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현 교수, 최연소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취임
백진현 교수, 최연소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취임
  • 미래한국
  • 승인 2009.04.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인터뷰
▲ 백진현 서울데 국제대학원 교수
  이근미가 뛴다   1985년 국제기구에서 펠로우 자격으로 일하던 대학원생이 있었다. 그는 ‘우리 나라는 유엔회원국도 아니니 이런 국제기구에서 언제 재판관이 나오겠나’하는 생각으로 의기소침했다. 24년 후 그 대학원생은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이 되었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그가 지난 3월 6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해양법협약 특별 당사국총회에서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선출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누그로호 비스누무르티 전 유엔대사라는 거물급이 출마하여 어려운 싸움이 될 줄 알았으나 1차 선거에서 3분의 2이상의 유효표를 획득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은 유엔 사무차장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임기는 9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백 재판관은 지난해 11월 별세한 박춘호 재판관의 후임자를 뽑는 보궐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2014년까지 재직하게 된다.

현재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의 평균 연령은 69세. 가장 나이가 많은 재판관은 89세이다. 51세인 백 교수는 21명의 재판관 중 최연소이다. 젊은 그가 국제무대에 서게 된 것은 국내외에서 해양법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81년에 국제해양법 분야의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 후 미국 컬럼비아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해양법으로 학위를 받고 해양법 관련 논문과 저서를 많이 발표했다. 본지 <미래한국>의 1기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어느덧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대한민국. 그래서인지 국제기구의 재판관 배출이라는 쾌거에도 반응이 조용한 편이다. 백 교수는 “수백 년 동안 쇄국을 했고 고립되었던 나라여서인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며 웃었다.

현재 상설국제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해양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등 3군데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국가 간 해양 관련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5년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된 기관으로 157개국이 가입돼 있다. 지난 3월 취임선서를 한 백 교수는 3월과 9월에 열리는 정기회의에 참석하고 사안이 생길 때마다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해양문제’ 하면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독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백 교수는 “독도는 대한민국영토여서 재판할 사항이 아닙니다”라고 명쾌하게 답변했다.

▲ 국제해양재판소 재판관들과 기념 촬영(뒷줄 맨 왼쪽이 백진현 재판관)
독도는 해양법으로 재판할 사항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분쟁 당사국들이 재판소에 가서 따져보자는 합의를 해야 재판이 가능합니다. 독도는 엄연히 한국 영토이니 우리 정부에서 독도를 재판에 맡겨 ‘누구 땅인지 알아보자’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본이 재판하자고 해도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명분이 없는 일본은 그런 제안을 하지 않을 겁니다.”

- 그런데도 틈만 나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일본의 속셈은 뭘까요.
“어느 나라나 국수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독도 가까이에 있는 시마네현에서 독도 주변에서 조업을 못하니까 계속 불평이 나오고 있지요. 결국 일본 국내정치적 요인 때문입니다.”

- 북한의 NLL(북방한계선) 침범으로 서해교전까지 일어난 상황이니 이 문제야말로 국제해양법재판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 아닐까요.
“우리는 NLL을 해양한계선으로 생각하지만 북한은 아니라고 합니다. 만약 양쪽이 해양법재판소에 가서 따져보자고 한다면 재판이 가능하겠지만 북한은 유엔 국제해양법 회원국이 아닙니다. 회원국이 아니어도 두 나라가 합의해서 재판으로 가려보자는 합의를 하면 재판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 납북 어부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북한이 가입을 안 했다고 해서 해양법재판소에 갈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듣지 않겠지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다루기가 힘들겠지만, 만약 지금 우리 어선이 북한 수역으로 들어갔다가 억류된다면 재판으로 가자는 합의가 없어도 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 해안에서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 문제를 자주 일으키지만 여태까지 우리 나라는 해양 문제를 국제해양법재판소로 갖고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출범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처리한 사건은 15건에 불과하다. 그만큼 국가 간의 분쟁 해결이 힘들다는 결론이다. 백 교수는 “해양자원, 어업, 해양환경, 과학조사에 따른 다양한 분쟁사안을 해결하는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국제해양법재판소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사건은 어떤 것입니까.
“불법 어업조업 하다가 선박이 나포되는 경우 그 선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재판에 회부하는 일이 많습니다. 두 나라가 붙어 있을 경우 해양환경 문제가 자주 발생합니다. 한 나라가 매립을 하거나, 해안에 있는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옆 나라 바다를 오염시키면 보상문제가 발생해 재판을 하게 되지요.”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재판만 할 뿐 처벌하는 곳은 아니다. 해양에서 점점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해양문제를 더 세분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 해적문제가 그러하다.

“해적은 소위 ‘보편적 관할권’이 있어서 모든 나라가 잡아서 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소말리아 해적 한 명을 뉴욕으로 데려와서 재판한다는 기사가 나왔더군요. 하지만 그 해적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상황이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죠. 소말리아는 현재 정부가 없는 나라입니다. 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지요. 국제법적인 이슈들이 꽤 있습니다. 해적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제재판소를 만들면 어떠냐,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해적 문제도 다루는 게 어떠냐,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 결론을 못 내고 있어요.”

앞으로 국제해양법재판소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할 분야가 다름 아닌 북극해 문제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2050년이 되면 여름에는 북극에서 얼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얼음이 녹으면 항로가 생기고 그 길로 배가 다니게 되면 환경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북극해에 천연가스와 오일 등 자원이 풍부하니 개발 문제가 대두하겠지요. 어업권 문제도 생길 겁니다. 북극 해양법 이슈와 갈등이 생기면 해양법재판소가 할 일이 많겠지요.”

