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입양아에서 美 정치인 신화 이룩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입양아에서 美 정치인 신화 이룩
  • 미래한국
  • 승인 2007.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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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워싱턴 주 상원부의장 신호범 박사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던 거지소년 한 명이 50년이 지나서 미국 워싱턴 주 상원 부의장으로 미국과 한국의 존경받는 정치지도자가 되었다. 신호범 박사는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그를 외할머니 댁에 맡기고 떠나버렸다. 신 박사는 6살 때 외할머니 댁을 뛰쳐나와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를 돌며 거지로 지냈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떠돌이친구와 함께 자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어느 날 친구는 힘든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아 기찻길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일본 순사가 친구의 시체를 쓰레기 버리듯 트럭에 버리는 것을 보고 신 박사는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6·25전쟁으로 피난 후에도 그는 서울에서 구걸로 연명했다. 미군 차에 다가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을 내밀었는데 미군이 그의 손을 잡더니 차에 태웠다. 신 박사의 손을 놓지 않고 잡아준 사람은 주한미군 군의관이던 레이 폴 박사였다. 신 박사는 미군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했다. 어느 날 폴 박사는 ‘네게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는 약속을 한 후 1953년 미국으로 떠난 뒤 이민절차를 밟아 그를 데리고 갔다. 양아버지는 신 박사가 선생이 되고 싶은 것을 알고 18살인 그를 고등학교에 데려갔다. 하지만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않은 그를 학교에서 받아줄 리 없었다. 신 박사는 하루에 4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서 공부해 독학으로 14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뒤로 석사, 박사가 되어 31년간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신 박사가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양아버지의 말씀이었다. 신 박사는 “양아버지는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믿는다’고 하셨다. ‘사랑한다’고 하셨다. 그 말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1958년 군에 입대해 텍사스 주에 있는 백인식당에 갔다가 쫓겨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정치인이 돼서 인종차별을 없애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꿈은 34년이 지나서 이뤄졌다. 하지만 신 박사에게도 절망의 시기는 있었다. 1992년 워싱턴 주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1996년 다시 워싱턴 주 하원의원에 출마하지만 0.8%로 떨어졌다. 재미교포들에게 창피하고 미안해서 “하나님 도망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그는 ‘조선아’라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의 아버지는 ‘조명희’ 선생으로 일제시대 스탈린이 러시아에 있던 한국사람을 강제이민 보낼 때 기차에서 스탈린 반대운동을 하셨던 분이다. 그 분은 고국 ‘조선’을 그리워하며 딸에게 ‘조선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조명희 선생은 러시아군의 총에 맞고 달리는 기차 밖으로 던져졌다. ‘조선아’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신 박사는 용기를 얻어 상원의원에 출마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나는 주님을 선거 매니저로 모시겠습니다. 주님이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29,000 가구를 직접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10개월 동안 5개의 신발이 떨어지도록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는 “미국은 한국처럼 집집마다 붙어 있지 않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힘들었지만 14,000 가구 가량 찾아다녔다. 그 때 신문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음날 신문기자가 나의 선거방법을 취재하더니 신문에 기사를 좋게 써줬다”라고 말했다. 기도를 통해 알게 된 선거전략이 미국사람을 감동시킨 것이다. 신 박사는 지난해 4선 출마를 했지만 상대가 나오지 않아 99.7%로 당선됐다. 현재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정치 지도자로 살고 있다. 신 박사는 “하나님을 믿고 가면 안 되는 것이 없다. 하면 된다. 그것은 믿음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세계에 나가 21세기 지도자가 돼야 한다. 꿈은 누군가 찾아주지 않는다. 무엇이든 개인이 찾아 이룰 수 있다. 그 자세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신 박사는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한국에서 아이들을 입양해 5명의 아이를 키웠다. 현재 워싱턴 주 상원 부의장, 세계입양아협회 고문, 국제무역 경제발전위원회 위원장, 농림·교육분과위원회 위원장, 한미정치교육장학재단 이사장과 서울명예시민으로 있다. 신 박사는 “기독청년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도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슬프면 남의 슬픈 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세계는 가난한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을 도와주려는 마음도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정화 기자 julia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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