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공화당 내 다양한 해석과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함의]
정구연 / 객원연구위원
오는 11월 미국 대선은 한반도를 비롯해 국제 정세에 중대한 변곡점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초래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의 변동은 예측 불허라 할 정도다. 이에 최근 국제문제 연구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은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공화당 내 다양한 해석과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함의> 제하의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에 미래한국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발췌하여 독자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주)
2024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前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에 따라, 전 세계는 향후 미국 대외정책이 가져올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경험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에 기인한다.
동맹을 안보나 신뢰보다는 경제적 이익에 입각해서 보는 거래주의적 접근, 합리적 근거가 빈약한 기후변화협약 탈퇴, 미중 디커플링 시도와 관세 전쟁, 인종갈등적 대중영합주의에 근거한 反이민정책, 궁극적으로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유지해 왔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글로벌 리더십을 방기하려는 태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대외정책의 배경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의 성격과 정향을 지적할 수도 있으나, 2017년과는 달리 이러한 대외정책을 선호하는 유권자 집단이 확대되고 있고,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을 과거 레이건 행정부 대외정책의 변용으로서 정당화하려는 정책적 논의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2024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다수의 후보 사이에서도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플로리다주 주지사 론 디샌티스, 비벡 라와스라미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미국의 국제주의 대외정책에 불만을 표시하였고 특히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면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주 주지사와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의 경우 전통적인 공화당 대외정책 기조와 유사한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은 공화당 내에서 아직 합의에 이른 수준은 아니지만, 이러한 대립 양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1기 행정부 당시 일부 저지되었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은 다수 시행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한 측면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는 지경학(geo-economics)적 시각에서 비롯되는 자제(restraint)와 상호주의(reciprocity)에 입각한 대외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 회자되는 트럼프 후보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은 극히 지엽적인데, 특히 주한미군 철수, 핵무장 허용 가능성이나 관세 확대 등 일부 특정 현안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이 왜 공화당 내에 자리 잡았는지,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이 어떠한 배경에서 위와 같은 논의를 한국 내에서 촉발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분석되지 않아, 자칫 한국의 대미 정책이 근시안적으로 수립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수사(修辭) 하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대외정책 유형 세 가지인 ‘자제, 우선순위 설정, 미국 우위유지’라는 전략적 목표의 대외정책 유형을 살펴보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이 제시하는 정책들을 선별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각각의 유형은 이념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책 수준에서 체계화되는 과정 속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는데, 최근 미국 공화당 지지 유권자의 이념적 지형이 보수화되는 추이를 고려할 때 향후 자제의 대외정책이 좀 더 빈번하게 수행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실제로 미국 공화당 내에는 보수 현실주의와 보수 국제주의 간의 대외정책 정향이 공존해 왔는데, 특히 보수 현실주의가 강조하는 작은 정부의 지향, 민족주의 정향 등은 최근 트럼프 진영이 포퓰리즘을 통해 증폭시키고 있는 ‘결핍에 근거한 지경학적 자제 정책’과 ‘경제민족주의 정책’과 맞닿아있다.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 정향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바탕으로 한 최근의 한미관계에 도전이 될 것이다. 이러한 도전을 관리하기 위해 미국 우선주의 내의 다양한 지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미국뿐만 아니라 역내 동맹국들과의 선제적인 협의를 통해 동아시아 안보 아키텍처의 내구력을 유지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의 다양한 유형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 보수성향 싱크탱크들은 앞다투어 트럼프 캠프를 향한 정책 제안서를 쏟아냈다. 이 중에서 주목할만한 보고서는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전 미국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이 출판한 보고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진정한 의미(The True Meaning of Trump’s MAGA)>와 트럼프 캠프가 공식적으로 제안한 <어젠다 47>로서, 이 저서에 담긴 주장들은 대부분 이번 공화당 정강(platform)에 포함되었다.
우선 피터 나바로의 경우 해당 보고서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의 주요 원칙을 설명하였다. 먼저 대외정책 측면에서, 대중국 관세 확대를 통해 미국 제조업 기반을 확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저서에서는 이 원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포퓰리즘적 면모를 보이는데, 특히 미국 내 제조업에 종사하는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을 거론하며 미시건, 펜실베니아, 위스컨신 주의 대졸 미만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두 번째 원칙은 국경보호이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지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들을 저지하기 위한 국경장벽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불법 이민자들은 역시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 역시 포퓰리즘 전략이라고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끝없는 전쟁(endless war)’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특히 중동에서의 전쟁은 조지 W. 부시, 딕 체니와 같은 ‘글로벌리스트 전쟁광(globalist warmonger)’이 시작한 것으로, 미국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기 때문에 전쟁에 사용되는 예산을 줄이고 미국 내 인프라 구축, 교육 시설 정비, 세금 감면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어젠다 47>을 통해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불법 체류자에 대한 복지 철폐,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 축소, 미국 군사력 확충,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 및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에 대한 분담금 확대, <트럼프 상호주의 무역법>을 통한 공정한 무역 관행 수립,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기후변화 예산 축소 등이 이에 해당된다.
