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인 이사장, "FTA시대를 준비하는 21세기의‘향약’ 자조금"
박영인 이사장, "FTA시대를 준비하는 21세기의‘향약’ 자조금"
  • 미래한국
  • 승인 2009.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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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박영인 한국자조금연구원 이사장
▲ 박영인 한국자조금연구원 이사장
‘국민 고기 국산돼지’를 외치는 탤런트 현영, 우유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우유병에 멋지게 키스를 하는 수영 스타 박태환이 등장하는 광고를 누구나 한 번 쯤은 TV에서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광고를 내보내는 단체들 이름에 공통적으로 ‘자조금(自助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실제 현영이 등장하는 국산돼지 광고는 양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박태환의 우유 광고는 낙농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광고회사에 의뢰해 제작한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자조금’ 제도가 입지가 좁아져 가는 한국 농업과 농민들의 자구책(自救策)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조금은 무엇이며, 이 제도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국내에 처음 자조금 제도를 소개해 이 제도를 입법화 시키는 데 기여해온 박영인 한국자조금연구원 이사장을 만나 자조금의 신비를 풀어보았다.


서울대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뉴질랜드에서 농업경영을, 하버드대 경영대에서 식량 마케팅을 전공한 박영인 이사장은 1960년대 농협중앙회 조사역을 역임하고 그 후 35년간 미국 정부와 UN 식량농업기구, 세계은행 등에서 일해온 식량 마케팅 전문가이다. 박 이사장은 1960년대 말 미 국제개발처(USAID)에서 일할 때 어느 문헌에서 처음 ‘자조금 제도’를 접했다. 농민이 농업발전의 주역이 된다는 이 제도는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당시 우리나라 상황에서 너무나 부러운 것이었다고 한다.

“농업 종사자들이 정부에 농업이 어려우니까 돈을 달라는 식으로 피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자기들이 돈을 내 농업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바로 ‘자조금’ 제도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고기를 많이 안 먹습니다. 한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농민들이 스스로 돈을 내 광고도 내고, 교육도 하고 캠페인도 하는 겁니다. 자조금이라는 말은 1982년에 제가 국내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자조금은 1920년대 미국의 체크오프(checkoff), 1930년대 유럽의 레비(levy)에서 유래되었다. 이 두 가지 모두 농민들이 자신의 산업을 지키기 위해 개발한 농민들의 자구대책이었다.

농민들의 자구책, 자조금

국내에서 자조금 제도는 1990년대 입법이 이루어져 현재 축산과 원예 등 30여개 품목에서 실시되고 있다. 자금 규모는 총 500억 원 정도다. 자조금이 기존의 농업협동조합, 향약 등의 개념과 다른 점은 품목별로 모든 농민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근로자들의 소득공제와 마찬가지로 법에 의해 세액에서 공제되는 식이다. 자조금이 부과되는 거점은 한우의 경우 도축장 같이 돈이 모이는 길목이다. 품목마다 모든 농민이 농산물 판매시에 0.1~0.5% 정도를 자진 공제해 자조금을 조성하고, 매칭 펀드(대응자금)로 정부에서 자조금으로 모인 금액만큼 지원해주는 구조이다.

“자조금을 얘기할 때 ‘하늘은 서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농민이 서로 돕는다는 점에서 향약의 개념과 자조금은 똑같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는 것이 자조금은 모든 농민이 하려면 복잡하기 때문에 한우를 키우는 농부, 닭을 키우는 농부, 난을 키우는 농부 등 품목별로 하는 겁니다. 품목별로 농민들이 우리도 자조금을 하자고 하면 법에 의해 투표를 해요. 통과가 되면 자조금을 하는 겁니다. 돼지자조금을 예로 들어봅시다. 협동조합은 강제성이 없습니다. 협동조합에서는 비용을 내지 않고 사업이 잘되면 여기에 편승하는 무임승차자(free rider)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돼지자조금은 돼지 키우는 농민 누구나 의무적으로 돈을 내야 합니다. 정부는 법을 만들어주고 법을 어기는 것을 감시합니다. 실제 활동은 농민들 스스로 하는 겁니다.”

