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김구'를 읽고
'테러리스트 김구'를 읽고
  • 이자성 KBS 카메라 감독
  • 승인 2024.09.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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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들의 태만과 비겁에 몸서리가 친다. 전문가, 지식인들이 입을 닫고 있는 사이에 개그맨이 헌법을 강의하고, 미술 공부한 사람이 수백 만 부가 팔려나가는 역사책의 저자가 되어 역사를 오락으로 만들었다.  

테러리스트 김구'를 읽었다. 북콘서트에도 다녀왔다. 책을 읽는 시간 내내 필자는 분노의 시간을 보냈다. 북콘서트에 다녀온 이후 약간의 허무한 생각도 든다. 왜 그럴까? 과연 인간은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있는 존재인가? 현실에서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는 역사도 그럴까?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김구는 그 실체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정신분열에 가까울 정도로 과대평가되어 있다. 김구는 특정세력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부풀린 역사의 허상이다.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선출된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이승만 180표, 김구는 13표에 불과했다. 당시 재적의원 198명 가운데 196명이 투표에 참가했다. 이승만은 무려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대한민국의 제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이것이 당시 이승만과 김구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잣대다.​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다. 이후 김구 신화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북콘서트에서 필자는 '테러리스트 김구'의 저자에게 본문에 보면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김구가 대표로 있던 한독당(한국독립당) 사무실이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둔갑하는 것을 목격한 한독당원의 얘기가 나온다. 이것을 토대로 역사를 가정해 볼 때 김구가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역사는, 그리고 김구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정안기 박사는 김구가 안두희에 의해 제거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은 재앙에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김구와 한독당은 1949년 8월 15일 건국절 행사에서 이승만과 정부 요인을 한꺼번에 몰살시켜버릴 엄청난 테러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다. 당시 김구와 한독당은 군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미군정도 군대는 한독당과 김구, 경찰은 이승만 계열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1949년 5월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춘천에 주군하고 있던 강태무 소령과 표무원 소령이 잇달아 대대급 부대원을 이끌고 집단 월북한 사건은 당시 군에 대한 김구와 한독당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북한에서 환영받는 강태무, 표무원 소령
북한에서 환영받는 강태무, 표무원 소령

한국군의 집단 월북 당시 미국은 한국에 군사원조를 위한 조사단을 파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휘관이 대대 병력을 이끌고 수백 명이 월북한 사건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군을 의심하게 했다. 결국 미국은 한국군에 대한 군사원조를 대폭 축소했다. 이 사건이 중대한 이유는 강태무와 표무원 소령을 월북시키기 위한 공작이 김구의 한독당에 의해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당시 김일성과 김구는 긴밀하게 서로 협조하고 있었다. 여순반란 사건에도 김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

이 같은 상황에서 김일성과 내통하고 있던 김구와 한독당이 이미 장악하고 있던 대한민국 군부의 지원까지 받아 이승만과 정부 인사를 일시에 폭살시켜버렸다면 이후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곧바로 터진 전쟁에서 이승만 만큼 미국과 유엔을 움직여 북한과 소련, 중공을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을까?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실재로 김구는 중국에서 환국 이후 수시로 이승만의 목숨을 노렸다. 이승만이 미국에 있던 자신의 변호사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김구가 자신을 해치려한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

그러나 김구와 한독당의 이승만 폭살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해 6월 안두희가 김구를 먼저 제거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두희 얘기까지 하지는 않겠다. 다만 안두희는 육군 소위 신분에 서북청년단에도 관여했지만 한독당의 비밀당원이었다는 정도만 밝힌다. 만약 안두희가 김구를 사살하지 않았더라면 김구의 말로는 어찌되었을까? 대단히 중요한 역사의 가정이다. 왜냐면 논리적인 정황에 따라 퍼즐을 맞춰보면 김구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구를 완성하는 퍼즐들

김일성의 남침에 서울이 무기력하게 인민군에게 넘어갔을 때 김구는 서울을 탈출해 피란민 대열에 합류했을까? 당시 한독당 계열의 인사들은 피란을 가지 않았다. 이후 그들은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월북했다. 김구 역시 그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고 그의 희망대로 과수원집 할아버지로 생을 마쳤을 것이다. 김일성에게 임시정부의 옥새를 바쳤던 김구는 전쟁 전부터 구체적으로 김일성과 접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북협상 때 그의 수행비서였던 안중근의 조카 안우생이 북에 잔류했다. 당시 김구와 함께 북에 갔던 인사들 가운데 홍명희를 비롯한 상당수가 북에 남았다. 김일성은 그들을 활용해 김구와 한독당을 상대로 대남 공작을 펼쳤다. 대만 대사 위어만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듯 김구는 전쟁이 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피란을 가야할 이유가 없었다.  ​