두 보고서의 입장은 7월 공화당 전당대회 직전 발표된 정강을 통해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대내적 결핍(scarcity)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각이 대외정책에도 투영되어 지경학적 배경의 자제와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이 주류화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현재 공화당을 지지하는 다양한 유권자 진영, 즉 문화보수주의자, 백인 노동자계층,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집단 등의 이해관계를 선별적으로 반영하며 이들을 결집시키려는 포퓰리즘 차원의 의도를 갖고 있다고 분석된다. 결과적으로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왔던 것과는 반대로, 지금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은 약탈적 관세, 수출 통제와 반세계화, 전략적 산업정책 등으로 선회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대외정책은 애초 중국을 대상으로 했으나,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2기, 국제질서의 향방은?
사안별 입장을 보았을 때 중국과 무역정책에 대한 입장은 진영별로 유사하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강대국 경쟁을 목표로 하는 미국이 대중국 균형 차원에서라도 역내 병력을 급격히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역내 동맹국들에 대한 안보 분담, 혹은 역할 분담 확대는 반드시 제기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의 최소한의 전략적 목표는 또 다른 현상 변경 경쟁자가 등장하지 못하도록 지역별 세력균형을 우선적으로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역내 동맹국들이 먼저 해당 지역 내 세력균형 유지에 노력해야한다는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의 입장으로 개진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제 제도나 협약에 의해 미국의 대외적 자율성이 제한받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글로벌리즘과 세계화로 인해 미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엔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기구에서의 결정이 미국의 주권에 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데,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경우 유럽 회원국 각자 방위력 증강에 소홀한 결과 미국의 안보도 위협받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활성화한 역내 소다자 협력도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예측이 존재하지만, Asia Pacific 4, 쿼드(QUAD), 한미일 협력, 미국-일본-필리핀 협력 등의 소다자 협의체를 역내 ‘안보 질서 아키텍처’ 차원이 아닌 역외균형과 미국 방위산업의 회복력 차원에서의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화당 내 분열은 더욱 현저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접근법은 절제된 개입(constrained interventionism)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 등 현상 변경 국가에 대한 강력한 균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구와 이들 강대국과의 충돌 위험을 낮춰야한다는 요구 사이에서의 절충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위험회피적 선호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지정학적 문제이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이해하고 있지 않기에 이러한 입장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유럽 동맹국들이 지역 안보를 위해 먼저 행동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미중 경쟁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 이외에는 ‘자제’의 측면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러한 정향은 미국의 대내적 결핍을 강조하는 포퓰리즘 전략에 근거하며, 이에 동조하는 미국 유권자들의 확대로 인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대외정책적 기조는 지역별 세력균형 체제의 등장과 자유주의 질서의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의 등장 배경
공화당 내 대외정책 기조에 대한 논란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외정책 유형별 개념 정의와 외연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나, 크게 ‘보수국제주의’와 ‘보수현실주의’ 정도로 유형화할 수 있다. 이는 결국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대외정책적 목표와 수단의 차이, 그리고 국제주의와 고립주의 사이에 설정되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역할 사이의 논쟁이라고 볼 수 있으나, 행정부 간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 보다는 절충적 입장으로 수렴되어 왔다.
우선 1952년 이후 공화당의 주류적 입장은 보수국제주의로 정의된다. 보수국제주의는 자유의 확산이 미국에게 이익이 되며, 동시에 자유국제질서는 미국의 국가 안보를 둘러싼 경계(perimeter)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현실주의와는 달리 보수국제주의는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포함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따라 강대국 간 세력균형 역시 미국과 자유 진영에 우호적인 세력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 있어 차이가 있다.
한편 보수현실주의는 미국의 제한적 국력을 고려할 때 대외적 개입을 줄이고, 국제 사회에 대한 관여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질서 유지보다 미국의 주권, 영토, 국경보호, 국토안보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자유국제주의 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미국의 대외적 확장보다 더 중요하다고 상정한다.
