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 2천명 진보인맥으로 보는 생생한 한국현대이념사 펴내
남시욱, 2천명 진보인맥으로 보는 생생한 한국현대이념사 펴내
  • 김범수 발행인
  • 승인 2009.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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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대적 역작 ‘한국 진보세력 연구’ 저자 남시욱
   
 
  ▲ 시대적 역작 ‘한국 진보세력 연구’ 저자 남시욱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글로벌 시대, 대한민국은 지칠 줄 모르는 이념 전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해방공간의 이념 대결을 능가할 정도로 분열이 심각해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우려이다.

이러한 시점에 한국의 진보세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한국 진보세력 연구>가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저자 남시욱 씨는 동아일보 정치부장과 편집국장, 문화일보 사장을 지낸 정통 언론인 출신으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과 고려대와 세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광화문문화포럼 회장으로 일하며 저술과 강연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이 책은 해방 후 현재까지 60여 년 동안 한국 진보세력이 걸어온 발자취를 시대별로 추적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분석대상을 진보좌파 정당과 정치인들 뿐 아니라 좌파급진 단체들과 각종 비밀서클 및 지하조직들 그리고 여러 갈래의 진보적 지식인들까지 포함하다보니 분량이 721페이지에 달한다.

배테랑 정치부 기자의 역작

그가 방대한 분량의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2005년에 <한국 보수세력 연구>라는 책을 펴냈는데, 모두들 진보세력 관련 책도 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보수세력을 연구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진보세력까지 연구하게 되었고, 그래서 쓰게 된 겁니다.”

<한국 진보세력 연구>를 집필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 활동해 온 유명 무명의 진보좌파 인사 2,000여 명이 등장하는 이 책은 진보인맥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이자 진보인사 인명사전이다. 집필기간은 3년이지만 저자가 정치부 기자 초년병 때부터 문헌 연구와 관련자 면담 등을 하며 자료수집을 했으니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책은 두껍지만 기사식 문장이라 일단 손에 잡으면 쉽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성을 명확하게 분석한 내용이라 흥미를 더한다.

 

이념과 관련한 책은 필자의 주장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한국 진보세력 연구>는 이미 검증된 자료와 철저한 취재로 객관적인 내용을 기술했다. 오랜 기간 현장을 발로 뛰며 익힌 정치부 기자의 감각으로 과거 사건 가운데 왜곡되었거나, 검증이 끝나지 않은 것은 배제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섰으나 여전히 진보세력이 힘을 발하고 있는 시점에 나온 <한국 진보세력 연구>는 발간 한 달 만에 재판을 발행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진보세력을 분류하여 공과 과를 분석하고 진보의 나아갈 길까지 제시하고 있어 정치인과 시민단체 인사, 통일 안보문제 전문가, 정책입안자, 언론인 등 이 방면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에게 필독서가 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좌파세력은 곧 진보세력으로 인식됐으나 남시욱 회장은 좌파가 곧 진보라는 개념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진보와 보수는 변화에 대한 태도에 따라 분류되는 개념이고, 좌파와 우파는 이념적인 좌표에 따라 구분합니다. 보수는 전통과 살려야 할 가치를 보존하며 점진적인 발전을 원한다면 진보는 변화에 대한 적극적 내지 급진적 태도를 말하는 개념이죠. 예를 들면 이념면에서 다 같은 좌파정당이지만 프랑스나 일본의 공산당은 진보세력인 반면 러시아의 공산당은 보수세력입니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세력은 과거에 진보세력으로 인정됐지만 현재는 ‘낡은 진보세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소련 붕괴를 계기로 각종 새로운 진보세력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진보가 동일 개념으로 쓰이게 된 것은 해방공간과 1980년대 5공 치하에서 좌익 세력을 ‘진보’라고 부른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진보세력이라는 표현이 쓰인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 때 좌파 통일 운동단체가 우후죽순처럼 결성되면서부터였다. 좌파 단체들은 북한 정권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지지하다가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6·15 공동선언의 열렬한 수호자가 되었다는 것이 남 회장의 견해이다. 언론매체는 이들 친북통일운동단체를 ’진보단체’ 그리고 그 세력을 ‘진보진영’이라 불렀다.

좌파와 진보가 동일시된 이상 현상

남시욱 회장이 연구대상으로 삼은 한국진보 정치세력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전통적 의미의 진보세력, 즉 체제변혁 세력들 뿐 아니라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여러 갈래의 진보 표방 개혁세력들이다.

남 회장이 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성향은 어떠할까. 그는 기본적인 성향, 친북정책과 진보적 복지정책, 일부 신자유주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두 정권을 ‘좌경 중도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김대중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신봉한다고 강조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서 유화적 내지 친북적 노선을 걸어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고 경제정책과 사회복지정책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한 발 더 앞으로 나갔습니다. 보수세력에 대한 생리적인 혐오감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통합적 진보’ ‘유연한 진보’, 개방적 진보‘ 등 진보세력을 자임하면서 김대중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을 답습해 더 많은 대북지원을 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경제정책에 있어서 자유보다는 평등 쪽으로 기울어지고 복지정책에 있어서는 김대중 정권보다 더욱 진보적이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출현으로 대한민국은 헌정사상 최초로 좌경중도 정권 10년을 경험했고, 보수정권 50년에 비해 10년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 동안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난 변화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그 영향 또한 컸다는 것이 남 회장의 총평이다.

