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유치 한다고 캠퍼스 상업화 되나
민자유치 한다고 캠퍼스 상업화 되나
  • 미래한국
  • 승인 2009.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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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설립·운영 규정 개정안
“상아탑 속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 대학인가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에서 움직이는 인사들과 건물을 짓고 대학도 사회를 위해
좋은 인재를 배출, 사회에 보답하는 식으로 뜻을 모아야 한다”

 2012년,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강대에 입학한 P군. 학교 근처에 아담한 자취방을 마련한 P군은 매주 토요일 국제인문관 지하에 위치한 홈플러스에서 장을 본다. 주말마다 기분도 전환할 겸 쇼핑도 하고 싼 값에 이것저것 생활 필수품도 구매한다. 월요일에는 위층 강의실에서 교양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강의실 옆에 위치한 그룹 스터디실에서 조원들과 함께 발표 준비를 한다.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머리가 띵해 올 때면 글로벌 라운지에 가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노고산 산자락을 보기도 한다. P군은 3, 4학년 선배들로부터 “세월 참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예전에는 콩나물처럼 빽빽한 강의실에, 그룹 스터디실은 커녕 주말에 장을 볼 만한 대형 쇼핑센터도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가상시나리오는 ‘대학 설립·운영 규정(대통령령)’ 일부 개정안이 지난 4월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머지않아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번 개정안은 대학이 민자 유치를 통하여 시설 확충을 용이하게끔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 내에 대형판매시설, 수련시설, 노유자(노인 및 어린이)시설, 업무 시설 등의 입주가 가능하게 됐다. 예전에도 교육지원 시설으로 일반 기업들이 대학 내에 입주할 수 있었지만 이번 법령 개정으로 좀 더 폭넓게 대학 내에 상업시설이 들어오게 됐다. 이에 따라 몇몇 언론들은 ‘캠퍼스의 상업화 논란’이라며 이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대학의 상업화’보다 좀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 다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서강대, 민자유치로 국제인문관·50주년 기념관 기공과 공간문제 해결
시간을 2009년 4월로 돌려 서강대로 가보자. 서강대는 지난 4월 17일 국제 인문관 및 개교 50주년 기념관 기공식을 가졌다. 약 10년 만에 새 건물을 짓는 첫 삽을 뜨는 자리였지만 참석자들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삼성 홈플러스가 민자 유치로 이 건물 지하에 들어선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서강대가 ‘대학의 상업화 논란’의 직접적인 사례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홈플러스는 천억 원에 상당하는 이 건물을 지어 서강대에 기부하는 대신 건물 지하에 대형 판매시설을 운영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투자비용을 회수하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개정안에는 ‘공간이 부족해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지을 재정이 부족한 대학의 현실’이 반영돼 있다. 이날 기공식에서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공간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에 재정적인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더불어 손 총장은 “민자 유치라는 방식이 없었으면 공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번 민자 유치로 연구실과 관련 시설 등 공간 문제를 대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사립대학의 재정은 넉넉한 편이 아니다. 서강대 측 관계자는 “기금이 많다면 백프로 학교 재정으로 건물을 지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사정이 안 되므로 차선책으로 민자 유치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소수 학생들로 구성된 좋은서강만들기운동본부가 ‘학교가 건물을 짓고도 남을 기금을 쌓아두면서 민자 유치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이러한 주장은 학교의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발전기금은 학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100억 원을 기부할 테니 마음대로 돈을 쓰시오’하는 기부자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라’, ‘이 돈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줘라’, ‘이 돈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줘라’는 식으로 기부금은 기부한 사람의 목적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서강대 관계자는 “건축물 수리비와 같이 꼭 필요한 비용이 있기 때문에 학교는 항상 돈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 상황에서는 학교 재정으로 건물을 지으려면 결국 등록금을 올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는 가뜩이나 무거운 등록금 부담을 또다시 학생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연간 3조 원이 넘는 예산을 고등교육(전문대학 포함)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원은 주로 사업 형태로 경쟁을 통해 결정된다. 서강대 관계자는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금액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BK21같이 연구 지원금 정도가 지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학자금 대출도 연 7%에 달해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사립대학지원특별법’을 논의하고 있다. 이 법안은 사립대학의 교육비 중 경상비(매 회계연도 연속적으로 반복 지출되는 경비) 절반을 국가에서 부담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자유치로 학내에 상업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인터넷상에서의 토론도 활발하다. 서강대의 ‘서강사랑방’에서는 ‘건물만 올리지 말고 수업의 질을 향상해야 한다’,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소프트웨어 향상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현실을 따지고 보면 지난 10여년간 서강대에서는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건물이 한 동도 세워지지 못했다. 학교측은 “교수 연구실 공간이 없어서 교수 초빙을 못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공간 부족으로 서강대는 작년부터 50분이었던 수업 시간을 일괄적으로 75분으로 늘렸다.