156개국 돌며 선거운동 할 때 높아진 한국 위상 실감
작년에 건국 60년을 맞은 우리 나라의 국제화 점수는 과연 몇 점일까. 백진현 교수의 점수는 그리 후한 편이 아니다.
“지난 60년은 한미동맹으로 국운을 타개했던 외교였습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미국, 중국, 일본, EU, 동남아, 중동을 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냉전시대에는 하나만 잡고 있으면 되니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21세기를 맞아 우리 나라 외교는 다변화해야 합니다.”

백 교수는 우리 나라 학자들이 북한학에 쏠려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북한학자가 수백 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북한이 워낙 막힌 사회이다보니 나오는 얘기가 전부 ‘추측성’ 입니다. 북한방송을 듣고 이럴 거다 저럴 거다, 그러는데 그건 사회과학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인력과 예산이 북한학에 다 몰려 있습니다. 외교와 정책이 언제까지 북한에 묶여 있을 겁니까. 지난 10년 간 북한에 초점을 맞추어 동맹관계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북한 문제가 중요하지만 왜곡된 구조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세계화를 부르짖었지만 국제적인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번 아프간 사태가 났을 때 중앙아시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중동전문가들이 나와서 아프간 얘기를 하던데 같은 이슬람권이어도 중앙아시아와 중동은 전혀 다릅니다. 중남미 국가도 똑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칠레, 이 나라들이 다 다릅니다. 1980년대에 중남미 종속이론이 유행할 때 우리 나라 학자들이 미국 유학 가서 중남미를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그런데 귀국해서 다들 북한학으로 돌아섰지요.”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벗어나 ‘다원화 다변화 국제화’해야 한다는 것이 백 교수의 생각이다.
“이번 정권이 지난 정권들에 비해 북한에 대한 대응을 잘 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북한의 실상을 잘 알리면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겁니다. 지난 정권에서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계속 끌려 다닐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재판관이 본 우리 나라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백 교수는 선거운동을 위해 두 달간 156개국을 돌면서 우리 나라의 높은 위상을 실감했다고 전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 국력이 굉장히 높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을 우습게 보는데 미국과 함께 제일 꼭대기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 다음 그룹에 우리 나라가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좀 작은 나라와 브라질, 인도 등이 우리 나라가 비슷한 수준입니다. 한국사람이어서 못한다, 이런 얘기는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원생일 때는 개인이 아무리 출중해도 기회의 문이 닫혀 있었지만 지금은 국력이 높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국제사회에 나가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국제무대 진출 희망학생들에게 지원 늘려야
백진현 교수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법, 국제기구, 국제갈등관리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에 재학 중인 300여 명의 학생 가운데 절반 정도가 외국인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 한국과 아시아를 공부하고 있다. 매년 우리 나라 대학을 찾는 외국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이 엄청나게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 3학기 동안 배우던 것을 지금은 한 학기에 다 배웁니다. 휴강이란 있을 수가 없어요. 미국식으로 철저하게 강의하기 때문에 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업의 변화 속도와 다른지는 모르지만 학교도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중요한 목표가 국제기구, 국제무대, 다국적 기업에 학생들을 진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대학원의 70,80%가 여학생입니다. 여학생들은 상당히 진취적이어서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데 남학생들이 오히려 보수적이고 국내 지향적입니다.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갖고 더 많이 나가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해외로 나가기 바랍니다.”

정작 외국에 나가고 싶은 학생들을 국가에서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국제기구 진출하는 좋은 관문으로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국제기구초급전문가)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돈을 대서 국제기구에 2년 동안 근무시키는 제도인데 일을 잘하면 거기에 남을 수 있어요. 10여 년 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 매년 5명씩 선발하고 있습니다. 심사를 해보면 수백 명의 지원자가 하나같이 우수한 인력입니다. 외교부에서 재작년에 30명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국회에서 부결시켰습니다. 국회의원들이 국제화에 대한 인식이 없어요.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데 지도자들이 국제적인 마인드가 없으니 안타깝지요.”

그런가하면 국가도 아직은 국제화해야 할 분야가 많다고 한다.
“정부 부처 가운데 외교부는 국제화되어 있지만 경제부처 같은 데는 국제마인드가 약합니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정부개발원조)에도 인색해요. 우리 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뭘 외국까지 돕느냐고 하는데 우리 나라 사람 다 도와주고 난 다음 도와준다, 그런 사고는 안 됩니다. 영향력을 가지려면 원조를 많이 해야 하는 게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입니다.”

국제화와 세계화를 위해 온 나라가 영어 열풍에 휩싸여 있다. 과연 나이든 사람들도 영어를 해야 할지 국제통인 백 교수에게 질문해 보았다.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고, 택시를 몰아도 영어 못하면 손해입니다. 외국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영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응해야지요. 세상이 바뀌고 있어요. 미국사람들도 ‘영어 밖에 못하는 건 문제다. 외국어를 배워야 하고 외국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마당이니 우리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전직 대통령의 비리문제로 시끄러운 가운데 국회의원들의 난투극을 관전해야 하고, 막장 드라마 스토리까지 꿰고 있어야 대화가 가능한 대한민국 사람들. 나라 밖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지만 국가도 국민도 더 국제화해야 한다는 국제법 전문가의 충고대로 이제 삶을 개방적, 진취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이다. #

글·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이승재 객원기자 fotolsj@hanmail.net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