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사회주의를 꿈꾸는 노회찬은 누구인가
몰락한 사회주의를 꿈꾸는 노회찬은 누구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09.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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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를 위협하는 사람들 (3)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박양균 자유기업원 시장경제팀장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1956년 부산 초량에서 태어났고 1973년 경기고에 입학했으며 고교 재학 시절 ‘유신독재 반대 박정희 타도’ 유인물을 제작 및 살포했다.

1982년 서울청소년직업학교에 입학해 용접기술을 배웠다.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인민노련) 창립에 참여했으며 1989년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됐다. 1992년 출소 후 백기완선거대책본부 조직위원장과 진보정당추친위원회 대표, 1995년 진보정치연합대표, 1995년 통합민주당 당무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2004년 제17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위원으로 당선됐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내세워 참패한 후 2008년 2월 민주노동당을 탈당을 선언했으며, 그후 심상정 등과 함께 진보신당을 창당했으며 현재 진보신당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진보신당 대표로 출마했으나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에 패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그는 1972년 고입 재수생 시절 10월 유신을 겪으면서 자생적 운동권이 되었다고 한다. 1973년 경기고에 입학,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밤새 마시고 토론을 하고 전축을 가지고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가 ‘레닌 전기’라는 책을 통해 마르크스 사상을 접했다고 한다.


학력을 속이고 위장취업

1979년 고려대 정외과에 합격, 1980년 기존 학생운동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은 노동자들의 자각과 단결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하며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노동현장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1981년 그는 학력을 속이고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그리고 1982년 학력을 중졸로 속이고 청소년직업학교에 들어가 용접기술을 배워 1983년 2월 전기용접 2급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1985년에는 인천에서 위장 취업자 150명을 모아 서클을 만들었다. 서클 이름은 ‘인천 노동자 해방투쟁동맹’이라고 불렀으며, 87년 1월에는 ‘살인강간고문정권 타도 투장위원회’라 부르고 ‘TD(타투 ㅌㄷ)’라는 약칭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타투 또는 ㅌㄷ는 김일성이 조직했던 1930년대 반제투쟁동맹의 약칭이다.

1987년 6월 26일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인민노련)을 만들어 인천, 주안, 부천에 있는 비슷한 조직들을 통합했다. 조직원으로 노회찬, 조승수, 송영길, 주대환, 황광우, 최봉근, 신지호 등이 참여했으며 인민노련은 사회주의 혁명 노선에 따라 진보정치활동을 강조했다. 노회찬은 1989년 12월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 받았다.

1992년 출소한 후 민중당 백기완 대통령 선거운동본부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으나 민중당은 총선에서 참패하고 해산됐다. 그리고 그해 12월 매일노동뉴스를 창간했으며 2003년 9월까지 발행인을 맡았다. 1993년 민중당 잔여 조직을 바탕으로 진보정당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민중정치연합과 통합해 진보정치연합을 만들었고 진보정치연합의 대표가 됐다.

노회찬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마치 어려운 생활을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예술에 대한 남다른 생각 때문에 자식들이 악기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 첼로 레슨을 받았고 누나도 피아노를 배웠다. 그 당시 악기 레슨을 받은 사람은 전교에서 노회찬 혼자였으며,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세계 명곡 365곡’이니 ‘500곡집’을 다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 고등학교 때는 노회찬은 친구들과 자취 아파트에서 전축을 가지고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샐러리맨들이 전축을 사려면 짧게는 몇 개월에서 1년 이상의 월급을 지출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음반 가격은 일반인들이 구하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불법의 정당화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2009년 2월 9일 서울중앙지법은 노회찬에게 통신비밀보호법과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www.nanjoong.net)에 “떡값 준 ‘삼성’이 잘못인가? 떡값 신고한 노회찬이 잘못인가?”라고 주장하고,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보복수사와 정치재판이라며 문제를 정치 문제화시키고 있다.

사실 그는 2007년 7월 9일 법정 모두 진술에서 “피해를 받고 응분의 책임을 지더라도 알리는 것이 국민에 도리라고 생각 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작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리자 보복수사 정치재판이라고 비난한다. 심지어 그는 1심에서 중형을 선고한 판사는 촛불시위 참가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촛불재판 몰아주기 판사’라며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나를 기소하라’라는 책에서 스스로 ‘법의 잣대에 개의치 않고 국민에게 도움 되고 옳은 일이라면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하기 때문에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옳다는 명분을 내세워 불법행위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행동이다.