자조금으로 모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농민대표들이 결정한다. 이 돈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홍보, 판로 확대를 위한 시장개척, 유통정보 제공 및 기술 및 공동상품 개발 등에 사용된다. 박 이사장은 한우자조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예전에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먼저 날소를 팔면 누군가 잡는 사람이 있고 유통하는 사람, 요리해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채널이에요. 그런데 농민들은 소 값이 떨어지면 앉아서 고스란히 당하는 구조였습니다. 소비자의 쇠고기 값은 별로 내리지 않습니다. 유통 메커니즘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우자조금을 하면서부터는 한우 키우는 농부들이 한우 음식점을 합니다. 강원도 쪽에 가보면 길옆에 한우 전문점이 많습니다. 이 전문점들은 한우를 키우는 농민들이 하는 겁니다. 소만 키우던 사람들이 유통도 하고, 음식점도 운영하고 한우 캠페인까지 합니다. 이들 중에는 연간 10억대의 이익을 벌어들이는 농민들도 많고 대학 나온 똑똑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소만 키우는 것보다 30% 부가가치가 더 생깁니다. 이것을 계열화사업이라고 부르는데 닭고기의 경우 25%가 계열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돼지와 우유도 그런 시스템으로 하고 있습니다.”

박 이사장은 자조금을 하면서 농민들의 주인의식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농민들이 값 떨어졌다고 시위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우리 산업을 책임지자는 것이 자조금입니다. 농장을 어떻게 경영하고 식품 안전성은 어떻게 확보하고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은 혼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자조금을 내 이런 것을 하자는 겁니다. 예컨대 소 키우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기들이 할 일이 뭔지 답이 나옵니다.”

박 이사장은 장기적으로 자조금이 지구 온난화를 예방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자조금으로 지구온난화, 식량위기에 대비”

“현재 유럽에서는 농업이 공해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을 먹는 동물이 트림을 하고 소가 방귀를 뀌면 대기를 오염시킵니다. 짐승의 분뇨와 배설물은 상수도를 오염시킵니다. 지금까지는 이 배설물을 바다에 갖다 버리지만 앞으로 몇 년 내에는 국제협약에 따라 분뇨를 못 버리게 됩니다. 또 분뇨를 모아 화학처리를 할 때 냄새가 나고 그것이 공기를 오염시킵니다. 동물에서 오는 오염이 전체 오염의 20%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유기농 벼를 제배할 때 퇴비를 많이 쓰는데 이때 논의 저수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도 유럽에서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자조금이 지금은 소비 촉진 용도로 쓰이지만 지구 온난화에 농업이 문제가 있고 그것을 앞장서서 해야 할 주체도 농민들 자신들입니다. 우리 농업도 점점 선진국형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도 자조금을 써서 이 문제를 연구할 수 있을 겁니다.”

박 이사장은 자조금 제도가 식량위기에 대비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 60억이 넘는 인구 중에 배고픔을 느끼면서 잠자는 사람이 10억입니다. 우리나라도 배고픈 사람들을 돌봐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 식량 문제는 쌀은 남아도는데 다른 곳에 곡물을 써서 문제입니다. 짐승에게 곡물 사료를 주고, 곡식을 사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곡물로 플라스틱 대체용 제품을 개발합니다. 선진국에서 이렇게 하다보니까 배를 채워야 하는 후진국들은 갈수록 어렵습니다. 식량에 있어서 남북문제는 앞으로 갈수록 더 심해집니다. 농업하는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농사짓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등 자조금으로 식량 위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북한에도 비만 오면 홍수가 나기 때문에 식량문제가 심각합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자조금으로 북한에 쌀과 옥수수를 제공하고 농업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북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조금은 축산 분야뿐만 아니라 파프리카, 감귤, 참다래 등 26개 품목에서 원예임의자조금이 실시되는 등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요즘의 과제는 쌀에 자조금을 도입하는 것이다. 쌀 자조금 사업이 도입되면 쌀 소비 홍보와 가공품 개발, 쌀 수급 안정 등에 자조금이 사용된다.

