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미국기자 이경원
아시아 최초 미국기자 이경원
  • 미래한국
  • 승인 2007.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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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소개이경원은 한국 최초의 미국기자에 앞서 미국 최초의 폭로기자이며 아시아 언론인의 대부로 미국 언론계에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에는 워싱턴 교외에 있는 알링톤 언론기념관의 흉상에 새겨진 대로 세상을 바꾼 20세기 가장 탁월한 언론인의 하나로 모셔져 있다. 그가 배를 타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은 고려대 영문과 3학년이던 스물 한 살 때였다. 6·25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런던대 출신으로 해방 후 첫 영자지 ‘서울 타임즈’를 펴낸 이인수 교수 밑에서 영어를 배우다가 뱃길에 오른 것이다. 불과 몇 달 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리라 안 사람이 누가 있었으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돌아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그는 셰익스피어적 고민 끝에 진로를 바꾸었다. 공부 대신에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그는 전쟁판의 북새통에서 미국 신문에 나는 신문기사를 오려 바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첫 프레스 아타세(공보관)가 된 셈이다. 하지만 취업이 급선무였다. 미국서 기자가 되는 꿈부터 풀고 싶었다. 경원은 구직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쓴 기사 견본과 이력서를 100통은 넘게 띄웠을 것이다. 한인 최초의 미국 일간지 신문기자가 마침내 탄생했다. 테네시 주에서 발행하는 ‘더 킹스포트 타임즈&뉴스’의 기자가 된 것이다. 주급 55달러 짜리 신문기자가 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쥐꼬리만한 돈이지만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기자수첩을 든 그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이경원을 기자로서 최고 영예인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게 한 것은 캘리포니아 주 공직사회의 해 묵은 비리를 들춰 낸 그의 폭로기사였다. ‘골든 돔’ 제목의 이 기사는 그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새크라멘토 유니온’ 지에 터뜨린 폭로기사의 교과서였다. 폭로기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다 같은 퓰리처 상 후보지만 재신임까지 받은 멀쩡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는 화려한 스타형이 있는가 하면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형수를 가스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감옥에서 풀어 내놓은 마술사 같은 폭로기자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갱단에 연루되어 살인범으로 몰린 ‘이철수 사건’을 파헤쳐 고국에까지 알려진 이경원이 바로 그런 기자다. 미국 주류사회에서만 활약했기 때문에 교포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이철수를 구해내자 한인사회의 의인으로 떠올랐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인죄로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한 이철수 사건 특종보도 역시 기자의 날카롭고 끈질긴 펜대가 승리를 거둔 역전극이었다. 그는 백인들이 지배하는 언론계에서 아시아 계는 극소수지만 그는 이 소수파를 이끄는 ‘딘’이요 ‘갓파더’의 위상이다. - 이경원 평전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최규장 저, 2006)中 발췌 정리/김정은 기자 hy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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