경제성장을 해왔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저자들은 포괄적 정치제도를 갖추지 못했더라도 포괄적 경제제도를 갖춰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경제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서평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제제도와 정치제도가 포괄적일수록 더 큰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more inclusion, more growth)는 저자들의 기본이론이 모든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1인 1표의 정치민주주의는 포퓰리즘 민주주의로 전락해 오히려 경제성장에 역행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간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이러한 위험성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은 분명하다. 저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 민주주의 없이는 지속적 경제발전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저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제발전을 이끄는 정치제도는 국가권력을 통제하며 재산권 보장, 계약 보호, 경쟁촉진 등 시장의 역동성을 담보하기 위한 경제제도를 창출해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 정치 민주화를 이뤘지만 그 이후 경제 분야로까지 민주화 열풍이 불며 경제성장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최근 정치권은 이러한 경제민주화를 더 강조하고 있다.
경제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조화시키자는 차원을 넘어 포퓰리즘 민주주의 덫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정도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현재의 1당 독재 하에서도 지속적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심화되며 권력투쟁 양상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고민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간의 오묘한 관계를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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