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케네디 타계, 美 자유주의 종막인가
에드워드 케네디 타계, 美 자유주의 종막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09.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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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의에 큰 정부 필요하다는 ‘뉴딜식 자유주의’ 신봉
▲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M. Kennedy)

오바마 추진, 국가개입 ‘전국민의료보험’ 성패에 좌우
“미국 좌파들에게 그는 사자였지만 미국 보수주의 운동에는 해악이었다”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M. Kennedy·사진) 미 상원의원이 지난 8월 26일(현지 시각) 77세의 나이로 타계한 후 3일 뒤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힐 때까지 미국 내에서는 ‘테드’(‘에드워드’의 애칭) 케네디의 사망을 추모하는 열기로 가득했다.

언론마다 테드 케네디의 일생과 활동을 연일 특집으로 조명했고 보스턴 존 F. 케네디 도서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5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다녀갔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 내외는 물론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그의 장례예배는 미 전역에 몇 시간 동안 생방송되었다.

대통령도 아닌 한 연방 상원의원의 사망에 미국 전체가 이처럼 뜨겁게 반응하는 것은 그의 배경인 명문 ‘케네디’ 가문이 막을 내리는 아쉬움과 함께 그가 메사추세츠 8선 상원의원으로 미 역대 상원의원 중 세 번째로 오랜기간인 46년을 미 상원에서 활동하며 미국 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평가는 ‘미국식 자유주의(Liberalism)의 영웅’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9일 고 케네디 의원은 미국식 자유주의를 규정해 왔다고 평가했다. 그가 가난한 자, 이민자 및 다른 소외계층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사회 정의를 중시하며 권리 보호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자유주의를 구현해 왔기 때문이다.

케네디 의원(민주당)이 46년 간 발의하거나 지지한 법안들 가운데는 건강보험 및 어린이 복지, 교육 등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내용이 많다. 지역사회건강관리센터설립법(1966) 전국군인아동보호법(1989) 가족과 의료휴가법(1993) 건강보험 보유와 책임법(1996), 주별 어린이 건강보험 프로그램(1997) 등과 이중언어교육법(1968), 낙오학생방지법안(2001)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시민권리법(1964), 이민자들의 쿼터 할당을 폐기한 ‘하트-셀러 법’(1965) 등의 법안을 마련했고 낙태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적극 지지하며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등 철저한 자유주의 신봉자인 ‘리버럴(Liberal)’이었다.

이런 이유로 케네디 의원에 대한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은 평가는 당연히 좋지 않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낸 윌리엄 버넷(Bennett) 보수 평론가는 지난 8월 26일 보수성향의 잡지인 ‘내셔널 리뷰’ 온라인에서 “미국 좌파들에게 그는 사자였다. 하지만 미국 보수주의 운동에는 해악이었다”고 밝혔다.

미 보수주의자들이 가장 용서하지 못한다는 케네디 의원의 연설은 1987년 당시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보수계의 상징인 로버트 보크(Bork) 판사를 폄하한 말이다. 케네디 의원은 상원에서 “로버트 보크의 미국은 여성들이 뒷골목에서 낙태를 해야만 하고 흑인들은 인종차별 식당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며 깡패 같은 경찰이 한밤중에 시민들의 문을 부술 수 있고 학생들이 진화론을 배울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고 이를 계기로 보크 판사는 대법관이 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철저한 리버럴인지 보여주는 말이다.


케네디 의원의 자유주의(Liberalism)의 핵심은 ‘큰 정부’다. 소위 ‘뉴딜 자유주의’로 국가 혹은 정부의 힘이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주 엔진으로 보고 정부가 사회의 모든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다.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1932년에 태어나 뉴딜정책을 직접 보고 겪은 케네디 의원이 ‘큰 정부’의 자유주의 신봉자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및 1990년대 미국에서 보수주의 운동이 커지며 ‘정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자체’라는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말에 힘이 실리자 케네디 상원의원이 신봉한 ‘큰 정부’ 자유주의는 약화되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자유주의는 구식으로 여겨졌고 빌 클린턴이 제시한 제3의 길이 1990년대 부상했다. 클린턴은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낙태, 동성애자를 인정하면서 자유주의처럼 관용적이지만 경제에서는 전 세계 자유시장을 지지하고 사회복지를 중단하는 등 ‘작은 정부’의 입장을 취했다. 이런 대세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상원의원은 큰 정부의 자유주의를 고수하며 그의 지역구인 메사추세츠 주에서 ‘전주민의료보험’이 실시되도록 했고 이를 미 전국적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는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자신의 입장을 잘 계승할 것으로 판단,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오바마를 지지했고 그의 기대대로 현재 오바마 대통령은 전국민의료보험을 위한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개입해 전국민이 의료보험을 받도록 한다는 전국민의료보험 개혁을 반대하는 미국민들이 많아지면서 케네디 상원의원이 신봉해온 ‘뉴딜식 자유주의’는 한물 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부 미국 역사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큰 정부’를 대공황, 2차 세계대전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만 수용한다”며 “원래 미국인들은 정부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맥락에서 케네디 상원의원의 죽음은 미국의 뉴딜식 자유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인기 없는 공화당 대통령을 배경으로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 적극적 정부 역할을 주장하지만 국민들의 반발을 사는 것은 자유주의의 효과가 다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큰 정부’ 주도의 자유주의가 이를 신봉해온 케네디 의원으로 죽음으로 정말 종말을 내리는지 여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보험개혁의 성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케네디 의원은 지난해 “내 인생의 목적은 전국민의료보험을 미국 시민의 중요한 권리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케네디 의원의 유언과 같은 이 말을 잘 받들지 두고 볼 일이다. #

워싱턴=이상민 특파원 genuinevalu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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