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학원에 무릎 꿇은 이유
학교가 학원에 무릎 꿇은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09.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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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길
김광동 편집위원·나라정책연구원장

‘학원 천하’만큼 한국적 현상도 없다. 학원이 학교 교육을 대체하고 부동산 시장까지 좌우한다. 외국 학원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명문학원을 찾아 ‘학원 유학’ 현상도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결과 21조원의 사교육비가 공교육 비용에 필적하고 가계부담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학원 천하는 다른 말로 하면 학교의 굴욕이다. 사실 학교가 학원보다 못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학교에는 국가가 제공하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교사로는 가장 우수한 엘리트가 국가공무원 신분으로 배치되어 있다. 더구나 학교에서 발급하는 성적과 졸업장은 대학입학 자격의 가장 큰 기준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불신 받고 학원수업은 학교를 능가하는 신뢰를 얻고 있다.

학교가 학원에 질 이유가 없는데 학원에 무릎 꿇는 이유는 공교육 제도와 시스템 문제 말고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을 위한 맞춤교육이 없고 서비스정신도 없다. 학교 선택권 없이 강제 배정받아 배정받은 학교에서 졸업하도록 되어 있는 한 학교는 경쟁의 무풍지대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교사는 경쟁도 없고 인센티브도 없고 퇴출도 없다.

열심히 가르치는 학교와 교사가 우대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누구도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학생은 졸업하고 세월이 흐르면 교사는 승진하며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구조다. 25세에 임용 받은 교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36년간 연공서열로 승진하고 점점 높은 월급을 받다 정년퇴직하는 시스템은 교사를 위한 학교이지 학생을 위한 교육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구조다. 교재연구하고 효율적 강의법을 연구하는 교사보다 시도 때도 없이 자습시키고 학생만 혼내며 시간 보낸 교사가 더 많은 보수를 받는 체제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산업화시대에는 성공적이었지만 더 이상은 맞지 않다. 근대적 대량생산 체제에 맞춰 산업인력을 육성하던 교육은 한국에서 1980년대로 마감해야 했다. 사회는 더 다양해졌고 더 전문화되었다. 거푸집을 만들어 학생을 벽돌 찍듯 찍어내겠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배운 것을 학생들도 배우게 하고 그것을 모르면 잘못된 교육으로 보는 ‘교육부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것이 열악한 조건에도 학원이 학교를 능가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선택받겠다는 경쟁 때문이었다. 경쟁이 있게 하고 선택이 가능하게 만든다면 공교육이 사교육을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공교육은 사교육의 자유경쟁, 자유선택의 시스템을 철저히 배우고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교육을 금지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완화시키겠다고 밤10시 이후 학원문을 닫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잘하는 학원을 폐쇄시켜 못하는 학교로 몰아넣겠다는 사고야말로 한국에서 펼쳐지는 공교육 붕괴의 근본 원인이 된 인식구조다.

이명박정부는 교육자율화 확대를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다. 그렇다면 대국민 약속에 맞게 교육자율화를 내실 있게 추진하는 게 맞다. 교사평가제와 수준미달교사의 퇴출, 고교평준화 폐지, 대학입시 자율화 그리고 교육과정 다양화 등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다. 그러나 보이는 모습은 답답하고 잘못된 방향이다. 적어도 교육부 공무원 절반 이상을 타부처나 외부 충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그것도 아니면 세금으로 학생 1명당 지출하는 교육비 몇 백만 원씩을 차라리 정부가 현찰로 나눠주고 학교든 학원이든 학부모와 학생이 직접 선택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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