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지휘하고 아내는 반주하고…찬송가 가사 대로 행복한 가정 이뤄
남편은 지휘하고 아내는 반주하고…찬송가 가사 대로 행복한 가정 이뤄
  • 미래한국
  • 승인 2008.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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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70년 전 만나 아름다운 해로 구두회·김경환 장로 부부
가정의 달에 가장 많이 불리는 찬송가는 30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과 305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있고’일 것이다. 화목한 가정을 노래한 찬송가 가사처럼 70년 전 만난 아내와 화목한 가정을 이뤄온 찬송가의 작곡가 구두회 장로(전 숙명여대 음대학장)와 피아니스트 김경환 장로 부부를 만나 아름다운 해로이야기를 들었다. “구 장로님은 지휘하고 나는 반주하고 살았지.”오랜 세월 잉꼬 부부로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김 장로가 대답했다. 평양에서 지휘자와 반주자로 처음 만난 이후 대전, 서울로 옮겨가면서도 어디서든 남편은 성가대 지휘자가, 아내는 반주자가 되었다. 젊은 날 ‘백년해로’ 기도 드려 구 장로 부부는 1938년 평양의 창광산교회에서 처음 만나 7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연애 기간은 길었지만 먼저 김 장로가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고 다음에는 구 박사가 유학을 갔다.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데다 장인의 반대로 “애간장을 태우는” 연애를 했다고.해방 후 김 장로는 구 장로를 만나기 위해 소련군에 8번이나 붙들리면서 38선을 넘었다. “남들은 하루면 넘는데 나는 한 달 넘게 걸렸어. 자꾸 잡히니까 월남을 포기하려는데 꿈을 꿨어. 강 저쪽에서 구 장로님이 ‘빨리 와’ 하면서 부르는 거야. 그래서 포기 안하고 38선을 넘어갔지.”김경환 장로는 평양의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의 장녀다. 다섯 남매 중 막내인 김영자 권사만 나중에 월남하고 다른 가족들은 생사를 모른다. 김 장로는 38선을 넘어온 그 해(46년) 먼저 내려와 있던 구 박사와 결혼해 62주년을 맞았다. 60주년을 맞았던 2006년에는 함께 40년 넘게 출석한 남산교회에서 기념예배를 갖기도 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있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가정에서 많이 불리는 이 찬송가에는 화목한 가정에 대한 작사가와 작곡가의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었다. 구 박사는 찬송가가 만들어진 내력을 들려주었다. 작사자 전영택 목사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며 숨어 지내느라 단란하게 가정을 돌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구 장로 역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단란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작사가와 작곡가의 마음이 상통해서 만들어진 찬송이라고.구 장로는 젊은 날 일본 유학 중에 고생하면서 했던 기도가 한 가지 있다. 백화점 유리창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발 밑에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순간 그는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앞으로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들어도 참고 견딜 힘을 주소서. 일생을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결혼을 하면 제 자식들은 저처럼 부모 한쪽이 일찍 떠나서 외롭게 살지 않게 백년해로하게 해주소서.”그의 젊은 날 기도는 100% 응답되었다. 생일도 나란히 일주일 차이인 동갑내기 부부는 8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다. “부부싸움을 해도 화해할 땐 ‘킥’하고 웃고 만다”는 친구 같은 부부다. 매일 저녁 부부가 함께 예배구 장로 부부는 신혼 때부터 매일 저녁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이들과 손주들이 대대로 신앙을 이어받아 지키도록 기도하지. 하나님이 다 보살펴 주시니까 신앙의 대를 이어가기만 하면 축복은 보증수표거든.”구 장로의 말처럼 자녀들도 축복을 받아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옥상에 올라가 달빛 아래서 공부를 했다는 큰아들 구자경 박사는 현재 카이스트 수학과 교수가 되었다. 딸 구진경 씨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다. 최근까지 유일한 한국인 멤버였다. 차남 구자윤 박사는 한양대 공대 교수다.마지막으로 서로에게 고마운 점을 물었다. “구 장로는 나를 일편단심 아껴줘서 고마워. 음악 하는 사람들이 연애 많이 하잖아. 그런데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 정말 고맙지.”구 장로는 1953년 홀로 미국에 유학갔을 때 아내가 한국에 남아 세 자녀를 키우며 피아노 레슨으로 생계를 꾸리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것이 늘 감사하다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자 김 장로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난 하나도 고생 안 했어.”카메라를 꺼내자 구 장로 부부는 “좀 웃어봐”하며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사철 봄바람이 분다는 찬송가 가사처럼 노년의 부부에게서는 여전히 봄바람이 불었다. 글·사진/김정은 기자 hyciel@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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