학교 내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오는 만큼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부산대에서는 종합 쇼핑몰 효원굿플러스가 개장하면서 외부 가판대 설치, 호객행위로 학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사례가 있다. 이에 대해 서강대 측은 “그러한 지적은 지나친 우려라고 생각한다. 홈플러스에 출입하는 지역주민들은 지하에서만 오가게 별도의 출입로가 있다”고 설명했다. 출퇴근 시간에 예상되는 교통 혼란에 대해서도 “앞으로 이 지역은 재개발이 되면서 도로 확충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지하공간 개발 상업시설 유치 계획
‘대학 설립·운영 규정(대통령령)’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민자를 유치하려는 타 대학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연세대는 캠퍼스 지하 공간을 개발해 음식점, 수영장 등을 유치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홍익대도 유료 갤러리를 유치하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계획들이 확정되면 위 대학들 또한 어느 정도 학내에서 캠퍼스 상업화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유시찬 서강대 이사장은 서강대 국제인문관 및 개교50주년기념관 기공식에서 “(캠퍼스 상업화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대학사회가 어떤 눈길로 이 건물을 바라보고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이 건물은 다른 모습을 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상아탑 속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 대학인가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면서 “사회에서 움직이는 인사들과 건물을 짓고 대학도 사회를 위해 좋은 인재를 배출, 사회에 보답하는 식으로 뜻을 모아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정부에서 대학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마련한 법안이다. 차선책으로 민자 유치를 선택하는 대학과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을 어떤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 법안의 향방이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대학설립·운영 규정 일부개정령안   

제출 연월일 : 2009. 4. 14.
제출자 : 국무위원 안병만(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의결주문
대학설립·운영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별지와 같이 의결한다.

2. 제안이유
대학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교사(校舍)·교지에 대한 민간자본 유치 등을 통하여 대학의 재정확충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의 교사 및 교지에 대한 운영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임.

3. 주요내용
가. 대학의 교지 및 교사에 대한 민간자본 유치 등 민간부문과의 교류·협력 강화(안 제2조항·제7항, 안 제2조제8항 신설)

1) 대학의 설립·운영 시 교지 확보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학의 설립주체가 교육연구시설의 토지 및 산업단지 등을 타인과 공동으로 소유하여 대학원대학을 설립하거나 대학에 두는 대학원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함.

2) 대학의 설립·운영 기준인 교사의 확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교지 내 설립주체 외의 자가 소유할 수 있는 건축물의 범위를 확대함.

3) 교육 및 연구 등을 촉진하기 위하여 공공기관 및 산업체 등이 기자재 및 인력을 대학의 교육·연구 또는 학생들의 실습에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약정을 하거나 대학에 기자재 또는 기부금 등의 기부약정을 하는 경우에는 대학의 전체 교사면적의 10퍼센트 범위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함.

나. 교지가 분리되어 있는 대학의 자체조정 요건 완화 (안 제2조의3제5항 신설)
현재 교지가 분리되어 있는 대학은 분리되어 있는 교지별로 수용하는 학생수에 해당하는 기준면적을 각각 교지로 확보하게 되어 있으나, 앞으로는 총 입학정원의 범위에서 자체조정하는 경우로서 가까운 곳에 소재하여 쉽게 이동이 가능한 경우에는 교지가 분리되어 있지 아니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교지확보 기준을 완화함.

다. 교사 확보기준의 완화 등 (안 제4조제2항, 안 제4조제6항·제7항 신설)
이 영에서 확보할 것을 요구하는 교사 면적의 범위에 대학 부설연구소, 대학원 연구실 및 연구용 실험실 등의 연구시설도 포함하도록 하고, 대학의 일부를 현재의 위치가 아닌 국내의 다른 위치에서 운영하려는 경우 확보하여야 할 교사의 최소면적의 기준을 완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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