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 구자흥 초대 극장장
34년 만에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 구자흥 초대 극장장
  • 미래한국
  • 승인 2009.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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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고 가치 있게 하는 연극 만들겠다”
▲ 명동예술극장 구자흥 초대 극장장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명동. 쇼핑의 메카인 이곳에서 지난 6월 5일 연극인들의 꿈의 무대였던 옛 명동국립극장이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34년 만에 문을 열었다.  요즘 이곳에서는 벌건 대낮에도 연극을 보러 오는 노신사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의 매력에 빠져 아직도 연극의 막이 오를 때 가슴이 설렌다는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을 만나 명동예술극장 복원의 의미와 그의 연극 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다.


명동예술극장은 1934년 ‘명치좌’라는 영화관으로 시작해 해방 이후 서울시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1959년에 국립극장(옛 명동 국립극장)으로 개관했다. 극단 수는 많지만 작품을 공연할 좋은 무대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 ‘명동예술극장’은 대관 날짜 잡기가 만만치 않은 최고의 극장이었다.

명동예술극장은 1974년에 민간 회사에 매각되었다가 1995년에 극장 건물이 헐리게 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명동 상인들과 연극인들이 필사적으로 이를 막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다시 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올해 6월 34년 만에 재개관을 하게 되었다. 극장을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연극인들에게 이 극장은 무척이나 각별하다고 한다.

“잃어버린 극장을 찾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동양극장도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연극인들과 명동 상인분들이 힘을 합쳐 10여 년 이상 노력한 결과 극장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연극하는 사람들에게는 각별하죠. 또 많은 분들이 무대에 서고 싶어 하십니다.”

한국 공연사를 기록해 온 명동예술극장

이곳에서 데뷔한 배우들도 적지 않다. 탤런트 김창숙, 이정길, 고 정애란 씨 등이 이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 타계한 탤런트 여운계 씨와 김혜자 씨도 명동예술극장에서 아주 빛났던 배우였다고 한다.

명동예술극장은 한국 공연사를 기록해왔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가진다. 구 극장장은 이번 극장 복원이 단순히 극장 하나가 늘어나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명동예술극장은 최초의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최초의 교향악단 고려교향학단의 첫 창단연주회가 여기서 열렸고, 한국인에 의한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도 처음 이곳에서 공연됐습니다. 해방 이후 최초의 영화 ‘자유 만세’가 처음 상영된 곳도 이곳입니다. 현인의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도 음반 취입 전 홍보차원에서 축하무대를 이곳에서 가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유’, ‘민중’, ‘산울림’ 등 한국의 연극사를 이끌어온 극단들이 이 무대에 서왔습니다. 명동예술극장은 한국의 공연사를 기록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60-1970년대 공연 예술의 전성기를 만들었죠. 이번 극장 복원을 통해 선배들의 연극정신과 예술혼을 이어받아 내일을 열어가는 발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34년만에 재개관한 ‘명동 예술극장’의 현재 외관

명품 공연만 올리겠다

구 극장장은 ‘대관’이 없는 극장을 모토로 내걸었다. 작품성이 검증된 외국 작품 등을 장기간 대관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극장 자체에서 직접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한 창작극을 무대에 올려 연극을 보는 쏠쏠한 재미를 주겠다는 것이다. 개막작 ‘맹진사댁 경사’를 시작으로 최인훈의 첫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세자매’, ‘밤으로의 긴 여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 등이 올해 말까지 계획되어 있다. 구 극장장에게 올해 막이 오르는 작품들 중 좋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대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연의 질적 수준에 대해서 우리 극장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입니다. 저희가 하는 것은 다 의미가 있어요. 개막작 ‘맹진사댁 경사’는 우선 우리 나라 창작극 중 관객들에게 즐거움도 주고, 등장인물도 많고, 등장 연령대도 다양해서 노장층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작품을 고른 겁니다. 좋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술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작품은 최인훈 선생의 첫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인데 만남과 운명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2월에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공연합니다. 묵직한 느낌의 연극을 보고 싶다면 ‘밤으로의 긴 여로’가 좋고, 재미 있게 연극을 즐기고 싶다면 ‘베니스의 상인’이 좋습니다.”

