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욱 의원 “나의 정체성은 이것이다”
홍정욱 의원 “나의 정체성은 이것이다”
  • 김범수 발행인
  • 승인 2009.07.3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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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이 ‘죽이기’ 나섰던 홍정욱 의원
 
 


정치인은 너무 젊고 너무 잘생기고 너무 완벽해 보이면 표적이 될 수 있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 ‘실패’라는 단어와 연결이 잘 안 되는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앞날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좌절’을 모를 것 같다고 하자 홍 의원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월가에서 억대연봉을 받다가 150억 원을 투자 받아 벤처기업을 창업했지만 6개월만에 망했어요. 화려한 이력의 제가 월세 낼 돈이 없어서 한국에 들어와 아버지 집 문간방에서 아내와 딸과 살았는데 실패가 아닌가요? 처음에 공천에서 떨어졌다가 23일 남겨두고 노원구로 가게 되었는데, 사업 실패와 공천에서 떨어진 건 엄청난 좌절이죠. 그런 얘기를 해도 다들 ‘그래서 힘드셨어요?’라며 잘 안 믿는 눈치예요. 실패했을 때 좌절하기 보다 ‘이런 스펙터클한 실패도 필요하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뿐이지 실패와 좌절을 안 겪은 건 아니에요.”

서울 노원병 지역구 출신인 홍정욱 의원은 초선이지만 드물게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 15세의 나이로 미국유학을 떠나 하버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1993년에 펴낸 자전적 에세이 <7막 7장>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룸메이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새벽 서너 시까지 영어책을 깡그리 외워버린 집념의 소년이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해했던 독자들 앞에 그는 국회의원이 되어 나타났다.

“어릴 때부터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남자로서 영예로운 일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어요. 6년 간 헤럴드미디어를 경영한 뒤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을 때 국회의원 출마 제안이 들어와서 잠깐 고민하다 결정했죠. 모든 걸 버리고 뛰어 들었는데 공천에 떨어뜨려 이상한 시스템이구나 생각했어요. 총선 23일 남겨두고 상계동에 가게 되었을 때 젊은 사람이 일하기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에서 도전했죠.”

노원병 지역구에 공천되었을 때 ‘떨어질 거 뻔하니 4년 후를 기약하고 출마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공천위원까지 있었다.

“이길 거라고 확신한 건 아니지만 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많으니까 국회의원 아니면 다른 사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죠. 경쟁자에 대해 신경 써 본 일은 없습니다. 과연 국회의원이 공직이라는 봉사에 가장 좋은 매개냐, 내가 계속 해야 할 일이냐, 이게 중요한 질문이었죠.”

17년 간 미국과 중국 영국 일본 홍콩에서 공부하고 비즈니스맨으로 일한 그는 전공을 살려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지난 1년 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강경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평생 할 것처럼 일하되, 다시는 안 할 것처럼 말하자는 것이 저의 각오입니다. 어차피 저는 계보도 없고 누가 공천을 해준 것도 아니니까요. 유일하게 빚진 것은 23일 남겨놓고 온 사람에게 표를 주신 상계동 주민 밖에 없습니다. 그 분들께 한 약속을 100% 지키고, 내가 가진 소신대로 일하겠다고 결심했죠. 국회의원직을 ‘직업’이 아닌 ‘봉사’라고 생각하면 소신과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대체 어느 쪽이냐”

‘비판하되 분노하지 않으며, 반대하되 증오하지 않는 사회’라는 기치 아래 일한다는 그에게 간혹 “대체 어느 쪽이냐”는 화살이 날아오곤 한다. 그것은 문제점과 함께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과정에서 정부정책이나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좌파가 좋아할 발언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제가 하는 발언이 좌우 보혁의 잣대에서 보면 의혹을 가질 수 있습니다. 초선은 국정에 영향을 끼치지도 못하고 정책을 바꾸지도 못합니다. 제가 하는 말은 5년 후 10년 후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우에서는 낭만좌파 아니냐, 좌에서는 제거대상이다, 이런 비판 듣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약 미국에서 정치를 했다면 민주당을 선택했을 거라고 했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의문이나 의심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친북 이념세력과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강성노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진보세력과는 함께 갈 수 없는 겁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찬성과 반대, 좌우 극한대립만 있습니다. 서로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합니다.”