인민군 서울 점령 하에서 김구는 김일성과 인민군에 협조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여타의 한독당 동지들과 함께 월북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것으로 김구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희미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구는 안두희의 총탄에 쓰려졌고, 김구는 신화 속에서 실재와 다른 허상의 김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김구를 띄워야 이승만이 죽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죽어야,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흐려져야 이득을 보는 세력이 국내외에 있다. ​

국가적 위기를 수습하고 4.19 정신을 완성하겠다며 정치의 전면에 나선 이들이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었다. 그들에게 김구는 4.19에 의해 퇴출된 이승만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김구의 본색을 신중하게 살피지 않았다. 김일성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에게도 김구는 이승만을 폄훼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기에 딱 맞는 대항마였다. 그럼에도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김구를 '살인단의 괴수'로 규정했다. 김구는 이렇게 정치적 목적을 띠며 과대 포장되고 분칠되었다. 그러나 김구 신화가 특정 집단의 노역(勞役)의 성과만은 아니었다. 우리의 호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김구 신화는 대한민국의 작품인 것이다. ​

김구의 어두운 면을 보여줄 진리의 파편들이 어둠을 찢고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용기있는 지식인이 굳은 땅을 헤집고 위험한 진실을 발굴하고 있다. 그동안 누구도 나서지 못했던 일이었다. 두터운 터부를 건드리는 것은 상당히 무모하게 보인다. 용기와 지성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진리에 접근하려는 의지와 실천이 진보의 본체가 아닌가? 가면 속 '인간백정' 김구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며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

신화 속 주인공의 성스러움이 무참히 깨진 후 속된 맨얼굴을 직시하기란 참으로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겸험일 것이다. 감춰진 진실이 불쑥 드러날 때 우리의 불쾌지수는 치솟는다. 곧 불쾌함은 회피하고 싶은 불편함으로 변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신화이기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 역사는 언제든 수정되고 재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진리는 언제나 더 나은 쪽으로 우리의 입장을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리를 잡는다. 역사의 평온을 파괴하며 불편한 진실의 퍼즐을 맞추는 외로운 선각자의 행보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문명의 진화 발전은 산고(産苦)의 진통을 겪기 마련이다. ​

'테러리스트 김구'는 각주가 1,500개가 넘는다. 색인만 무려 170쪽에 달한다. 저자가 이를 갈고, 뼈를 갈아 넣어 쓴 글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철저한 고증과 사실에 기초한 글이다. 시비 걸어라. 얼마든지 상대해주겠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다지도 김구에 대한 자료가 산적해 있고 축적된 연구가 많음에도 어떻게 김구 신화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역사가들의 태만과 비겁에 몸서리가 친다. 전문가, 지식인들이 입을 닫고 있는 사이에 개그맨이 헌법을 강의하고, 미술 공부한 사람이 수백 만 부가 팔려나가는 역사책의 저자가 되어 역사를 오락으로 만들었다.  ​

'테러리스트 김구'를 읽는 내내 통쾌했다. 시원했다. 신화가 벗겨지고 그 추악한 알몸이 드러나는 현장에 있음에 전율했다. 마치 프랑스 혁명 시기에 마리앙뚜아네뜨의 잘린 목을 쳐들며 열광했던 군중의 광기에 필자도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김구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분출했다. 특히 장덕수 암살 부분에서 그랬다. 장덕수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의 재량(才量)을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의 역사교육이 참으로 부실하다. 당시 장덕수는 이승만과 견줄 정도의 국제감각과 지적능력, 정치감각을 가진 뛰어난 인물이었다. 잊혀진 영웅이요, 수렁에 빠뜨린 진주였다.​

또 역사의 가정을 들먹거리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장덕수가 김구와 한독당에 의해 암살 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승만의 후계자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장덕수가 곁에 있었더라면 이승만은 그토록 무리해가면서 정권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4.19도 없었을 것이고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국부로서 미국의 워싱턴 같은 사후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정은 점진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확실하게 뿌리 내려 선진화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인색하게 평가해도 현재의 막장정치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김구와 역사의 섭리

4.19 없는 5.16은 생각할 수 없다. 4.19 없는 박정희 역시 불가능하다. 박정희 없는 전두환도 그렇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이 없었다면 4.19는 분명 없었을 것이고 이후 등장하게 될 박정희, 전두환은 밤하늘을 가르며 찰라의 빛을 발하고 사라지는 유성처럼 살다갔을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과 위상은 민주정을 유보한 상태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주의적 총력전에 따른 근대화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김일영 교수의 '건국과 부국'에서 언급했듯 만약 이승만 이후의 우리 역사에서 민주정, 민주주의가 우선이었다면 경제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

이제 글을 맺으려 한다. "죄는 미워할지언정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무심한 삼자(三者)라면 몰라도 당사자라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공허한 격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류문명과 지혜는 선과 악을 기준으로 인간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역사는 선악의 기준을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역사의 무대에서 배우들은 각각의 배역에 충실할 뿐이다. 도가에서 말하듯 천지(天地)는 불인(不仁)하다. 우주만물의 운행은 인간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신의 뜻은 인간의 바램과 다르다. ​