구 극장장은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연극을 ‘명품 연극’으로 정의했다.
“저는 명동예술극장에서 하는 연극에 대해 ‘명품 연극’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잘 만들어진 연극을 통해 연극이 가지고 있는 재미와 교훈성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물론 대학로에서도 마음대로 연극을 골라서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죠. 하지만 대학로에서는 제작비 때문에 좋은 무대와 시설에서 좋은 배우들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학로에서 만들어지는 연극이 다 수준 있다고 보기도 어렵죠. 저희 극장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연극을 보러 오십니다. 저희 극장은 연극 관객층의 폭을 두텁게 하고 연극의 토양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에 매혹

구 극장장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오는 9월에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장민호, 이혜랑 선생 주연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구 극장장이 극장을 다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다. 구 극장장은 고등학교 시절 이 작품을 봤던 느낌이 안 없어진다면서 황정순 선생이 내면 연기를 할 때의 손가락 움직임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구 극장장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연극반 활동을 했고, 선후배들과 의기투합해 ‘산돼지’라는 작품을 하면서 극단 일을 시작했다. 당시 이 작품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는 같은 서울대 출신 탤런트 이순재 씨도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첫 직장으로 극단 ‘실험극장’에 들어가서 ‘연극 기획’ 일을 했다. 구 극장장은 자신이 연출자로서 배우로서 소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연극 기획’이라는 것은 아무도 하지 않는 ‘블루오션’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 극장장은 이 일을 하면서 현실의 벽에 많이 부딪쳤다. 연극으로는 밥을 못 먹고 살겠다는 생각에 광고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다. 구 극장장은 1년만 회사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10년을 넘게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는 화장품 회사 태평양 홍보실, LG애드 등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구 극장장은 연극을 하면서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연극의 매력에 빠지면 힘들다고 생각 안 해요. 생계 문제 때문에 광고 회사, 회사 홍보팀 등에서 일했지만 절망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물건 파는 것과 공연 파는 것은 똑같잖아요. 그런 면에서 그때 경험이 도움이 되었죠.”

구 극장장은 ‘문화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90년대 초반 무렵에 공연 기획을 하는 개인 회사를 차렸다. 이어 2001년에 의정부예술의전당 초대 관장, 2006년에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초대 관장으로 일했다. 명동예술극장도 초대 관장인 셈이니 초대 관장만 세 번째이다. 그는 의정부예술의전당 초대 관장으로 재임할 당시 ‘천상병 예술제’를 만들어 공연 기획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의정부에 있을 때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는 방법으로 음악 축제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공연·예술에는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지만 뮤지컬은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꾀를 내 의정부에 있을 때 ‘천상병 예술제’를 만들었습니다. 천상병 시인만큼 대중에게 알려져 있고 시를 쉽게 쓰는 시인은 드물죠. 천상병 시인을 소재로 창작 무용극, 연극도 했습니다. 천상병을 소재로 한 연극은 서울연극제에 참여해 작품상도 받았습니다.”

사람을 사랍답게 하는 연극

구 극장장은 좋은 연극이 영혼을 ‘맑게, 밝게, 아름답게’ 정화시켜준다고 했다.
“연극은 재미 있는 부분도 있지만 교훈적인 부분도 있어요. 예술은 미(美)만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가치 있게 사는 것인지 일깨어 주는 게 필요하죠. 오락적인 기능만 있다면 정부에서 굳이 재정을 지원할 필요가 없죠.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부르는데 창의적 상상력, 통찰력의 훈련 교재로서 연극만한 장르가 흔치 않습니다.”

구 극장장은 연극이 삶의 질을 높이는 매개체라고 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점심을 허름하게 먹고 저녁에 연극 보러 가는 것처럼 그들에게 연극은 생활의 한 부분입니다. 체홉의 희곡 중에는 ‘밥을 먹으면서 연극 얘기를 해야 상류 사회에 낀다’는 말이 나옵니다.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에 CEO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삶의 질이라는 게 아파트 평수 늘리고, 좋은 차 탄다고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지려면 1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연극의 막은 오른다

구 극장장은 임기 3년 동안 좋은 작품 자체로 수익을 벌어들이는 극장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신뢰’를 주고, 재능과 열정이 뛰어난 연극인들이 무대에 서는 데 기초를 닦는 역할도 하고 싶다고 했다.

연극은 영원한 IMF로 불리는 배고픈(?) 예술이다. 하지만 ‘연극의 중흥’을 꿈꾸며 34년 만에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에서는 그래도 연극의 막이 오른다. #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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