“쌀은 지금 재고가 남아돌아갑니다. 요즘에는 쌀 소비가 보통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1980년에 1인당 132.4kg을 먹던 것이 2008년에 75.8kg으로 줄었습니다. 쌀을 부식화해서 쌀 소비를 늘려야 합니다. 다행히 쌀도 돈이 모이는 길목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소득으로 면적에 비례해 돈을 주는 직불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WTO협정인데 쌀 농사 짓는 사람에게 정부에서 다 주는 겁니다. 거기서 자조금을 떼는 겁니다. 예전에 농사도 안 짓는 사람들이 이 돈을 받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정치하는 쪽에서는 ‘직불제에서 자조금을 뗀다’고 하는 것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부 농부들 중에는 왜 우리 돈에서 자조금을 떼느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쌀 자조금 사업은 될 겁니다.”

FTA시대를 준비한다

한미 FTA, 한-EU FTA가 발효되면 우리 농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조금이 FTA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박 이사장은 자조금이 국내 농산물을 수출하고 국내 생산을 늘리는 쪽에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FTA가 되면 우리 농업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죠. 자조금은 수입을 많이 하자는데 쓰는 돈이 아니고 수출을 하고, 국내 생산을 돕는 쪽에 사용될 겁니다. 자조금은 국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농부들이 어떻게 자급률을 높이겠습니까. 국내 소비도 늘리고 수출도 늘리는 데 쓰는 것이지요.”

단체 규모와 자금 규모가 큰 만큼 자조금 단체 운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쌀 시장 개방과 FTA로 각종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 자조금 단체가 이익 집단화돼 시위에 앞장서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다. 하지만 박 이사장은 자조금 제도를 만든 장본인으로서 이에 대한 입장을 명쾌히 얘기해 주었다.

“자조금은 어디에 쓰고 어디에 못쓴다는 개념이 있어요. ‘로비’에는 자조금을 못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조금법을 소개하고 소비를 홍보하고, 교육·리서치에만 쓰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기타조항에는 협회 차원에서 자조금의 원칙 범위 내에서 합의하는 데 돈을 쓸 수 있게 는 되어 있어요. 이익 단체가 된다면 정치권에서 자조금을 못하게 압력이 올 겁니다.”

박 이사장은 앞으로 농민들이 시위를 그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그동안에 농민들이 (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 것은 우리 농업이 경쟁력이 없다고 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FTA를 하게 되면 혜택 받는 사람과 불리한 사람이 있습니다. 농민들이 시위를 한 것은 우리 정부가 사전에 농업을 어떻게 하자는 약속을 하고 개방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한미 FTA의 경우에는 반미가 있기 때문에 시위가 세게 일어난 것이지요. 정부에서도 농업에 예산을 많이 쓰고 있고, 농민들도 FTA의 이익이 무엇이고, 불이익이 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할망정 대미 혹은 EU를 상대로 한 시위는 10년 후면 끝날 거에요.”

제도가 성숙하는 데 시간이 필요

평생 농업 분야에서 일해오면서 35년간 미국기관에서 배운 제도를 국내에 접목시키고 있는 박영인 이사장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자조금 원칙의 전도사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쌀 자조금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고, 해외 자조금 제도에 대한 연구에도 끊임없이 몰두하고 있다.

“지금은 일부 품목에서 자조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5년이나 10년 후가 되면 일반화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농부들이 자조금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농민이 농업부문에서 주최가 되는 농업 민주화에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요.(웃음)” #

서은옥 기자 seo0709@fu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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