노회찬의 법에 대한 인식은 그의 사면·복권 문제에 대한 소명자료를 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의 사면·복권이 문제가 된 것은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다. 노회찬은 1995년 12월 강서구 등촌동에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사무실을 개소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당시 그는 사면.복권되지 않아 피선거권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법무부와 관계당국에 피선거권 회복을 요청하였으며, 특히 1996년 2월 12일 법무부 장관에게 복권처리를 공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1996년 3·1절 특사에서 복권되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에 보낸 사면.복권 문제 소명자료에서 “이미 지역주민에게 민주당 후보자로서 확실한 인지도(50% 이상)와 지지기반을 확보한 상태에서 신한국당이 상대당의 경쟁자를 피투표권을 제한하는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응이나 해명 없이 조용히 물러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자신의 출마문제를 정치 문제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그의 법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노회찬 대표는 ‘나는 특별해,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면 이건 보복이자 정치 탄압이야’라고 생각하면 자신의 구미에 맞게 법을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즉, 법은 만 명 앞에만 평등하다고 비난하면서 자신도 그 만 명에 포함시키고 있는 셈이다.

사회주의의 꿈

노회찬 대표는 사회주의자다. 그는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자 1세대라고 말한다. 그는 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일까? 그는 자본주의는 우리 사회를 야만적으로 만들며 영원할 수 없다고 보고, 자본주의 이후 더 나은 체제가 올 것이며 자본주의 극복의 신념을 사회주의라고 보고 있다.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선거에서 ‘7공화국 11테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신자유주의체제 해체와 민주적 사회경제체제 확립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기에서 그가 제시한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는 다음과 같다.

≪ 부와 경제 권력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제7공화국’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진다.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란, 소유의 사회화와 사회적 조절을 우위에 두고 다양한 소유와 시장적 조절을 보완하는 체제로서,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을 보장한다.

사회적 소유는 국가적 소유, 공공적 소유, 협동조합 소유, 민주적 참여기업 등을 포괄한다. 사회적 조절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고용 복지향상을 위하여 생산자원과 소득의 재분배를 실시한다. 재벌을 해체하고, 대기업의 독과점을 규제한다.≫ - 2007년 7월 17일 <7공화국 11테제> 중에서

그가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경제체제에서는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소유를 제한하고 적절히 소유와 시장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의 근원은 사회주의다. 사회주의에서는 정부가 계획에 의해 소유와 시장을 조절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것을 단지 ‘민주적 사회경제’로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노회찬의 치명적 오류는 경제문제에서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생각과는 달리 경제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경제문제는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희소한 자원을 잘 배분했을 경우 그는 상당한 이익을 얻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 자원만 낭비하고 손해를 보게 된다. 한번 소비해버린 자원은 다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노회찬은 경제문제를 자원 배분 문제로 생각하고 있지 않으며, 자원은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노회찬은 시장은 단순해 조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매우 복잡하고 위대하다.

노회찬은 존경했던 사람으로 레닌, 호지명, 주은래를 꼽았는데, 레닌은 볼셰비키혁명 전날 밤 기업 경영을 단순화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레닌도 1920년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에게 “기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 자주 무지와 비전문가적 편견으로 왜곡되었다”고 경고했으며, 신경제정책을 도입해 보다 광범위한 시장 활동을 인정했다.

노회찬은 이러한 레닌의 경고를 듣지 못했던 것일까? 그는 레닌의 이러한 경고를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사회를 야만적으로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노회찬은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를 야만적으로 흘러가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부를 창출한 모든 것의 근원은 자본주의제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본주의제도 덕분에 과거에 집권층이나 선택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생활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대중이 필요로 하는 바를 더 잘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는 2000년 평양에서 북한 주민들의 삶의 실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북한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주민들의 삶이 이렇게 궁핍한지 등에 대한 북한 체제에 대한 성찰생각보다는 오히려 빈곤을 도와주지 않는 것을 야만이라고 비판한다.

북한 주민들은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은 계속해서 핵무기 개발을 해 왔다. 미사일이나 핵무기 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본이 들어간다. 이러한 무기 개발에 투자할 자본을 경제 분야에 투자했더라면 북한 주민은 지금보다는 더 좋은 생활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북한 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북한 정권에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노회찬은 사회주의 북한 정권에 대해 분노를 해야 맞다. 왜냐하면 북한 주민이 기아에 허덕이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은 이것이 마치 한국 정부와 북한 지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잘못인양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 노회찬 약력 --------

1969년 부산 초량 초등학교 졸업
1972년 부산 중학교 졸업
1973년 유신독재반대 박정희타도 유인물제작 살포
1976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82년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 취득
1983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8년 고려대 노동대학원 수료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창립
1989년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
1992년 출소, 백기완 대통령 선거운동본부 조직위원장
1993~1998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진보정치연합 대표
1993~2003년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1995년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 겸 운영위원
1996년15대국회 강서을 민주당 후보
1997~1998년 국민승리21 기획위원장, 정책기획홍보위원장
2000~2002년 민주노동당 부대표2002~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2004~2008년 제17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2008년민주노동당 탈당
2008년~ 현재 진보신당 상임 공동대표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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