홍 의원은 한미 FTA의 경우 반드시 관철해야 할 사안이지만 비준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이 걸리는데 리스크를 안고 밀어붙일 이유가 있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할 미디어법이 반대세력에 의해 의도가 왜곡되었다면 밀어붙이기보다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PD수첩의 모 작가가 홍 의원을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는 검찰을 향해 “왜 이메일을 공개하느냐”고 항의했다. 작은 꼬투리만 생겨도 신물 나도록 우려먹는 정치인들을 봐왔던 국민들은 이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PD수첩의 김 작가와는 일면식도 없어요. 검찰이 그 내용을 왜 발표했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가요. 이메일이 사생활 침해 아니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메일도 증거가 될 수 있죠. 전화 통화도 증거가 되니까요. 메일 내용을 재판과정에서 제시하면 되는데 보도자료를 뿌려 언론플레이를 했어요. 검찰은 수사를 해야지 정치를 하면 안 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증거는 될 수 있지만 발표할 필요는 없었어요.”

대북정책에 대한 그의 해법도 좌우를 공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북한문제는 미국과 중국 양대산맥을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북한을 제재하고 대화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중국입니다. 그렇다면 한미공조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중국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역할입니다.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급조된 정책입니다. 핵문제는 대한민국이 해결할 수 없는, 국제사회가 압박해야 할 이슈입니다. 개방은 북한 체제 존립은 위협하는 요소인데 받아들일 리 만무하고, 지금 500달러인 북한 국민소득을 10년 후에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면서 그쪽 자존심을 건드리는 제안이죠. 개성공단의 경우 임대료는 안 되지만 임금은 국제적인 틀 안에서 수익과 연계해서 올려줄 수 있는 일입니다. 한미 FTA가 성사되면 불공정 거래로 문제가 됩니다. 작은 틀 내에서 남북이 대화를 이어가되 햇볕정책 같은 우를 범하면 안 되죠. 현금을 지원하고 북한과 친해지기 위해 국군의 위상을 폄하하는 등 비굴했던 일은 잘못되었습니다.”

   
 
     
 

극복 대상은 사회 분열

홍 의원은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보다 앞날을 생각하며 행동한다고 말했다.
“저희 세대가 주도권을 갖고 이 나라를 바꿔볼 때가 올 겁니다. 5~10년 후 정도가 되겠죠. 그 시점에 가서 제가 10년 전에 했던 말을 후회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빠르게 발전한 만큼 경험한 바가 달라 세대별로 생각도 제각각이다. 젊은 세대가 불안하기만 한 어른들, 이념으로 무장하고 다음세대를 교화하려는 측, 개인의 이익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글로벌 세대가 마구 충돌하고 있다. 어린 시절 유학을 떠나 글로벌 마인드를 갖게 된 홍 의원 세대가 이념으로 똘똘 뭉친 세력을 뚫고 앞으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어른이 많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6·25 전쟁과 배고픈 시기를 안 겪은 우리 세대는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증명해 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17년 간 해외생활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경쟁이라는 틀을 강력하게 신봉하게 되었으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6년 간 강성노조와 민노총과 끊임없이 투쟁하며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검찰 고발, 노사분규, 파업 안 당해본 일이 없습니다. 가장 나이 어린 초선의원인 제가 좌파의 공격대상이 되어 인터넷에서 수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미지만으로 경험한 게 부족하다고 하면 서운한 면이 있지요.”

홍 의원은 앞으로 자신이 싸울 대상은 좌파가 아니라고 했다.

