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 오바마에게 주는 교훈
김대중이 오바마에게 주는 교훈
  • 미래한국
  • 승인 2009.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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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립스키 전 WSJ 편집국장
▲ 세스 립스키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 편집국장을 역임했던 세스 립스키(Seth Lipsky)는 지난 8월 23일자 월스트리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을 비롯, 먼저 내부적으로 민주화되지 않은 정권(독재정권)들과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추구하는 것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꿈꾸며 추진했던 햇볕정책이 이런 이유로 실패했고 이는 정권을 보수세력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교훈삼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독재정권과의 포용정책은 실패할 뿐
실패한 ‘햇볕정책’으로 정권까지 내줘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은 ‘햇볕정책 군인’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그는 아시아 민주주의 투쟁의 영웅으로 지난달 죽은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여사와 같다. 하지만 다른 점에서 그는 좀 더 복잡하고 위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교훈으로 삼을 만한 내용이다.

나는 1979년 김대중이 서울에서 가택연금 중일 때 그를 만났다. 당시 나는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 편집국장이었는데 그를 만나기 위해 동교동을 찾았다. 김대중 측은 내가 그의 집을 방문할 때 정부 요원들이 접근할 것이라며 대꾸하지 말고 계속 집까지 걸어오라는 지침을 줬다. 실제로 내가 골목길에 들어서자 정부 요원들이 다가왔고 나는 지침대로 했다. 김 씨의 측근들이 문 앞에서 내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집에 들어갔고 50만 명의 한국인들이 모인 대형집회를 인도했고 박정희 대통령을 거의 권좌에서 물러나게 할 뻔했던 사람의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김대중은 1971년 대선에서 진 후 한국을 떠났다. 박 대통령이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자 해외에서 박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1973년 일본 도쿄에서 납치돼 한국으로 이송됐다. 그는 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후 1976년 체포돼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라는 그 때나 지금이나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 대결을 벌이는 곳 중 하나다.

그는 통일 전에 한국의 민주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반복했고 통일은 민주적으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그런 종류의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통 반체제 인사나 망명자들은 괴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박정희 통치 하 경제성장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 내 비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경제성장은 공산주의 국가들에 비해 자유세계가 우월하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경제적 성공이 유교권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대중은 박 대통령 하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이 있지만 민주적 시스템이 없으면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적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는 그 때 그에게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한 달 뒤 측근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박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사망했다. 전 세계를 뒤흔든 암살이었고 새 군부인 전두환이 등장해 다시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어 광주에서 봉기가 일어나 200여 명이 죽었고 김대중은 당시 가택연금상태였음에도 이를 배후에서 사주했다며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선고는 경감됐고 그는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8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한 1988년 한국에서 민주적 선거가 이뤄졌고 지금까지 민주적 선거가 이어오고 있다.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복귀를 보였으며 그의 당선으로 한국에서는 수십 년 간의 보수 통치가 종식되고 진보주의자(liberal)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는 당시 경제문제 해결에 착수했지만 이에 못지 않게 20년 전 담배 연기가 가득한 속에서 내게 상세히 설명했던 그 이론들을 현실화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2000년 북한 독재자 김정일과의 만남을 가져왔고 이를 계기로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데탕트의 기간 동안 다양한 경제 프로젝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김대중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일에게 수억 달러를 비밀리에 준 스캔들이 드러났다. 김대중은 2개의 한국 중 한 곳에서만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말한 소위 ‘민주적 통일’을 시도한 듯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에 싫증이 났고 그의 햇볕정책은 실패로 폐기되면서 2007년 보수 정권이 들어섰다. #

워싱턴 = 이상민 특파원 genuinevalu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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