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국민들은 무관심 정치인들은 정파이익 추구
개헌, 국민들은 무관심 정치인들은 정파이익 추구
  • 미래한국
  • 승인 2009.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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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 진단
▲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8월 31일 헌법연구자문위 김종인 위원장으로부터 개헌안 최종 보고서를 전달 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
 
“죽을 만하면 되살려내고 잊어버릴 만하면 끄집어내는 의제가 바로 개헌이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지난 2007년 7월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07년 초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고 7월에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및 대통령의 특별사면제한, 대통령 결선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멀티 포인트 개헌’을 강조한 바 있다.

사실 개헌은 역대 정권들이 줄곧 부각시켜온 ‘진부한’ 이슈다. 1990년에는 민정·민주·공화당이 민자당이라는 간판 아래 3당 합당을 하면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내각제 개헌 문서에 서명한 선례가 있다. 그러나 합의는 이해관계가 충돌되면서 1년도 안 돼 파기됐다.

1997년 DJ정부 출범 후에도 내각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큰 이슈로 확대되지는 못했었다. 2002년 대선에서 대선 주자들의 공약으로 등장했던 개헌은 앞서 소개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주장으로 이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에 개헌안 발의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거부함에 따라 개헌 문제는 18대 국회 초반에 논의하는 것으로 봉합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잊어버릴 만하면 끄집어내왔던 이슈인 ‘개헌’이 현 정부 들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토조항, 통일조항, 사회적 시장경제조항 등 큰 틀에서의 개정 논의보다 권력구조 개편이 주된 관심이다. ‘권력구조 개편’은 지난 아홉 번의 개헌에서도 개정의 초점이었다.

17대 대통령 취임 이후 헌법에 대해 말을 아껴왔던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너무 잦은 선거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다”면서 “선거의 횟수를 줄이고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한 달이 지난 9월 15일에는 “국가적 과제인 행정구역과 선거구제 개편문제에 플러스해서 통치권력이나 권력구조 개편으로 제한하면 (개헌이) 검토대상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개헌 문제를 너무 크게 영토문제에서부터 이념적 문제까지 들어간다면 헌법 개정은 실제로 이뤄지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직후부터 헌법연구자문위원회 구성한 김형오 국회의장도 개헌 논의에 적극적이다. 국회의장 직속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인)는 지난 8월 28일 보고서를 내 국무총리가 내치와 함께 외교 안보 국방 권한까지 갖는 분권형 정부형태의 개헌안을 제안하는 ‘헌법연구자문위 결과보고서’를 최종 확정했다. 이 결과 보고서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상징적인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의원내각제에 가깝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자문위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여야에 헌법개정특위 구성을 요청,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발언 이후 정치권 내에서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우선 한나라당은 내년 상반기까지 개헌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9월 16일 한나라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개헌과 정치개혁은 국회 몫”이라고 발언하면서 개헌에 불을 지피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18일 당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개헌이 필요한 것은 시대적 요청이며, 권력분산은 민주주의 발전과 지역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원내대표 산하 개헌연구 TF(태스크 포스)구성 방침을 밝혔다. 안 원내대표는 “이주영 의원을 팀장으로 이종구, 이두아 의원이 확정되었으며 나머지 인원은 김성조 정책위의장과 상의해 선정한 뒤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주류, ‘권력 분산’ 개헌 추진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개헌 논의를 하자는 입장이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9월 17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100년 앞을 생각해 국가 운영을 어떻게 할지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기본권의 확장에 중심을 둔 개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원내대표는 “개헌은 시대정신, 시대흐름을 반영해야 하고 필요하면 통치구조를 논의하는 식으로 해야지 오로지 권력구조 개편안에만 초점을 맞추면 시대 역행적 개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국민적 공감대가 미흡해 본격적인 개헌 논의는 지방선거 이후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소폭으로 하려면 차라리 그냥 놔두는 것이 낫다”면서 제한적 개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권력구조 개편에만 한정된 정략적 개헌 논의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야당들은 사회적 권리와 인권 등을 포함한 근본적인 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에서도 친이·친박 계열의 입장이 달라 사실상 개헌에 필요한 의족수를 채울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유력한 차기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은 지난 9월 18일 정몽준 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개헌은)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최근 개헌 논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이계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력을 사실상 국무총리와 나누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개헌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개헌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6%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했고, 이원집정부제는 16.2%에 불과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소장 진수희 의원)가 9월 10일 공개한 개헌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4년 중임제가 48.2%, 분권형 대통령제가 35.2%로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응답자가 더 많았다.

이에 따라 현재 정부와 한나라당 주류, 김형오 국회의장이 전면에 나서 추진하고 있는 개헌 논의가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특정 차기 대선주자를 염두에 둔 ‘정략적인 권력 분산 중심의 논의’로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권력 나누기가 아닌 권력 제한에 초점둬야

20여년간 문제가 제기되어온 현행 헌법을 개정하자는 데 정부와 여야, 국민들 사이에는 거의 이견이 없다. 대통령임기(5년)와 국회의원임기(4년)의 불일치로 선거 횟수가 잦아 비용이 낭비되며,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되고 임기 말에는 급속도로 레임덕(권력누수현상)에 빠진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헌의 시기와 방향이다. 개헌을 하려면 임기 초반에 했어야지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아무리 개헌의 취지가 좋아도 지금은 논의 자체가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지난 2007년 개헌을 제안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의 개헌 취지가 어떠한지는 논외로 하되 임기 말에 대통령 장기 집권의 우려가 있는 4년 연임제 개헌을 주장해 진실성을 의심받은 선례가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국민들의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점도 개헌 논의에 있어서의 난관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는 지난 9월 18일 한 일간지의 기고문에서 “개헌을 통해 무엇을 구현하려 하는지 어떻게 어느 정도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동의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이 개헌의 절차적 정당성 확립을 위한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개헌의 절박성을 국민과 함께하는 공유의 가치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헌법 개정론의 수준과 범위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새삼 일깨워 주는 규범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9월 7일 자유기업원에 기고한 글에서 “개헌 논의가 권력자들끼리 권력 나누기를 목표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치우치고 있다”면서 “권력 나누기가 아닌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개헌 방향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최근 칼럼을 통해 “개헌론이 확산될 경우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논란이 일거나 국론분열을 가져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번의 개헌은 당장의 병폐를 척결하기 위한 개헌으로 그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철수 교수는 개헌론이 불거져 나온 지난 2007년 초 월간조선 기고문에서도 “일단 개헌 논의가 공론화되면 어떤 내용의 개헌안이 튀어 나올지 아무도 모르며, 통제하기 힘들다”면서 “개헌 논의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친북세력들은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현행 헌법 제3조를 반 통일적이라는 이유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면서 “특히 우려되는 것은 개헌 논의가 소위 평화·진보 세력에 의해 연방제를 위한 통일헌법안 마련 쪽으로 변질될 경우”라고 설명했다.

실제 개헌이 이루어지려면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선 일정을 감안해 내년 지방선거 이전이 개헌하기에 적기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 개헌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라서 여야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고, 해결해야 할 국가 현안이 많은 시기에 국력을 여기에 쏟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다음 대통령 선거 이해당사자들이 개헌 논의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다수다. 잊혀질 만하면 끄집어내왔던 개헌 이슈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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