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권력 암투 내막
북한의 권력 암투 내막
  • 미래한국
  • 승인 2009.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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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로에 놓인 김정일의 생존법


북한 내부는 지금 예측하기 어려운 안개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권력 암투가 진행 중이다. 이 암투는 김정일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예측과 함께 김정일 이후를 누가 장악하느냐 하는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정일은 이 암투 속에서 자신의 건강문제를 극복해야 하고 또 안정적 권력이양과 개혁개방의 과제를 실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과연 김정일의 마지막 생존법은 무엇일까? 평양사람들과 탈북민들의 최신 정보들을 취합해 북한의 권력 내부를 구성해 보았다.

개혁파 장성택, 수구파 이제강 카드로 권력 휘둘러

2003년 무렵부터 김정일의 후계구도에 대한 관심과 함께 차남인 김정철이 그 대상자로 떠올랐으나 김정철의 자질이 문제가 돼 2006년부터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나 2008년부터 김정일 자신이 직접 삼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거론하면서 대외적으로 후계구도가 확정적인 것으로 천명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앙당 조직지도부가 김정운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한 선전사업에 직접 발 벗고 나섰다. ‘150일 전투’가 그 대표적 사업이다. 본래 선전사업은 조직지도부 몫이 아니라 선전선동부의 일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유례 없는 일이다. “모두다 150일 전투에로!”와 “비약의 용마타고 폭풍 쳐 달리자!” 등 군중참여 촉구와 전투승리에 대한 문구를 사용하여 150일 전투가 김정운이 기획하여 진행시키는 것이라고 주민들에게 우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운의 후계구도가 계획대로 완성될 것인가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25세의 앳된 나이로 과연 김일성 왕국의 3대 후계자로 들어설 수 있는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목숨을 건 치열한 권력 암투가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권력 암투의 진원지

이 권력 암투의 진원지는 김정일 자신에게 있다. 그는 후계구도를 구상하면서 두 개의 권력의 축을 세워두었다. 2003년 이래 김정일의 최상위 파워엘리트를 대표하며 쌍벽을 이룬 이 세력들은 바로 장성택(64)과 이제강(79)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두 축이 서로 경쟁하면서 권력내부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스스로 소진시켜가도록 하여 당초 구상대로 권력을 끌어가려는 것이 김정일의 속셈이며 고도의 통치전략이다.

한때 김정남의 후견인으로 급부상했던 장성택은 김정일의 매제이고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을 맡고 있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으로서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만들어지기까지 김정일의 권력대행자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장성택은 보안성과 검찰,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 등의 권력기관을 장악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장성택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카운터파트를 세웠다. 그가 바로 이제강이다. 이제강은 당 간부와 당 조직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며 김정일 다음의 실제적인 권력 1인자이지만 그의 모습은 늘 베일에 가려져 있다.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만 35년 동안 잔뼈가 굵은 그는 평양 주석궁 내에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서 김정일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김정일은 자신이 속한 당 세포 조직의 세포비서인 이제강 앞에서 늘 생활 총화를 해야 한다. 즉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을 비롯하여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교시’ 및 ‘말씀’을 근거로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을 한다. 이것은 김일성 시절부터 정해진 일종의 국법이므로 김정일도 어찌할 수가 없다. 결국 세포비서에게 개별보고를 해야 하는 김정일은 자신의 위에 이제강을 상관으로 모시고 있는 셈이다.

장성택과 이제강의 권력 암투는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그 발단은 이제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강은 장성택의 방탕한 호화생활과 가족중심의 세도가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여 조직지도부를 발동시켜 중앙검열을 실시하여 그 비리를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그 결과 장성택은 2004년 초 강등돼 고위간부들의 처벌방법인 ‘혁명화’로 지방기업소에 내려가는 숙청을 당하고 말았다. 그 사이에 이제강은 장성택이 권력을 휘둘렀던 행정부를 국토부로 조직을 개편하고 자기 쪽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겼다.

장성택이냐, 이제강이냐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즉 장성택이 개방과 개혁에 적극적이란 점이다. 장성택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려 조금씩 개혁개방을 시도했으며 이와 함께 개방의 성향을 지닌 김정남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중산층 간부들로부터 호응을 받았으며 당 조직의 중간 간부들 사이에 많은 변화를 감지하게 했다.

그러나 당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기존의 수구세력들은 이러한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장성택의 추진사업을 가로 막았다. 당의 권한과 입지가 축소되고 현장 행정일꾼의 힘이 강화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반대 세력의 중심에 이제강이 있는 것이다.

그 무렵 김정일의 여동생이며 장성택의 아내인 김경희가 ‘남편을 살려 달라’며 매달리자 2007년 김정일은 장성택을 다시 불러들였다. 숙청 3년 만에 복귀한 장성택은 첫 사업으로 철도성 조직비서인 이용순(당시 81세)의 비리사건을 처리했다. 이용순은 김정일이 총애하던 이용무 국방위 부위원장이 숙청돼 고생할 때 헌신적으로 돌보아준 사람이다. 그래서 이용순에게 철도성 조직비서 자리를 주었고 그는 이를 기회로 금 장사를 하고 80여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는 등 비리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제강은 번번이 검열에서 이용순을 감싸고 돌아서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러나 장성택은 그의 비리를 폭로하여 결국 2008년 2월에 공개총살을 시켰고 그를 옹호하던 이제강의 최측근 40여 명도 함께 해임시켰다.

그러나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세운 최근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 암투에서 장성택이 이제강에게 판정패했다는 설이 있다. 김정운의 뒤에는 이제강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김정일 자신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가기를 주저하며 다시 이제강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70 고령의 기존 권력층이 김정운을 앞세워 북한의 권력구도를 요리하려는 것이지만 그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개혁 개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중간층 세력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고난의 시기를 겪고서도 경제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두고 당 간부들이나 최고인민회의 대표들은 ‘이제는 도저히 사회주의를 지킬 수 없다’고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는 동구 유럽과 러시아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소식통에 의하면 40대의 비교적 젊은 층들이 주축이 돼 새로운 모색, 즉 개혁 개방을 하기 위한 공통된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력이 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북한의 권력 내부에서는 장성택을 따르는 개혁파 세력과 이제강을 따르는 수구파 세력이 서로 충돌하며 미래를 한 치도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시간, 김정일의 책상 위에는 장성택과 이제강의 비리를 고발하는 온갖 보고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은 장성택과 이제강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때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비리를 핑계 삼아 북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빌미로 사용할 것이다. ‘장성택인가, 이제강인가’, 마지막 생존법은 김정일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암투의 결정판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즉, 인민의 인내가 한계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

김창범 편집위원 · 이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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