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상속세는 재벌과 같은 초고액 자산가들만 내는 세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부자세’라는 상속세가 이제는 중산층도 내야하는 세금으로 변질되고 있다. 실제로 2000년 기준 상속세 납부 인원은 2022년들어 11배나 증가했다. 사망자 대비 상속세 납부 비율은 같은 기간 0.6%에서 5.0%로 급등했다. 상속세 납부 대상자들이 급속하게 늘면서 결정세액도 급증했는데 2000년 6400억인 상속세액은 2022년 19조 2600억으로 22년간 3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과연 부자가 늘어서 상속세가 늘어난 것일까. 문제는 여기에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상속세 사정권에 들어온 1주택자가 많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9773만원이다. 상속세는 공시가격를 기준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시가를 따진다. 별도의 채무가 없다면 서울 1주택자는 상속세를 걱정해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추계에 따르면 현행 세제가 지속될 경우, 2035년 수도권 아파트의 60% 이상이 상속세 대상이 된다. 매매가 10억원 이상 아파트는 2024년 12.1%지만 2030년에는 34.1%로 늘어나고 2035년에는 60%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렇듯 과도한 상속세는 결국 중산층의 자산 형성과 이전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중에 하나로 작동해서 주식시장의 밸류업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 이유는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상속세 부담이 늘기 때문에 최대주주 입장에서 주가를 높일 유인이 사실상 없어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 부도 또는 피인수합병 기업이 속출하며 일자리 상실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례가 스웨덴의 제약사 아스트라다.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던 스웨덴이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는데 이는 제약회사 아스트라가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팔면서 영국 제네카에게 피인수 된 것이 계기였다.
중산층 파괴, 상속세와 종부세의 콜라보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채무를 뺀 재산에 대해 유가족이 납부하는 세금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각종 공제액 이상이면 상속세를 내야 한다. 대표적인 공제로는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30억원)가 있다. 통상 배우자와 자녀가 있을 때는 10억원, 자녀만 있을 때는 5억원을 상속세 과세기준으로 본다.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는 1996년 말 상속세 전부개정 때 도입해 이듬해부터 적용했다.
이후 공제액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당시 5억원의 가치는 지금과 다르다. 당시 집값 기준으로는 서울 강남의 50~60평대 아파트 가격이다. 집값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 물가상승률로도 지금 8억원 이상의 가치다. 따라서 24년째 높은 세율, 낮은 공제, 과표 구간 고정으로 인해 실질적인 세 부담 증가하면서 상속세는 본연의 취지에 맞게 상위 1%(현재 5%)가 내는 세금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경협의 추산에 의하면 이 경우 대략 49만 가구가 상속세가 면제될 것으로 추산된다. 중산층 자산형성 및 경제 활력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속세와 더불어 위헌적인 이중과세 종부세가 중산층을 더욱 억죄고 있다. 당초 소수 고가 주택을 대상으로 부과한 세금이 이제는 중산층의 세금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도입 당시에 비해 종부세 대상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일례로 서울시 종부세 대상자는 년 2018 23만 명에서 2022년 59만 명으로 4년 만에 약 2.5배 증가했다. 서울시 전체 세대의 약 13%가 종부세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과거 ‘부동산 투기꾼’을 잡겠다며 도입한 종부세가 중산층의 주머니를 터는 세금으로 변질되었다는 질타가 터져 나온다. 특히 다주택자 중과세는 집값안정화 실패, 임대주택공급 위축 등 부작용만 양산하면서 수도권 특정지역의 주택가격 안정화에 실패를 초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속세와 더불아 재산세의 성격인 종부세의 살인적인 누진율은 단지 오래 전에 산 아파트 1채와 빚내어 자식들 물려 줄 집 1채를 갖고 있는 중산층들을 지옥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치는 금투세
상속세, 종부세와 더불어 중산층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세금이 바로 금투세다.
민주당과 야권의 강경론자들은 금투세가 상위 1% 고액 자산가에만 해당되기에 이를 폐지하는 것은 부자감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부자들의 한국 탈출 러시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지난 8월19일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금투세 납부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내 5억원 초과 상장주식(코스피·코스닥·코넥스) 보유 인원은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투자자(1407만명)의 약 1%인 14만명이다.
