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우스리스크 선교사 양영근 씨
연해주 우스리스크 선교사 양영근 씨
  • 미래한국
  • 승인 2002.10.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인에 한국어 교육
▲ 현지 주민들과 함께한 양영근씨
일거삼득(一擧三得)!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맞닿는 연해주 우스리스크에서 이 세 국가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복음을 전하는 한국인이 있다. 양영근(53) 선교사.“우수리스크는 북한·중국·모스크바를 왕래하는 기차들이 경유하는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그래서 3개국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죠.”양 선교사는 92년 5월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 사범대학 한국어과 교수로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은 92년 구소련 몰락 후 그들의 고향인 이곳 우스리스크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이어 한국어과 사범대학이 재설립되었다. “당시 저는 신학대학에서 선교학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선교사님을 통해 이 대학에서 한국어과 교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현지 젊은이들을 선교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그는 92년 8월 ‘우스리스크 성서교회’를 설립한 뒤 러시아인과 고려인들에게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교회에서는 성경을 가르쳤다. 그리고 장사하러 온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 고 이복녀 권사와 함께 거의 매일 시장을 방문, 노방전도를 했다. “언어소통이 제대로 안되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많은 사람이 교회로 인도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조선족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양 선교사는 93년 중국인과 중국조선족을 대상으로 중국 접경지역인 거청에 지교회를 처음 설립했다. 그 뒤 러시아인 등을 대상으로 연해주에 98년까지 4개의 교회를 세웠고 노무자, 벌목공 등으로 들어오는 북한사람들에게 고려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현재 모교회인 우스리스크 성서교회에는 러시안, 고려인, 중국인 등 100 여 명의 성도가, 4개의 지교회에는 20 여 명의 성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양 선교사는 “그동안 영적인 공급처 부족, 현지인들의 더딘 변화, 문화·언어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 등이 힘들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자기를 통해 한국어를 배운 100여명의 러시아인들이 한국어 교사나 통·번역사가 되고 교회에서 훈련받은 중국인들이 중국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울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고려인들의 신앙이 성숙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갈 때 역시 뿌듯하다고 밝혔다. “선교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분명하면 사명의식을 갖고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살며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금 한창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양 선교사는 “앞으로 복음병원을 세워 이곳의 열악한 병원시설을 개선하고 YMCA와 같은 청년봉사운동을 통해 마약과 도박 등에 빠진 현지 청년들을 계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기자 zzangs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