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또 개정해야 하나
헌법 또 개정해야 하나
  • 미래한국
  • 승인 2009.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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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임광규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회장
▲ 임광규 회장

헌법을 한번 또 개정해 보자는 것이 상당수 정치인들의 의견이다. 각계 각층의 시민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희망대로 헌법이 개정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러 차례 헌법을 개정할 때마다, 정치인들은 권력구조를 고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수많은 문화인들, 중소기업인들, 농어민단체참가자들, 국영기업체임직원들, 노동단체참가자들, 신학설을 주창하는 법학자들, 사회운동가들, 언론인들이 나라를 위하여 한 가지씩 건의하면, 권력구조를 고치려는 정치인들은 그 실현의 지원자를 더 확보하려고 이 건의들을 받아 들여 그런 희망문구들을 헌법 조항으로 만들어 헌법전(憲法典)속에 넣어 주게 된 것이다. 그러면 국민들은 이 좋은 문화조항, 중소기업보호육성조항, 농업 어업보호육성조항, 국영기업계획, 근로자의 단체행동권 등을 세금과 부담으로 지탱해 주어야 한다.

헌법의 정신을 간략히 담은 전문을 비교해 보자.

1948년의 우리 헌법전문에서,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라고 우리의 독립정신을 감명 깊게 적었는데, 1987년의 우리 헌법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고 산문적으로 덧붙여 놓았다.

기본권 조항들 중 일부를 들여다 보자.

제헌헌법 제13조는 모든 국민의 언론 자유를 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1987년 헌법 제21조는 언론이 타인의 명예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거나 언론 때문에 명예를 침해받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는 군더더기 조항까지 써 놓고 있다.

제헌헌법 제16조는 국민의 균등교육기회를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1987년 헌법 제31조는 그 이외에도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거나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 거나 하는 비헌법사항까지 나열하고 있다.

교육의 전문성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문구는 오히려 교육수요자들 학생들 학부모들을 무시하고 교육공급자들 직업교사들이 자기들의 공급 논리만을 고집하는 핑계가 될 수도 있다. 교육의 자주성이나 대학의 자율성은, 조선조 500여 년간 나라의 정치에 간여해 온 성균관 유생들의 전통도 있는 이 나라에서 헌법에 넣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었는가 질문하고 싶다. 교육의 중립성이라고 썼는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훼손하려는 자들이 그동안 이 조항을 가장 많이 악용하여 왔다. 국가의 평생교육 책임까지 헌법에 넣어서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그만큼 땀 흘려 일하는 납세자가 그만큼 더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것을 정치인들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제헌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라고 간명하게 적고 있다. 그런데 1987년 헌법 제32조 제2항은 이런 문구를 적고 있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도대체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근로의 의무란 무엇인가. 국민도 모르는 이런 조항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런 가당치 않은 명제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만들어야 하고 국민의 세금을 축내서 박사들을 고용하여 연구하라고 자리를 만들어 놓을 것이다. 미사여구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미사여구 늘어 놓는 사람 치고 실사구시하는 사람 없다. 미사여구 늘어 놓는 헌법 치고 제 몸 제대로 간수하는 헌법 없다. 바이마르공화국헌법이 그렇지 않았던가.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기초인 헌법은 대체로 전문, 국민의 기본권, 통치기구사이의 견제와 균형, 기타 비헌법조항으로 나누어진다.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고치고자 하는 것은 주로 통치기구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다.

국정의 실권을 임기 보장의 대통령에게 맡기느냐, 국회 다수당의 신임을 받고 있는 국무총리에게 맡기느냐 어느 쪽인가에 관하여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많이 논의하여 오고 있으며, 대통령의 경우 임기를 단임으로 하느냐 중임제로 하느냐, 대통령제라 하더라도 대통령에게 외교 안보만을 맡기고 나머지는 국무총리에게 맡기느냐를 놓고 논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독재도 겪었고, 바로 그 대통령제의 대통령이 물이라는 소리를 들은 일도 있다. 대통령 권력의 영구화를 시도하는 발판이 중임제였던 쓰라린 역사 때문에 단임제로 바꾸기도 하였다. 아슬아슬한 국회 의석 차이의 분포 때문에 내각책임제의 국무총리가 우유부단하다가, 거리가 극단주의자들의 데모 시위판이 된 끝에, 정부가 비헌법적으로 붕괴된 일도 있다.

대통령제에서는 국민은 5년 마다, 나라를 위기에서 지킬 수 있는 위기관리의 능력이 있고, 이익집단의 집단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인물을 선출하는 선택을 할 수가 있는 반면, 깜박 속아 대한민국의 적과 부당한 뒷거래를 하는 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해프닝이 일어 날 수도 있다.

내각책임제에서는 국민은 그때 그때 지역구에서 국회의원들을 뽑아 평소의 정강정책을 알고 있는 당이 다수당이 되게 하여 그 다수당으로 하여금 국정을 운영하게 할 수 있는 반면, 다수당 국회의원들 속에 침투한 간첩에 의하여 국가 기밀이 줄줄이 새고 결정적인 위기에 처하여 국가안위를 힘겨운 다수찬성 확보에 걸어야 하는 불안도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문제의 본질은 현 상황에서 위기관리의 문제이다. 평화 시에 나라를 편안하고 번영하게 운영하느냐는 문제도 좋다. 그러나 위기에 때에 나라를 어떻게 지키느냐는 문제가 우리의 오늘 처럼 극명한 때가 없었다. 전세계를 전부 비교해 보아도 우리처럼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의 헌법을 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나라의 위기관리’이다. 우리나라가 국가위기 관리에 문제가 예견된다면 헌법은 반드시 고쳐야 하지만, 그 문제가 아니라 그저 개선을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면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위기관리의 문제를 떠나거나 무시하고, 정당간의 편의나 정치인들의 권력 분점 등을 위하여 그럴듯한 명분들 내세우고 헌법 개정을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나라를 위하여 해로울 수도 있다.

정 고치고 싶다면, 추가 조항 제1조 추가조항 제2조 하는 순서대로 추가하면 된다. 세상에 좋은 것 모든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면 좋은 것 하나도 갖지 못하게 되는 이치대로, 헌법전을 전부 뜯어 고쳐 단번에 신장개업하려는 지난 1987년의 방식은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헌법의 권위가 세월이 갈수록 존귀스러워진다.

우리 헌법의 핵(核)은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는 것,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 하는 것,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써 경시되지는 아니하는’ 것, ‘국군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 헌법의 핵이 더욱 존엄스러워지기 위해서 헌법 개정은 신중해야 하고, 신중한 가운데 개정하더라도 추가조항의 방법으로 형식적인 존엄성을 더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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