이들 상위 1% 투자자들은 전체 내국인 주식 보유총액(755조4000억원)의 53.11%인 401조2000억원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1인당 평균 29억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다. 금투세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어차피 연간 5000만원 이상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투자자들은 이처럼 주식을 많이 보유한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간과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상위 1% 투자자들이 내국인 주식 보유총액의 53%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국내 주식시장을 떠날 경우, 그 충격과 여파가 대단히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개미투자자들이 지게 된다.
통계청의 2023년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서 전업 투자하는 인구는 850만을 넘는다.
이들이 전업투자로 3인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면 최소 연간 5000만원은 넘는 수입이 발생해야 한다. 국내 전업 투자자들이 한국장을 떠나겠다는 응답이 높은 이유다. 최근 증권업계들의 보고에 의하면 국내 3대 증권사 계좌 중 지난해 국내 상장주식 투자로 5000만원을 초과하는 수익을 확정한 계좌의 잔액은 작년 말 기준 46조569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3개 증권사의 개인 위탁매매 점유율이 약 50%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금투세 대상 개인의 국내 주식 계좌 잔액은 100조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전체 개인 잔액의 13.5%를 차지한다. 5000만원 초과 국내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최고 27.5%의 세금을 물리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시행될 경우 어떤 여파가 올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KB증권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30억 원 이상 자산가의 해외 주식 투자금이 지난해 말 대비 올 8월 말 50% 넘게 늘었다.
경제 일간지 <서울경제>는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금융산업실장)의 코멘트를 인용해 “금투세의 향방이 불투명해지면서 투자자의 탈한국에 속도가 붙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스피·코스닥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금투세 도입으로 약 300조~500조 원의 자금이 이탈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결국 상위 1%의 이탈 시 예상되는 자본유출, 주식시장 침체 가능성을 고려하면 1400만 주식 투자자 모두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로 민주장 내부에서도 금투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2024년 상반기에만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서 7.4조원 순매도를 보였다. 하위 90%의 일반 투자자가 ‘금투세 폐지’에 더 목소리를 내는 이유로 지목된다.
국내 주식 시장의 침체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금투세는 본전 회복을 초과 수익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채권투자 급증 추세를 반영하면 금투세 대상은 수십만 명으로 확대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16개월간(2023.1~2024.4) 개인이 매수한 채권 순매수액은 53조원에 이른다. 1인당 1억원을 가정하면 금투세 대상자는 53만명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는 이야기다.
주식 공제한도 유리해도 투자금 엑소더스 못 막아
물론 금투세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도 있다. 다만 미국에는 주식거래세가 없다.
금투세 공제한도(美250만원 vs. 韓5천만원)가 한국이 유리해 美증시로 이탈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국내투자자들, 거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세제 혜택 사라지면 세금 더 내더라도 미국주식에 투자할 가능성 높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미국증시는 한국에 비해 밸류에이션 2배, 주주환원율 3배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증시는 짠물배당, 불공정한 분할·합병 등 고질병으로 만년 저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미국 증시는 배당률도 높고 성장주와 같은 스타성 기대주들이 많아서 한국 시장보다 메리트가 크다는 것이다. 이미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내 해외ETF비율이 국내ETF를 역전한 상황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민주 진보 진영에서는 금투세를 상위 1% 부자들에 대한 증오세로 선동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1400만 주식 투자자들과 850만 전업 투자자들의 눈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금투세를 폐지하면 과연 주가가 뛰어오를까? 부디 기득권자들의 궤변에 속지 말자"고 말했다. 또 "윤석열 정권이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거액 자산가들에게 혜택을 몰아주어 저들의 기득권 카르텔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반대 논거의 핵심은 큰손들이 금투세를 피하려 우리 주식시장을 떠나면서 주가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지, 세금을 면하려고 값이 오를 주식을 내다 파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시세가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한다는 진성준 정책위의장의 시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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