“분열이라는 개념입니다. 수구보수와 수구진보, 극단의 세력을 사회의 구석으로 몰아버리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우파와 좌파가 서로 경쟁하여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것이 선진국가들이 가는 길이고 우리 나라가 가야 할 길입니다. 몸통이 튼튼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일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역사 발전에 정치가 기여할 분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홍 의원의 견해이다.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경제와 교육을 살리겠다고 하는데 경제는 기업인들이, 교육은 학생과 교사와 학교가 하는 것입니다. 교육 개혁의 시발은 교육과학기술부를 없애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유일한 핵심의 틀은 국가적 영역의 축소냐 확대냐,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치의 유일한 사명은 시대정신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30% 지지로 허덕이고 있지만 500만 표 차이로 당선된 것도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 5~10년 후의 시대정신은 사회 분열을 치료하는 것이 될 겁니다. 존중받는 사회로 나가는 것,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저희들에게 좋은 국가를 물려주신 어르신들께 부끄럽지 않은 일이겠지요.”

홍 의원은 “어떻게 하면 존경받고 존중받는 나라로 만드느냐, 선진국을 넘어서서 선도국가가 되고 세계의 롤 모델이 되는 국가를 만드느냐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사명”이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정치는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시장경제도 중요하고 경쟁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온기, 온정주의가 있어야 합니다. 국가와 민족은 그만 주장하고 가정과 개인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가 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 국가의 모습도 달라지고 그 인식 속에서 세계에 기여하는 부분도 달라질 겁니다. 그러면 세계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정치는 여론수렴의 비효율적 과정

홍 의원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지금 20대 30대는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미 산소처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민도가 낮다고 한탄하는데 민심은 위대합니다. 촛불정국 때 10만 명이 거리로 나와 나라가 끝장났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50만 명이 길거리에 나와서 추모했지만 그 날 밤 2,500명만 남고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어떤 세력이 선동해도 20대 30대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삶과 직결되는 부분에 민감한 그들을 건전한 세력이 잘 이끌어주면 됩니다.”

18대 국회에 도전한 CEO가 많았지만 금배지를 단 사람은 홍정욱 의원이 유일하다. 그래서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을 이해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평생 CEO를 하셨고 서울시장직은 정치보다 경영 쪽입니다. 서울을 주식회사 같은 경영으로 큰 성과를 거두신 다음 대한민국의 경영을 떠맡아 비전을 세웠습니다. CEO의 마인드는 지체 요인과 변수를 다 제치고 결과로 평가받겠다는 것입니다. 노조와 소비자가 뭐라 하건 결국 비전을 달성하여 주주로부터 평가받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비효율을 끊임없이 더해 누더기 같은 걸 만들어놓고 성과를 냈다고 하는 게 그 분으로서 정말 싫을 겁니다. 경영은 효율을 더하여 결과를 얻는 것인데, 정치는 비효율을 더하여 성과가 애초와 전혀 다르게 나오는 일이 허다합니다. 하지만 정치는 여론을 반영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경영자가 용납할 수 없는 비효율 과정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지난 1년 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정치에서 중요한 사명은 사회 분열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하는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의견을 구하겠다는 진심이 필요합니다.”

홍 의원은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의 기치와 서민중심 정치를 들고 나온 걸 환영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모의 역할이 중요하죠. 쇠고기 정국 때 여론에 휘둘리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참모진이 얼마나 무능하고 열악한가 탄식했습니다. 저는 이 대통령께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서울시장 때 ‘저분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자수성가하신 전문경영인입니다. 재벌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경영자 출신으로서 항상 중도실용을 추구할 수 밖에 없지요. 대한민국을 위해 큰 성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성과를 내고 사랑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개념에 대해 우파 인사들이 많은 공격을 했지만 홍 의원은 독특한 의견을 밝혔다.

