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은 ‘긴 평화’의 시대, 9·11 이후는 ‘긴 전쟁’의 시대
냉전은 ‘긴 평화’의 시대, 9·11 이후는 ‘긴 전쟁’의 시대
  • 미래한국
  • 승인 2009.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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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박사의 전략이야기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냉전’이라는 단어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냉전시대는 강대국 사이에서 전쟁이 가장 ‘적게’ 발발했다는 기록을 세운 시대다”

“2001년 9월 11일 국제정치의 본게임이 시작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Long War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논란이 일고 있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논의는
미국이 벌이는 ‘긴 전쟁’ 중 지극히 중요한 한 부분이다”

독일과 일본 및 이탈리아의 군국·제국주의와 독재정치에 맞선 연합국들은 전쟁 이후의 세상은 진정한 평화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2차 대전을 치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연합국들이 기대했던 평화는 허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 일본이라는 대적(?敵)과 싸우느라 함께 피 흘렸던 미소 군사동맹은 독일, 일본이 몰락하는 순간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미국과 소련은 전통적인 국제 갈등 원인에 이데올로기라는 요인 하나를 더 추가한 특이한 국제분쟁을 시작했다. 이 특이한 갈등은 1980년대 후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붕괴, 동유럽 공산제국의 붕괴 그리고 1990년 소련의 붕괴로 종식됐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냉전 체제’ 라고 불리는 국제정치사의 한 시대가 종료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냉전’이라는 단어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국제정치에 대해 따분한 생각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생각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냉전적 사고방식’ 혹은 ‘냉전론자’라며 손가락질해댄다.

그러나 냉전시대는 강대국 사이에서 전쟁이 가장 ‘적게’ 발발했다는 기록을 세운 시대다. 강대국들이란 언제라도 전쟁을 잘하는 나라들을 의미하는 것인데, 냉전시대 45년 동안 (1945~1990) 강대국들은 거의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특히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은 긴장관계에 있기는 했지만 총알 한 방 직접 교환한 적이 없이 냉전시대 45년을 지낼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냉전시대를 ‘전쟁의 시대’로 착각하고 냉전 이 끝난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오해라고 있지만 냉전의 시대는 500년 동안의 국제정치사 사상 가장 평화적인 시대라고 평가 받는다.

사실 ‘냉전’이란 이상한 단어는 전쟁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차가운(Cold) 전쟁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은 뜨거운(Hot) 것이다. 그래서 Hot War 는 전쟁이지만 Cold War는 실제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질적인 전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Cold War는 사실상의 평화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은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진정한 평화란 없었으며 평화란 다만 전쟁이 없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래서 냉전시대사의 최고 권위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예일대 교수는 냉전시대를 ‘긴 평화’ (Long Peace)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있을 정도다.

냉전시대 두 초 강대국은 전면전쟁을 벌일 수 없었다. 양쪽 다 멸망할 테니 말이다. 두 나라는 자신의 진영에 속하는 작은 나라들이 전쟁을 벌일 경우라도 그 전쟁을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고자 했다. 혹시 미국과 소련이 직접 싸우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전시대의 전쟁은 모두 사용되는 무기, 지역, 목표 등이 일정 한도에서 제한되는 전쟁(Limited War)이었다. 강대국 간에 전쟁이 없었고 작은 나라들의 전쟁도 일정 수준에서 제한될 수 있었던 시대가 냉전시대였다.

냉전이 끝나고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은 소련 때문에 무력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미국이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 등 대규모 정규 전쟁을 일으키는 데 특별한 제약은 없었다. 작은 나라들 사이의 전쟁도 더욱 빈번해졌다. 미국과 소련 때문에 제한되어야 했을 국제분쟁들이 마음껏 분출되었다. 전쟁이 제한되기는 커녕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고 불리는 극한적 방식조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3세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미어셰이머(John J. Mearsheimer) 시카고대 교수는 냉전이 종식된 직후 ‘우리는 왜 곧 냉전시대를 그리워하게 될 것인가?’(Why We Will Soon Miss the Cold War?)라는 도발적인 그러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는 논문을 작성했던 것이다.

그나마 냉전이 끝난 후 약 10년 동안(1991~2000)은 국제정치의 본 게임이 시작된 시대는 아니었다.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즐기고 있었고 분쟁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나라들은 탈냉전시대의 평화 배당금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역사로부터의 휴일(Holidays from History)이라고 부르는 국제정치학자들도 있는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국제정치의 본게임이 시작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Long War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9·11 이후 미국은 전쟁을 국제정치의 ‘영원한 조건’(permanent condition) 즉 상수(常數)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반테러 전쟁의 지속 기간이 적어도 수십 년에 이를 것이라고 상정했고 미국 국민들 중 누구도 이 같은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국 국민들에게 “전쟁을 종료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끝나는 날이 정해지지 않은 지속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고 이라크 주둔군 사령관 아비자이드 대장은 ‘이 전쟁은 100년 동안 지속될 수도 있는, 세대를 지속해 가며 싸워야 할 전쟁(generational war)’이라고 말했다.

이라크를 공격, 후세인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부시 대통령은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호에서 “미국은 전쟁 중(America is at War)”이라고 선언했다. 그후 6년을 더 끌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부시의 전쟁’이라고 불린다. 부시의 전쟁 정책을 격렬히 비판한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 나라는 전쟁 중”(Our Nation is at War) 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이 ‘부시의 전쟁’이었다면 아프간 전쟁은 ‘오바마의 전쟁’이 될 것이다. 아프간 전쟁이 끝나는 시점을 아프간의 국내 상황이 오늘의 이라크 수준으로 되는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오바마의 전쟁은 부시의 전쟁보다 훨씬 더 ‘긴 전쟁 (Long War)’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부시의 전쟁과 오바마의 전쟁은 강조 지역이 다르긴 해도 세계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똑 같은 ‘반테러 전쟁’이다. 북한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전 지구적 반테러 전쟁의 주요 표적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불행하지만 우리도 전략적으로 대처해야만 할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논의는 미국이 벌이는 ‘긴 전쟁’ 중 지극히 중요한 한 부분이며 우리도 뒷짐 지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

약력_政博·이화여대 겸임교수, 뉴라이트 국제정책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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