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 원로 - 강원용 목사
내가만난 원로 - 강원용 목사
  • 미래한국
  • 승인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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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같고 싶어라’
김문환 金文煥 서울대 인문대 교수이 글에서 나는 강원용 목사님과의 인연 중 축제와 연관된 부분만을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우리의 첫 인연은 1968년 ‘크리스마스 바로 지내기’ 캠페인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이경렬 선생이 주도하는 한국레크리에이션연구실의 일원으로 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이 캠페인의 선두에 바로 강원용 목사님이 서 계셨다. 그러나 그때의 만남이 아직 공적인 성격에 속한다면, 선린회를 통한 만남은 좀더 사적이었다.선린회는 만주 용정 은진중학교 시절 강원용 목사님의 은사였던 김재준 목사님을 중심으로 시작된 선린형제단의 후신이다. 당시 나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대학생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데 유재건 선생의 추천으로 1967 선린회 하기대회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강원용 목사님은 사회를 보던 내게 좋은 인상을 받으셨던지 두고두고 그 말씀을 하신다.이러한 만남은 1970년 겨울에 함께 일을 해 보자는 강 목사님의 뜻밖의 제의로 좀더 구체화 되었고 고민 끝에 1971년 3월부터 나의 크리스챤 아카데미 생활은 시작됐다. 나는 아카데미 생활을 계기로 강 목사님이 시무하던 경동교회 교인으로 등록하게 됐고 결혼식도 그곳에서 하였다. 경동교회 생활중 가장 의미있는 사건은 축제예배형식의 개발이다. 당시 교회에 연극평론가인 김문환과 이강백, 이정희, 황철익과 같은 젊은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강 목사님은 축제형태의 예배를 실천하는데 더욱 열성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국의 전통문화요소들과 예배 등 교회생활 전반을 연결하는 작업을 본격화하였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수난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마다 총체예술적인 축제마당을 펼쳐갔다. 이와 같은 축제정신의 회복에 대한 관심은 독일유학에서 돌아온 2년째인 1985년 기독교 100주년 기념축제 ‘빛과 하나 되어’라는 100분짜리 대형 공연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 후 강 목사님은 서울올림픽 문화예술행사 추진위원회 의장직을 맡았고 나는 이강숙, 이어령 등과 함께 개·폐회식을 위한 5인 상임위원의 일원이 되어 한국문화를 세계로 발신하는 축제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매듭질 수 있었다. 이처럼 안팎으로 크고 작은 축제를 벌여 가는 중 정작 강 목사님 자신을 위한 잔치는 오히려 뒷전이 되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리던 중 1987년 강 목사님은 고희를 맡게 되셨다. 그때 난 강 목사님이 평생을 바친 대화운동의 의의를 사회 각 방면 지도자들과 대담으로 풀어보자는 취지로 <강원용과의 대화>라는 책자를 만들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켰고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잔치도 손색없이 치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3년의 세월이 지나 어느새 나도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강 목사님은 평화포럼을 만들고 한반도 평화정책을 위해 일하시는 등 여전히 활동적이다. 부디 우리 곁에 오래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팔순을 맞이하신 해에 내가 가사를 만들고 이건용 선생이 곡을 붙여 발표한 ‘바다 같고 싶어라’는 강 목사님의 호 여해(妊浿)의 의미를 나름대로 풀어본 것이다. “…바다여, 때로는 잔잔한 미소로 바다여, 때로는 격정의 질타로 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려 다시금 샘물을 솟게 하나니 아, 위대한 생명의 근원이여! 참으로 바다 같고 싶어라.”요약/최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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