“경영자들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중요시하는 우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노사협상을 예로 들면 회사가 노조에게 ‘하나 줄 테니 하나 내놔라’는 협상이 아닙니다. 노사협상은 회사가 노조에게 ‘하나를 주느냐, 둘을 주느냐’의 협상입니다. 회사가 더 가졌고 힘이 있기 때문이죠. 사회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좀 더 힘 있는 사람, 좀 더 가진 사람들이 두 걸음 나가 저쪽에서 한 걸음 나오도록 기다려주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지난 10년 간 어떤 피해를 봤건 간에 좀더 많이 알고 좀더 가지고 좀 더 힘 있는 사람은 오른쪽과 동쪽과 남쪽에 있습니다. 이쪽에서 두 걸음 나가고 저쪽에서 한 걸음 나오길 기다리는 게 중도실용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회사도 아닌데 경영자 마인드로 끌고 가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시비에 대해서도 홍 의원은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경영의 원칙인 경쟁과 자율성, 다양성은 우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입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율성, 다양성 이런 가치들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어떤 자세와 정책을 실현해 중지를 모으고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미디어법으로 여야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치할 때 합리성을 따지는 홍 의원도 첫날 선발조로 참여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느끼는 염증을 과연 체감하고 있는지, 대치할 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국민의 눈높이 운운하면서 국민의 생각과 전혀 상관없는 짓을 하고 있으니 괴롭죠. 정치인의 소신, 법안과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에서 끝나고 고생하지 않겠다는 건 안 됩니다. 당에서 함께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서로 아무 얘기도 안 합니다. 왜 그 자리에 있는지, 그 자리에 있는 게 어떤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무개념 상태로 있는 거죠. 서로 너무 싫어하고 못 믿기 때문에 24시간을 함께 보낸다, 초현실주의 블랙코미디죠. 정치의 비효율을 이해하지만 아직도 참기 힘든 건 가식입니다. 해머를 들고 싸우다가도 바로 돌아서서 여야 의원이 악수하고 웃는 걸 보면 과연 모든 행동에 진정성이 담겨 있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홍 의원은 ‘언론기관은 절대 흑자를 낼 수 없다’는 불문율을 깨고 50년 적자기업 헤럴드미디어를 인수해 흑자기업으로 전환했다.

“구멍가게나 삼성이나 CEO는 똑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경영이나 공부는 묘책이 따로 없어요. 영어 익힐 때 요령 찾지 않고 무식하게 외우는 걸로 승부냈듯이 헤럴드미디어도 오로지 수익 창출에만 몰두했습니다. 10명을 만나면 9명은 광고주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영입대상 기자였습니다. 저는 헤럴드미디어를 경영할 때 한 번도 언론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경영인으로 살면서 사업을 다각화하고 신문의 비중을 낮추어 흑자를 냈습니다.”

인생을 바꾼 성경과 에머슨 구절

그는 15세 때 철없이 미국에 가겠다고 나선 아들의 고집을 꺾지 않은 부모님께 늘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저를 미국에 떨어 뜨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어머니께서 신명기 28장 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과 에머슨의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해 너의 발자취를 남겨라’는 두 구절을 적어주고 가셨어요. 그 순간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이 두 가지 말씀이 끊임없이 작용했어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면 엄청난 리스크가 따르지만 인간의 노력을 다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다는 정신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의 작가가 초선인 최연소 의원의 뒤를 ‘미친 듯이’ 캔 것은 야권의 상징적인 인물을 꺾은 홍 의원의 싹을 애당초 자르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작심하고 뒤를 캤는데도 별다른 흠결이 발견되지 않은 홍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퍽퍽 나가떨어지는 공직 후보자들과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실패조차도 “계획이냐 경험 쌓기냐”는 질문을 받는 홍정욱 의원, 그의 10년 후가 궁금하다.#

인터뷰/ 김범수 편집위원

글/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 이승재 객원기자 l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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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2016-06-09 01:16:17
하버드대 최우등으로 졸업안했는데 자꾸 허위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