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미 현상에 빠진 우리 사회
아노미 현상에 빠진 우리 사회
  • 미래한국
  • 승인 2009.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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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과 진단
성찰 없이 감각적으로만 사고삶의 가치·목적의식 상실8명의 여성들을 연쇄 살해한 강호순의 엽기적 행각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강호순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호순팬카페’에 무려 6,200여 명이 가입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이러브 강호순’이라는 댓글까지 단 사람도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른바 ‘사이코패스’라는 사회 파괴적 성격파탄자들이 마치 이 사회가 망해가기를 바라는 것 같은 섬뜩한 현상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주도하고 전국 교육청이 관리한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학업성취도가 전국 1위라는 ‘임실의 기적’이 거짓말로 탄로 난 일이다. 다른 여러 학교에서도 시험성적을 조작하거나 시험결과를 허위로 보고했다는 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한국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양심과 진실을 가르쳐야 할 학교가 교육의 근본을 기만하고 거짓을 일삼는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들 사건만으로도 깊은 혼돈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안전하다’고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의 신뢰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회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도덕성과 가치관이 부패하고 병들어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조성돈 교수(목회사회학·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43)는 최근 벌어지는 우려할 만한 사회적 현상들의 뿌리를 사람들의 ‘감각적 사고’에서 찾았다.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합리적 비평을 하거나 깊이 성찰하려 하지 않고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성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비합리적이고 자극적인 정치 선동에 치중해 온 경향이 짙다고 했다.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사고가 없이 성급하게 결단을 내리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비이성적 결단이 집단화될 때 그 사회는 매우 위험해진다. 지난 해 정국을 뒤흔들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시비로 일어난 대규모 촛불시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것을 가리켜 조성돈 교수는 ‘아노미(Anomie)현상’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인 불안정의 상태를 뜻한다.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을 잃고 심한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빠지며 심하면 자살까지 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오랜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안정된 유럽 분위기와는 다르게 우리 사회 전체가 뭔가에 굉장히 흥분하여 들뜬 상태를 보았다”고 조 교수는 말한다. 5천년 역사와 전통에 뿌리내린 안정된 분위기가 아니라 일상에 대한 긍정이 없고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하며 막연히 흥분하는 분위기였으며 남보다 먼저 성공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했다는 것이다.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변환기에 그 시대의 정신을 이끌어간 전통적 유교정신과 개화기를 주도한 기독교 정신이 오늘날에 와서는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우리 사회의 기대와는 달리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도자적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고 격변기에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을 하며 유교적 가부장적 제도에 대해 항거하고 역사와 전통마저 부정하는 좌파적 이념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말하자면 이념적 아노미 현상이 도래하면서 심지어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성과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혼란을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혼란에 대해 합동신학대의 한성진 교수(교회사·42·물댄동산네트워크 대표)는 우리 사회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하여 사회적 기본합의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근대화 사회에서 필요한 정신적 도덕적 바탕이 조성되지 않아 시민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사상적 공백을 초래하게 했고 그에 따른 정신적 공허감을 채워줄 위대한 사상이나 위대한 철학을 만나지 못했으며 사회적 혼란을 잠재울 정신적 지도자도 길러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추모 열기가 높았던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정신적 공허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40만의 인파가 줄지어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그들의 열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또한 한성진 교수는 우리 사회의 아노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나 이념문제의 극복에 앞서, 보다 본질적으로 정신의 공백을 채워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 대안을 한국교회에서 찾았다. 매주 수백만의 성도들이 교회를 찾아 목회자의 설교에 귀 기울이는 것은 한국만의 특이한 사회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교회야말로 한국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지난 100년간 한국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복음을 사회 속에 실천하고 공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회가 개인의 십일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교회의 십일조를 실천해야 한다고 한 교수는 주장한다. 여기에는 개신교만이 아니라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종교가 연합한 지역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기 교회만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틀을 깨고 삶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게 하고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며 미래를 제시하는 성숙한 안목을 가질 때 한국 교회가 사회를 변혁시키는 위대한 사상과 철학을 잉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시 말해 이제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를 위한 대안적 공동체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시점이 되었다는 말이다.#/김창범 북한구원운동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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