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50년 전부터 핵무기 개발의도 가져
北, 50년 전부터 핵무기 개발의도 가져
  • 미래한국
  • 승인 200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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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한미북 삼각관계 - 북한 핵 문제의 기원과 전략
이춘근 李春根 政博,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NCND 전략으로 서방대응 흐리게미, 북한 핵은 동결 아닌 제거 대상많은 이들은 이번의 북한의 핵 문제가 상당히 최근의 국제 정치적 사건들에 의해, 특히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의 하나라고 선언한 이후부터 불거진 문제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조차 미국의 대 북한 적대시 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 개발을 재개 한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핵 개발 계획을 재개하게 된 이유를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에서 찾는다. 이 주장의 眞僞는 근래 약 1년 반 정도의 국제정치 변화를 살펴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이 말하듯 미국이 북한을 적대적인 눈으로 바라보기(敵對視) 시작한 것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사건이 발발 한 이후부터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감이 구체적으로 표시된 것이 바로 금년 1월 29일 부시 대통령의 국정 연설이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기원은 2001년 1월 20일 부시 취임 이후일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끝나는 마지막 해인 2000년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전에 없이 양호한 관계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방문을 계획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 개발 재개는 2001년 이후의 일인가? 현재 미국의 부시 정부는 북한이 이미 98년 무렵부터 핵 개발을 재개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 개발을 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에 북한을 적대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의혹이 확실시되었기에 정상적인 외교용어가 아닌 ‘악의 축’이란 말을 동원, 북한을 지칭한 것이다.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둘러싼 상황 전개의 顚末에 대해 완전히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10월 4일 북한이 시인함으로써 야기된 ‘북한 핵문제 No.2’의 발단기원은 오직 북한만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사실은 50년 가까이 돼 가는 아주 오래된 일이다. 북한은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 1954년 인민군을 재편성하는 가운데 인민군 내에 ‘핵무기방위부문’을 설치했었다. 1956년 북한은 최초로 30여명의 핵 물리 학자들을 소련의 핵 연구소에 파견했는데 바로 이것이 북한의 핵 개발 노력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1959년 9월 북한과 소련간에 체결된 조소원자력협정, 1962년 영변지역에 원자력 연구소 설치, 이어서 김일성 대학 및 김책 대학 공과대학에 핵 연구 부분 창설 등은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한 노력의 역사를 말해준다. 북한은 한편으로는 독자적 핵 개발의 실력을 쌓는 한편 상당히 전략적인 대외정책을 전개함으로써 1970년대 당시 국제사회에서 핵 개발의혹을 받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되었다. 1976년 이후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군 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장을 고려한 것이 사실이었다. 반면 북한은 197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에 가입,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 북한 핵문제가 직접적인 국제이슈가 될 무렵인 1989년부터 1991년에는 IAEA 이사국으로 활동하였다. 핵무기란 본질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unusable weapon)다. 파괴력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에 핵이 사용되는 경우, 그 피해가 전쟁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을 훨씬 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기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핵을 보유한 국가가 진짜 그 무기를 쓸 것이라고 생각할 때만 그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핵무기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지 않을 경우 더 효율적인 국제 정치 수단이 된다. 즉 있다고 확인해 주지도 않고 없다고 부인하지도 않는 NCND (Neither Confirm, Nor Deny)상태가 상대방을 더욱 헷갈리고 두렵게 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한국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했던 미국의 전략도 바로 NCND 전략이었다. 북한 역시 핵무기에 관해 오랫동안 NCND 전략을 구사했다. 1965년 10월 김일성은 “우리도 불원간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었고 1967년 는 “우리도 원자탄을 생산하게 됐다.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면 우리도 사용 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물론 북한은 북한의 핵문제가 국제긴장을 야기하는 초미의 이슈가 된 1990년대 초반 “북한은 핵무기를 생산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IAEA와 서방측을 혼란스럽게 했다. 1994년10월 미국은 과거의 핵 활동을 눈감아주고 당시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Freeze) 하는 수준에서 북한과 핵 합의를 이룸으로써 북한이 진짜 NCND를 전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북한이 이미 한두 발 핵을 보유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클린턴 행정부가 과거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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