남 회장은 진보세력의 문제점을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20세기 말부터 쓰나미와 같이 맹렬한 속도로 밀려오는 세계화 물결에 소극적 방어적으로만 대처함으로써 일종의 보호무역주의에 빠져 있다. 셋째,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를 균형 있게 추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나친 국가개입을 통한 시장왜곡과 반기업 정책, 노조 편들기, 성장을 저해하는 분배정책에 경도되었다. 넷째, 일부 좌파 세력은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와 인권 생명 존중이라는 진보사상 본연의 이상을 망각하고 맹목적인 북한 정권 감싸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좌파정당인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소외계층과 사회 경제적 문제에 소홀하고 통일문제 등 이념과 민족문제에만 계속 매달려 있다. 여섯째, 진보세력은 시대상황에 상응하는 새로운 진보 개념을 정립하여 거듭 태어나려는 노력 없이 기존의 틀에 안주하고 있다.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지 20년이 가까워 오고 있으나 아직도 마르크스의 낡은 진보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시욱 회장은 <한국 진보세력 연구>에서 결론적으로 진보정당에 대해 이런 주문을 했다.

   
 
     
 

“진보세력의 과제는 과거처럼 시장경제체제의 근본적 전복이나 변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사장경제체제라는 큰 틀 안에서 인간해방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있습니다. 현재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더 이상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를 꿈꾸는 낡은 진보사관이나 어떤 통일도 좋다는 식의 맹목적인 민족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적응할 수 있도록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다 나은 사회 건설이라는 진보적 가치는 실현할 수 없을 것이고 정치의 주류에 끼지 못할 것입니다.”

남시욱 회장은 우리 사회의 일부 진보세력들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적으로도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진보’라는 용어는 온건한 반보수 세력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자신들을 과거의 자유주의(Iiberal) 세력 대신 진보(Progressive)세력으로 부르면서 새로운 진보정치를 추구하고 있지요. 유연한 제 3의 길 노선을 추구하는 각국의 좌파들은 세계 각국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진보세력을 자임하면서 적극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예가 2000년에 설립된 진보정치정상회담인데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등 각국의 온건한 좌파 지도자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온건한 보수와 온건한 좌파가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민주화는 보수세력의 성과”

남시욱 회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 654페이지 분량의 <한국 보수세력 연구>를 발간한 바 있다. 그간의 보수와 진보의 분류는 대개 해방 정국에서 시작했으나 남 회장은 보수의 출발점을 찾기 위해 12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는 1870~1880년대 조선조 말기에 수구적인 집권세력과 위정척사파에 맞서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도모한,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개화파였다는 것이다. 개화파 3세대에 속하는 이승만, 안창호, 김구, 김규식 등 독립운동가들이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남 회장은 한국 보수세력을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함으로써 오늘의 한국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자 정보 최선진국으로 만든 주역들’이라고 규정했다. 서양에서 300-400년 이상 걸린 산업화를 한국 보수세력은 불과 반세기 만에 달성했다는 것이다.

남 회장은 한국의 민주화도 보수세력의 성과라고 말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추진주체는 김영삼.김대중이 이끈 민주통일당이라는 정통 보수야당과 이를 지원한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계와 각계의 지도자들, 바로 한국 보수세력이었습니다. 6월 항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당시의 언론들, 즉 수구언론이라고 매도당하고 있는 동아.조선 등 보수신문의 역할도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 회장은 이 책에서 한국의 보수세력의 과오인 친일과 독재 정권에 앞장서거나 협력한 일, 부정과 부패, 도덕적 타락도 책에서 분명히 지적했다.

 

<한국 보수세력 연구>가 출간되었을 때 남 회장은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위축돼 있던 보수 인사들로부터 “용기를 얻었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아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남 회장의 평가는 상반된다. 이 대통령이 친 서민 행보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렸지만 중도 강화론 표방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어떤 경우든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나는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이 대통령이 자칫 애매모호한 자세를 반복하다가는 그의 이념적 정체성에 의문이 생겨 예측불가능한 지도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습니다.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좌경정부 10년 동안 쌓인 적폐를 청소해 보수 개혁을 이룩하고 나아가 중간층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좌파의 공격을 의식해 스스로 우에서 중간으로 이동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길게 보면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보수주의자인 남시욱 회장은 한국 보수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핵심가치에다 그동안 이룩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도 함께 보존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어제의 보수가 오늘의 진보

“한국 보수세력은 여전히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세력에 밀린 채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집단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비난은 상당부분 사실입니다. 한국 보수주의자의 미래는 변화와 개혁의 실천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보수세력은 ‘진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특정 시기의 특정 진보세력이 지향하는 특정 진보사상은 어느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진보사상이 아닙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부터 그 성과를 보존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보수화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입니다. 세상에 영구 진보사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가 되고, 오늘의 진보가 내일의 보수가 되는 것이 진보와 보수의 변증법입니다.”

‘시대적 장애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키고 가꾸어 나갈 때 선진한국의 꿈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남 회장은 보수세력이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강조했다. #

인터뷰 김범수 편집위원 . 글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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