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내 위기와 적극적 외교, 그 양면성을 주시하라
중국의 국내 위기와 적극적 외교, 그 양면성을 주시하라
  • 미래한국
  • 승인 2009.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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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문예춘추사‘제군’2009년6월호_‘사회주의 중국’은 전인류적 과제
▲ 제군 6월호 표지
나카지마 미네오(中嶋嶺雄) 국제교양대학 학장

중국이 마침내 모택동 사상의 주박(呪縛 : 주술에 걸린 듯한 속박)으로부터 해방돼 새로운 도약을 하려 했을 때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중국의 비극’을 역사적인 대상(代償)으로 치른 동구나 소련의 사회주의 권력은 붕괴되기 시작해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동서냉전체제도 종언했다. 그런데도 중국이나 북한에는 지금까지도 사회주의 국가 권력이 지속돼 공산당이나 노동당의 일당독재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경제발전과 통치 불능의 ‘지방’

중국은 1978년 말 개혁개방정책 이후 년평균 9.8%라는 고도 경제성장을 했다. 2008년 12월은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대회 이후 개혁개방 30주년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중국에서도 최근 세계 경제 위기의 영향이 심각해 2008년 10~12월 GDP는 전년에 비해 6.8% 성장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4조 위안(약 56조 엔)이나 되는 투자를 해 8% 성장을 유지하려고 한다. 성장률이 1% 낮아지면 수천만 명의 실업자가 생긴다. 8% 성장의 성패는 중국 경제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로서도 큰 문제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온 것은 주로 외자에 의한 투자와 수출이다. 일본이나 구미 선진국들과 경제의 기본이 다르고 GDP에서 차지하는 소비지출은 50%에도 미달한다. 그만큼 내수 확대 여지가 있다. 최근의 ‘가전 하향’ ‘기차·자동차 하향’이라는 슬로건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의 제조업체나 서비스 산업과의 경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중국의 수출 지향은 계속될 것이다. 중국의 수출 규모는 1980년 0.9%로 세계 26위였는데 2007년 6.0%로 세계 3위 그리고 2010년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1위로 2008년 9월 현재 약 2조 달러에 이른다. 그중의 반 정도는 미 재무부 증권과 미 정부 기관채권이라고 한다. 달러 위기가 중국의 경제 위기와 직결되는 구조이다.

중국의 경제 발전에 마이너스 요인을 보면 첫째, 심각한 환경 파괴이다. 나도 북경에 1주일 머무는 동안 목이 상한 경험이 있는데 공기오염으로 대도시에서는 매년 40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하천의 80%가 오염되고 고갈돼 흐르지 않는 상태이고 내몽골 자치구 등 초원의 60%가 사막화되고 있다. 중국 북부나 하남·산서·강서·호남 등의 내륙부의 한발, 인구 증가나 농업 진흥에 심각한 물부족 문제가 있고 4억 인구가 마시는 물조차 부족하다고 한다.

중국 경제가 향후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환경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아 심각하다. 이렇게 해서는 후진타오 주석이 지향하는 화해(和諧 : 조화) 사회 건설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천 대지진과 인민해방군의 위협

중국정부 발표에 따르면 2008년 5월 사천성에서 발생한 대지진에서 사망·행방불명이 약 8만7,000명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의 국제긴급구조대가 긴급한 구조활동을 위해 사천성에 갔을 때 재해 현장에 가지도 못했다. 사천성 대지진을 당해 중국 인민의 자원봉사활동이 괄목할 만했던 반면 보여서는 안 될 부분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민해방군이 재해구조활동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헬리콥터도 별로 뜨지 않았고 상공에서의 촬영도 없었다. 많은 병사가 헬멧도 쓰지 않고 구식 배낭을 멘 병사가 그나마 늑장 출동해 피해를 줄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본의 긴급구조대가 현장에 투입돼 민첩한 구조활동을 하면 위화감이 생길 것을 우려해 현장 투입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어떻든 중국의 군은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티베트 사태나 북경올림픽에서 보이던 인민무장경비부대도 증강되고 있는 중이다.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원회의 이중의 지도를 받는다는(2008년 중국국방백서) 기본적 조직 원칙이 원자바오 총리와 후진타오 주석 사이의 불화라든가 그 후계자들 사이의 권력 투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견해가 홍콩 등에서 나돌고 있다.

북경올림픽은 ‘강한 중국’과 중화사상을 나타내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작년 3월 발생했던 티베트 사태에 의해 한때 개최 자체가 위태로웠을 정도로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북경올림픽과 티베트, 위구르, 대만

지난 3월 10일은 1959년의 역사적인 티베트 봉기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 당국은 ‘티베트 백만명 농노 해방기념일’을 정해 수도 라사의 포다라 국전 앞에서 경축 식전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재차 시위에 참가하면 가족 전원을 구속한다’는 등의 압력을 넣고 있다. 경축 식전은 공안이나 인민무장경찰부대에 의한 엄중한 경계 태세 아래 거행된 관제 집회이고 티베트인들로서는 싱겁기 짝이 없는 의식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티베트 망명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달라이 라마 자신은 책임감도 있어서 티베트 자치를 바란다는 온건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적이고 급진적인 티베트 청년들은 향후 자치를 요구하는 대화 노선이 아니라 독립을 상당 수준 명확하게 요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라이 라마와 회담하는 등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티베트 문제 해결은 당분간 바랄 수 없을 것 같다.