세속의 기준에 따라 이승만을 숭앙하면 김구를 배척하게 된다. 김구 신화에 굴복하면 이승만을 증오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오욕의 농도는 김구 손에 스러져간 인재들의 아픔과 비례한다. 김구는 역사의 악역을 배정받은 것 같다. 그는 너무나 많은 인재를 죽였다. 그 결과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혼탁한 환경을 물려주었다. 그런데 그토록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꽃이 피어났다. 성스럽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는 꽃이다. 역설적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의 번영이 역사의 악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아~ 역사의 잔인함이여. 섭리의 역설이여. 선과 악이 뒤엉켜 그 실마리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그저 눈물이 난다.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선과 악의 잣대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본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는 진정한 영웅도 없고, 악마도 없다. 그저 엉키고 설켜 뒤죽박죽일 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문제는 과거의 역사가 잉태한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 그렇다고 남탓만 할 것인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 역사의 족쇄를 벗어던질 수 있는 현재의 지혜와 용기가 미래세대의 짐을 덜어줄 것이다. ​

우리는 과거 세대가 일군 과실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들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유산은 증오하는 역사의 이기주의자 같다. 선대의 미완의 과업도 유훈으로 여겨 기꺼이 받아들이고 완성시키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지독한 혼돈과 혼탁의 터널을 지나 가까스로 광명의 다리를 건넌 선조들에게서 어찌 순백(純白)의 무결만 바랄 것인가? 아무리 현재의 삶이 고달프고 괴로워도 나라 없던 시절을 살았던 우리의 할아버지와 건국과 산업화의 혹독한 겨울바람을 뚫고 견뎌온 우리 아버지의 삶보다는 낫지 않은가? 

어떤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하고, 운영해 5천 년의 찌든 가난을 떨치고 부강하고 번영하는 나라를 완성해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이 될 것인가를 두고 우리의 선대는 치열하게 다투고, 투쟁했다. 때로는 서로 죽음까지 교환하며 여기까지 왔다. 우리 선조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면 잘했던 선택과 잘못했던 선택도 보인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은 빛나는 성취의 선두에 있다.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에서 오직 대한민국만이 식민지배의 아픔을 딛고 당당하게 열강의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가시밭길이었지만 대한민국은 바른길을 걸어왔다. ​

문제는 미래다.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성취할 것인가? 우리의 아들 딸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를 잊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릇된 역사인식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역사의 백치가 낫다. 뇌리에 박힌 왜곡의 역사, 미움과 증오의 역사를 대체하려면 우리는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고되고 힘든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는 과거를 보는 새로운 눈을 길러야 한다. 불편한 진실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넬슨 만델라의 말대로 "용기를 내어 생각을 바꾸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가장 힘든 일"에 나서야 한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다.​

한 지식인의 집념이 김구 신화를 발가벗지고 있다. 진리의 샘물로 씻겨진 신화 속의 성자(聖者)는 가면을 벗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인간으로 돌아온 김구를 향해 증오의 몽둥이가 난무하지 않길 바란다. 김구 스스로 성화(聖畵)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를 신화 속 주인공으로 만든 장본인은 우리였다. 정치에 찌든 우리 한국인에게 불행했던 과거는 역사에 맡기는 다소의 무관심과 관용이 필요하다. ​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E.H. Carr의 말대로 역사는 통시적 대화를 통해 긴 터널을 통과하며 수정과 재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김구 신화의 붕괴는 현대사의 아성에 군림하던 '항일세력'을 밀어내고 '건국세력'을 부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춘원 이광수가 말했듯 '힘 없는 저항'과 '반항'으로서의 항일이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것은 맞지만 그들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안기 박사의 '테러리스트 김구'는 한국인들에게 현대사를 다시 보게 하는 중대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의 장을 열고 있다. 기존의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건국의 의미보다는 지나치게 항일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元勳)들은 왜곡의 역사, 꾸며진 역사의 은둔자이거나 외톨이로 전락했다. 

​시베리아 동토층처럼 단단하던 김구 신화의 허상이 사라지면 그 밑에 깔려 신음조차 못하고 잊혀졌던 인물들이 드러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쓰러지고 짓밟혀 역사의 악인으로 암매장된 건국의 영웅들을 발굴해 바로 세워야 한다. 그들에게 씌워진 왜곡의 올가미를 벗겨주고, 그들이 뒤집어 쓴 오물을 씻겨야 한다. 무지해서 몰랐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말이다. 진보란 이런 것이다. 수정하고 타협하며 미래로 나아는 것이 진보의 요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일부 귀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큰 고난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이곳에 이르기까지 제가 받은 모든 고통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의 검(劍)은 제 순례길의 뒤를 잇는 자에게 주고,
제 용기와 재주는 합당한 자에게 주겠습니다.
제 상처와 상흔은 온전히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자성 / KBS 카메라 감독
이자성 / KBS 카메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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