또한 타국이 각자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관여하지 않으며 미국적 가치의 확산에 대해서도 천착하지 않는다. 대외정책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 매우 민감하며, 특히 대외적 군사 개입뿐만 아니라 동맹 간 안보 분담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은 미국 우선주의, 혹은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슬로건 등장 배경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로 지목한다. 앞서 언급했듯 트럼프 진영 일각에서는 트럼프-레이건 대통령 대외정책기조의 타협 가능성을 강조하며 과거 레이건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 기조를 트럼프의 공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두 대통령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우 보수국제주의의 정향이 크며, 또한 그러한 차이가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트럼프 진영은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한 ‘불공정 세계화’ 정책으로 인해 생겨난 미국의 경제적 결핍을 강조하며, 특히 미국 노동자 계층이 아시아 및 중남미 블루칼라 노동자들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회원국으로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과 농업 전반이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 레이건 대통령의 자유무역 ‘이념’에 대해 비판적이며, 자유무역은 ‘공정(fair)’해야 한다고 주장할뿐만 아니라 상호주의를 강조한다. 트럼프 진영은 자신들의 대외정책 기조가 포퓰리스트 경제민족주의(Populist Economic Nationalism)라 주장한다.
둘째, 공화당 특유의 ‘작은 정부’에 대한 선호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전략과 조응하며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등장 배경을 구성한다. ‘작은 정부’에 대한 선호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화당 내부에 존재해 왔으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에 대한 공화당의 대응으로 가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뉴딜정책에 기반한 복지 국가의 전형이 등장하고, 뒤이은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메디케어(Medicare) 도입과 린든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 연설에 이르기까지 뉴딜 정책의 유산은 연방정부의 역할 확대 측면에서 지속되었다.
셋째, 같은 맥락에서 국제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도 나타났는데, 이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참여로 인한 미국 제조업의 쇠락, 20년 넘게 지속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피로감 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요컨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미국 우선주의, 혹은 MAGA란 대내적 결핍을 활용한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의 정책 기조라고 볼 수 있으며, 레이건 행정부의 기조와는 그 배경과 논리가 다르다. 그러나 앞서 논의했듯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향후 이러한 정향이 어떻게 수렴될지는, 혹은 정책적으로 구체화될 것인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시 백악관과 주요 행정부처의 수장이 어떠한 인물로 채워지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응
미국 공화당의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레토릭에 머물지 않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유권자들의 경제적 결핍을 이용한 포퓰리즘과 경제적 민족주의 전략은 트럼프 진영에 의해 계속 활용될 것이며,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시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경제나 이민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중 경쟁을 제외하고는 자제 측면의 대외정책이 좀 더 빈번히 제시될 가능성도 높다.
트럼프 진영의 입장을 표면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왜 그러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논의했듯 그 배경에는 포퓰리즘, 경제민족주의, 문화보수주의 등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는 현재의 공화당이 존재하고, 동시에 미국 우선주의에 동조하는 유권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향후 미국과의 관계를 안보, 경제, 기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조율해야 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트럼프 진영에서 제시하는 정책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후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하며 자유국제주의에 근접한 민주당 정부의 대외정책과 그 기조를 맞추어왔다. 강대국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의 기조에서 벗어나,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의 측면에서 역내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ies)들과의 협력을 확대했다. 더욱이 미국 주도 안보 아키텍처가 격자형(latticework) 아키텍처로 전환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 역시 수동적인 안보 소비자에서 적극적인 안보 제공자로 기여하고자 한다.
격자형 안보 아키텍처란, 미국이 역내 동맹국들과의 중층적 안보 협의체 구축을 통해 이들의 통합 억제 역량을 강화시키고, 동시에 방위 산업 기반 통합을 통해 안보 아키텍처의 회복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중국에 대항하는 우호적인 세력균형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미국 우선주의와도 맥을 같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가치의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요소는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미중 전략경쟁은 단순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간 양자 경쟁이 아니라, 양국이 각각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정당화하고 이에 동조하는 유사입장국들과의 연합패권(coalitional hegemony) 간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변화한다는 것은 한미관계뿐만 아니라 동맹정책과 국제질서 유지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연합패권의 내구력도 약화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동맹국이 역내 안보를 책임지는 안보 분담을 더욱 확대시키려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트럼프의 재선은 현재의 국제질서를 더욱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유국제주의질서의 존재를 믿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 등의 현상 변경 국가들은 잔존하는 자유국제주의질서를 대체 혹은 와해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역내 미국 동맹국들 간의 협력은 더욱 중요하질 전망이나, 이는 각 동맹국 내의 국내정치적 상황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특유의 양자적·거래주의적 접근법은 미국 동맹국들 간의 협력을 어렵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은 향후 미국의 신행정부와의 협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일본,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등 역내 파트너 국가들과의 안보, 경제, 기술 협력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 대한 선제적 협의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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