중국 당국은 “중국 인구의 약 8%의 소수민족이 국토의 약 64%를 차지하는 민족자치지역에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국제적인 적대세력과 국내 분열세력이 호응해 침투, 분열, 파괴, 전복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소수 민족에 대한 선전과 교육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공산당 중앙선전부·국가민족사무위원회 2009년 2월 발표 요강)

티베트 그늘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 위구르이다. 위구르의 동투르크스탄 독립운동 또는 분리운동은 1930년대부터 있었고 스탈린의 소련이 그것을 이용, 조작하려 했던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뮌헨에 본부를 둔 세계위구르회의가 있고 동투르크스탄 해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나도 예전부터 주목하고 있던 신장 위구르 출신 도쿄대 대학원생이 현장조사를 위해 자치구에 돌아갔을 때 체포돼 행방불명이 된 후 11년 징역형에 처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베 전 총리가 후진타오 주석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에 관해 직접 물어본 바가 있다.

위구르에서는 민족 정화(?化)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아 제한이나 강제 낙태 등의 방법으로 인구 증가를 저지하고 있다. 레비아 카디어 여사도 호소하고 있는데 위구르 여성을 위구르 자치구로부터 분리시켜 도시 노동력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오늘날 약 700만의 한민족이 거주하고 있어 내몽골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위구르족보다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최근 주목되는 것이 대만 문제이다. 마잉주 국민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중 관계에 큰 변화가 있고 지난해 11월 진운림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이 대만을 방문했다. 그러나 진 회장이 처음 대만을 방문했을 때는 격렬한 반대 시위가 있었다. 마잉주 총통은 작년 말 이른바 3통(통상·통항·통신)을 해금했는데 이로 인해 대만의 주권과 정체성이 위협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대만 국민 사이에는 있다. 또 중국제 멜라민 분유 사건 피해도 있어서 대만에서는 대략 300만 명 정도가 반중·반마잉주 정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진 회담은 결과적으로 10분도 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 회장의 숙소나 회담 장소인 호텔에는 대만의 국기(청천백일기)가 철거돼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대만이 세계 투자 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천수이볜 전 총통이 부패 혐의로 구속됐다. 거듭되는 의혹으로 독립운동의 상징이 땅에 떨어지고만 느낌마저 있었다. 동시에 이등휘 총통시대에 이룩한 대만화와 민주화의 성과가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일이기도 하다. 민진당은 박사학위를 가진 재원 채영문 여사를 주석으로 선출했는데 중국·대만 관계의 귀추에 따라서는 민진당 정권의 복권이 있을 것이 전망된다.

현대판 ‘조공 외교’와 기로에 선 일본

중국은 국내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교에 뛰어나다. 인민일보는 세계 정상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러 오는 것을 계속 보도하고 있다. 중화세계질서 속에 각국 정상이 앞다퉈 오고 있다는 것은 조공외교의 현대판이다.

이에 비해 일본 외교는 어떤가. 중국 외교관에 비해 의사소통 능력 등 외교 역량이 떨어져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는 데 장애요인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 매체들은 오바마 정부가 중국을 중시해 일본과의 관계는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월의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거액의 미국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미국의 대중국 저자세가 두드러진다.

이와 같은 대중 유화정책에 관해 미국에서는 클린턴 장관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뒤로 미루려 했던 것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이 민주·공화 양 진영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맞지 않는 여러 요인이 많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국내에서 엄청난 뇌물이나 오직이 있는 중국이고보면 중국 당국자는 넘치는 외화를 써서 온갖 외교 공작을 하리라는 감을 잡을 수 있다.

일·중우호라는 좌표축은 일·중 양국간에는 통용된다지만 글로벌한 입장에서 본다면 유효한 대외적 전략은 될 수 없다. 이제는 점차 일·중우호라는 틀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미일관계, 일중관계를 수립할 때가 됐다. 그렇지 않고는 일본은 한층 존재감이 약화될 것이 우려된다.

위기의 본질과 중국혁명의 성과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에 직면한 중국의 지도자는 지난해 12월 긴급 소집된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국제 금융 위기의 충격으로 실물경제 발전 속도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고 심각한 인식을 나타냈고 당의 단결과 사회의 안정을 강력히 호소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 인민해방군·무장경찰·공안이 공산당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서 환경문제나 식량문제를 비롯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간단히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다는 것에 중국 위기의 본질이 있으며 그 영향력도 포함해 중국 문제가 중요한 전인류적 과제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중국은 오는 가을 건국 60주년을 맞이하는데 혁명 중국의 30년 동안은 모택동이, 개혁개방의 30년 동안은 등소평이 각기 붉은 황제로 군림해 세계를 휘젓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성숙과 풍요의 지표 즉 1인당 GDP에서는 2008년 겨우 3,000달러를 넘어 일본의 약3만4,000달러, 대만의 약1만7,000달러에 비하면 너무도 낮은 것이다.

결국 중국 혁명 결과로서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실험은 사회경제적으로는 그 성과가 빈약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돼서는 10 몇 억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안고 있는 중국 그 자체가 인류에게 남겨진 최대의 남북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한 영국의 석학은 러시아 국민에게는 볼셰비키가 유일한 옳고 필연적 선택이었다고 주장하는 자체가 역사가가 빠지기 쉬운 ‘뒷다리 잡는 지혜의 착오’라고 했다. 이러한 견해는 중국혁명에도 해당된다. 그리고 지금 중국에서는 농민공을 비롯한 많은 인간군(人間群)이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것은 혁명 전 중국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

번역·이영훈 교포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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